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1
악녀는 두 번 산다 71화
아르티제아는 춤을 두 곡 추고 나서 자리로 돌아왔다.
가슴 안에 나비 같은 것이 들어간 것 같았다.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펴질 때마다 가슴 속에서 날갯짓이 느껴져서 괴로웠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외면했다.
‘나는 잘할 수 있어.’
참는 것은 자신 있으니까.
설레는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일어서자 세드릭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어디 갑니까?”
“바람을 쐬고 올게요.”
아르티제아는 의식적으로 표정을 눌러 죽이고 대답했다.
그녀는 세드릭의 손 안에서 손을 빼냈다.
잡혀 있을 때에는 마치 빼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힘을 주어 손을 당겨 보자, 얽힌 손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왔다.
세드릭이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공기가 안 좋긴 하군요.”
“여기 계세요. 주인이 빠지면 안 되죠.”
“괜찮아요. 다들 적당히 즐기고 있을 테니.”
분위기는 기분 좋게 흥청망청해지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술병이 비워졌다. 경쾌한 춤곡에 맞추어 홀 안에서 춤 추는 사람들도 즐거워했다.
우아하지는 못했지만, 즐거운 연회였다. 세드릭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분위기가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난처해졌다.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나섰다가 슬쩍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고 제가 여기에 꽃 장식으로 만들어버린 아가씨와 춤이라도 한 곡 추면 어떠세요?”
리시아가 당황하여 일어섰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비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그냥 여기 계세요.”
“춤 한 번 추지 않고 연회장을 떠나다니, 안 되지. 나 때문에 춤 신청을 받고도 안 나가지 않았니?”
아르티제아는 미소를 띠며 그렇게 말했다. 리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전 춤을 잘 못 추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더 잘됐구나. 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제법 근사하게 춤추게 만드시니, 이 기회에 배워 보렴.”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앨리스가 얼른 그녀의 어깨에 털망토를 걸쳐 주었다.
“마님,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앨리스가 딱 잘라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르티제아가 리시아에게 세드릭을 떠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니 그냥 할 수 있는 말 같기도 했다.
잠깐 얼떨떨해 있던 세드릭이 서둘러 그녀를 따라 나왔다.
“티아.”
부르는 소리에 아르티제아는 걸음을 멈추었다.
세드릭이 곁으로 다가왔다.
“화났습니까?”
“제가 화난 것처럼 보이나요?”
아르티제아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드릭은 대답하지 못했다.
화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슬퍼 보였다.
“티아.”
“그냥 좀 피곤해서요. 아무 일도 없는데 제가 왜 화가 났겠어요?”
“괜찮습니까?”
세드릭이 손을 뻗었다. 아르티제아가 반걸음 물러섰다. 세드릭이 손을 멈칫했다가 도로 내렸다.
아르티제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벌써 자정도 넘었는데, 이제 쉬고 싶어요.”
평소와 똑같은 태도와 어조였다.
세드릭도 그녀가 쉬고 싶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었다.
하례를 받았고, 춤도 추었다. 다른 때라면, 피곤할 테니 먼저 처소로 돌아가 쉬라고 자신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방까지 바래다주겠습니다.”
“괜찮아요. 들어가세요. 두 사람이 다 빠지면, 아랫사람들도 불안해할 테니까요.”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앨리스가 세드릭에게 죄송한 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얼른 아르티제아의 뒤를 따랐다.
세드릭은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르티제아는 그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 끝까지 가서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세드릭이 한숨을 내쉬고 연회장 쪽으로 다시 돌아섰는데, 리시아가 나왔다.
“비 전하께서는 가셨나요? 괜찮으시죠?”
“모르겠다.”
세드릭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리시아가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제가 뭔가 실수라도 저지른 걸까요?”
“그렇진 않을 거다. 넌 걱정할 것 없어. 잘못이 있었다면, 확실하게 꾸짖었을 테니.”
“하지만 화를 내신 거잖아요?”
“그것도 잘 모르겠다. 워낙 자기 마음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아무튼 네 문제는 아니다.”
세드릭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뭔가를 잘못했다면 자신 쪽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리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세드릭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리시아가 후후 소리 내서 웃었다.
“실은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연애를 하셨다거나 뭐 이런저런 소문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안 믿었거든요. 정략결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글쎄.”
“비 전하의 어머님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요. 아버지는 오라버님 쪽 문제를 더 걱정했죠.”
“모르텐 남작은 내가 중앙 정계에 관여되지 않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네. 제위 계승권 다툼에 관여하시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네가 확인하러 온 거고?”
“제가 뭐라고 확인 같은 걸 하겠어요? 단지 전하께서 로렌스 경의 파벌이 되신다면, 저희 마을은 더 깊이 숨는 게 좋지 않을까, 했던 거죠. 저야 아직 어리고, 또 비 전하 또래의 여자이니까 인사 정도는 해도 티 나지 않겠다 싶어서 온 거고요. 이미 전부 말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너희 마을에 대해서라면, 티아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리시아가 숨을 삼켰다.
“마을 사람들이 알면 큰일 나겠어요.”
“염려할 것 없어. 알려지더라도 상관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정치에 머리를 들이민 거니까.”
세드릭이 말했다.
“그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비 전하에 대해서요? 아니면, 전하께서 정치에 끼어드는 것에 대해서요?”
“둘다.”
“저 같은 게 뭘 알겠어요?”
세드릭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라고 리시아에게 손짓했다. 연회장 문간에 서서 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대화였던 탓이다.
리시아가 빠른 걸음으로 그의 곁으로 왔다. 둘은 잠시 회랑 쪽으로 걸었다.
“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직감이 좋았으니 말이다. 나이답지 않게 현명하고.”
리시아의 현명함은 아르티제아의 영활함과는 종류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진실의 눈이라도 가진 것처럼 남의 거짓을 잘 꿰뚫어보았다. 얼핏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아 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논리로 따지지 않고 직관적으로 바른 방향을 짚었다.
리시아가 말했다.
“끼어들지 않는 것도 정치에 다른 방식으로 관여하는 일이잖아요. 차기 황제가 어떤 사람이냐에 에브론 대공령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요. 그럴 거라면, 옳은 사람을 선택 해서 지지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한 사람을 선택해서 파벌에 들어간다 해도 결국에는 견제당하게 되리라는 아르티제아의 판단에 비하면 무척 물렀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시아의 말도 참고할 만 했다.
중앙 정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 없이 하는 말이다. 모반자의 마을 사람들이 하는 생각 중 하나이리라.
세드릭에게는 그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리시아가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정략결혼 아니시잖아요. 전하께서 이렇게 좋아하는 분과 맺어지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세드릭이 헛기침을 했다.
리시아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비 전하의 입장에서는 아닌가요?”
“너나 모르텐 남작이 생각했던 것 같은 정치적 목적 때문에 결혼한 건 아니지만, 소문처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것도 아니었지.”
이 결혼이 상호 이익이 되는 줄은 알았다. 그녀의 지략에 의지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 계약 결혼을 받아 들인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보호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르티제아가 말한 제위 계승권은 차후의 일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2년 후에, 아르티제아가 요구하는 대로 이혼하여 놓아 보내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다.
세드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시아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좋아하시잖아요. 그걸로 되지 않았어요? 비 전하의 마음은 다르신가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티아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나이 차이, 별로 많지 않으신데요? 저희 부모님 나이 차이가 전하와 비 전하의 두 배는 될 거예요.”
“하지만 티아는 아직 열여덟이야.”
세드릭은 이미 자기 마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 넘어서야 할 삶의 단계를 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열여덟 살의 소녀는 세드릭과 같은 계단에 서 있지 않았다. 그것은 숫자의 차이와는 별개의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이제야 겨우 잔혹한 집에서 탈출하여 자기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카로운 이성과 예민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심중을 꿰뚫어 보았고,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시야로 세상을 넓고 깊게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는 서툴렀다.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감정 표출 방법은 참는 것뿐인 것 같았다.
그러니 조심하려고 생각했다.
남자로서 다가가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아르티제아가 삶을 좀 더 경험한 후에 해야 할 일이다. 지금은 그냥 다정한 마음을 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세드릭은 요사이에 자꾸만 그것을 잊었다.
그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자제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고평가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하께서는 열여섯에 처음으로 에브론의 주인으로서 톨드 관문의 전선에 서셨고, 열여덟에는 이미 충분히 한 사람 몫의 전사가 되셨죠. 비 전하께서는 이미 후작가의 주인이자 대공비 전하로서 제 몫을 다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저 스스로 말씀드리기는 부끄럽지만, 지금 저도 모르텐과 마을의 대표로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내가 그랬으니 더더욱, 너희에게도, 티아에게도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거야.”
“하지만 전하는 비 전하를 전혀 어리게 보시지 않잖아요?”
“할 말이 없구나.”
“그리고 어쩌겠어요, 이미 좋아하시는 걸.”
세드릭이 다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귓불이 붉어졌다.
“날 너무 놀리지 마라.”
리시아가 웃었다.
“티아를 잘 부탁한다. 그녀는 네가 마음에 드는 것 같으니. 티아에게는 친구가 없고, 또래와 제대로 교제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 네가 잘 지내줬으면 좋겠구나.”
“곁으로 불러주시면 제겐 영광된 일이지요.”
세드릭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어릴 때와 똑같은 태도였다.
“고맙다.”
그리고 그가 먼저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리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로 서성거리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시뻘건 눈을 한 오브리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