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0
악녀는 두 번 산다. 60화
오브리는 대공비의 처소로 통하는 복도 앞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누가 그런 여자, 대공비로 인정할 줄 알고?”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브리를 보내기 전에 마거릿은 엄하게 말했다.
「헛된 말 입에 담지 말고, 헛된 생각도 꿈에도 하지 마라. 그분은 전하께서 직접 선택하신 대공비 전하이고, 로산 후작이시다. 본래대로라면 지방의 백작가에 불과한 우리 집, 그것도 막내딸인 네가 모실 만한 분이 아니야.」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첫 번째 시녀로 삼아 가까이 두시겠다는 것은 우리 가문이 이제껏 대공가에 충성해온 것을 생각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거다.」
마거릿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보내지 않았다가 더한 의혹을 살 수는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현명함만큼이나 자애와 이해심을 가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오브리가 어리석은 아이일 뿐이지, 조르딘이 불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대공비 전하는 고작 몇 분만 뵈어도 그 총명함을 알 수 있는 분이다. 오브리, 부디 철없는 행동으로 그분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마라. 너 한 몸이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가문의 명예까지 달린 일이니까.」
오브리를 움직인 것은 물론 그런 어머니의 충고가 아니었다. 허튼 짓 했다가는 머리를 밀어서 수녀원에 보내버리겠다는 큰언니의 협박 쪽이었다.
‘대공비 전하라니, 말도 안 돼. 그래봤자 창녀의 딸이잖아.’
오브리는 생각했다.
세드릭이 무슨 사정으로 그 여자와 결혼했는지는 모른다. 연애결혼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오브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예쁘지도 않던데.’
황제가 총애하는 정부의 딸이라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 미녀인 건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오브리의 기준에 아르티제아는 불합격이었다.
몸은 지나치게 말라서 건강한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을 감안해도 초라할 정도로 초췌했다.
피부는 하였지만, 병색처럼 창백했다.
세드릭은 에브론 대공령에 어울리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브리의 생각에 방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할 병약한 외지인은 대공비로서 자격이 없었다.
황제의 입김이 들어갔든가, 아마 그런 사정이 있을 것이다. 뭔가 다른 음험한 수단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황제의 정부가 모친인데, 그 딸이 그런 수작 하나 둘 못 부리겠는가.
하지만 세드릭은 현명한 사람이다. 지금은 혹시라도 여우 같은 수작에 홀려 있을지 몰라도 조만간에 정신을 차리고 벗어날 것이다.
‘내가 훨씬 낫지.’
오브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공비의 시녀로 있으면 세드릭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것 하나는 좋았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침부터 있는 힘껏 단장하고 나왔다.
오브리는 후우 큰 한숨을 내쉬고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가슴을 폈다. 오늘의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예뻤다.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오브리는 아르티제아의 투왈렛 룸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려도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브리는 자기 손으로 살짝 문을 열었다.
“조르딘의 오브리입니…….”
“이걸로 입어 보세요!”
안에서 터져나온 환호성에 오브리의 말이 묻혀 버렸다.
“아침에 주인님께서 보내주신 외투예요. 좀 길긴 하지만, 소맷단만 살짝 손보면 입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소피가 즐겁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새하얀 담비털 속에 파묻혀 있었다.
소피가 소매를 간단히 시침질하여 길이를 줄였다.
“이건 원래 남자 옷 아니니?”
“뭐 어때요? 잘 어울리시는걸요. 소매가 길어서 파묻히니까 장갑도 따로 안 끼셔도 될 것 같고요. 마님은 장갑을 끼셔도 손이 차가워지시니까 이게 나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 귀한 담비털은 후작 대부인께서도 가지고 있지 못하실 걸요
오브리는 경악했다.
그 담비털 외투는 세드릭의 옷이었다.
다른 색 털이 한 올도 하나도 섞이지 않은 흰 담비 세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되었을 때에 길조라며 어른들이 난리였다.
세드릭이 손수 눈을 쏘아 상처 하나 없이 잡았다. 간단하나마 축하연도 베풀어졌었다.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뒤늦게야 오브리를 발견한 리제가 냉랭한 태도로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조르딘 백작가의 영애께서?”
무례한 하녀에게 오브리는 발끈했다. 그러나 그녀가 소리치기 전에 아르티제아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만해라, 리제. 어서 오려무나, 오브리.”
그 목소리는 침착하고 품위 있었다.
걸치고 있는 외투가 커서 하얀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오브리는 괜스레 패배감을 느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대공비 전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마거릿의 엄중한 경고를 상기하며 오브리는 애써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 마거릿에게 이야기는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예.”
아르티제아는 오브리에게서 다시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원래는 오브리를 적당히 견제하고 교훈을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럴 정신도 없었다.
간밤에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어제의 키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살짝 닿았을 뿐이다. 차라리 춤을 추려고 손을 잡은 것 쪽이 더 깊은 접촉이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그 순간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다정한 눈빛, 뜨거운 손, 가볍게 떨린 숨결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기억에서 잊힐 것 같지가 않다.
몸이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아르티제아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오브리는 부들부들 떨었다.
주인은 오브리에게 교훈을 내릴 마음이 사라졌지만, 하녀들은 달랐다. 앨리스가 오브리의 손에 보석 상자를 들려주었다.
“뭐야?”
하녀가 감히 물건을 떠넘긴다고 생각하고 오브리는 화를 내려 했다. 앨리스가 방긋 웃었다.
“이런 건 본래 시녀의 역할이니까요, 오브리 아가씨. 여태까지 마님에게 시녀가 없어서 제가 들고 있었지만, 이제 오브리 아가씨가 하셔야죠.”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무례함부터 건방진 표정까지 용서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오브리는 대공비의 보석 상자를 뒤엎지는 못했다.
새 하녀 폴라가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한쪽으로 모아 땋았다.
아르티제아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눈 밑이 침침하지 않은지 신경 쓰였다. 뺨이 너무 홀쭉하고 광대뼈가 나온 게 아닐까 마음 쓰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예뻐 보이고 싶었다.
아르티제아는 초여름의 일을 떠올렸다.
길고 처참했던 미래에서 돌아와, 세드릭을 만나러 갔던 날의 일 말이다.
그때에 처음으로 그녀는 똑바로 거울을 보았다. 소피가 예쁘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말했다.
머리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서 은화를 주고……, 그리고 불안감과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었다.
아무래도 그때에 이미 오늘의 감정을 예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오셨나 봐요!”
리제가 평소보다 두 배는 밝은 목소리로 외치고 문을 열러 달려갔다.
세드릭이 리제와 시선을 맞추고는 빙그레 웃었다.
“티아는?”
“준비 거의 끝나셨어요.”
리제가 부끄럼을 타듯 얼굴을 붉히고 길을 비켜주었다.
아르티제아는 거울 너머로 흘끗 그를 보았다. 그녀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자신이 너무 떨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뺨이 붉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잘 잤어요?”
“네. 오랜만에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서 잤으니까요.”
목소리는 생각한 것만큼 평온하게 나왔다.
“바깥 날씨가 많이 추운가요? 저도 겨울 외투는 가지고 있는데……. 굳이 세드릭 님의 옷을 보내주셔서요. 굉장히 귀한 모피일 텐데…….”
“귀한 것이니까 당신이 입어요. 활동할 때에 입기에는 아까운 것이라서 어차피 저는 못 입습니다. 아껴 두라고 했는데도 안스가르가 제 옷을 만들어버려서 이제까지 옷장에서 나온 적도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이불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여서…….”
소피와 앨리스가 동시에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세드릭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한 대로 아주 잘 어울립니다.”
“…….”
아르티제아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폴라가 의식적으로 명랑한 목소리를 냈다.
“머리장식을 고를 차례였어요.”
폴라가 오브리를 돌아보았다. 오브리는 흠칫 놀랐다.
세드릭은 그제야 오브리가 있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아하, 네가 티아의 첫 시녀가 된 거로구나.”
“저, 전하.”
오브리는 전처럼 어리광 부리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세드릭의 얼굴은 여전히 다정한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브리는 그의 그런 얼굴을 몰랐다. 똑같이 부드러운 얼굴이라도,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얼굴과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얼굴은 그 안에 고여 있는 감정의 색이 완전히 달랐다.
어린 그녀의 손을 잡아 어머니에게 데려다줄 때에는 그런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티아는 몸이 약하고 추위를 많이 타니 잘 부탁한다. 아무래도 이곳에 익숙한 사람이 곁에 붙어 있어 주는 것과는 다르지.”
“전하…….”
오브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들어찼다.
세드릭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폴라. 아무것이나 괜찮아.”
폴라가 군청색 벨벳 리본을 가져다가 아르티제아의 땋은 머리끝에 매듭을 지었다.
반짝거리는 백금발과 새하얀 외투에 늘어뜨려진 리본색이 포인트가 되었다.
세드릭이 상기된 얼굴로 입가를 한 번 쓰다듬었다. 작은 한숨까지 한 번 쉬었다.
아르티제아는 의아하게 세드릭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체념이 스친 세드릭의 얼굴에 곧 미소가 되돌아왔다.
“갈까요?”
“네. 제 준비는 끝났어요.”
아르티제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오브리에게 말했다.
“오브리, 내 보석은 앞으로 네게 맡기마. 앨리스, 오브리에게 원래 자리를 알려주렴.”
오브리가 머뭇거리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여서 세드릭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위로의 뜻이었다.
오브리는 더 분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리다가 그 손바닥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둘은 천천히 밖으로 나섰다. 외출에 따라오지 않을 하녀들은 투왈렛 룸 안에서 인사를 했다.
들을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세요?”
“저요?”
“네. 뭔가 신경 쓰고 계시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짚이는 게 없었다. 오브리 탓인가? 하고 잠깐은 생각했지만, 세드릭이 오브리에게 눈을 주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세드릭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거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당신과 오브리가…….”
“네?”
“비슷한 나이라는 게 생각나서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방금 깨달았습니다.”
말해놓고, 세드릭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염치없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