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0
악녀는 두 번 산다 70화
뒤이어 가신들이 줄지어 하례를 올렸다. 아르티제아를 처음 만나는 이들은 결혼을 축하하며 선물을 주기도 했다.
덕담과 웃음꽃이 피었다. 아르티제아는 약간 낯선 기분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 안에 있었다.
세드릭이 에브론 대공령을 집으로, 가신과 영민들을 가족으로 여긴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황궁의 신년 연회는 정치와 사교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밀라이라와 로렌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물밑에 오가는 진의를 읽어내려 애쓰며 연회를 마치고 나면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
밀라이라는 술에 진탕 취해 새해 첫날에는 저녁에나 일어났다. 로렌스는 여자의 집에서 방탕한 2차 연회에 파묻혀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로산 후작가에는 신년 연회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하례와 덕담을 나눌 사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그 안에 당연하게 끼어 있다는 것이 아르티제아에게는 이상하고 낯설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허락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그녀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는 일도 아니었다. 이혼을 하고 신하의 자리에 내려앉더라도 이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쁘기도 하고, 가슴이 쓰라린 것 같기도 했다.
그때였다.
연회장의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티제아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리시아가 막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급히 달려온 듯 치맛자락을 모아 쥐고 있었다. 옷은 소박하지만 고운 제비꽃색 드레스였다.
머리를 매만질 시간이 없었는지 머리칼은 한쪽으로 모아 땋아 내렸을 뿐이다. 얼굴에도 화장기 하나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넘치는 듯한 빛이 그 주위에 아른거렸다.
리시아의 아름다움은 밀라이라의 아름다움과는 종류가 달랐다.
어디가 예쁜지 딱 잘라 말하라면 말하기 어려웠다. 굳이 말하자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빛과 생기 넘치는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리라.
‘리시아…….’
아르티제아는 숨을 멈춘 채로 멍하게 생각했다.
리시아는 곧바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변함없이 건강하신 모습이라 안심했습니다.”
“오래간만이구나, 리시아. 많이 컸어. 그런데 너 혼자 온 거냐? 모르텐 남작은?”
“아버지는 요즘 겨울이 되면 다리가 불편하셔서 외출을 삼가고 있어서요. 겨울에는 제가 대신 마을 대표로 오기로 했어요.”
“그렇구나. 이제 열여덟이 되었던가?”
“네. 지난달에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열여덟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이지.”
세드릭은 복잡한 기분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아르티제아를 돌아보고 부드럽게 소개해 주었다.
“리시아는 모르텐 가문의 딸입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그 마을’ 출신입니다.”
“모르텐 소남작 리시아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공비 전하. 그리고 늦었지만,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리시아가 일어서서 아르티제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공손히 아르티제아의 앞에 무릎 꿇었다.
리시아의 입술이 그녀가 끼고 있는 대공비의 반지 위에 닿았다. 충성과 순종의 표시였다.
아르티제아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반지가 불타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만나서 반갑구나, 리시아.”
이름을 부르는 혀끝이 무거워졌다.
「만약 다음 세상이 있어서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에게 리시아라고 불렸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에 리시아는 어떤 관계를 바랐던 것일까?
아르티제아는 일어서서 리시아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릎 꿇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의자를 하나 가져오너라.”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이 그 말을 듣고 얼른 의자를 가져다가 아르티제아의 옆에 놓았다.
리시아가 당황했다.
“감사합니다, 비 전하. 하지만 제가 이런 자리에 앉을 수는…….”
“앉으렴. 괜찮으니까. 나에게도 대화 상대가 필요하구나.”
아르티제아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리시아에게 아랫사람 대하듯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여서는 안 되었다.
리시아의 뺨이 기쁨으로 상기되었다.
“감사합니다, 비 전하.”
죄책감이 들었다.
이전의 생에서 그녀는 리시아를 지키지 못했다. 세드릭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을 받았는데, 그 한 가지를 들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세드릭에게 리시아의 유언을 전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리시아는 그녀를 용서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과거로 되돌아와 눈을 떴을 때에 뭐라고 생각했던가. 성자상에 초를 바치면서 뭐라고 기원했던가.
이번에야말로 지켜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녀에게 빼앗았던 모든 것을 돌려주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받아야 마땅할 권리를 되찾아주려고 했다.
온전한 황후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다.
실은 더 일찍 만나고 싶었다. 찾아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게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지 못한 것은 리시아가 살고 있는 곳이 모반자의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곳을 알고 있다고 세드릭에게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쉽사리 찾아갈 수는 없었다. 외지인에게 폐쇄적인 에브론에서도 가장 예민한 지역이었으니까.
그보다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기를 기다려 곁으로 데려오는 게 나았다.
이성적인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르티제아는 자기 마음이 온전히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루, 이틀, 리시아를 만날 날을 늦췄다.
마거릿을 시켜 자연스럽게 불러올 수도 있었다. 대공가의 가신들 중에 시녀를 택하겠다고 이미 말했다.
마거릿이 자신 또래의 소녀들 명단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중에 리시아를 택해서 불러오라고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의 저열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세드릭의 옆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를 바랐다. 틀림없이 그런 불측한 마음으로 늦추고 있었다.
그랬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버리고 말았다.
마음을 조절하지도 못하고 세드릭에게 사로잡혀 버린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져서 견딜 수 없었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원래 제 것도 아닌 다정함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온통 어두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원래 자신의 몫이 아니다.
이 자리도 자신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리시아의 자리였다.
단지 2년만, 잠깐 동안만 앉아 있다가 돌려주어야 했다.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치 영원히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계속될 것처럼 느꼈다. 그러기를 바랐다.
리시아를 마지막으로 하례가 끝났다.
악단이 춤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세드릭이 일어서서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망연한 기분으로 그 손을 바라보았다.
“왜 그럽니까?”
모두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 춤은 주빈이나 가장 윗사람이 여는 것이 관례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세드릭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세드릭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춤을 추는 것은 이것이 네 번째였다.
리시아의 결혼식 때에 한 번, 엔다르 백작가의 무도회에서 한 번, 결혼식에서 한 번.
그 세 번 모두 세드릭은 정확하게 거리를 지켰다.
속눈썹이 드리우는 그늘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는 지켜야 할 예의를 모두 지켰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 아르티제아의 몸을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팔심뿐이었다.
춤에 서툰 아르티제아를 리드하면서도 실수로라도 몸이 맞닿은 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르티제아의 등에 감긴 손이 제 위치보다 더 깊이 들어왔다.
지탱해 주기 위해서 등에 정중하게 손을 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아 안은 것이다.
아르티제아가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자 마치 품에 안긴 듯이 되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는 그가 자신을 끌어안는 것이 익숙해진 것처럼, 자기 몸도 이미 그의 팔에 기대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리시아의 눈앞에서 감히 이런 모습으로 춤출 수가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망설이는 이유를 오해한 세드릭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아요. 당신이 실수해도, 제가 커버할 테니까요. 저 춤 잘 추는 거 알지 않습니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아르티제아는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추게 해 주겠습니다.”
세드릭이 장담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를 이끌고 연회장 중간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오브리는 연회장 가까이에 있었다.
결국 마거릿은 오브리를 먼저 찾아내는 것에 실패했던 것이다.
오브리도 태어날 때부터 본성에서 살아온 몸이다. 어머니와 실랑이하다가 뛰쳐나가 숨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오브리는 집에 가서 측근 하녀를 화내 가면서 재촉해 가진 것 중에 제일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풍성한 치맛자락에는 금사로 수놓은 이언츠 자수를 두르고, 가슴 언저리를 판 드레스였다.
마거릿은 그 옷이 분에 넘친다고 싫어했다. 수도에서 왔다는 디자이너까지 불러다가 만들었고, 비용도 상당히 들었다. 아론이 막내딸이라고 귀여워하여 무엇이든 퍼줬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옷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입고, 어머니의 옷장을 뒤져 조르딘 백작가에서 가장 비싼 루비 목걸이를 걸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오늘의 자신은 꽤 예뻤다. 그리고 어른스러웠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연회장의 주목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브리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연회장에 들어오지 마시라는 조르딘 백작 부인의 명이 있었습니다.”
경비병은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오브리가 작은 사고를 치는 것은 언제나의 일이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런 일이려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오브리 님.”
가로막힌 문 너머로 오브리는 아르티제아가 세드릭의 품에 안긴 채 왈츠를 추는 것을 보았다.
털가죽이 들어 있어 묵직한 치맛 자락이 빙글빙글 도는 것에 따라 꽃처럼 펼쳐졌다.
‘분해……. 분해, 분해, 분해!’
오브리는 이를 악물었다. 마치 아르티제아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홱 돌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 오브리 님!”
경비병이 외쳤다. 그 외침은 퍽 평화로웠다.
오브리를 잡아두라는 명이 전달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경비병은 이게 으레 있었던 모녀 싸움일 거라고 생각했다.
뭐 별일이야 생기겠는가. 에브론에서는 언제나 카람과 제국 본토가 문제였지, 성 안의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