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58
악녀는 두 번 산다 58화
마거릿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으로서, 새로운 대공비가 시녀를 에브론 대공가 안에서만 선발하여 들이겠다는 것은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친정의 세력을 끌어들이거나 새로운 세력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 번째 시녀로 자신의 딸을 들이겠다고 한다. 이것은 조르딘 백작가에 깊은 신뢰를 보이는 동시에 인연을 더욱 굳건히 하는 일이다. 영광된 일이기도 했다.
아르티제아의 몸에 후계자가 잉태된다면 더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태어나는 아이는 어머니 슬하에 있는 동안 어머니의 시녀들과 친밀한 관계가 되게 마련이다.
유모와 첫 번째 가정교사도 시녀들 중에 선택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마거릿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오브리는……, 몸만 자랐지, 철이 없는 아이입니다. 버릇이 없어서 도저히 비 전하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마거릿은 아르티제아의 눈이 천천히 움직여 자신을 훑는 것을 알았다.
아르티제아가 오브리를 만나보지 못한 상황이었더라도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브리를 보았다.
오브리가 노골적으로 자신을 적대하는것도 보았다. 그 이유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마거릿은 아르티제아가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으니 자신이 우선 깊이 사죄하고, 오브리는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크게 꾸짖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우아한 태도로 시녀로 삼겠다고 말하다니. 소름이 돋았다.
회유가 목적이든가, 손아래에 두고 누가 윗사람인지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아르티제아의 나이에 생각해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거릿은 새 여주인의 현명함에 감탄했다. 한편, 또래의 어리석은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두렵기도 했다.
아르티제아가 느릿하게 말했다.
“어차피 같은 성 안에 있는데, 숨기려 한다고 숨겨지겠는가?”
“그런 것이 아니오라…….”
“버릇이 없다면 더더욱 예절을 배워야 하지 않겠나. 전하에게 조르딘 백작가가 신뢰할 수 있는 가문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그 가문의 여식으로 시녀를 들이고자 하는데, 오히려 자네가 내게 딸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니 난처한 일이로군.”
마거릿은 할 말이 없어서 고개만 깊이 숙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에브론에 대한 자네의 충심을 의심한다는 뜻은 아닐세.”
“아닙니다. 두려운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비 전하께서 바로 에브론의 여주인이신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딸자식을 비 전하께서 거두어 주신다고 하니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실수도, 잘못도 많을 터이니, 부디 많이 꾸짖어 주십시오.”
아르티제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거릿의 생각과 달리 그녀는 오브리에게 화가 나 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화낼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브리를 미리 단속해두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해서였다.
아르티제아는 로산 후작이었고, 어머니 대신 황후의 손을 잡고 결혼식을 치렀다.
오브리는 그런 자신의 앞에서도 눈치 보는 기색 하나 없이 세드릭의 품에 달려들었다.
여태까지 세드릭이 허물없이 귀여워해 주기는 했을 것이다. 그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편인 데다가 대공가의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겼다. 아마 어린 친동생처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은 아랫사람들이 절도를 지키고 충성심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브리처럼 위아래를 모르는 자가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문제가 된다. 미리 싹을 자르고 제 신분을 자각하게 하는 편이 에브론 대공가를 위하는 일이다.
훗날 리시아가 대공비가 되었을 때를 위해서라도.
‘정말로?’
그런 의문이 불쑥 가슴 안쪽을 헤치고 머리를 내밀었다.
‘화가 나지 않았어? 정말로? 감정적으로는 상관없어?’
아르티제아는 벽난로에 시선을 던지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무심결에 가슴 언저리에 손을 얹었다. 돌이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제 심장 위에 얹힌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마중을 온다던 세드릭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나타났다. 뒤에는 하인이 음식을 실은 트롤리를 밀며 뒤따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앨리스는 난처해했다. 방문객이 세드릭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세요.”
“그래?”
세드릭은 잠시 망설였다.
수도에서였다면,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드릭은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한 달도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선실에서 잠들었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결혼도 했는데, 굳이 그 정도까지 내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앨리스도 알려주긴 했지만, 들어오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
세드릭은 훈기 도는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르티제아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배에서도 나름 휴식을 잘 취하며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드릭의 말처럼 피곤했던 모양이다. 발바닥과 무릎이 따뜻해지자 졸음이 몰려왔다.
에브론 대공령이 춥다고는 하지만, 이 방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로산 저택에 있는 아르티제아의 침실보다 더 따뜻했다.
방 안이 붉을 정도로 난방을 잔뜩 땐 덕분이다. 털가죽은 훈기를 머금었다.
세드릭은 그 곁으로 다가가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불기운 때문에 아르티제아의 뺨이 보기 좋게 달아올라 있었다.
“…….”
깨우지 않는 게 좋을까?
세드릭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르티제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인이 트롤리를 그대로 두고 소리 없이 나갔다. 앨리스도 그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세드릭은 의자를 끌어다놓고 아르티제아의 옆에 앉아 잠시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깨우는 게 맞을 것이다. 잠도 중요하지만 식사도 중요했다.
몇 달간 노력해서 간신히 살을 찌워 놓았는데,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세드릭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깬다면 좋고, 깨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뺨을 감싸려는데.
“아.”
손바닥이 뺨의 솜털을 건드리는 감촉에 아르티제아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제대로 닿아보지도 못한 세드릭이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그는 공연히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뺨이 따뜻한가 궁금해서 만져 보려고 했다는 건 너무 구차한 변명일 것이다.
말을 못하고 있는데, 아르티제아가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다시 한 번 “아.”하고 소리를 냈다. 세드릭이 뺨을 만지려고 했던 건 모르는 얼굴이었다.
“꿈을 꾼 줄 알았어요.”
“제가 꿈에 나왔습니까?”
“……글쎄요.”
아르티제아의 입술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나쁜 꿈이었어요?”
“아뇨.”
아르티제아가 짧게 대꾸했다.
꿈을 꾼 것이 아니었으니, 나쁜 꿈이라는 말은 부적절했다.
오히려 그가 이렇게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지금이 헛된 꿈 같았다.
아르티제아는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팔다리에 추가 달린 것처럼 더 무거워져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더 쉬고 있어요.”
“저녁 시간 아닌가요?”
“피곤한데 굳이 식당까지 내려갈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가신들과 인사를…….”
“오늘은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모레 저녁에 아예 제대로 연회를 할까 합니다. 하례도 아예 그때 받으려고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아르티제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하루 더 쉴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세드릭이 일어섰다. 그는 트롤리를 밀고 안락의자 옆으로 왔다.
그가 수프 워머 뚜껑을 열고 그릇에 수프를 옮겨 담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그때까지 안락의자에 기대어 멍하게 앉아 있던 아르티제아가 몸을 일으켰다.
“떠 줄 테니까 일어나지 말아요.”
“아, 제가 해야…….”
세드릭이 한 발 빨랐다. 아르티제아가 몸을 다 일으키기 전에 수프 그릇과 숟가락을 떠안긴 것이다.
“따뜻한 자리에 앉아서 먹어요.”
“……고마워요.”
아르티제아는 어색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세드릭은 자기 몫으로는 수프를 생략하고 접시에 고기와 버섯을 산처럼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녹인 치즈를 붓고, 좁은 공간에 빵까지 얹었다.
그 접시를 들고 돌아와 세드릭이 다시 앉았다. 아르티제아는 무심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세드릭은 태연한 얼굴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물었다.
“방은 괜찮습니까?”
“네, 따뜻해요. 욕실도 아주 따뜻했고요.”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방들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세드릭 님의 어머님께서 쓰시던 방이지요?”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대로 대공비가 쓰던 방이니까요. 제국과 합병한 이후로 대공비가 북부인이었던 적은 거의 없으니까 신경을 많이 썼을 겁니다. 정략결혼으로 온 대공비가 추위에 건강을 상하면 문제가 크게 번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겠군요.”
아르티제아는 따끈따끈한 수프를 한 입 먹었다.
뼈 국물을 진하게 우려내어 끊인 수프는 수도에서 평소 먹던 것과 밀도가 달랐다. 뱃속이 금세 후끈해졌다.
“그간 대공령에는 별일 없었다던가요? 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동안 보고를 전혀 받지 않았던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에브론 대공령은 그다지 변화가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카람과의 전쟁만 없다면.”
“그렇군요. 마지막 전쟁은 5년 전이었지요. 세드릭 님이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고.”
세드릭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허명입니다.”
“거의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던 서부군을 재건하고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셨어요. 허명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신 셈이죠.”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세드릭은 정색했다.
“제가 잘한 것이 아니라 제 옆에 에브론 기사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인구는 좀처럼 늘지 않고, 겨울이 되면 교역도 대부분 중단되고……. 산업도 뒤처졌지요. 전쟁이라고 할 정도의 큰 싸움이 아니라도 톨드 관문에서 작은 분쟁은 숱하게 있고요.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은 전쟁 준비입니다.”
세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전쟁에 능한 것은 당연합니다.”
제국은 에브론을 북의 에브론이라고 부르며 칭송한다.
에브론 대공은 공식적으로 황제와 황후 다음가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를 제외하면, 오로지 에브론 대공만이 기사를 서임하고 기사단을 거느릴 수 있었다. 영지의 통치권도 완전히 보장받았다.
에브론 대공은 세금을 거두고, 군사를 소집하며, 물자를 징집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중 일부 권한은 대공령의 범위를 넘어서도 적용되었다.
그러나 세드릭은 그것이 권력이라고도, 명예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권한은 모두 카람을 방어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카람 방어전에 너무 많은 희생이 들어갔다.
그런 희생을 치르고 얻는 것은 명예라고 할 수 없다. 희생을 강요하기 위해 만든 권력은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