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3
악녀는 두 번 산다 53화
결혼식이 끝났다.
에브론 대공가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하고 멋진 결혼식이었다.
황후가 신부의, 황제가 신랑의 손을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비할 바 없이 명예로운 결혼식이다.
하객의 절반 정도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에 불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환한 얼굴로 축하해주었다.
피로연은 성대했다. 모든 손님들이 춤추고 먹고 마셨다. 기사들은 환호성을 질러댔고, 고용인들의 잔치가 따로 열렸다.
안스가르는 에브론 대공가와 로산 후작가의 이름으로 빈민원에 술과 음식을 잔뜩 베풀었다.
무엇 하나 망쳐지지 않고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황후는 피로연이 시작하기 전에 떠났다. 떠날 때에 이렇게 말했다.
「지켜보마.」
아르티제아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황후가 일어선 지 얼마 안 되어 자리를 떴다. 피로연에서 세드릭에 이어 아르티제아와 한 곡의 춤을 추고 난 뒤였다.
그는 축하의 말을 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티아라고 함부로 부르면 안 되겠구나.」
「에브론 대공비 따위가 어찌 폐하의 광영 앞에서 제 이름을 주장하겠습니까? 대공이 폐하의 조카이니, 저는 조카딸처럼 여겨 주시면 망극 하겠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씩 웃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그 또한 네게는 영광이겠지.」
「황공합니다.」
「티아, 나는 네가 똑똑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대범한 줄은 전혀 몰랐구나.」
「폐하를 속이려 한 바는 조금도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아니,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사람 보는 눈이 완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을 뿐이야.」
「황공합니다.」
「세드릭은 직선적이다. 그런 성품이 장점이다만, 세속적인 이 수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지. 좋은 남자이니 해를 당하지 않도록 네가 잘 보살펴주어라.」
「예.」
「그리고, 너무 미워하지 말려무나. 밀라이라는 불쌍한 여자야.」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피로연장을 떠났다.
밀라이라가 결혼식장에 왔다가 로렌스에게 쫓겨 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황제 혼자가 아니었다.
로이가르 대공파의 카멜리아 후작 부인도 은근한 태도로 다가와 말했다.
「남자들은 단순하니까요. 비 전하께서 로산 후작 부인 대신 황후 폐하를 결혼식에 모신 것을, 아마 로렌스 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요. 로렌스 경이 황후 폐하를 뵐 기회가 생긴 것도 그렇고, 황후 폐하께서 비 전하를 시녀로 삼으셨으니 그 남매에게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길 테니까요.」
「…….」
「하지만 황후 폐하께서 로렌스 경을 받아들이실 리가 없지요. 남자들은 흔히 여자가 자식이 생기면 그 자식의 아버지를 평생 사랑하리라고 착각하지만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가요?」
「로산 후작 부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비 전하께서 하신 일의 진짜 의미를 알 거라는 뜻이에요.」
「글쎄요. 어머니와 사이가 갈라졌다는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럽진 않은데요.」
「그나저나 제가 드린 선물이 보탬이 되신 것 같아 기쁘네요. 결혼 축하 선물로 성녀 올가상을 받으셨다지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시면 한 번 보여주세요. 로이가르 대공비 전하께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무척 궁금해 하세요.」
로이가르 대공비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나이 차 있는 여동생이기도 했다.
「오늘은 이런 자리라서 두 분 간단히만 인사 나누셨지만, 다음에 제가 제대로 자리를 마련할게요. 결혼 축하해요. 신혼여행 즐겁게 다녀오세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은 생글거리면서 그렇게 인사했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축하를 받았다.
세드릭과는 춤을 도합 5곡이나 추어야 했다. 이어서 로렌스와 로이가르 대공과도 춤을 추어야 했다.
피로연장을 떠날 때쯤에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르티제아와 세드릭은 피로연이 한창 중일 때에 자리를 떴다.
그리고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배를 탔다. 수도의 입구라고도 할 수 있는 항구도시로 가기 위해서였다.
항구에는 에브론 대공가의 저택이 하나 있었다.
에브론 대공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육로를 통하는 것보다 해로를 통하는 게 훨씬 편리하고 빨랐다. 그래서 중간 숙소를 하나 마련해둔 것이었다.
거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대공령으로 향하는 배를 탈 작정이었다.
저택에 당도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세드릭은 2차로 결혼을 축하하는 기사 무리에게 납치되어 갔다.
아르티제아는 지친 채로 우선 안내받은 방으로 향했다.
하녀들이 목욕물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했다. 그동안에 아르티제아는 결혼식을 복기해 보았다.
문제는 없었다. 소기의 목적은 모두 달성되었다.
‘이제 결과만 확인하면 되겠어.’
앨리스가 문을 빼꼼 열고 불렀다.
“아가씨.”
“응?”
“아차, 아니지. 이제 마님이시죠? 아, 너무 좋아요. 이제 마님이 마님이 아니라 아가씨가 마님이니까요.”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목욕물 준비가 끝났니?”
“아, 네. 그것도 그렇고요. 프레일 경이 오셨어요.”
“모시렴.”
“네.”
이것 때문에 불편한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레일이 들어왔다. 아르티제아를 보고 그가 머뭇거렸다.
“그, 인사를 다시 드려야 합니까? 비 전하? 후작님?”
“편한 대로 부르게.”
“그럼 비 전하로…….”
프레일이 고개를 정중하게 숙여 가볍게 인사했다. 그리고 보고했다.
“로산 후작 부인은 결혼식장에서 곧바로 귀가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으니 남의 눈에 띄었을까 하는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귀가 후에는 방으로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렇군.”
빌이 없으니 하소연할 상대도 없었으리라.
“황제 폐하께서도 결혼식장에서 바로 로산 저택으로 가셨습니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오라버니는?”
“로렌스 경은 지금 지내고 있는 안데만 남작 부인의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렌스에게 거부당하는 것은 밀라이라에게는 그야말로 인생 자체에게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극심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결혼식 끝나고 좀 들여다보러 가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일을 꾸민 것은 자신이련만, 썩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 심정과 별개로, 잘된 일이기는 했다.
밀라이라가 울고 있는 앞에서 로렌스가 황제와 만나 가족의 정을 돈독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이번 일이 황제의 사후 승인을 받은 셈이 되기는 했다.
황제는 권력의 생리를 알고, 그것을 탐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정한 아들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로렌스는 이제 부모의 무릎에서 재롱떠는 나이가 아니다. 황제에게는 아들인 동시에 신하다.
무엇을 해도 귀여운 나이는 이미 옛날에 지나갔다. 단순히 권력욕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수많은 다른 신하들과 똑같아질 뿐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로렌스가 해야 할 올바른 처사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황후에게 아첨하고, 그것이 끝나면 곧바로 밀라이라에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황제의 앞에서 밀라이라를 사랑한다는 것을 티내고 온힘을 다해 위로하면 된다.
그러면 황제는 로렌스의 처신을 옳다고 여기고 흐뭇하게 여길 것이다.
지금 황제가 태연한 얼굴로 황후와 함께 자리했지만, 일찍 일어나서 밀라이라에게 간 것처럼 말이다.
로렌스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하긴, 어머니의 역할을 모르고 있으니까. 황제 폐하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 오라버니는.’
그래도 될 정도로 사랑받으면서 살아온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어리석다고도 생각했다.
“계속 지켜볼까요?”
“로렌스 오라버니 쪽은 그냥 들려오는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게. 일부러 주시할 필요는 없어.”
“예.”
“그보다는 어머니를 지켜봐. 앨리스가 로산 저택의 정보원은 알려주었지?”
“예.”
“돌아가는 상황의 흐름을 잘 관찰해서 기록해둬. 미리 뭔가 공작을 할 필요는 없네.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그냥 놔둬.”
“알겠습니다.”
“라이에게 연락 받는 것도 잊지 말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레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도와드린다고 했다고 너무 부려먹으시는 거 아닙니까?”
“있는 인재는 활용해야지.”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프레일이 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우리 전하 좀 잘 부탁드 립니다. 안 따라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됩니다.”
“북부에서 생기는 일이야 세드릭 님이 나보다 훨씬 잘 아실걸. 난 전략 전술 같은 것에는 문외한이라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닌 걸 아시잖습니까?”
“아무튼 너무 염려 마. 바로 곁에서 보좌할 테니.”
프레일이 애매한 얼굴을 했다.
“그, 뭐냐……. 비 전하가 보좌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니죠.”
“실질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일세. 그럼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인가?”
“예.”
“한동안 못 만나겠군. 그동안 몸 건강히, 수고하게.”
아르티제아는 몸을 일으켰다. 프레일이 그녀에게 군례로 답했다.
그리고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비 전하께서 에브론 대공비가 되어주셔서 안심했습니다.”
“에브론 대공가를 망하게 할 것 같진 않아서?”
“그리고 싫은 놈을 망하게 해주실 것 같아서요.”
아르티제아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프레일에게 답례로 인사하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는 욕실에서 나오면서 무시무시한 현실과 맞닥뜨렸다.
“첫날밤이잖아요.”
양 뺨을 새빨갛게 물들인 소피가 수줍어하면서 잠옷을 내놓았다.
그 분홍색 잠옷은 몹시 사랑스러웠다.
반짝거렸지만, 광택이 지나쳐 야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몸선과 피부색이 살짝 비칠 정도로 얇고 하늘하늘했지만, 엷은 색 속옷이 노골적으로 비쳐 보이지는 않을 정도였다.
소매는 약간 부풀려 프릴이 달려 있었다.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치맛자락은 자연스럽게 통이 넓어지며 나팔꽃처럼 펼쳐졌다. 한 바퀴 돌면 살랑살랑 다리에 감길 것이었다.
가슴은 패이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 위에서 묶은 리본 하나만 풀면 옷이 스르륵 발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소피, 이게 뭐니, 대체?”
아르티제아가 어이없어 묻는 말에 소피가 대답했다.
“잠옷이요. 이게 신부 잠옷으로 최신 유행이래요.”
“에밀리가 그러든?”
“최신 유행인 건 사실이고요. 그리고 진짜 신부 잠옷으로 딱이고요! 어서 입어보세요!”
아르티제아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야 소피는 몰랐다. 이게 연애결혼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첫날밤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다른 옷을 가져와.”
“흰색으로 가져올까요? 하늘색도 있어요.”
아르티제아의 말에 소피가 설레어 하며 말했다.
“전 분홍색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마님에게는 하늘색이 어울릴 것 같기도 해요. 주인님은 뭘 입어도 좋아하실 거예요. 완전 귀여우면서도 섹시하실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