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1
악녀는 두 번 산다. 51화
로이가르 대공이 말했다.
“몸 사리는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 너도 어엿이 일가를 이루었으니 전과는 세상 사는 방식도 달라지겠지.”
“예.”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 숙부에게 언제든 연락하려무나. 하긴, 너보다도 네 신부가 그런 면에서는 더 똑 부러진 것 같더라만.”
로이가르 대공이 하하 웃었다.
“우리 처형 알지? 카멜리아 후작가의? 요즘 아주 입만 열면 네 신부 이야기뿐이야.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같이 우리 집에도 한 번 오고.”
“예.”
“친척이라고 해도 황실에 함부로 드나들 순 없고, 로렌스는, 흠, 그래, 조카라고는 해도 좀 그렇지 않으냐.”
로이가르가 말하다 말고 입을 흠칫 다물었다가 곧 웃는 낯으로 고쳐 말했다.
“네 신부를 두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이해하지? 로산 후작가를 계승한 사람과 같을 수는 없지. 아무튼 얼마 없는 가족이 아니냐?”
“예. 이해합니다.”
세드릭은 무감정하게 대답했다.
로이가르 대공과 세드릭은 비슷한 고난을 겪었다. 숙부와 조카치고는 나이 차이도 적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었다.
타고난 성정도 달랐다.
로이가르 대공은 일찍부터 중앙 정계에서 주류 세력을 잡지 못한 귀족이나 대상인들과 손을 잡고 자기 세력을 일구었다.
그가 그러는 동안에 세드릭은 어린 나이로 북부를 지켜야 했다.
다소나마 안정되고 나자 황제는 이번에는 그를 다른 전쟁터로 보냈다.
생활이 다르니 이따금 만나도 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그냥 의무적인 인사나 하고 헤어지는 사이였다.
이제 와서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처럼 굴다니.
이유를 알면서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러고 보니…….”
로이가르 대공이 망설였다.
밀라이라가 오지 않느냐고 궁금증이 생겼지만, 지금 세드릭에게 그걸 묻는 게 적절하지 않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로렌스를 흘끗 바라보았다.
로렌스는 태연한 얼굴로 황금 이름표를 옮기고 있었다.
하인 하나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로렌스에게 다가가 귓속말했다. 그러자 로렌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도 미묘한 기분으로 이름표를 보고 있었다.
‘로산 소후작이 빈자리를 실수로 만들었을 리가 없는데.’
무슨 의도일까.
이츠 남작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만 해도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아르티제아를, 나아가 세드릭을 포섭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츠 남작 사건에서 가장 손해를 본 것은 로렌스 파벌의 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아르티제아는 딱히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도, 로이가르 대공비에게도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라이라와의 사이는 완전히 벌어진 것으로 보였다.
이름표의 빈자리는 밀라이라의 자리를 남긴 것일까?
“언니, 우리도 신부를 보러 가면 어때?”
로이가르 대공비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카멜리아 후작 부인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초대받지도 않았는데요.”
“하지만 샬럿은 갔잖아. 나도 친척인 걸.”
“유니스 백작 부인과 로산 소후작은 본래부터 교류가 있었어요. 하지만 비 전하는 로산 소후작과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
“로산 소후작은 좋겠다. 내 남편한테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은 잘생긴 남자랑 살아보고 싶었어.”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비 전하.”
“언니는 생각한 적 없어? 세드릭 같은 남자랑 키스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공비 전하.”
“로렌스도 잘생기긴 했지만 말이야. 너무 밀라이라를 닮아서 기분이 이상해. 그리고 나는 섬세하게 생긴 것보다 저렇게 좀 남자답게 생긴 게 좋더라.”
대공비가 철없이 말했다.
그녀는 동부의 명문인 루덴 후작가의 금지옥엽 막내딸이었다.
루덴 후작에게는 자식이 열 명 넘게 있었으나 대부분 사생아였다. 적자는 대공비를 제외하면, 그 위로 후계자인 장남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유일한 적녀로서, 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미래의 정략결혼을 위해 아주 소중하게 길러졌다.
열다섯 살 연상인 로이가르 대공과 약혼했을 때에는 6살에 불과했다.
그것은 루덴 후작이 평생 동안 했던 투자 중 가장 큰 투자였다. 대공비는 요컨대 그 투자 계약서였다.
그 계약이 양쪽 모두에게 성공적인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로이가르 대공은 어린 아내를 금과 비단으로 싸서 보물을 모셔두듯 애지중지했다.
건강한 아이를 셋이나 낳아 후계도 탄탄히 해주었다.
그런 처지는 로이가르 대공비의 용모에 고스란히 남았다.
무구한 소녀처럼 명랑한 얼굴로 하는 말에 카멜리아 후작 부인만 걱정에 사로잡혔다.
“비 전하, 오해를 살 것 같은 말씀은 그만두십시오. 에브론 대공은 비 전하의 조카입니다.”
뭘 그렇게 따지느냐고 대공비가 옹알대었다.
그때였다.
저택 입구 쪽에서 환호성과 경악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부터 충격이 파도처럼 퍼졌다.
로이가르 대공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부가 나왔나?”
의아하게 물은 것은 신부를 환영하는 소리라기에는 너무 놀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드릭은 로이가르 대공에게 묵례하고 돌아섰다.
아르티제아가 황후의 손을 잡고 장미꽃 아치를 통과했다.
마치 딸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으로 나오는 것처럼.
신부와 함께 나오는 것이기에 굳이 큰 소리로 호명하여 누가 당도했는지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누구인지는 금방 퍼졌다.
“맙소사.”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깜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멜리아 후작 부인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랬다. 결혼식장 전체가 파도처럼 술렁거렸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고 격식 있는 인사 대신에 세드릭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환한 미소가 얼굴에 걸렸다.
아르티제아의 심산이 맞아들었다는 안심감 때문은 아니다.
아르티제아는 황후가 오지 않더라도 결혼식 자체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가족의 역할을 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결혼식장에 들어오는 것은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황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세드릭은 자기 뺨을 쓸었다.
“제가 뭐 이상한 말씀을 드렸습니까?”
“아니.”
황후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한 말이 거짓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두고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드릭은 알아챘다.
그가 얼굴을 불그레하게 하고 시선을 피했다.
“놀리지 마십시오.”
그러고 있는데 황제가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놀람이 묻어 있었다.
“카트린.”
황후는 얼굴을 굳히고 차가운 시선을 황제에게 던졌다. 황제가 짐짓 평연한 태도를 가장했다.
“황궁 밖으로 걸음하다니 어쩐 일이오? 몸은 좀 괜찮소?”
“시녀가 결혼을 하는데 잠시 와서 보지도 못할 만큼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에요.”
“시녀.”
황제가 계산 가득한 시선을 아르티제아에게 던졌다.
아르티제아는 그를 마주보지 않고 눈을 가만히 내리깔았다.
황후가 말했다.
“결혼식에 와서 신랑 신부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럴 생각은 없소.”
황제가 위선적인 미소를 지었다.
“좀 놀랐을 뿐이오. 당신이 이제 옛일을 떨쳐버리고 바깥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환영할 일이지. 그 계기가 결혼식이라니, 우리 옛날 생각도 나고 좋군.”
황후가 이를 무는 게 세드릭과 아르티제아에게도 보였다.
황후는 굳이 황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냉랭하게 대꾸했다.
“됐어요. 달리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이 나이가 되어 평생 외롭게 사느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선한 조카 부부에게 의지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것도 좋지. 당신이 평안한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면.”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기 가슴에 달린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풀었다.
“당신이 티아의 어머니 자리에 서기로 했다면, 세드릭의 아버지 자리에는 내가 서도록 하지. 그렇지 않아도 부모 없이 결혼식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그랬는데, 마침 잘 되었소.”
여자에게는 결혼한 날의 빛나는 마음을 순수하게 간직하라는 의미로 어머니가 순금 보주를 준다.
남자에게는 앞으로도 단단한 마음을 영원히 지키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새 다이아몬드를 준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 그것을 합쳐 부부를 위한 기념물을 만든다.
그것이 관례였다.
황제의 브로치는 새 다이아몬드는 아니다. 하지만 황제의 하사품이니, 새것에 비해 모자란 물건은 아니었다.
황제는 당황하는 세드릭의 가슴에 손수 브로치를 달아주었다.
악단이 눈치 빠르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시종과 시녀들도 두어 걸음을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황후가 다시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았다.
황제는 세드릭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다시 두드렸다.
길의 좌우에 도열한 기사들이 일제히 예검을 들어 은빛의 지붕을 만들었다.
앞장선 화동이 꽃을 뿌렸다.
네 사람은 천천히 제단 앞으로 향했다.
제단 앞에 당도하자 황후는 아르티제아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부케를 지금까지 자기가 잡고 있던 손 쪽으로 바꿔 들려주었다.
그러고 나자 황제가 황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레고르.”
황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떠돌았다.
“결혼식이오.”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원수처럼 굴어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을 담아 그가 그렇게 말했다.
황후는 하는 수 없이 황제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이것이 바로 아르티제아가 요구한 일 중의 하나였다.
아르티제아가 시녀가 되겠노라 했던 목적 자체가 처음부터 이것이었다.
밀라이라로부터 아르티제아의 어머니 자리와 황제의 옆자리를 모두 빼앗는 것 말이다.
황제가 제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하더라도, 황후가 참석하면 밀라이라와 부부 동반 행세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밀라이라가 감히 황후가 참석한 결혼식에 얼굴을 내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황제와 부부 행세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 일이었다.
그러나 황후는 이미 각오를 마치고 왔다.
그녀가 손을 잡자 황제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마치 황후를 굴복시키기라도 한 듯한 승리의 미소였다.
두 사람이 물러나자 세드릭이 비로소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았다.
대주교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신께서도 축복하실 훌륭한 한 쌍이로군요. 젊은 두 사람이 만났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오래 헤어져 있던 한 쌍이 화해할 계기가 생겼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르티제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밀라이라가 발작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달려 나가려는 그녀의 두 팔을 하인이 붙들었다.
로렌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참석하지 마시라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어머니.”
“로렌스!”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세요?”
“내가 티아의 엄마야!”
“그래서, 지금 결혼식을 망치시겠다고요?”
밀라이라가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