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2
악녀는 두 번 산다 72화
리시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깜짝 놀랐잖아요, 오브리 언니. 거기서 뭘 하세요?”
리시아와 오브리는 사촌 자매였다. 가까이 살지는 않았어도 교류 정도는 있었다.
리시아가 어렸을 때에는 더 가까웠다. 귀족으로서의 예법과 교양을 배우기 위해 마거릿의 손에 맡겨져 본성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비슷해도 둘은 결코 친해지지 않았다.
리시아가 말했다.
“연회장에서 못 뵈었는데요. 대공비 전하의 시녀가 되셨다고 들었는데…….”
오브리가 등불 빛이 닿는 곳까지 나왔다. 리시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브리의 옷과 화장이 과하게 화려했다. 아르티제아가 우아하고 고급스럽지만, 호화롭지는 않은 모습이었기에 더욱 차이가 두드러져 보였다.
오브리 자신이 주인공인 연회라면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이 연회는 신년 연회였다.
오브리가 이대로 연회장에 들어왔다면, 자칫하면 시녀가 되어서 주인보다 화려한 옷차림이 되었으리라.
오브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 여자가, 나를 연회장에도 못 들어가게 막았어.”
리시아는 오브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대공비를 ‘그 여자’ 같은 단어로 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을 기분도 들지 않아서 그녀는 회피하듯이 말했다.
“……마거릿 고모님이 찾고 계시던데요.”
“전하와 무슨 이야기를 했어?”
“별 이야기 안했어요. 대공 전하께서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아서 조금 이야기를 들어 드렸을 뿐이에요.”
“왜 너한테?”
“말씀하고 싶어지신 순간에 제가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겠죠.”
아마 세드릭이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말은 아르티제아를 잘 부탁한다는, 그것일 것이다.
또, 모반자의 마을 대표로서 리시아가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로렌스의 제위 계승전에 끼어들기 위해서 정략 결혼한 게 아니라고 일러준 것이다.
하지만 리시아는 그렇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오브리가 정상적인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브리가 새된 목소리로 추궁했다.
“그 여자 때문이야?”
“네?”
“역시 그 여자 때문이지?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전하는 현명한 분이니까, 순간적으로 미혹되셨더라도 금방 그 여자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채셨겠지. 뭐래? 나에 대한 말씀은 없으셨어?”
리시아는 그제야 그게 아르티제아를 지칭하는 말인 줄 깨달았다.
“그 여자라는 게 설마 비 전하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왜? 내가 뭐 잘못 말했니? 그럼, 그런 여자를 찬양이라도 해야 돼?”
“오브리 언니, 어떻게 감히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내가 못할 말 했니? 말이 로산 후작 대부인이니 어쩌니 하는 거지, 그 여자 어머니가 황제의 정부라는 걸 누가 몰라? 그 여자 본인도 선선대 후작의 딸이라고 하지만, 생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언니, 말조심하세요.”
“하긴, 보통 창녀가 아니지. 어미도 그런 여자인데, 배운 게 뭐겠어?”
“지금 비 전하는 물론이고 대공 전하까지 모욕하셨어요!”
리시아가 언성을 높였다.
“착한 척 좀 그만해. 역겹게.”
오브리가 혐오 가득한 얼굴로 리시아를 쳐다보았다.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그 여자가 별로라는 말 한마디 하지 말란 거니? 그 여자가 어떤 여잔데?”
오브리는 울분이 자글자글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그녀를 존중해야 했다.
에브론 대공비가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당연히 대공가 사람으로 적응하고 조르딘 백작가를 존중해야 한다.
세드릭조차도 아론과 마거릿을 존중하고 있다. 오브리 자신도 가족처럼 여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끝도 없이 세워두고, 가구보다 못하게 취급했다. 하녀 따위에게 무시당하게 하고, 세드릭조차 시선을 주지 못하게 막았다.
조르딘 백작가의 금지옥엽인 자신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대공 전하는 항상 에브론을 위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말씀하셨어. 그런데 그 창녀가 에브론 대공비로 가당키나 해?”
“진심으로 그분이 대공비로서 부적절한 문제점이 있고, 그것을 언니가 알게 되어서 전하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거라면, 어째서 전하에게 직접 말씀드리지 못하세요? 지금 연회장으로 들어가서 모든 사람의 앞에서 대공 전하께 충언하세요.”
리시아가 연회장 쪽을 가리켰다. 오브리는 언성을 높였다.
“그 여자가 날 아예 연회장에도 들어가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렇지!”
“그게 아니겠죠. 조금 전까지 전하께서 이 자리에 계셨는데도 언니는 나서지 못했잖아요.”
리시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충언하겠다고 정식 루트로 찾아 뵈면 대공 전하께서 거절하실 리가 없어요. 그러지 않고 비 전하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만만한 저를 잡고 뒤에서 욕하시는 게 언니가 당당해서 그런 거예요?”
“이, 이!”
오브리가 성을 내며 손을 들었다.
리시아는 뺨을 맞기 전에 그 손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헛된 생각 마세요, 오브리 언니.”
“이거 놔!”
“언니가 이러는 거 질투 때문이잖아요. 잘 생각해보시면 답이 바로 나오실 텐데요.”
오브리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리시아가 말했다.
“전하께서 과분하게도 저희들을 친누이처럼 귀여워해 주셨지요. 하지만 그건 저희 부모님, 또 고모님과 고모부님께서 진심을 다해 전하를 섬겼기 때문이에요. 언니가 특별했던 게 아니라고요.”
“이거 놓으랬지! 너는 비굴하게 그 여자한테 기든 말든 마음대로 해!”
“비 전하는 언니의 인정이 필요 없으신 분이에요. 대공 전하께서 직접 선택하신 이 땅의 여주인이시니까요.”
오브리는 리시아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광했다. 하지만 힘으로는 리시아에게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리시아가 그녀를 꽉 잡은 채 말했다.
“보내드릴 수 없어요. 언니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언니가 이렇게 비 전하를 소리 내서 모욕한 이상, 이미 언니 혼자만의 일이 아니에요. 대공 전하께 이 이상 폐를 끼치도록 놔둘 순 없어요.”
오브리는 발버둥치다가 머리가 다 풀어져 산발이 되고 말았다. 머리에 꽂았던 은핀이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과 귀도 시뻘게졌다.
소란이 커졌다. 곧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마거릿이 달려왔다.
마거릿이 오브리의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해서 어깨를 잡았다.
리시아는 손을 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팔이 뻐근했다.
“오브리, 너 대체, 이런 꼴을 하고 어디 가서 뭘 하려고 그랬니?”
“악! 엄마! 엄마까지 왜 이래요!”
“가자!”
마거릿이 오브리의 손목을 잡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그런 창녀 같은 년이 전하의 반려라니 인정 못한다고!”
오브리가 고함을 질렀다. 마거릿은 황급히 오브리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소리는 복도 전체로 울렸다.
하인과 하녀들이 질겁하여 제각각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모르는 체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쿵!
방문이 거칠게 닫혔다.
혼자 남은 오브리는 씩씩대면서 방을 빙글빙글 돌았다.
마거릿은 그녀를 끌고 조르딘 백작가가 아니라 사원으로 향했다.
백작가로 데려갔다가 행여나 오브리를 감싸려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염려되었다.
사원을 택한 것은 빈방이 많고, 공적인 장소이면서, 감옥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낮에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그러나 오늘 복도에서 뱉은 폭언은 도저히 용납될 수가 없었다. 리시아의 앞에서는 얼마나 더 심한 소리를 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조용히 시골 별장으로 보내거나 하는 것으로는 이제 덮을 수 없었다.
「조르딘 가문은 이제까지 대공가의 충신이었고, 전하께도 더없는 신뢰를 받아왔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그게 평생의 자랑이었어. 그런데 너 하나가 우리 가문을 무너뜨리겠구나. 난 그렇게 놔둘 수가 없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세요? 까짓 하녀 하나 다친 게 뭐가 대수라고?」
「시녀가 된 몸으로 비 전하께서 맡기신 임무를 바닥에 내던지고, 총애하는 하녀의 머리를 찢어놓았지. 그에 더하여 비 전하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폭언. 만일에 들은 게 리시아가 아니라 기사단 사람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네 목이 날아갔을 거야.」
마거릿이 숨이 막힌 얼굴로 말했다.
「내가 내 자식을 이렇게 키웠다니.」
「전 잘못한 거 없어요. 못할 말 했다고도 생각 안 하고요.」
「눈이 그치면 수녀원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평생 나오지 말고 반성하면서 살아.」
「엄마!」
「비 전하께서 눈앞에서 치우는 것만으로도 용서해 주신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마거릿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하인을 시켜 2교대로 오브리를 감시하도록 명했다.
오브리는 분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도 아르티제아이지만, 리시아에게도 화가 났다.
세드릭은 왜 자기에게는 말 한 마디 제대로 걸어주지 않았으면서 리시아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 대체 자신이 뭐가 모자라서.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누구야!”
오브리는 날카롭게 외쳤다. 쓰러진 하인 둘이 문 안쪽으로 스르륵 무너졌다.
하인을 걷어차고 들어온 것은 불처럼 붉은 머리를 한 젊은 남자였다. 그 뒤를 따라 서너 명의 무장한 사내들이 들어왔다.
“다, 당신 누구야?”
오브리는 겁에 질렸다.
남자는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짧은 칼을 차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북부인이 아니었다.
남자가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며 빙긋 웃었다.
“남해에서 온 가죽상. 북부 날씨를 잘 몰라서 무작정 올라왔다가 발이 묶여 버렸지. 고맙게도 사원에서 불쌍하게 여겨서 숙소를 내주셨어.”
“거짓말.”
“대외적인 신분이기는 해. 하지만 북부 날씨를 잘 몰라서 발이 묶인 것도, 사원에서 불쌍하게 여긴 것은 사실이야. 앉아, 조르딘 영애. 영애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니까.”
오브리는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
하긴, 여기에서 저 남자가 무슨 사악한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본성의 사원이다.
“대담하군. 아니. 비난하는 건 아니야. 그게 딱 좋아. 그 정도 배짱이 있어야 협상도 가능할 테니.”
“당신의 목적은 뭐죠? 뭘 협상하자는 거예요?”
“나는 내 여자를 되찾으러 왔어. 영애가 그걸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
“당신 여자요?”
남자가 빙긋 웃었다.
“정확히는, 내 여자로 삼으려던 여자지. 청혼하러 가는 길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오브리는 부르르 떨었다. 남자가 말하는 것이 아르티제아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에브론 본성에 외지인이라고는 아르티제아와 그 하녀들밖에 없다.
남해인과 인연이 있을 만한 사람도 그녀뿐이다.
“그 여자, 진짜 웃기는 여자군요. 애인을 따로 두고 우리 대공 전하와 결혼했단 말이에요?”
남자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조르딘 영애. 소문에 듣자 하니 영애는 대공비를 상당히 싫어한다던데……. 우리 목적이 꽤 일치하지 않을까?”
오브리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