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6
악녀는 두 번 산다 46화
세드릭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었다가 말했다.
“황후 폐하는 자애로운 분은 아닙니다.”
“네…….”
“마지막으로 뵈었던 것이 제가 스무 살이 되어 대공의 작위를 계승받았을 때입니다. 아마 황제 폐하께서도 그때 마지막으로 만나셨을 겁니다. 편찮으신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고 계시니, 건강하게 지내실 수는 없겠죠.”
“예. 제가 자주 찾아뵙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셨잖아요. 단순한 친척도 아니고, 황후 폐하께서도, 세드릭 님도, 휘하에 사람을 거두고 있는 몸인 걸요. 안위를 생각하셔야 했으니.”
“예. 그렇지요.”
세드릭이 약간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잠깐 뵌 것뿐이니 그때의 인상으로 말씀드려서는 도움이 안 되겠군요. 어릴 때에……, 파벨 형이 살아 있었을 때에는 가끔 놀러갔었습니다만.”
파벨은 18년 전에 죽은 황후의 둘째 아들이었다.
세드릭이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황후 폐하는 파벨 형에게도 냉정한 분이었죠.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일찍 어머니를 잃었기 어릴 때에는 친어머니라는 것에 좀 환상 같은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황후 폐하가 너무 차가우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비탄에 잠겨 계시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르티제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파벨 황자님이 살아계셨다면, 그 분이 리아간 공작가의 후계자가 되셨겠지요?”
“맞습니다. 황후 폐하께서 공작가의 유일한 적녀이셨기 때문에, 결혼 전에 황제 폐하와 계약서를 쓰셨습니다. 두 분 사이에 태어나는 자녀분들 중 막내는 리아간 공작가에 속하게끔 한다고요. 리아간 공작가를 황실에 합치지 않기 위해 그러셨던 것이지요.”
“귀족적인 분이셨군요. 야심도 있고, 황실과 혼인하면서 그런 조건을 달기 쉽지 않은데.”
“예.”
세드릭이 대답하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르티제아가 생각에 잠기자 마차 안이 조용해졌다.
그녀는 황후가 그 계약을 작성할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결혼을 선택한 것은 당시에 그것이 그레고르 황제를 지지하면서 그의 정통성을 보충할 수 있는 간편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리아간 공작가를 황실에 합칠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면 황후의 마음 속에 여전히 리아간 공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큰 비중일 것이다.
“프레일 경이 가져다준 소금 결정이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어요.”
“……친합니까?”
“네?”
세드릭이 뜬금없이 묻는 말에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세드릭이 입가를 한 번 쓰다듬었다. 동요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친해 보여서…….”
“안 친해요.”
아르티제아는 즉답했다.
본색을 보여주었고,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 숨기지 않고 쉽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친하다는 말은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세드릭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그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한 질문을 했군요. 프레일은 눈치도 빠르고 믿을 만한 사람이지요.”
“네.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지만, 그 전에 뭐가 아니라고 말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차는 나무가 우거진 작은 정원을 지나 황후궁 정문 앞에 섰다.
세드릭이 먼저 마차에서 내려서 아르티제아를 안아 내렸다.
마중 나온 시녀 마르타 백작 부인이 공손히 절했다.
“어서 오십시오, 에브론 대공 전하, 로산의 소후작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마르타 백작 부인.”
“한동안 뵙지 못한 사이에 더 헌칠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마르타 백작 부인이 세드릭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에게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후 폐하께서 편찮으신 와중에도 소후작을 만나볼 날을 무척 기다리셨습니다.”
“영광입니다.”
아르티제아는 뒤따라 내린 앨리스에게 눈짓했다.
앨리스가 미리 지시받았던 대로 얼른 보석 상자를 내려서 마르타 백작 부인에게 내밀었다.
“제가 시녀를 따로 거느리지 않은 탓에, 황후 폐하께 바칠 물건을 하녀에게 들고 오게 했습니다. 염치없는 일이지만,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그러셨군요. 그러면, 제가 맡아드리도록 하지요.”
마르타 백작 부인이 상자를 받아 들었다.
“들어가시지요.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드릭이 팔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에스코트 받으며 안으로 향했다.
천장이 끝없이 높아 발소리가 울렸다.
바닥은 대리석이고, 기둥에는 금으로 아로새긴 장식이 붙어 있었다.
커튼이 열려 있어서 환했는데도 어쩐지 어두침침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인기척이 없기 때문이리라.
접견실에 도착하자 마르타 백작 부인이 공손히 알렸다.
“에브론 대공과 로산 소후작이 당도했습니다.”
삐걱 문이 열렸다.
황후는 고작해야 시녀 둘을 거느리고 앉아 있었다.
오늘도 상복차림이었다. 목에 건 보석은 광택이 전혀 없는 검은 제트였다.
이곳은 황후가 스스로 만든 무덤이다.
그것을 실감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의 팔을 놓았다. 그리고 먼저 황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가 그리 편안한 처지가 아닌 것을 알고, 또 수도에 오래 있지도 못하는데, 자주 인사 오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리 있겠느냐?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것만 해도 고맙구나.”
“아닙니다.”
“그쪽이 로산의 소후작인 게로군?”
“예. 제 약혼녀입니다.”
세드릭이 일어서서 소개했다.
아르티제아는 천천히 다가가 황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검은 상복자락에 입을 맞추었다.
“로산의 아르티제아가 제국의 달께 인사를 올립니다.”
“고개를 들라.”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들었다. 황후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미카엘 경을 닮았구나.”
“황공합니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알현을 허락해주셔서 망극합니다.”
“내가 비록 몸이 좋지 않아 궁에서 조용히 요양하고 있지만, 세드릭의 약혼녀조차 만나보지 못하겠는가. 그래도 간간이 바깥소식은 전해 듣고 있었네. 알면서도 진즉 불러 만나보지 못했으니 미안하게 되었네.”
“황공합니다. 저야말로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했는데, 모자란 자라 이렇게 불러 주실 때까지 감히 뵙겠노라 청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않은가. 거처를 옮기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지. 가문을 수습하는 것도 큰일이고. 세드릭이 잘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로산 후작가가 어디 작은 가문이던가?”
황후가 느릿하게 말했다. 자신이 귀를 열어두고 사교계 소식을 모두 듣고 있다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르티제아는 공손히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감사하게도 결혼 전부터 약혼자가 저의 후견인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고, 또 집안의 오래된 고용인들도 돌아왔으니까요. 순조롭게 수습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로군.”
“이처럼 황후 폐하께서도 알현을 허락하셨으니 저로서는 염려가 모두 씻어진 듯 안심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황후 폐하께 바치고자 가져온 물건이 있습니다.”
마르타 백작 부인이 아르티제아가 가져온 보석 상자를 황후에게 받들어 올렸다.
황후가 상자 뚜껑을 열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오전의 햇빛을 받아 찬연하게 빛났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과 다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들어도, 여전히 아름답군.”
황후는 한순간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 떨림은 무표정한 위엄 아래로 가라앉았다.
“헌데 이것은 세드릭이 소후작에게 청혼 선물로 주었다고 들었는데.”
세드릭은 대답하는 대신에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이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 보석에 얽힌 역사를 알고 나서 어떻게 그냥 다이아몬드로 생각하고 제 목에 걸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황후 폐하께 돌려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약혼 선물은 따로 주고받았습니다.”
“이 보석의 원주인이 황실의 대를 끊은 죄인으로서 자결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후작은 그렇게 말하는가?”
황후의 날카로운 물음에 세드릭이 끼어들려는 듯이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미동조차 하지 않았기에 애써 참았다.
“보석을 단지 보석으로만 여긴다면 괜찮네. 이렇게 훌륭한 다이아몬드라면 로산 후작의 결혼 예물로서도, 대공가의 보물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니까.”
황후가 더 강하게 추궁했다.
“하지만 역사를 말하면서 내게 바치다니, 이는 나를 능멸하는 일이네. 죄인의 과거를 마땅히 내가 보관해야 한다는 것은, 그 죄인을 나와 하나로 엮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미 한 번 생긴 유서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아르티제아가 단정한 자세로 말했다.
“물건에 붙은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보석을 가지고 있었던 귀부인이 과연 단순히 귀한 다이아몬드로만 여긴 것이겠습니까? 보석이 그동안 황후 폐하가 아니라 다른 자의 손에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 일을 잊었겠습니까?”
“소후작. 감히.”
“페셔 자작가의 가보는 절대로 그냥 보석이 될 수 없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황후가 바라는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황후에게는 자신과 함께 괴로움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 만큼 신뢰하는 사람과만 함께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황후궁의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리라.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그녀에게 그 신뢰를 줄 수 없었다. 황후는 단시간에 말만으로 구슬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대신에 그녀는 약점을 쥐여 주기로 했다.
페셔 자작 부부는 황자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 그리고 책임을 요구한 자는 황후가 아니라 황제였다.
다시 말해 페셔 자작 부부를 추어 올리는 것은 황제가 한 일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황후가 그 약점을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상복을 입고 있는 황후가 페셔 자작 부인의 죄를 다시 자기 입 밖에 내어 언급할 리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들고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그분이 황후 폐하의 신뢰에 온전히 보답하지 못한 괴로움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니다.”
“…….”
“페셔 자작가는 역도로서 처형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후손이 끊어진 것이지요.”
침묵이 숨 막히게 내려앉았다. 황후가 보좌의 팔걸이를 몇 번 톡톡 두드리고는 말했다.
“위험을 자처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보상을 바라게 마련이지. 소후작 이 바라는 보상은 뭔가?”
“다만 황후 폐하를 가까이에서 모시고자 할 따름입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저를 페셔 자작 부인과 같이 써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