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6
악녀는 두 번 산다 66화
10. 리시아
아르티제아는 복슬복슬한 토끼털 인형을 집어 들었다.
주먹 두 개만한 동그란 몸통에 분홍색으로 안감을 댄 긴 귀를 달았다. 눈동자는 반질반질한 흑요석이다.
그것만으로도 꼭 진짜 토끼처럼 보였다.
손바닥에 보들보들하고 고운 털이 쓸렸다. 아르티제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귀여워요!”
하녀들이 찬탄했다.
토끼털 인형을 가지고 온 재무관 제이든이 슬쩍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티제아가 제이든에게 이 일을 시킨 것은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에브론 대공령의 재무 장부를 전부 살폈다. 그리고 나서 에브론 대공령의 군색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무얼 하더라도 세드릭의 말마따나 인적 자원이 문제였다.
자원은 많았다. 채산성이 있는 광산도 여럿 있었고, 광대한 침엽수림에 기대어 할 수 있는 사업도 그 자리에서 줄줄이 댈 수 있었다.
하지만 개발할 여력이 없었다. 노동력의 핵심이 될 만한 건강하고 젊은 남자는 모두 입대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얼어붙은 땅을 갈기 위해 남자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축을 기르기 어려운 곳이다. 인력을 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 두 가지 외의 산업에는 대부분 여자들이 종사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영지 전체가 함께 생존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게다가 광산이나 다른 산업을 키운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크라테스 제국 본토는 광대하고 생산력이 넘치는 비옥한 땅이다. 에브론 대공처럼 궁벽한 지역의 물산은 경쟁력이 없다.
거기에 수송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있다. 어지간해서는 교역으로 이득을 거두기도 어려웠다.
겨울이 되면 교통이 두절되다시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때문에 에브론에는 상단은커녕 상인 길드조차 없었다.
설령 돈이 될 만한 사업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식량 자급률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에브론 대공령이 아니라면 다른 산업을 키워 식량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이 도는 곳에는 사람도 몰리게 마련이니 인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에브론 대공령이다. 식량을 매입해도, 수송에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수송 루트가 너무 한정적이었다.
평화로울 때에는 본토에서 매입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할 때를 늘 생각해야 했다.
한 해라도 황실에서 보급을 막으면 바로 버티지 못하게 된다.
본토처럼 식량이 부족해졌을 때에 초근목피로 다음 수확까지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게 줄어든 인구는 다시는 늘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지금의 생산량이라도 유지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경쟁력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농업을 제일 중요시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아르티제아는 모피와 가죽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우선 기존에 있던 사업의 효율을 높이고 재정에 여유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죽 사업이 주 수입원입니다. 사냥은 어차피 계속해야 하니까요.」
아론이 설명했다.
「사냥을 해두지 않으면 야생 동물이 사람이 사는 지역까지 침범합니다. 군사 훈련도 겸할 수 있어서 군대가 부대 단위로 돌아가며 하고 있습니다.」
「가죽은 대부분 원단 그대로 상단에 넘기고 있군.」
「예. 헐값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실제 본토에서 팔리는 시세까지 파악해서 그쪽까지 직접 유통할 만큼의 여력이 없으니까요.」
「흥정한 적은 없나?」
아론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 정도로 심합니까?」
아르티제아도 가죽의 도매가까지 알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록만 봐도 후려쳐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아르티제아는 어차피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론을 책망하지 않았다.
아론은 군인이다.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대공령의 사정 때문에 영지의 관리인으로서 이런 사업까지 맡아 하고 있을 뿐이다.
훌륭한 수완을 기대하는 쪽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재무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실하고 꼼꼼하긴 했다. 시킨 일은 실수 없이 해내는 이들이었다.
모두 충성심도 강했다. 과거에는 상당한 돈으로도 배신자를 만들어내지 못했었다.
대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드릭 정도의 주군 밑에 이렇게까지 능력 있는 자가 없나 싶었다.
아마도 에브론 대공령 자체가 상공업에는 뒤처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알기로 세드릭의 밑에서 재능을 보인 인재의 대다수는 군인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새 종이를 끌어다가 작년의 가격을 쓰고, 그 옆에 새 가격을 적었다.
「이 이하로는 팔지 마. 틀림없이 시세가 어쩌니 운송비가 어쩌니 우는 소리를 하겠지만, 듣지 말게. 마음이 흔들릴 것 같으면 그자더러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에브론 가죽이라고 하면, 이쪽 산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조차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이니까, 한 해 정도는 거래가 끊어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흥정하게.」
아르티제아는 냉랭하게 말했다.
「상단이 고작해야 세 곳만 찾아와서 같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군. 담합해서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잡히면 그냥 두지 않겠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기에 기억에만 남겨두고 아르티제아는 그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은 털가죽 말인데.」
「아, 예. 이쪽은 제법 잘되는 축입니다. 내수로 쓰이는 게 워낙 많다 보니 처리 기술도 좋고요.」
담당 재무관이 공손히 대답했다.
「하지만 사시사철 팔리는 물건이 아닌 데다가 사치품이라서요. 너무 많이 내보내면 가격이 떨어져서 오히려 이익이 줄어드니까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수요를 대폭 늘려야겠어.」
담당 재무관이 난처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게 가능하다면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유통 단계를 줄여 보지. 아론 경, 에브론 출신으로 수도에서 활동하는 상인이 전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예. 있을 겁니다.」
「물색해두게.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무얼 하실 작정입니까?」
「동물인형이나 모피 장식품 같은 걸 만들어보지.」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옷 같은 것은 아무리 애써도 여기에서 유행을 주도할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아예 없었던 물건이라면 달라. 모피의 고급스러움을 한껏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이라면 좋겠지.」
아르티제아의 말에 재무관들은 눈만 깜박거렸다.
제일 먼저 그 말을 이해한 것이 하급 재무관인 제이든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연회에 가지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볍고 남에게 자랑할 만큼 값져 보이는 소품이나 인형 같은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모피를 많이 이용해서. 그러면 여름에도 계속 팔릴 테니까요.」
「이해력이 빠르군.」
「처음에는 고급품으로 시작해도 유행은 결국 중산 계급에까지 내려갈 테니까 털가죽 자체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수도 있겠군요. 잘하면 엄청난 일이 되겠습니다. 이언츠 왕국이 자수 원단만 팔아서도 부유한 것을 생각하면.」
「그래.」
「하지만 비 전하, 털가죽은 이언츠 자수와 다릅니다. 예술성도 없고, 독점도 할 수 없어요. 본토에서도 털가죽은 생산될 텐데.」
재무관 하나가 반박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단순한 방한용구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나 촉감을 생각하면서 만들어야지요. 에브론보다 양질의 털가죽을 많이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최종 생산품에서는 밀리더라도 유행하면 유행할수록 무조건 이득입니다. 장식품이면 방한이 필요 없는 남쪽에서도 팔립니다.」
말하다 말고 제이든이 깨달은 듯이 외쳤다.
「잘하면 남해까지 팔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수도 사교계의 유행이라면?」
아르티제아가 두 번 박수를 쳤다.
「자네가 책임지고 이 일을 맡게.」
「예?! 전 하급 관리입니다, 비 전하?」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한 사람이 일을 맡아야지.」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제이든이 이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사교계에 내보일 제품이야. 보석이든 귀금속이든 마음껏 사용해서 만들어 보게. 시제품은 자네의 아내와 딸에게 주겠네.」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했다.
아론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말씀하시는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수도의 사교계에 유행시킨다는 게 그렇게 쉽겠습니까?」
「걱정 말게. 내가 누구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밀라이라를 떠올린 아론과 재무관들이 송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동시에 가능하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녀의 모친은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제국의 사교계를 휘둘러온 황제의 정부이다. 이런 일에는 충분한 경험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한 달 만에 만든 것이 이 인형들이었다.
“검은 것은 여우털인가?”
“예. 검은 여우는 아니고 염색입니다.”
아르티제아는 길쭉한 모피를 들어 올렸다. 인형처럼 보였지만, 목에 감아 장식으로 쓰기에도 충분했다. 어깨에 얹어도 제법 근사했다.
“눈동자는 푸른 수정입니다.”
“보석을 쓰라고 했을 텐데.”
시제품을 아내와 딸에게 준다고 했으니 제일 비싼 것으로 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제이든이 송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제 아내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고가의 보석입니다. 비 전하께서 모처럼 막중한 임무를 맡겨 주셨는데, 그 기회를 틈타 어찌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겠습니까?”
“그게 자네의 아내에 대한 생각인가?”
“제 아내가 이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제이든이 머쓱한 얼굴로 자백했다.
아르티제아는 작게 소리를 내서 웃었다.
“현명한 아내를 두었으니 장차 성공하겠군.”
제이든이 머리만 긁적였다.
아르티제아는 오브리를 불렀다.
“오브리, 가서 내 보석 상자를 가져오너라.”
내내 아르티제아의 뒤에 서 있던 오브리가 비로소 움직였다.
아르티제아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여우 털을 쓰다듬었다.
똑똑.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녀가 달려가 문을 열었다.
세드릭이 과자 접시를 들고 들어오다가 제이든이 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이런, 바쁩니까?”
“아뇨. 용건은 거의 끝났어요.”
아르티제아가 돌아보며 말하는데, 큰 손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웁.”
입 안에 한입 크기의 과자가 들어왔다.
무심코 깨물자 아삭 하고 겉 파이가 부서지면서 구운 사과 향기가 입 안에 퍼졌다.
아르티제아는 새빨개져서 손을 자기 입으로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