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67
악녀는 두 번 산다 67화
그녀는 서둘러 우물거리면서 과자를 씹어 삼켰다. 그다음에야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나중에 먹을게요.”
“그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는데……. 일을 마치고 먹으면 돼요.”
“그럼 그것도 기다리지요. 간식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제가 안스가르에게 혼납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의 옆자리에 앉으며 여우 털 장식품을 쓰다듬었다.
“이게 전에 말한 모피 제품입니까?”
“네. 괜찮지요?”
아르티제아가 그것을 어깨에 얹어 보여 주었다.
“금장식 같은 것을 달아서 착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아 보이는군요.”
“네. 좋은 생각이에요.”
“어울립니다.”
아르티제아가 잠깐 대답할 말을 잃었다.
세드릭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르티제아의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오브리를 손짓으로 불렀다.
보석 상자를 가지고 나온 오브리가 세드릭을 보고 걸음을 멈칫했다.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곁에 세워둔 채 상자 뚜껑을 열었다.
“여우의 눈동자는 사파이어가 좋아 보이는군.”
아르티제아는 크기가 똑같은 작은 사파이어 두 개를 집었다.
“그리고 토끼는 소박한 쪽이 좋겠어. 가넷과 호박으로 하지. 소피, 가서 이걸 담을 만한 주머니를 가져오렴.”
그제야 아르티제아가 그 보석을 자신에게 주려는 것을 알고 제이든이 손사래를 쳤다.
“과분합니다, 비 전하. 정말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흘만 가지고 있고, 그 뒤에는 아내와 의논하여 알아서 처분하게. 하사품이라고 해서 이런 것을 집에서 가지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될 테니.”
“감사합니다.”
제이든이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그리고 감격한 얼굴로 세드릭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여우 털을 3개, 토끼털을 2개 더, 최고급으로 만들게. 모두 귀한 사람에게 보낼 것이니 서로 다른 형태여야 해. 첫 선을 보이는 제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눈이나 장식으로 사용할 만한 보석은 내가 골라서 마거릿에게 맡겨 두겠네. 넉넉하게 쓰고.”
“예, 알겠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한 번 만들어 보았으니 두 번째는 더 빨리 할 수 있을 겁니다.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든이 정중하게 허리를 꺾어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소피에게 보석 주머니를 받아 소중하게 품에 넣고, 인형 두 개를 껴안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할 일은 끝났습니까?”
세드릭이 물으며 과자를 집어서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렸다.
“네.”
아르티제아는 조심스럽게 세드릭의 손에서 과자를 받아들었다.
새삼스럽게 그의 눈앞에서 뭘 씹는 것이 의식되어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입 안에서 바삭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것도 신경 쓰였다.
세드릭이 물었다.
“맛은 괜찮습니까?”
“네. 과일이 이렇게 귀중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식량 사정상 식단이 저장용으로 가공한 육류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곡물조차 부족한 곳이다. 채소류는 절여서 저장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과일도 잼이나 말린 것 정도밖에 없었다.
주방에서 아르티제아의 식사에는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사과 향은 소중한 것이었다.
“더 먹어요. 접시가 빌 때까지 옆에 있을 겁니다.”
“이렇게 직접 가져오실 필요 없어요. 하녀에게 시키셔도 간식 시간 같은 건 잘 지킬 테니까요.”
“제가 오고 싶어서 가져오는 겁니다.”
아까 간식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스가르에게 혼난다고 했던 말을 잊어버린 듯 세드릭이 고쳐 말했다.
그리고 과자를 하나 더 집어서 아르티제아에게 건네주었다.
“자꾸 이러시니 나쁜 버릇이 들겠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새해 목표를 말하지 않았던가요?”
“말씀 안 하셨는데요? 뭔데요?”
“당신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소리 내서 웃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드릭이 미소를 깊게 하고 바라보아서 웃음이 쑥 들어갔다. 아무래도 그는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이 결정되어 있는데도 그랬다.
세드릭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티아.”
아르티제아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가 또다시 그의 눈동자에 사로잡혀 버렸다.
세드릭이 엷게 웃었다. 얼굴이 가까워서 숨결이 아르티제아의 숨에 섞였다.
세드릭이 고개를 숙였다. 아르티제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이 아니라 뺨에 닿았다.
아르티제아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 떨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키스하려는 줄 알았다.
세드릭이 그녀의 눈 밑을 가볍게 쓸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방에 신경을 쓰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랜드 홀은 춥습니다. 따뜻하게 챙겨 입어요.”
“네…….”
“이따 봐요.”
세드릭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한테 왜 이렇게 하세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물어보고 싶어서 감정이 치밀었다.
하지만 진짜로 그의 감정을 알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올바른 대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 더 이대로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자꾸만 행복해지고 만다.
세드릭에게 끌리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다정하고 강하고 바른 사람에게.
한 번의 생을 마감했다. 황제의 바로 아랫자리에 앉아 있었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보았고, 평가했다. 강물바닥을 휘젓듯이 세상을 어지럽혀 사람의 가장 더러운 밑바닥을 확인했다.
그때에도 그랬다. 세드릭은 그녀가 아는 모든 남자 중에 가장 반듯하고 근사한 남자였다.
두 눈에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흙으로 발라 가려놓았을 때조차도 그가 발하는 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는데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도 보았다.
감히 보석 같은 것으로는 형용할 수 없었다.
‘그때에는…….’
그때에도, 그랬다.
다만 알아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과거로 되돌아와서 지금까지도 그랬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느끼는 감정은 뱃속 깊이 눌러 넣고, 세드릭이 내미는 손은 외면하려고 애썼다.
자신 따위가 어떻게 감히 세드릭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세드릭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여럿 죽였다. 리시아도 빼앗았다. 에브론 대공령은 멸망했다.
시간을 되돌렸다고 해서 그 일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르티제아의 기억에는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반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때때로 자기 앞에 엎드려 절했던 세드릭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가슴을 창으로 찔린 것처럼 몹시 괴로워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아르티제아는 가끔 차라리 벌을 받은 그 상태로 세드릭의 옆에 머물러 그를 위해 일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생각인 것은 안다. 희생 당한 사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세드릭이 다정한 얼굴로 웃어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면 세드릭은 자신을 향해 웃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상냥하게 대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야 마땅했다.
그냥 신하로서 곁에 있는 것조차도 죄스러운 일인데, 어떻게 감히 그 이상의 것을 바라겠는가.
군주로서의 세드릭이라면 그래도 괜찮았다. 그는 자신 같은 악한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가 저에게, 계책을 내라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남자로서의 그는 자신의 몫이 아니다.
욕심을 내는 것도 죄였다. 거절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다정하게 웃으면 가슴이 뛰었다. 손을 잡으면 몸에 열이 올랐다.
손을 뻗으면 피할 수가 없었다. 그 품에 안기고 싶어졌다.
맞닿는 기쁨을 알게 된 입술이 떨었다.
조금만 더 현실이 아니라 단꿈을 밟으며 걷고 싶었다.
뺨에 남은 감촉은 당분간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 * *
오브리는 보석 상자를 든 채 멀거니 서 있었다.
눈물이 났다.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특별히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시녀답게 측근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를 따라온 하녀들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싫어했다.
본성의 하녀들도 전 같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본성에서 제일 귀한 아가씨가 그녀였다. 대공가에는 여자가 없었으니, 자연히 조르딘 백작가의 딸들이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아르티제아에게 무릎을 꿇었다. 오브리는 뒷전이었다. 아르티제아의 시녀로밖에 보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서운한 것은 세드릭의 태도였다.
‘어떻게 전하는, 나를 그렇게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으실 수가 있어?’
한 번만 봐준다면, 이 부당한 상황을 눈치채줄 텐데.
그렇지만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와 함께 있을 때에, 그녀 이외의 곳에 시선을 주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부드러운 시선, 다정한 손짓, 상냥한 배려는 때로는 달콤하게까지 보였다.
그것을 바로 눈앞에서 볼 때마다 오브리는 서 있는 자신의 상태가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아르티제아는 오브리를 가까이 두고 절대 앉게 해주지 않았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허락할 때까지 자리에 앉을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이 궁정 예법이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오브리는 오늘도 내내 아르티제아의 곁에 서 있어야 했다. 심지어 재무관이나 하녀가 앉아 있을 때조차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시중을 시키는 일도 없었다.
오브리에게 맡겨진 것은 보석 상자뿐이었다.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었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보석 상자를 맡기는 귀부인은 없다.
하지만 오브리는 자신이 꼭 보석 상자에 달린 발 같다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는 때때로 그녀에게 보석 상자를 가져오게 해서 그것을 들여다보며 고르느라 바로 옆에 한 시간이나 세워 놓을 때도 있었다.
자신을 이렇게 하찮게 대하다니. 대공가의 첫 번째 가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조르딘 백작가의 딸이고, 첫 번째 시녀인데.
소피가 연회에 입을 옷을 준비하기 위해서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오브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힘드시죠? 마님께서 부르셨는데, 제가 보석 상자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좀 앉아서 쉬세요. 마님은 상냥한 분이시니까, 오브리 님이 조금만…….”
“닥쳐. 하녀 주제에 날 동정해?”
“꺄악!”
오브리는 보석 상자를 그녀에게 집어던졌다.
묵직한 금 상자에 얻어맞은 소피가 바닥에 나자빠졌다. 보석이 바닥에 흩어지며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소피의 머리 한쪽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오브리는 흠칫 놀랐다. 소피를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를 악물었다.
다 아르티제아 때문이다. 아르티제아가 친정에서 데려온 하녀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이게 기를 꺾으려고 하는 짓인 줄 오브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가 굴복할까 봐.’
그녀는 조르딘 가문의 딸이고,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이었다. 기사는 아니었지만, 약해빠진 수도의 귀공녀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했다.
‘나는 고작해야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오브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