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2
악녀는 두 번 산다 52화
밀라이라는 저택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옷은 신부의 어머니가 입기에 딱 적절한 차분한 자주색과 베이지색의 드레스였다.
늘 자랑스럽게 드러내던 풍만한 가슴도 오늘은 노출하지 않았다.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 올리고 과하게 빛나지 않는 금 장신구를 꽂았다.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밀라이라는 오늘에 맞추어 이 드레스와 장신구들을 장만했다.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시기가 늦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의상실은 예약이 가득 차 있다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평소처럼 패악을 떨고 위세를 부리면, 굴복하는 곳이 있을 것이었다.
밀라이라는 그러지 않았다.
옷과 보석은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필요로 하는 것은 황제의 팔짱을 낄 때에 입을 옷이 아니라 신부의 어머니로서 입을 옷이었다.
결혼식에 흠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딸자식 결혼이니까.’
몇 날 며칠을 화내고 울며 방에 처박혀 있다가 비로소 정신이 들었을 때에, 제일 먼저 생각한 게 그것이었다.
아르티제아의 결혼식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치솟았다.
밀라이라는 침대에 누운 채로 몇 번이나 가슴을 쳤다. 울부짖고 발광하기도 했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서럽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밀라이라는 그 울분이 세드릭에 대한 분노라고 믿었다.
하지만, 황제가 허락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결혼을 아예 안 시키려면 모르되, 어차피 시킬 수밖에 없다면 제대로 시키는 게 낫다.
로렌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티아 그 소심하고 멍청한 것이 내 도움도 없이 어떻게 제대로 결혼해서 새로운 생활을 꾸려나가겠어?’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은 주위에서 부추겼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세드릭에게 사실상 감금된 상태일지도 몰랐다. 멀쩡한 얼굴을 하고 그러는 남자가 어디 한둘이던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좀 평화로워졌다.
아르티제아도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못해서 분명히 지금쯤 불안해하고 있으리라.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비록 이번에 반항도 하고 투정도 부렸지만, 오래가지 않을 테니까.
결혼을 허락해주면, 울면서 감사하고 용서를 빌 것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신경 많이 쓴 걸 알면 얼 마나 기뻐할까.
초대장도, 연락도 없었다. 로렌스에게서 오지 말라는 짧은 편지만 받았다.
밀라이라는 그것이 아르티제아의 뜻일 거라고 믿지 않았다. 세드릭이 한 짓이리라.
하지만 결혼식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드릭이 아무리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결혼식장에서 장모를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황제도 그놈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참으라고만 하지 않고 역성을 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결혼식장을 찾아왔다.
아르티제아의 하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택으로 바로 통하는 뒷길을 안내해 주었다.
밀라이라는 그것 보라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는 역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로렌스가 앞을 막았던 것이다.
밀라이라는 안도하면서 말했다.
「와 있었구나.」
「돌아가세요, 어머니. 어머니는 이 결혼식에 참석할 사람이 아닙니다.」
로렌스는 그렇게 말했다.
마침 그가 그 말을 했을 때에 저택에서 아르티제아가 나왔다.
황후의 손을 잡고.
부케에 순금 보주를 넣은 채로.
밀라이라는 충격으로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하객과 고용인들이 지르는 환호성에 묻혀 버렸다.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이 멀리에서부터 들려왔다.
어느 틈에 하녀는 빠져나가고 없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노하여 밀라이라는 아르티제아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로렌스가 하인을 시켜서 그것을 막았다.
“어떻게, 어떻게 너 이러니? 너 티아의 오빠잖니? 내가 티아의 엄마이고, 결혼식에 부모도 없는 애로 만들 작정인 거야?”
“티아를 부모 없는 자식처럼 만든 건 어머니죠.”
“뭐?”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때리고 머리채 잡고 끌어내셨잖아요. 티아가 집을 나간 것도, 어머니와 인연을 끊겠다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너, 너는 그래도 괜찮다는 거니?”
“전 티아 이해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심하셨습니다.”
로렌스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리고 티아 입장 좀 생각해보면 못 오시죠. 결혼식장에 어머니 손을 잡고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어머니 처지를 아시잖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대체! 난 로산 후작 부인이야! 티아 엄마라고! 내가, 내가 떳떳하지 못할 게 뭐가 있어?”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브론 대공이에요. 어머니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데, 작위나 결혼 서약서의 이름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로렌스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밀라이라는 충격받은 얼굴로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너, 너,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그러게 제가 오지 마시라고 했잖습니까? 와 봤자 서로에게 좋을 일이 없다고.”
로렌스의 얼굴에는 짜증과 귀찮음이 함께 서렸다.
“티아가 어머니보다 훨씬 머리가 좋습니다. 진짜로 필요한 게 뭔지도, 무얼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로렌스는 아르티제아가 황후의 시녀가 된다는 방법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 하겠다고 말했어도 가능하리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르티제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황후가 직접 손을 잡고 혼례의 제단 앞까지 데려간 여자를 누가 신분이나 혈통 문제로 공격할 수 있겠는가?
이 결혼식은 에브론 대공 부부에게 하나도 부족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은 밀라이라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긴 했었다.
하지만 로렌스는 그녀가 어떻게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구설수를 견디겠다고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설마 황후를 설득해낼 줄은 몰랐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 이미 로렌스의 안에서 아르티제아에 대한 평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완전히 뒤집혔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는지는 조금 괘씸하지만.’
그래도 아르티제아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에브론 대공비가 된 것만으로도 로렌스에게는 충분했는데, 황후의 시녀까지 되다니.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황후와 친분을 쌓을 기회를 주었다. 동시에 황후의 양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까지 보여준 것이다.
이제 밀라이라만 방해하지 않으면 되었다.
“어머니는 제가 황태자가 되는 걸 원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과 이게 무슨 상관이니?”
“티아가 그러더군요. 제가 황태자가 될 수 있는 합법적인 유일한 방법은 황후의 양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니? 너, 엄마랑 황후가 어떤 사이인지 몰라서 이래?”
“안 될 것도 없잖습니까? 티아가 황후의 시녀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어머니 때문에 그 자식들까지 원수처럼 여기지는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지금 티아랑 너랑 손잡고 엄마를 버리겠다고 그러는 거야?”
너무 화가 나서 밀라이라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난번에도 이럴 작정으로, 나한테 그러고 집 나갔니? 너까지? 너까지 지금 나한테 엄마 부끄럽다고 필요없다는 거야?”
“버리겠다는 말씀은 안 드렸어요. 왜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구세요?”
로렌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냥 한동안 조용히 계시라는 거잖아요. 아바마마 곁에서 비위나 좀 맞춰드리고 편안하게 지내세요. 일부러 황후와 겨루거나 화를 돋우거나 하지 마시고요.”
“로렌스!”
“그러면 저나 티아가 어련히 알아서 챙겨드리겠습니까? 어머니 자존심 만족시키는 건 그 뒤로 늦춰도 되잖아요? 제가 황제가 되면, 어머니는 황제의 어머니가 되시는 겁니다.”
밀라이라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넌, 내가 무슨,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사고라도 치고 다니는 것처럼……!”
“지금도 그러고 계시잖습니까?”
로렌스가 말했다.
“황후가 신부 어머니 자리에 있는데, 나가서 어쩌시려고요? 가서 황후의 머리채라도 잡고 흔드실 겁니까? 아니면 아바마마의 옆에 가서 에브론 대공의 어머니 노릇을 하실 겁니까?”
“로렌스!”
“어머니가 나서면 결혼식은 망쳐질 겁니다. 아무도 그걸 바라지 않아요. 어머니가 황후 앞에 어떻게 나서려고 그러세요? 아바마마가 화내시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십니까?”
그러는 사이에 로렌스의 어깨 너머에서 결혼식은 계속 진행되었다.
황후가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고 제단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 나올 때에는 황제의 손을 잡고 나왔다.
테이블에는 둘의 자리가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다. 목청 큰 대주교의 축사가 들려왔다.
꽃이 뿌려지고, 검이 내려졌다. 어린 복사들이 성가를 불렀다.
에브론 대공가의 기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그것을 따라 불러 복사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밀라이라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화장이 번져 검고 붉게 얼룩이 졌다.
“네가 엄마한테 이럴 줄 몰랐다.”
“돌아가 계세요. 결혼식 끝나면 찾아뵐 테니.”
로렌스가 결혼식이 끝날까 봐 신경 쓰며 말했다.
황후는 아마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돌아갈 것이다.
그전에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가능하다면 황제와 같은 테이블에 있을 때에 그러고 싶었다.
아르티제아가 한 번 황후를 궁에서 끌어냈으니, 앞으로도 황후를 만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여러 번 기회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밀라이라는 로렌스가 흘끔거리며 결혼식을 보는 것을 알았다. 왜 그러는지도 알아챘다.
세상이 모조리 등 돌린 듯한 기분이었다.
“엄마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돌아가세요, 어머니.”
“엄마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만 잘되면 된다고 엄마가 무슨…….”
“그러니까 제가 잘되도록 도와주셔야죠.”
로렌스가 말했다. 이제 이만하면 알아듣지 않았느냐는 심경이 말투에 배어 나왔다.
“네가 이런다고 잘될 것 같니?”
밀라이라는 망연한 채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마지막까지 믿을 건 핏줄 뿐이야.”
“네. 저도 그걸 믿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에게는 황제 또한 핏줄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밀라이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로렌스가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말했다.
“우선 돌아가서 좀 쉬세요. 주무시고 나면 이성이 돌아올 테니까요.”
“됐다.”
밀라이라가 로렌스를 탁 뿌리쳤다. 그리고 돌아섰다.
뱃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스멀스멀 절망감이 거기에 차올랐다.
“마님!”
쓰러지려는 밀라이라를 수행해온 하녀들이 얼른 부축했다.
로렌스가 자기 하인에게 명했다.
“어머니를 댁까지 모셔다드려라.”
“됐다.”
밀라이라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감시하지 않아도, 얌전히 돌아갈 테니.”
그녀는 남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저런 목소리를 내는 남자는 이미 최소한의 겉치레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이 떠난 것이었다.
아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