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3
악녀는 두 번 산다 63화
세드릭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의 생각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절대 안 됩니다. 곡물 가격에 손을 쓰면, 북부로 오는 보급이 문제가 아니라 제국 전체의 민생에 고통을 안기게 됩니다.”
“네. 알고 있어요.”
아르티제아는 대답했다.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민생을 망치는 자들을 끌어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티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중에 좋다는 곳은 모두 제국이 차지하고 있어요. 생산력은 막대하고 산업도 발달했죠. 민생이 피폐한 것은 지배층이 수탈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위만 갈아치워도 제국은 금세 되살아날 거예요.”
그런 저력이 있는 나라다.
그러니 빨리 끌어내릴수록 유리하다.
“민생을 행복의 총량으로 따진다면, 제 방식이 맞아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왜 제게 의견을 구합니까?”
“세드릭 님을 보면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아르티제아는 중얼거렸다.
“저는 왕재가 아니에요. 부끄럽지만, 도덕률도 머리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말했다.
세드릭이 싫어하는 수단이라서 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가진 이상이 너무 높아서 이런 일로 실현할 수 있을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은 대답도 짐작하고 있었다.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다.
“티아.”
세드릭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당신의 논리는 이해했습니다. 할 수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지만 도의는 한 번 잃으면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명예는 잃어도 되지만, 도의는 안 됩니다.”
세드릭은 그녀에게 화를 내는 대신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조심스럽게 뻗어서 아르티제아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당신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것보다 훨씬 나은 방책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게.”
세드릭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아르티제아의 곁에서 비켜나 건너편 자리로 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어쩐 일로 부르셨는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중년 여자였다.
여자는 아르티제아가 집무실에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금세 알아챘다. 여자가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한나라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공비 전하.”
“한나는 톨드 북쪽 마을의 책임자입니다. 이번에 보고를 받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세드릭의 말에 한나가 놀란 눈치를 숨기지 못했다.
카람 작물에 관한 일은 에브론 대공령에서 가장 큰 기밀이었다.
하지만 세드릭은 이렇게 말했다.
“대공비에게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도 되네.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카람 작물에 대해서 보고하게.”
한나는 곧 당혹감을 수습했다. 그리고 가져온 서류들을 아르티제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르티제아는 잠시 말없이 서류들을 넘겼다.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배수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뿐이로군. 한파를 견딜 수는 있지만, 온화한 시기에 더 잘 자라고.”
“예. 수확은 초봄과 가을에 한 번씩 할 수 있고, 가을의 수확량이 확실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겨울 동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인력으로 언 땅을 파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쟁기는?”
“말이 사람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말도 위험합니다. 카람 혼혈의 일꾼들만이 조금씩 일할 수 있는 정도이지요. 대공령 남쪽에서라면 1년에 두 번 수확하기에도 무리 없을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많지 않은 보고서를 전부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덮고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역시 일단 이건 중단시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효율이 너무 낮아요.”
어차피 이 연구는 실패한다. 성공했으면 아르티제아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실패한 계기는 로이가르 대공의 목을 자른 그 전쟁 때에 에브론 대공령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리라.
“포기하시라는 뜻은 아니에요. 덜 위험한 방법으로 해보죠.”
“방법이 있습니까?”
세드릭의 눈이 반짝거렸다.
“종자의 출처 세탁을 먼저 하죠. 서북부 지역에서 발견된 작물로 만들어요.”
아르티제아는 지도에 꽂힌 핀을 모조리 뽑았다. 그리고 다른 한 지점에 핀을 꽂았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는 서쪽 국경 끝이다.
“에브론 대공령과의 경계선은 앨리아 장성으로 막았지만, 몬스터 서식지인 서쪽 끝은 북부로 바로 통하잖아요? 이렇게 보면, 카람과도 통해 있어요.”
“거기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가 있을 때에 그쪽에서 내려오는 몬스터의 몸에서 식물이나 곤충 같은 게 묻어오는 일은 종종 있지.”
세드릭이 긍정적인 태도로 몸을 내밀었다.
“서부의 자영농 출신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을 몇 알고 있습니다.”
“딱 좋네요.”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농법도 그쪽에서 연구하는 쪽이 훨씬 나을 거예요.”
그녀가 문서를 흔들었다.
“종자는 엄중하게 보관하되, 이 기록은 모두 태워 버려요. 톨드 북쪽 마을도 가능한 한 빨리 없앴으면 좋겠군요.”
“흔적을 없애라는 말입니까?”
“네. 완전히.”
한나가 숨을 삼켰다.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마을을 없애서는 안 되는 다른 이유가 있다면 지금 이야기하게.”
“없습니다. 남쪽에서 하는 쪽이 나을 거라고는 저도 줄곧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혼혈 출신들이 갈 만한 곳이 없어서…….”
“그건 아론을 시켜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보도록 하겠네. 지금까지 수고한 이들을 외면할 수야 없지.”
세드릭이 말했다.
“말이 흘러나가지 않게 할 수 있겠어요?”
“염려 마십시오. 그건 제가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전부 없던 일로 하는 거예요.”
아르티제아가 한나를 한 번 보고, 다시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카람 작물이라는 이름도 완전히 잊어버리세요. 새 이름은 서부의 농부들이 붙이도록 하죠. 그리고 내년에 새로 서부에서 수확을 하게 되면, 대사원의 제단에 올리도록 만들게요.”
“제단에요?”
“네. 새로 개량된 종자를 축성해주는 일은 매해 있으니까요. 일단 축성받고 나면, 그다음에는 카람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악마의 작물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테죠.”
“가능하겠습니까? 대사원의 제단에는 아무것이나 올리지 않을 텐데요.”
“본토에서라면,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어요.”
세드릭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중요한 일이니까, 당신이 직접 맡아주겠습니까?”
“네.”
“하지만, 사원의 축성을 받는다 해도, 황제 폐하께서 어떻게 반응하실지 걱정이 되는군요.”
식량은 황실이 에브론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황제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서부에서 시작한 일이라면 순식간에 끝나요. 농부가 발견한 새로운 작물을 거절할 이유는 없으니까. 폐하께서도 사원의 제단을 부정하실 수는 없죠.”
“그것도 그렇군요.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가능하다면, 충분히 준비 될 때까지는 숨기는 게 좋겠지요.”
아르티제아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로 말했다.
“서부에 곡물상 조합을 만들도록 하죠.”
세드릭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대답했다.
“여름에 차명으로 중소 규모의 곡물상을 사들였어요. 대충 70여 개 되지요. 이 정도면 여론을 주도해서 조합을 만들 수 있어요.”
“티아, 설마 곡물가 조작을 진짜로 실행할 생각이었던 겁니까?”
“작년에 세드릭 님이 몬스터 웨이브를 막은 덕택으로 불탄 창고도, 농지도 없고, 곡물 가격은 안정되었어요. 사둔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아르티제아는 거짓말했다. 세드릭은 알면서도 속아 주었다.
“그걸로 사원에 뇌물을 주는 핑계를 만들고, 새로운 작물을 퍼뜨리는 것도 눈가림하겠다는 것이로군요. 하지만 단순히 상단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연합을 만들어 움직이면 폐하에게 들킬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그렇긴 해도, 막을 핑계가 없으실 테죠. 만약의 경우에는 수송을 막고 창고를 빼앗으면 되니까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봐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만일에 황제가 그것을 막으려 했다가는 로이가르 대공을 필두로 하는 상단 세력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귀족의 사업 확장을 막는 것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것도 괜찮지.’
이걸로 로이가르를 실각시켰던 계책은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쪽 일은 나중에 다른 계획을 세우면 된다. 세드릭이 말한 대로, 자신은 더 좋은 계책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전 군무는 잘 모르고, 에브론 대공령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라요. 하지만 뒤를 걱정하지 않으실 수 있도록 받쳐 드릴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여유가 생기는 만큼 세드릭 님이 하고 싶으셨던 일을 하세요.”
다행히 로산 후작가는 부유하다. 에브론 대공령을 풍요하게 만들 정도는 되지 못했으나 돌파구를 만들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것이 제일 올바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드릭이 입가를 허물어뜨렸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안 됩니다. 당신은 이제 겨우 로산 후작가를 되찾았어요. 온전히 가지고 있도록 해요. 뜻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지혜와 손을 빌려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조르딘 백작이었어도 사재를 털겠다는 말에 반대하셨을까요?”
세드릭이 난처하게 말했다.
“그것과 이것은 다르지요.”
“같아요. 제가 평생을 바치기로 한 사람을 위해 가진 것을 쓰는데 뭐가 다른가요?”
세드릭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그러더니 목부터 새빨갛게 물들어 마침내 얼굴 전체가 붉어졌다. 세드릭이 결국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한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뜨뜻미지근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자기가 했던 말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져서 벌떡 일어났다.
세드릭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런 의미 아닌 거 압니다.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 그냥 앉아요. 아직 이야기 덜 끝났지 않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물론 오해하고 있는 자도 있었다.
한나가 흩어진 서류들을 척척 정리했다.
“감히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혔다.
아르티제아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말했다.
“이상한 오해를 사게 해서…… 죄송합니다.”
“완전히 오해만은 아닙니다.”
세드릭이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그 손을 빼냈다.
그리고 열기가 남은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저는 이만…….”
“가지 말아요.”
세드릭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르티제아는 현기증이 나서 휘청거렸다. 그녀의 손을 세드릭이 잡아당겨 자기 쪽으로 넘어지게 했다.
“가만히 있어 봐요. 지금 내 얼굴 보면 안 됩니다.”
아르티제아는 숨을 멈췄다. 세드릭이 두 팔로 그녀를 껴안고 정수리에 입술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