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0
악녀는 두 번 산다 50화
유니스 백작 부인이 입술연지가 지워지는 것도 잊고 벌린 입을 한 손으로 가렸다. 소리를 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는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피와 에밀리가 손을 내밀어 아르티제아가 일어설 수 있도록 부축해 주었다.
문이 열렸다.
쿵.
실제로 발소리가 들렸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유니스 백작 부인은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만큼 황후의 존재감이 컸다.
황후궁 밖으로 나온 것은 18년 만일 터이다.
유니스 백작 부인은 황후를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황궁에서 그녀에게 가장 두려운 사람이 바로 황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이는 들었지만, 변함없이 차갑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황후는 오늘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실내가 온통 신부를 위한 치장으로 가득했기에, 상복 같은 검은 드레스가 더더욱 눈에 띄었다.
“왕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아르티제아는 소피의 부축을 받아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사각사각 새하얀 드레스자락이 구겨졌다.
황후가 코웃음을 흘렸다.
“내가 올 줄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리 된다면 일생의 영광이겠다,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법을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그 결과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황후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황후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말했다.
“마르타, 이 차림새로는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부적절하구나. 꽃을 몇 송이 가져오너라.”
상복을 벗지 않은 것은 아직 아르티제아의 말을 다 믿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상복 차림새로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불길한 일을 할 마음은 없었다.
에밀리가 황급히 나서서 투왈렛 룸을 장식한 장미꽃 중 큰 것을 골라 황후의 가슴과 모자에 장식했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는 확 밝아졌다.
황후가 아르티제아의 베일을 끌어당겨 다듬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케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장미꽃송이에 순금 보주를 한 알 넣어주었다.
곧 결혼식장에서 심부름꾼이 올라 왔다. 식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세드릭의 준비는 아르티제아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짙푸른 색의 예복을 입고, 휘장을 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차림새를 도와주는 하인들은 훈장까지 전부 다 달기를 원했다.
하지만 옷에 달린 금줄과 견장만으로도 장식이 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드릭은 대부분 생략했다.
준비가 많지 않은 대신에 그에게는 의무가 많았다. 에브론 대공가의 주인으로서 손님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도 로산 후작가의 주인이었으나 신부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의무를 면제받았다.
그러나 결혼식 날에 신랑이라고 해서 의무를 면제해주는 경우는 없다.
실제 손님의 대부분이 세드릭의 손님이었다.
아르티제아의 손님은 로산 후작가의 방계 혈족뿐이었다. 교제 범위도 좁아 개인적인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세드릭을 찾는 사람은 끝없이 많았다.
군부의 유력자들이며 부하, 그를 경애하는 기사들, 부모의 옛 친구들까지 축하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서부 요새에서부터 편지를 따로 보내서 물어보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벽창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전하가 중매도 아니고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다니.”
“서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대공령은 아주 난리도 아니에요. 다들 죽어도 이 결혼식에 참석해야겠다고 결투도 할 뻔했다니까요. 제일 빠르고 튼튼한 말을 가진 제가 이겼지만.”
떠들썩한 기사들 틈에서 세드릭은 한숨만 쉬었다.
“어차피 결혼식이 끝나면 그쪽으로 갈 거라고 하지 않았나.”
“진짜 잘못하시는 겁니다, 전하. 신혼여행으로 영지라니. 그것도 그 영지가 에브론 대공령이라니. 나중에 비 전하께 무슨 원망을 들으시려고요.”
맞아, 맞아, 하고 동의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울렸다.
세드릭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도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움직였으니, 한두 달 정도 휴양지에서 쉬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요.」
「그렇게 해야 할 일이 많다면, 차라리 수도에 남아 있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절 대공령으로 데려가기 싫으신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북부는 춥습니다. 황량해서 볼 것도 없고요.」
그때 아르티제아가 지은 이상하고 미묘한 표정을 세드릭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세드릭을 바라보고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북부에서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어요.」
아르티제아는 에브론 대공령에 딱히 아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본인의 입으로도 수도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게 누굽니까?」
세드릭은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완강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떠오르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에게 모든 일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알려서는 안 될 일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도 있으리라.
하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그런 얼굴을 하게 만드는 그 ‘만나봐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신경 쓰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대공 전하가 사실 무시무시한 계략을 가지고 그러시는 거 아닌가?”
린 재상의 말에 세드릭은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다.
“계략이라니요?”
“연애를 한다면서 같이 언제 무도회를 가나, 사교 모임에 나오시길 하나, 소풍을 가길 하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전하가 신부를 숨겨놓고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러는 게 분명합니다. 그런 남자는 순식간에 범죄자가 됩니다. 전하.”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맞아요. 아무리 좋으셔도 집에 가두시면 안 됩니다.”
“결혼 전부터 같은 집에 계시니까 딱히 데이트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으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놀리려고 하는 말에 눈치 없는 소리를 던지는 놈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스가르는 어찌되었습니까?”
린 재상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분명히 제일 기뻐하는 사람이리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대공 전하를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쁜 나머지 어젯밤부터 우시는 바람에 지금은 눈이 부어서 손님들 앞에 나오지 못하게 됐댑니다.”
프레일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친네 쓰러지는 줄 알고 아주 아침에 난리도 아니었어요.”
“결혼식 참석도 못하고 어쩌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크라테스의 기둥, 신으로부터 왕홀과 보주를 받아 지상의 태양이 되신 그레고르 아파나시 네스토르 황제 폐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금세 사라졌다.
세드릭은 마음을 다지고 몸을 긴장시켰다.
그는 단신으로 창을 들고 말을 몰아 적진으로 뛰어드는 일을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황제와 마주하는 것은 두려웠다.
세드릭은 자신이 사교계의 싸움에도, 권력 암투 같은 것에도 서투른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방패라도 되어야 한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을 위해 창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뚫리지 않는 방패여야 했다.
세드릭은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오오, 세드릭. 그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네가 결혼한다는 실감이 팍 나는구나.”
황제는 세드릭이 미처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그를 잡아 포옹했다. 소탈하게 웃는 얼굴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망극합니다.”
“도통 국경으로만 돌고, 가정을 꾸리기는커녕 여자가 있는 기색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세상이 이렇게 다 짝을 정해놓은 법이지.”
“나이가 찼으니까요.”
황제의 뒤를 따라온 로이가르 대공이 웃으며 말했다.
“적절한 나이에 딱 맞는 짝을 만나는 게 의외로 또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정말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게 이상할 만큼 어울리는 한 쌍이로구나.”
“황공합니다.”
세드릭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티아는 똑똑하지만 소심한 데다가 보호가 필요하고, 너는 한 걸음 물러서서 지킬 줄 아는 사람이지.”
황제가 말했다.
“전에도 너는 현명하면서도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예.”
세드릭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황제의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르티제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도 딱히 앞에 나서는 여자나 화려한 타입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황제의 앞에서 아르티제아가 그만큼 자신을 잘 숨긴 걸까?
아니면 그의 판단력이 흐려진 걸까?
황제는 황후가 아르티제아에게 성녀 올가상을 보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황후와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무슨 거래가 이루어졌는지 의심하고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지금 하는 말이 정말로 그렇게 보인다는 판단인지, 앞으로도 조용히 나서지 말고 살라는 경고인지 확실하게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세드릭을 둘러싸고 본식이 준비된 정원으로 나갔다.
날씨는 맑았고 기온은 적당했다.
검소하다는, 다른 말로 하자면 촌스럽다는 에브론 대공가의 결혼식답지 않게 정원은 우아했으며 장식은 화려했다.
곳곳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는 이름을 새긴 금 장식품이 놓여 있었다. 이 이름표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세드릭은 황제를 모시고 그가 자리할 테이블로 향했다.
황제의 오른쪽에는 대주교가, 대주교의 오른쪽에는 로렌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왼쪽은 비어 있었다. 자리를 하나 건너뛰고 로이가르 대공의 자리가 준비되었다.
그것을 로이가르 대공은 이상하게 여긴 듯했다.
“왜 자리를 비워놓았어?”
“이상합니까, 숙부님?”
“대주교님과 내가 나란히 앉기 좀 그래서인가.”
로이가르 대공이 스스로 답을 만들어냈다.
세드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자리의 주인은 황후이다.
다만, 이 순간까지도 황후가 정말로 결혼식에 참석할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름표를 달아놓지 않았다.
“왜 후작의 작위를 네가 물려받는 걸로 하지 않았어? 그래도 됐을 텐데.”
다른 이들에게 인사를 하러 가려는데, 로이가르 대공이 뒤따라와 물었다.
“가문을 합치는 거라면 그쪽이 안정적이었을 거야. 일단 네가 작위를 쥐고 있으면, 손대려는 사람은 없겠지.”
“가문은 합치지 않을 겁니다. 티아는 아직 어리고, 자기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모든 걸 다 그녀에게 돌려줄 작정입니다.”
“하긴, 넌 명예를 따지니 로산 후작가를 탐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지.”
세드릭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