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47
악녀는 두 번 산다 47화
가장 놀란 것은 세드릭이었다.
이 일에 대해 조금도 언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티아.”
그가 손을 뻗어 아르티제아의 손목을 잡았다.
아르티제아는 그 손을 부드럽게 뿌리치며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마차에 놔두고 온 상자를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프레일 경에게 받은 그것이요.”
“티아.”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달래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는 물건이에요. 황후궁이라고 해도 어딘가에는 황제 폐하의 눈과 귀가 있을 테니까.”
아르티제아의 말이 옳았다. 세드릭은 하는 수 없이 일어섰다. 그리고 황후에게 살짝 묵례하고 접견실 밖으로 나갔다.
아르티제아는 일어서서 황후의 앞에 다시 무릎 꿇었다.
황후가 나른하게 등받이에 기대며 물었다.
“내 궁을 의심하다니, 무엄하구나.”
“사실이라는 것을 황후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황제처럼 의심 많은 사람이 황후궁처럼 가까운 곳에 사람을 심지 않았을 리 없다.
황후도 더 트집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시녀가 되겠다?”
“네.”
“두 사람 사이에 의논이 되지 않은 일인 모양이군.”
황후가 그렇게 말했다.
“제가 결정한 일입니다.”
아르티제아의 얼굴에는 혈색이 없었다. 그래서 강한 의지를 품은 두 눈동자가 더욱 깊고 새파랗게 빛났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심을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리 수치스러운가?”
황후는 아르티제아를 흔들기 위해 그렇게 물었다.
고귀한 신분의 귀부인일수록 아무나 시녀로 삼지 않는다.
귀부인의 시녀가 되는 것은 보통 결혼하지 않은 자매나 사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손수 귀부인으로 교육시킬 조카라든가 피후견인이었다.
한 가문의 주인이라면 충성으로 맺어진 가신 중에서도 믿을 만한 이가 시녀가 된다. 이런 시녀들은 단순히 곁에서 잡다한 일을 보살펴주고 말동무가 되는 여자가 아니다. 심복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오늘 황후를 처음 만나는 것이다. 로산 후작가가 과거에 황후나 리아간 공작가와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사이이니 충성이나 서약을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하물며 로산의 소후작이라면 모를까, 에브론 대공비의 신분으로 황후의 시녀가 되어 무슨 이득을 얻겠는가?
황궁의 중앙에서 권력다툼을 하고 있을 때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칩거하고 있는 황후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를 따르고자 내 시녀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네 어미를 화나게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감히 너 자신을 페셔 가에 비견하고, 나를 이용하려 했느냐?”
아르티제아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어머니와의 인연은 이미 끊어졌습니다. 에브론 대공가에 수치를 안기고 싶지 않습니다. 밀라이라의 딸이 에브론 대공비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황후 폐하의 시녀가 에브론 대공비가 되었다는 것 쪽이 나으니까요.”
“내가 그 뜻을 들어주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레고르와 함께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면서까지?”
황후는 치를 떨며 말했다.
남편 조카의 결혼식이라면 칭병하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녀의 결혼식이라면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곧 황제와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황제와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서로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제 뜻을 들어주실 겁니다. 복수하고 싶으실 테니까요.”
“네 어미 따위를 괴롭히는 것이 어찌 내게 복수가 되겠느냐?”
황후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야 나는 밀라이라를 싫어한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있든, 없든, 그 정부를 좋아하는 여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
“내 아이가 죽었을 때에 그레고르는 그년과 그년의 아들을 끌어안고 너희가 있으니 됐다고 말했지. 내 아이가 물려받았어야 할 것을 그년의 아들에게 주고, 내 친정식구를 죽여 버리고 가산을 찢어 그년에게 아첨하는 자들에게 나눠주었어.”
황후가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라이라 따위가 어찌 내 복수의 대상이겠느냐? 그레고르에게 그년을 귀여워하는 것은 여흥에 불과하다. 총애를 핑계 삼아 그년의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자를 쳐내는 것이 진짜로 그년을 위하여 하는 일이겠느냐?”
황후의 노성이 접견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첨하는 자와 그러지 않은 자를 가름으로써 귀족의 세력을 반으로 쪼개고, 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하는 자를 미리 숙청하며 신하들을 위압하기 위해서이지!”
“그러면 후사를 황제 폐하의 뜻대로 하게 두실 겁니까?”
그 밀라이라의 딸이면서도 아르티제아는 조금도 물러나거나 겁내지 않았다.
“황제 폐하는 탐욕스러운 분입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법입니다. 황제 폐하는 숨이 멎는 순간까지 그 권력을 쥐고 있다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총애하는 자식에게 물려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로렌스가 가장 가능성이 높지요.”
“…….”
“하지만 그 자식이 물려받을 것은 모두 황후 폐하의 소생이 받았어야 할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그것을 모두 마음대로 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분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일이 아닙니다. 그 황좌에 황후 폐하께서는 얼마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계십니까?”
황후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의 속을 찔러 노여움을 부추기는 솜씨가 탁월하구나.”
“황공합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분노와 욕망 쪽이 사람을 손쉽게 움직인다. 두려움과 구속이 사람을 조종하는 훨씬 유용한 수단이다.
황후는 그것을 알아챘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레고르의 황좌에는 내 지분이 분명히 들어 있지. 그게 탐나는가? 네가 원하는 것은 황후의 자리인가?”
“제가 원하는 것은 저의 마땅한 권리를 되찾아오는 것과, 또 두 번 다시 남에게 비굴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정의라든가 옳은 길이라든가, 그런 것을 따르기로 했다는 말을 황후는 믿지 않으리라. 차라리 야망이나 복수를 말하는 쪽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세드릭과 리시아를 몰랐다면, 아르티제아 자신도 그랬을 테니까.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절 업신여긴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수가 될 테니까요.”
황후가 후 비웃음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내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이구나. 내가 네 뜻을 따라주면, 너는 내게 무엇으로 갚겠느냐?”
“황제 폐하께서 붕어하실 때에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비참한 사람이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황후가 말을 잃었다. 황후의 시녀들조차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바짝 날선 공기가 접견실에 가득 찼다.
아르티제아는 염려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모를까,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으니까.
황금으로 장식된 침대에 누워서 죽더라도, 황제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네 말이 역모로 들릴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아느냐?”
“돌려서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황후 폐하께서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황후가 안색을 변화시켰다.
그때였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시종이 공손히 말했다.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세드릭이 직접 상자를 안고 돌아왔다.
그는 접견실 안에 감도는 긴장감을 알아챘다. 하지만 당혹감을 드러내는 대신에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그 공기를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세드릭의 존재감이 접견실의 분위기를 묵직하게 내리누르며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가 테이블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세드릭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심각하고 중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굳이 그 자리에서 묻거나 눈치 없이 굴지 않았다.
대신에 아르티제아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무릎을 꿇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팽팽했던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황후가 상자를 보고 물었다.
“그게 무엇이냐?”
“티아가 황후 폐하께 진상하고자 준비해온 선물입니다. 올가의 심장은 황후 폐하께서 본디 되찾으셔야 마땅한 것이니 선물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르타 백작 부인이 다가왔다.
세드릭은 가만히 손을 내밀어 백작 부인이 상자를 열지 못하게 했다.
“제 생각에는 지금 여실 게 아닌 듯합니다.”
세드릭이 제 속을 다 뚫어보고 말한 것 같아서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황후가 세드릭을 보고 탄식하듯이 말했다.
“어쩌다가 이런 아내를 얻게 되었느냐?”
세드릭이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황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짐작이 갔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만.”
“소문에 듣기로는 네가 반했다고 하던데.”
“그건 맞는 말입니다.”
황후가 탄식하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어리니 철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동요가 일어났다.
신뢰할 이유가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지금 가진 것은 로산 후작가의 재산과 세드릭밖에 없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로산 후작가를 되찾는 것에 성공했다.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고 목표가 뚜렷하다.
세드릭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있지만, 거짓이리라고 황후는 생각했다.
아르티제아가 드러낸 야망의 크기와 확신 어린 태도는 황후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소녀 시절의 황후는 갖지 못했던 냉혹함과 객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의 야망과 목적의 위대함으로 남을 설복할 수 있다고 믿지 않고 있다. 이 나이 또래가 그런 것은 드문 일이다.
대가로 치르겠다는 것도 자기 나름대로 위한다고 되는 대로 생각해낸 내용이 아니다. 정확하게 황후를 겨냥하고 있다.
이런 여자는 감정에 휘말려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황후는 퍽 누그러진 목소리로 아르티제아에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혈연과 가문에 헌신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충성할 상대를 따로 고르는 법이지.”
“황공합니다.”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였다. 황후는 자신이 말한 야망과 증오를 넘어서서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지 꿰뚫어 본 듯했다.
황후가 느릿하게 말했다.
“나도 그런 사람을 알기에, 소후작의 욕망을 부정하지는 않겠네.”
그리고 황후가 손짓했다.
“마르타, 내 침실에서 그것을 가져왔으면 좋겠구나.”
“황후 폐하…….”
황후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마르타 백작 부인이 놀라서 되물었다.
“어린 숙녀에게 선물을 받았으면, 그보다 더 큰 하사품을 내리는 것이 관례가 아닌가. 하물며 결혼을 앞두었으니 더욱 소홀할 수 없구나.”
“알겠습니다.”
마르타 백작 부인이 공손히 대답하고 물러갔다.
황후가 피로해진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두르고 있던 위엄이 모두 닳아져 본래의 얼굴을 노출시킨 듯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