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2
악녀는 두 번 산다 62화
돌아오는 길에는 머릿속이 복잡하여 세드릭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본성으로 귀가하자마자 세드릭의 집무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집무실에 걸려 있는 대공령의 전체 지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지도에는 에브론 대공령만이 아니라 톨드 산맥 너머까지도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그 연구 사업을 시작하신 게 언제인가요?”
“제가 작위를 계승받고 나서부터입니다. 그전에도 일부 영민들이 알음알음 들판에 뿌려놓았다가 수확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로 밭에 심어 재배를 시도한 적은 없었죠.”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그만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톨드 관문 너머에 밭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변명이 못 돼요. 카람은 제국의 대적이에요. 사원에서는 악마의 종족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카람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에브론보다 잘 아는 곳은 없을 겁니다.”
“그걸로는 불충분해요, 세드릭 님.”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이건 실제로는 카람과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 내 정치 문제예요. 들통 나면, 카람과 내통했다고 모함하는 자가 분명히 나올 거예요.”
“하지만 이 땅에서 한겨울을 날 수 있으면서 식량이 될 수 있는 작물은 극히 적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에브론 대공령의 식량 자급률은 30%를 밑돈다.
과거에 에브론 대공령이 크라테스 제국에 복속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국 정부에서 보내주는 보급물자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에브론 대공령의 모든 문제는 식량 부족에서 온다.
식량이 부족하기에 인구가 늘지 못한다. 인구가 적으니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니 영민의 생활수준이 뒤떨어진다. 그러니 생산력이 떨어지고 식량이 또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거기에 더해서 황실이 식량 공급을 볼모로 삼아 대공가를 흔들었다.
에브론 대공가가 가난하지는 않았다. 명예가 있었고, 그에 걸맞은 부귀도 있었다.
그러나 영지 전체를 풍족하게 하는 것은 한 가문 안에서 좋은 옷을 입고 금박으로 가구를 장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사시에는 돈이 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아르티제아는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안정적으로 식량을 보급받는 게 문제라면, 차라리 남쪽에 농지를 사시면 어떨까요?”
“보급의 안정도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티아, 그보다는 영민들이 키울 수 있는 작물이 필요합니다.”
“세드릭 님이 황제가 되면 모두 해결될 일이에요. 이 일은 위험부담은 크고 효율이 너무 떨어져요. 재배법이 확립된다 해도 여전히 숨어서 키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땅에도 미래가 필요합니다.”
세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제가 만약, 정말로 당신이 말하는 것 같은 자리에 오른다면, 보급 문제 자체는 해결되겠죠. 하지만 본토에서 보급을 받으면 결국 군수 물자가 우선시됩니다.”
“세드릭 님.”
“식량 배급으로는 영원히 풍요해질 수 없어요. 그리고 제가 죽은 후, 차대, 차차대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세드릭이 지도를 바라보고 말했다.
“제국의 일부가 되기 전에 이 지역의 사람들은 전쟁 자체를 업으로 삼았다고 하더군요. 생업으로 삼을 만한 산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습니까? 카람과 전쟁하는 대가로 식량을 받아서 배급하고 있는데.”
“세드릭 님…….”
“보급을 받는다는 상황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식량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교역을 활성화시켜야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차라리 대공령의 일부를 포기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가 이 땅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르티제아는 물었다.
세드릭이 감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아르티제아는 대공령을 절반 정도 가르는 위치에 핀을 꽂아 표시했다.
“이 위는 솔직히 생산력이 너무 떨어져요. 톨드 관문의 요새는 지형적 이점 때문에 유지하더라도 마을을 여기까지 형성할 필요는 없죠.”
“티아.”
“인구를 남쪽에 밀집시키면 인구 밀도도 올라가고 그에 따라 생산력도 증가할 거예요. 산업을 형성하는 것에도 유리할 테고요.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좋은 것은 영민을 앨리아 장성 남쪽으로 전부 이주시키고 북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드릭이 엷게 웃었다.
“또 저를 시험하고 있군요.”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겠죠. 저도 알아요.”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하지만 순전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그래요. 세드릭 님이 황실을 차지한다면, 대공가는 사실상 없어지는 셈이잖아요. 이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사람도 없어지죠. 대공가의 역사를 기록으로만 남기겠다고 결정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 가문의 역사가 문제가 아니라 카람과의 화평 가능성이 사라지고 마니까.”
“네?”
아르티제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드릭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2백 년도 넘게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본토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름대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에브론 대공령은 제국 본토보다는 지리적으로 카람과 더 가깝습니다.”
북부는 척박하다. 배타적으로 굴어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혹한이 닥쳐올 때도 있다.
그때에 교류를 선택하는 자는 저쪽에도, 이쪽에도 있었다.
“단순한 수준이나마 의사소통도 가능해졌습니다. 드물지만 혼혈도 있습니다. 전쟁의 간격이 점차 길어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전쟁이 중단되고 에브론 대공령이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남겨두기를 원합니다.”
“그게 세드릭 님이 황제가 된 후에 하시고 싶은 일인가요?”
“뭐, 그렇습니다.”
세드릭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리고 에브론 대공령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전 에브론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그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첫 걸음도 떼지 못하고서 거창한 꿈만 늘어놨군요.”
“아뇨…….”
아르티제아는 아랫입술을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세드릭이 내다보는 미래는 자신보다 훨씬 멀고, 시야는 훨씬 높은 곳에 있다.
그녀는 새삼스럽게 그것을 깨달았다.
세드릭이 말했다.
“제가 이것을 당신에게 보여준 것은, 당신에게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언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티아, 저를 위하여 움직이겠다고 했지요?”
“네.”
“그럼 도와주십시오.”
아르티제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과거로 돌아와서 그를 다시 만나고 이제 곧 반년이 된다.
그동안 세드릭이 먼저 요청한 일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비로소 최초의 계약, 그녀는 밀라이라의 손에서 벗어나고 세드릭은 서부군의 개선식을 한다는 그 조건을 넘어서서, 그가 자신의 뜻을 보여준 셈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책사는 주군의 뜻을 이루어야지, 주군을 자기 틀에 넣고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로산 후작, 그대는 그대의 판단이 절대적이고 로렌스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가? 만일에 그랬다면, 그대가 축출당한 것도 당연한 일이로군.」
세드릭은 과거에 그렇게 말했었다.
세드릭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로렌스의 판단을 별로 믿지 않았다.
로렌스를 위해 모든 일을 다했다지만, 로렌스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통치에 대한 철학이 있는지 어쩐지조차 의심스럽다.
하지만 세드릭은 다르다.
‘위를 바라보고 계시니까.’
그가 바라는 것은 권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세드릭을 권좌에 앉히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해서, 그의 뜻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그가 황제로서 하고 싶은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설렜다.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앞에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가 대공령의 재정 상황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은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였어요.”
“중요한 일이죠.”
세드릭이 평범하게 대답했다. 아르티제아는 말했다.
“그다음에 곡물 가격에 손을 쓰려고 했죠.”
“티아.”
세드릭의 목소리에 비난이 섞였다.
“로이가르 대공을 지지하는 건 각계의 거상과 비옥한 동부 지역의 대지주, 이들이 북부로 오는 보급 물자의 징발에 크게 관계되어 있으니까요.”
평균 수치로 따지자면 서부 지역의 광대한 평야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이 많았다.
그러나 서부는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매해 수확량의 편차가 심하다.
귀족과 지주들은 서부보다는 동부에 땅을 소유하는 것을 선호했다. 서부는 자영농 중심으로 경영되고 있었다.
황실은 동부의 대지주들에게 강제적으로 곡물을 징발했다.
북부로 보내는 보급 물자는 카람으로부터 제국을 지키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다.
좋아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있는 자도 없었다. 거부하는 것은 곧 카람과 내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곡물가가 올라가면, 폐하는 징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그 일을 로이가르 대공에게 맡기실 거예요.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은 탐욕스러우니, 값이 오른 곡물을 공짜로 북부로 보내는 게 억울해지겠죠.”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거기에 손을 대었다.
몇 년에 걸쳐서 남부의 왕국들로 곡물을 수출하는 무역선을 해적을 시켜 약탈하게 했다.
동시에 로산 후작가의 재산을 풀어 대량으로 곡물을 사재기하고, 그렇게 얻은 곡물은 모두 바다에 쏟아 버렸다.
서부에는 수십 차례에 걸쳐서 화재를 일으켰다.
곡물 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예상대로 황제는 로이가르 대공에게 북부의 물자 보급을 맡겼다.
때마침 남부 에이멜 왕국에서 부족한 밀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로이가르 대공에게 뇌물을 주고 징발한 곡물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
로이가르 대공으로서는 충분히 계산이 섰기 때문에 했던 일이었다.
가을이었다. 한두 달만 늦추면 새로 수확한 밀로 빈 창고를 다시 채울 수 있었다.
그때 가서 보급 물자를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 그해에 카람이 대규모로 남하했다. 굶주린 에브론 군은 톨드 관문을 지켜내지 못했다.
자칫하면 앨리아 장성까지 뚫릴 뻔했다.
실로 오랜만에 제국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본성을 지키던 세드릭이 허를 찔러 카람의 왕을 죽이는데 성공한 덕택으로 전쟁은 그해 겨울 안에 끝났다.
하지만 로이가르 대공은 패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에이멜 왕국과 비밀리에 맺은 곡물 협정도 탄로 났다.
에이멜 왕국에서 협정을 제안한 것 자체가 아르티제아가 관여하고 있던 일이었다. 협정서는 처음부터 그녀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로이가르 대공은 반역죄로 목이 잘렸다.
그녀는 같은 계책을 쓸 작정이었다. 효과가 검증된 방법이었으니까.
다만 전쟁은 피해야 했다. 이미 전쟁이 일어나는 해를 알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어차피 로이가르 대공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는 비밀 협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보급을 받지 못한 에브론 대공령이 아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창고를 가득 채워둘 작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