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6
악녀는 두 번 산다 56화
수도에서부터 에브론 대공령까지는 해로로 약 한 달 반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육로로는 보통 빠듯하게 4주를 잡는다. 숙련된 전령이 말을 계속 바꿔 타며 달리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랬다.
길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도중에 사람이 살지 않는 광활한 대지를 지나가야 한다.
에브론 대공령은 땅이 넓고 인구 밀도가 낮다. 가도 가도 마을이 나오지 않는다.
육로로 이동하면 노숙이 계속되고, 추운 데다가 바람까지 많이 불었다. 보통 사람이 쉽게 갈 만한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물자 수송에도, 사람이 오가는 것에도 대부분 해로를 이용했다.
겨울이 되면 에브론 대공령의 항구는 대부분 얼어버린다. 그때가 되면 제국 본토와의 교류는 적어진다.
제국민들이 북부인을 북부인이라고 구별하여 부르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진짜, 좀 무서운 것 같아요. 외국 같기도 하고요.”
앨리스가 아르티제아에게 소곤거렸다.
두 사람은 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배 위에 서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한 달 넘게 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다. 그리고 어제 강어귀에서 본성까지 이동할 날렵하고 빠른 배로 갈아탔다.
강변으로 보이는 풍광은 앨리스의 말처럼 이국적이고 낯설었다.
큰 강이 있으니 물이 풍부하고 평야가 너른데도 마을이 없었다. 포구에서 배를 갈아타고 하루 넘게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데, 사람 사는 지역을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하늘 높이 뻗은 나무가 삼림을 이루었다. 멀리 빙 돌아 땅을 가두듯 둘러친 산맥에는 만년설이 앉아 있었다. 바다에서는 유빙을 볼 수 있었다.
“앗, 마님, 저기 보세요! 사슴이에요!”
“그렇게 많이 보고도 질리지도 않니?”
“신기한 걸요. 사람을 보고도 도망을 안 가잖아요.”
수도에서는 야생동물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도시의 경계를 넘어도 모두 사람 사는 구역이었다. 산과 숲이 있긴 했다. 그러나 모두 관리된 곳이었다.
이곳은 전혀 달랐다.
아르티제아는 멀리 시선을 던졌다.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가 어지러웠다. 내내 이 소리에 휘감겨 있어, 이제 조용하다는 게 무엇인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찬바람이 부는데 무얼 보고 있습니까?”
세드릭이 뒤에서 모피 망토로 아르티제아를 감싸며 말했다. 인기척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르티제아는 깜짝 놀랐다.
“아.”
아무것도 아닌 일에 뺨에 화기가 올랐다.
이것에도 익숙해졌다.
우습게도 멀미 덕분이었다.
세드릭이 에브론 대공령을 오갈 때에 이용하는 배는 매우 크고 안정적이며 고급스러웠다.
그렇지만 첫 보름 동안 아르티제아는 뱃멀미에 시달렸다. 설탕물과 초콜릿으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그나마 조금 붙었던 살이 다시 홀쭉하게 빠질 지경이었다.
세드릭과 같은 선실을 쓰기로 했다고 염려했던 것이 다 부질없었다. 그럴 만큼의 정신도 없었다.
몸이 배에 적응하여 익숙해졌을 무렵에는 첫날밤의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시간에 대충 덮여 있었다. 세드릭에게 안겨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갑판에 오르내리는 사이에 그에게도 익숙해졌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이 망토를 여며 달아준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가 어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는 데에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앨리스는 아직도 풍경이 신기한 모양이에요.”
“중부 지역과 분위기가 다르기는 하지요.”
“가을이 사라졌네요.”
온화한 제국 수도와 달리 에브론 대공령은 추운 지역이었다.
대공령의 남쪽 경계선인 앨리아 장성을 넘으면 거기에서부터 확 기온이 달라졌다. 그리고 북쪽 경계선인 톨드 산맥은 인간이 생존 가능한 북방 한계선이기도 했다.
결혼식을 했던 것이 늦여름 무렵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넘게 지났으니 이제 수도는 한창 가을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겨울 날씨였다.
“여기서는 이게 가을입니다. 아직은 좀 낫지만, 본성으로 가면 바람이 더 매섭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추워질 거고요.”
“무리하지 않을게요.”
“당신의 그 말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역시 수도에 남아 있는 편이 좋았을 텐데.”
힐난하듯 하는 말에 아르티제아는 웃어 버렸다.
“결혼하자마자 별거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겨우내 수도를 떠나 있는 편이 좋아요.”
씨앗을 뿌려놓은 음모들이 싹이 트고 자라날 때까지.
그리고 잠시 동안은 머리를 쉬어 줄 필요가 있었다. 돌아가면 수확하느라 바쁠 것이니까.
“당신은 수도를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네…….”
아르티제아는 멀리 시선을 던졌다.
과거에도 그랬다. 세드릭이 멸망한 제국을 보여줄 때까지 아르티제아는 수도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어두운 뒷방에 앉아 체스 말을 옮기고 실을 당기는 사람이었다.
황궁이나 사교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직접 해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수하가 늘어나고 모략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어지면서부터는 직접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서부의 끝없는 지평선도, 동부의 아름다운 구릉지도, 제 발로 서서 본 적이 없었다.
북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시작부터 옳지 못한 일이었다.
권력을 잡고자 음모를 꾸미는 일은 골방에서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삶을 다스리는 일이다. 살아 있는 삶이 하나하나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
자신도 좀 더 일찍 세상을 보았더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까?
“티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아르티제아는 의식적으로 머리를 비웠다.
아직은 아니다.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안 되었다.
잠시 그대로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머리를 비우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세드릭이 너무 가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는 자꾸만 그쪽으로 쏠리려는 의식을 바로잡았다.
“티아.”
세드릭이 또다시 그녀를 불렀다. 이유도 없이 체온이 훅 올라갔다.
“본성이 보입니다!”
마음의 균형을 잃고 당혹감을 드러낼 뻔한 찰나에 누군가가 외쳤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떴다. 숲 하나를 절반쯤 넘어가자 장엄하도록 크지만 투박한 석조 성이 보였다.
“와!”
언제 올라왔는지 소피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드릭이 말했다.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에브론 대공가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왜 실망하겠어요? 저 본성이야말로 에브론 대공가의 긍지 그 자체인 걸요.”
에브론 대공령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루어졌다. 톨드 산맥 너머에서 카람이라는 몬스터 무리가 정기적으로 남하했기 때문이다.
이곳도 교통이 불편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원이 많이 나고 인구가 집중된 지역은 보다 남쪽에 있었다.
통치의 원활함을 생각하면 본성을 좀 더 남쪽에 짓는 것이 옳았다.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생각하면 하다 못해 얼지 않는 항구가 있는 곳에 가깝게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에브론 대공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국경에서 가까운 곳에 방어 요새를 짓고 거기에 둥지를 틀었다.
톨드 산맥의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에, 피난 불가능한 영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식량만 충분히 비축해둔다면 몇 년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봉화가 오르면 인근의 영민은 모두 본성으로 집결한다. 그리고 본성이 발목을 잡는 사이에 남쪽 지역의 영민들은 2차 방어선인 앨리아 장성 밑으로 피난하게끔 되어 있었다.
요컨대, 이 본성은 대공가가 톨드 산맥을 지킨다는 표시이며, 영민과 목숨을 함께하겠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에브론은 북의 에브론, 제국의 방패라고 불리는 것이다.
세드릭이 어색하게 웃었다. 가문을 향한 칭찬이 기쁘기도 하고, 또 그 칭찬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 실제로 사용한 일은 없습니다. 어쨌든 안도 겉만큼이나 볼품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애당초 생활의 쾌적함을 중심으로 설계한 성이 아니라서…….”
“바람은 잘 막아주겠죠.”
“음. 익숙한 사람 기준입니다…….”
세드릭이 확신하지 못하는 태도로 신음했다.
아르티제아는 모피 망토를 둘렀고, 하녀들도 각자 외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드릭을 비롯해서 기사와 하인들은 모두 얇은 옷차림이었다. 선원들에 이르러서는 반팔을 입은 자도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미소만 지었다.
배가 곧 본성으로 연결된 선창에 연결되었다. 제일 먼저 기사들이 내리고, 그다음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에스코트했다.
본성의 가신과 고용인들이 모두 나와 선창에 도열해 있었다.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대공 전하?”
품위 있는 옷을 차려입은 중년 부부가 앞에 나와 절을 올렸다.
“건강해 보이니 기쁘군, 아론, 마거릿.”
세드릭은 두 사람을 한 번씩 가볍게 포옹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에게 소개했다.
“티아, 이 두 사람은 조르딘 백작 부부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본성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 전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르딘 백작 부부가 함께 무릎을 꿇었다.
아르티제아도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여 두 사람과 마주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일어나게. 에브론 대공가의 믿음직한 신하들을 만나게 되니 기쁘군. 영지 사정에 익숙해질 때까지 앞으로 많이 도와주었으면 하네.”
“온힘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두 분께 하례를 드리기 위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아론이 싱글거렸다.
“결혼식은 치르고 오셨지만, 피로연은 여기서도 하셔야죠. 전하께서 결혼하시기만 기다려온 사람이 어디 하나둘입니까?”
“글쎄. 피로연까지는 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돌아보고 물었다.
“3년 만에 몬스터 웨이브를 무사히 평정하고 돌아오신 걸요. 잔치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 가는데요?”
“괜찮겠어요?”
“제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요?”
“당신은 사람 많은 자리를 싫어하지 않습니까?”
아르티제아는 조금 놀랐다.
그렇기는 했다.
무도회를 기피하는 것은 옷이 초라하다거나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다거나 춤을 잘 추지 못한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이 많다 보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빨리 지치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세드릭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소녀가 뛰어나와 세드릭의 품에 뛰어들었다.
“전하! 돌아오셨군요!”
“이런.”
세드릭은 깜짝 놀랐다. 그는 아르티제아에게 행여라도 부딪치지 않도록 가로막듯이 하며 뛰어드는 소녀를 붙들었다.
마거릿이 황급히 그 소녀의 손을 잡아챘다.
“오브리,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니!”
“죄송해요. 배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너무 늦게 들었어요. 돌아오셔서 기뻐요, 전하.”
오브리가 눈매를 발갛게 붉히고 수줍은 얼굴로 세드릭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