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4
악녀는 두 번 산다 64화
그해 겨울, 사교계를 강타한 것은 황후의 이야기였다.
“황후 폐하께서 은둔 생활을 그만 두고 궁 밖으로 나서실 걸 알고 있었던 예언자가 있다면서요?”
“아니,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사원에서 들으면 어쩌려고요.”
귀부인들이 으흠거리면서 부채로 입을 가렸다.
“예언자가 아니라 강령술사라고 해요. 무슨 빈민가 출신이라고 하던데…….”
“황후궁의 문이 열릴 걸 예언했다고요?”
“예언……은 아니고요. 그레이슨 자작가에서 강령회가 열린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타난 유령이 가장 고귀한 신분의 여인이 미래의 황제를 결정지으리라고 했다는 거예요.”
“에이, 그런 말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요. 로렌스 경의 자격이 제일 우선적으로는 황후 폐하의 뜻에 좌우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하지만 그때에만 해도 황후 폐하께서 정말로 황후궁의 문을 열고 나오시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잖아요.”
“그건 그랬죠. 에브론 대공 전하야 물론 친척으로서 때때로 황후 폐하를 알현하긴 했지만요. 결혼식 참석만으로도 놀라운데 심지어 그…….”
밀라이라의 딸을 시녀로 삼아 어머니 자리에 섰다니, 놀랍다고 귀부인들은 소곤거렸다.
“순금 보주도 주었다면서요. 시녀에게 모친이 없으면 그런 일이 있기도 하지만…….”
“황후 폐하 심정도 조금 이해는 가요. 그동안 로산 후작 대부인이 오죽 자식 문제로 자랑을 했었나요?”
“요즘 젊은 부인들은 모르겠지만, 황후 폐하께서 칩거하시기 전에 황녀님과 황자님을 연달아 잃고 그렇게 슬퍼하실 때에 보란 듯이 로렌스 경을 데리고 나와 자식 못 지키는 어미는 살 자격도 없다고 말하곤 했었죠.”
“그런데 그 딸은 황후 폐하의 시녀가 되었고, 로렌스 경은 요즘 황후궁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니…….”
“하지만 황후 폐하께서 칩거를 그만두셨다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은가요? 황후궁의 문은 열렸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만나주시지 않잖아요.”
“적어도 후사 문제에 관여할 의사가 있다는 것은 밝히신 셈이죠.”
사람들이 긴장한 태도로 황후궁의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강령술사에 관한 화제도 몹시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그런데 그 강령술사는 진짜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랜든 남작 부인도 아들을 찾았잖아요.”
“랜든 남작 부인의 아들은, 2년 전에 하녀와 눈이 맞아서 집을 나가지 않았어요?”
“네에. 하지만 그 아들이 없으면 남작 부인 처지가 좀…… 그랬잖아요. 랜든 남작은 병석에 누워서 일어날 줄을 모르고, 전처의 딸과는 사이가 최악이었으니까요. 아들이 집을 나간 뒤에 계속 소식을 몰랐는데, 이번에 강령술사가 있는 곳을 가르쳐줬대요.”
“대단하군요. 강령술사이니 점쟁이니, 가끔씩 나타나지만, 이번처럼 뭘 찾았다거나 맞췄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랜든 남작가도 큰일이네요. 설마 그 하녀를 받아들인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어요?”
누가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 * *
소문의 그 강령술사는 황제의 근위대장 헨리 키쇼어의 저택에 있었다.
키쇼어의 딸 미엘르와 그녀의 외사촌 헤젤이 초청한 것이었다.
미엘르는 처음에는 몹시 망설였다. 헤젤은 열심히 그녀를 꼬드겼다.
“그냥 재미삼아 하는 일인 걸. 커피 점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
“그렇지만 아버지가 아시면 혼날 거야.”
“궁금하지 않니? 대체 어떻기에 사교계가 그렇게 떠들썩한지? 너도 들었지? 얼마 전에는 아티야 백작 영애에게 노아 경이 구혼할 거라는 걸 맞췄대. 그전까지는 아무도 노아 경이 아티야 백작 영애를 좋아한다는 걸 짐작도 못했었으니까.”
미엘르가 솔깃했다. 헤젤이 활달하게 말했다.
“강령술사가 와서 거짓말만 늘어 놓고 가면 또 어떠니? 손해 볼 것도 없는데.”
“그건 그래.”
“난 그걸로 기사를 쓰려고.”
“진짜? 이모님이 허락하셨어?”
“내가 쓴 기사로 신문이 팔리면, 어머니도 더 이상 아무 말씀 안 하실 거 아냐. 도와줘, 미엘르, 기사를 완성할 때까진 비밀로 하고 싶어.”
미엘르는 꺾였다.
미엘르가 장소를 제공하고, 헤젤이 다른 걸 모두 준비했다.
강령회에 관심이 있다는 귀족 영애 몇몇이 곧바로 참석 의사를 밝혔다.
초청받은 강령술사는 남보라색 후드를 눈까지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완전한 원형을 이루는 테이블, 사람 9명, 사람 인원수만큼의 붉은 양초, 하얀 테이블보……. 좋습니다. 필요한 건 모두 구비했군요.”
강령술사는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그 피로 새하얀 테이블보 정중앙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다음에는 불을 끄고, 커튼을 쳐서 실내를 어둡게 만들었다. 그러자 제법 신비한 분위기가 났다.
“모두들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리고, 양옆의 사람과 손을 잡아 주십시오. 이것을 생명의 원이라고 부릅니다. 영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요.”
강령술사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절대로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선한 영이라 해도 통제 밖으로 나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잡고 있는 손이 서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손바닥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꼭 손바닥을 맞대고 잡아 주십시오.”
헤젤이 킥킥 웃었다. 강령술사의 말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강령술사가 웅얼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손님들은 나름대로는 이 우스운 놀이를 즐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피로 그린 마법진에서 푸른 불꽃이 튀기 시작하자 그러지 못했다. 킥킥대던 헤젤도 웃음을 멈추었다.
실내에 긴장이 감돌았다.
번쩍!
마법진이 한순간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광을 토해냈다.
“꺄악!”
깜짝 놀란 미엘르가 비명을 질렀다.
밖에서 묵중한 발소리가 달려왔다. 때마침 귀가한 키쇼어가 미엘르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 미엘르!”
문이 활짝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놀란 손님들이 허둥거렸다. 손을 놓으면 영이 빠져나간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키쇼어가 빛을 발하고 있는 테이블보를 끌어당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양초가 쓰러지면서 카페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키쇼어는 그것을 테이블보로 내리쳐서 껐다.
그다음 키쇼어는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의자에서 가슴을 누르고 할딱대고 있는 미엘르를 한 번 바라보고, 기가 막힌 얼굴을 헤젤에게 돌렸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헤젤?”
“아, 그게요. 저희는 그냥 강령회를 좀……. 화, 화내지 마세요, 이모부, 그냥 재미삼아 한 거예요. 미엘르가 소리 지른 건 그냥 놀라서…….”
“강령회? 이놈이 요즘 유명하다는 그 사기꾼이냐?”
그가 강령술사의 멱살을 잡았다.
“헤, 헤헤…….”
강령술사가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키쇼어는 강령술사를 질질 끌고 서재로 갔다.
그리고 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모양을 잡아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가 벗겨졌다. 그 안에는 신비함도, 뭣도 없는 특징 없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무엇하는 놈이냐?”
키쇼어가 사납게 물었다. 강령술사가 찔끔하며 말했다.
“저, 저는 그냥 광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문이 들려오더군. 광대라고?”
“그, 뭐냐……. 그런 거 좋아하는 부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고 사례금을 약간…….”
“네가 진짜 영혼을 불러 예언을 한다는 말이 파다하던데.”
“에이, 누가 그런 걸 진지하게 믿습니까? 굳이 말씀드리자면, 실감 나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 미리 손님들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오긴 합니다.”
강령술사가 헤헤거리며 손바닥을 비볐다.
“그냥 사교계의 잡소문 같은 걸 모아서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영애의 결혼 상대는 지금은 영애를 미워하는 듯이 보이는 바로 그분입니다. 매력적인 눈동자를 가진……. 뭐 이런 식으로요.”
“빛은 어떻게 만들어냈나?”
“그, 그건 제가 어디에서 고대문자를 주워 배운 겁니다. 빛나라, 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피로 그걸 그리고 잠깐 시간이 지나면 빛이 납니다.”
키쇼어는 이마를 짚었다.
이런 사기꾼 놈이 사교계에 그렇게 소문거리가 되고 있다는 게 어이 없었다. 자신이 다 수치스러울 지경이었다.
“썩 꺼져.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라.”
그가 크게 호통 쳤다.
강령술사가 헉 하고 겁을 먹은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리고는 홱 돌아서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서재 밖에서 헤젤과 미엘르가 겁 먹은 얼굴로 기웃댔다. 키쇼어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들어와라.”
“죄, 죄송해요, 아버지.”
미엘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헤젤도 그랬다.
키쇼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호기심을 가질 일에 가져야지. 너희들을 똑똑한 숙녀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 안 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더니, 이게 무슨 어리석은 짓이냐?”
“그냥 놀이 같은 것인 걸요. 사기인 건 저도 알아요. 수법이 좀 궁금해서…….”
“헤젤!”
키쇼어가 호통을 쳤다.
“스무 살도 안 된 어린애들이 재미삼아 사기꾼을 집에 끌어들이는 게 말이 되느냐? 사기면 사기인 대로, 또 아니면 아닌 대로 큰일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사원은 또 어떻고!”
“에이, 여기저기 유행인데, 뭐 그렇게까지…….”
변명을 하려다 말고 헤젤은 움찔했다. 키쇼어가 무서운 얼굴을 했기 때문이었다.
쫓겨난 강령술사는 키쇼어 저택 밖으로 나오면서 어깨를 펴고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얼간이 같았던 얼굴에 총기가 돌았다.
골목을 하나 돌자 검은 포장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령술사는 그 마차에 오르면서 한탄했다.
“일진 정말 사나운 날이구먼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라이?”
마차에 타고 있던 프레일이 물었다.
“라이가 아니라 와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나저나 언제부터 봤다고 막 이름 부르십니까?”
강령술사, 라이 피젯이 투덜거렸다.
프레일은 피식 웃었다. 아르티제아가 라이라고 부르니까 그냥 그도 따라서 부른 것뿐이었다.
“키쇼어 경은 어떻던가?”
“터무니없는 사기꾼 취급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터무니없는 사기꾼 맞잖나?”
“터무니없는 음모가…….”
그렇게 말하다가 라이는 프레일의 빈정거리는 얼굴을 보고 말을 고쳤다.
“……의 하수인이라고 하죠.”
라이가 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시키는 대로 하긴 했어도 진짜로 이렇게 파장이 커질 줄은 몰랐는데요. 보아하니 키쇼어 경도 이미 저를 알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
“염려 마십쇼. 아무것도 아닌 사기꾼 강령술사라는 게 제 목숨 줄인 거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