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1
악녀는 두 번 산다 61화
에브론 대공가의 가묘는 본성을 벗어난 곳에 있었다.
“본성은 철저하게 농성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건물입니다. 주공가의 납골묘 같은 게 성 안에 있으면, 공간 문제도 있지만 유사시에 지켜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기니까요.”
“밖에 있으면 더더욱 망가지기 쉬울 텐데요.”
“빨리 포기하라는 취지로 성 밖에 지었다고 합니다. 성 안에 있으면, 아무리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신하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아무 곳에나 지어놓고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본성에서 가장 가까운 산 위에 지었다.
그 산은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공가는 거기에 방어 시설을 지었다. 그리고 군사를 상주시켰다.
세드릭이 물었다.
“그런데, 춥지 않습니까?”
“안 추워요.”
아르티제아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아직 에브론 기준으로는 가을 날씨이고, 수도라 해도 온화한 겨울 날씨 정도 되었다. 이런 담비털 외투를 입고 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세드릭의 품 안이라 후끈거릴 정도였다. 자기가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지도 분간이 안 갔다.
가볍게 외출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그러나 마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산을 타야 하니까요. 마차가 다닐 만한 길은 닦여 있지 않습니다. 달구지 정도라면 모를까…….」
집사가 몹시 송구한 얼굴로 말했다.
선대 대공비가 생존해 있을 무렵에는 흙길이라도 닦았다. 하지만 지난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가묘에 마차를 타고 갈 사람이 없었다.
길은 거칠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닐세. 말을 타면 되는 거지?」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물었다. 집사와 세드릭이 둘 다 미묘한 얼굴을 했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알았다.
마구간에는 체고도, 털의 양도 어마어마한 군마와 짐말밖에 없었다. 애당초 수도의 승용마와는 말의 품종이 다른 것이다.
「말 잘 탑니까?」
세드릭이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몸을 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을 탈 줄은 알지만, 순한 승용마에 올라앉아 산책처럼 걷는 정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드릭은 어쩐지 기분 좋은 얼굴로 웃었다.
「같이 타죠.」
「네?」
아르티제아는 당황했다.
「곤란합니까?」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곧 반지르르하게 빗질된 흑마가 끌려나왔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훌쩍 안아 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가볍게 뒤로 올라탔다.
이렇게 큰 말에는 처음 타 봤다. 하지만 놀라거나 무서워할 틈도 없었다.
두 팔 사이에 안긴 듯한 자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등에 닿는 세드릭의 감촉과 심장박동 소리에 아르티제아는 숨을 죽였다.
이 감각에는 기억이 있었다.
‘아……!’
팔다리를 잃은 채 세드릭의 말에 실려 제국을 돌아보았을 때의 일이다.
그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부자유한 몸은 쉬지 않고 아팠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것이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때에도 이 온기가 있었다. 그것을 온기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있었다.
세드릭의 팔 안에 갇혀 있는 것이 형벌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르티제아는 눈을 꽉 감고 억지로 생각을 잘라 끊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평야를 40분 정도 달리자 산길에 접어들었다. 세드릭은 거체의 말을 쉽사리 다루어 산길을 달렸다.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안정적이었다.
산을 얼마만큼 올라가자 길을 막은 울타리가 보였다.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세드릭을 보고는 얼른 울타리를 치워주었다.
방어시설의 책임자인 기사가 나와서 군례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 전하, 대공비 전하. 아침에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묘에 참배하러 온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고 본래의 임무로 돌아가게.”
“예.”
기사가 짧게 대답하고 다시 군례를 올렸다.
병사들이 뒤에서 울타리를 닫았다.
몇몇 병사들이 소곤거렸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기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대공비가 세드릭의 말에 함께 타고 온 것을 좋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이 임무 중만 아니라면 우르르 달려와 둘러쌌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둥글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돌로 쌓은 탑이었다. 마찬가지로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병사 숙소와 무기고가 있었다.
“가묘는요?”
“이쪽입니다.”
세드릭이 작은 예배당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서 말을 멈췄다. 병사 하나가 달려와 세드릭의 손에서 말고삐를 받았다.
세드릭이 말안장에 달린 가방을 열었다. 미리 준비한 듯 비단으로 만든 꽃 네 송이가 나왔다.
그가 그것을 아르티제아의 손에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등불을 들었다.
세드릭이 앞장서서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에는 밑으로 뚫린 커다란 돌계단만 있었다. 겉모양만 예배당처럼 해놓았지, 사실은 돌계단을 가리는 벽이었던 것이다.
“가묘가 지하에 있어요?”
“만약의 경우 건물을 무너뜨려 입구를 막게 되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지킬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묘를 파헤치게 두는 것도 그러니까요.”
“지금 누가 무너뜨리면 생매장되겠네요?”
이 사실을 알았다면, 자신이 틀림없이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으리라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세드릭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괜한 걱정입니다.”
“괜한 걱정이 아니에요. 다음에는 수행원을 데리고 오시는 게 좋겠어요.”
“밖에 노출되어 있는 건물이 아닙니다. 군영 안에 있는 걸요.”
“군영에 있는 모든 기사와 병사, 그 가족까지 철저하게 다 믿고 계신가요?”
“예?”
“아니, 물론 대공령의 영민이니 믿고 계시겠지만…….”
아르티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대단히 뜬금없는 이유로도 배신하는 존재예요. 지금까지야 에브론 대공으로만 계셨으니 괜찮으셨겠지만…….”
“항구와 앨리아 장성 쪽이라면 확실히 모두 관리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성과 군영에는 드나드는 외부인은 모두 알 수 있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 걱정을 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주의하세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밖에 보초로 세워두는 정도로도 충분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세드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말로 불안이 씻길지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건 군영의 책임자뿐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저를 위해 한쪽 팔을 잃었죠.”
“에브론 기사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일반론을 이야기한 거죠.”
“압니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걱정 말아요.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의 부모는 가장 바깥쪽 방에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다.
두 개의 석관이 돌로 쌓은 제단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조각한 석판을 끼워 망자의 관을 직접 볼 수 없도록 가렸다.
그리고 각자 석판에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에브론의 레오프릭, 충실한 남편이자 신하로서 이곳에 잠들다.》
《크라테스와 에브론의 플로엘라, 언젠가 돌아갈 날까지 영원히 평안하시길.》
세드릭이 제단 좌우의 촛대에 불을 옮겨 붙였다. 그리고 묘비 앞에 놓인 조화를 치웠다.
오래된 비단꽃은 본래는 흰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렇게 변했다. 부스러질 정도로 낡아 보였다.
“3년 만이니까요.”
그가 변명하듯이 말하고 아르티제아에게 새 비단꽃을 두 송이 받아서 제단 위에 내려놓았다.
아르티제아는 가만히 그의 뒤에서 있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한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 따위가 감히 위로의 말을 해도 될 것 같지 않았다.
세드릭이 그녀를 손으로 불렀다.
“당신도 헌화해주십시오.”
“제가, 해도 되는 건가요?”
아르티제아의 손에는 비단꽃 두 송이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세드릭이 다른 무덤에 바칠 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기뻐하실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꽃을 내려놓았다.
“돌아가실 날이 올 거예요.”
아르티제아는 소곤거리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세드릭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를 수도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까요. 돌아가셨으니, 이미 평안하실 겁니다.”
“세드릭 님.”
“중요한 것은 산 사람 쪽입니다. 원한을 가지면 올바르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티아.”
세드릭이 고백하듯이 말했다.
“저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만큼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을 위한 복수에 사로잡히는 건,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일은 아닐 테니까요.”
아르티제아는 이상한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세드릭의 말이 진심이고, 진실이라는 것을 아르티제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의 곧바른 마음을 볼 때마다, 비현실적인 것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추모하는 마음을 잘 몰랐다. 그것을 딛고 일어서서 미래를 향하려는 의지는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밀라이라가 죽었을 때에는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굳이 추모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마음이 있다면, 리시아에게 느낀 것이다.
하지만 리시아가 죽었을 때에 아르티제아는 비참한 결말을 예감하며 절망하고 있었다. 정보 조직을 해산하고 칩거를 선택했던 것도 그때였다.
제국을 포기했던 것이다.
* * *
헌화를 마치고 가묘 밖으로 나온 뒤에,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탑으로 안내했다.
“감시탑입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톨드 산맥의 관문까지 보이죠.”
아르티제아는 치맛자락을 말아 쥔 채 세드릭의 손을 잡고 나선형의 계단을 밟았다.
탑 꼭대기에 있던 감시병이 깜짝 놀라서 군례를 올렸다. 세드릭은 그에게 마주 군례로 답해 주고 말했다.
“망원경을.”
“예.”
감시병이 가지고 있던 망원경을 세드릭에게 건네주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외투 사이로 바람이 파고들어서 아르티제아는 몸서리를 쳤다.
탑은 생각보다 높았다.
주위 지대가 낮은 데다가 유일한 산 위, 그 꼭대기의 탑이었다. 세드릭의 말처럼 한눈에 주위 지형이 보였다.
망원경을 들고 아르티제아는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북쪽 국경선인 톨드 관문 너머의 계곡에서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세드릭 님, 저건…….”
아르티제아가 정확한 방향을 보고 중얼거리자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걸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유랑민의 화전인가요? 왜 굳이 저기에서…….”
“카람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가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숨을 삼켰다.
“사원에서 알면 악마의 작물을 연구한다고 할 거예요. 카람과 내통했다고 할지도 모르죠.”
“예. 그래서 톨드 관문 너머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세드릭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