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3
악녀는 두 번 산다 73화
11. 허락되지 않는 마음
리시아는 아르티제아의 시녀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예상하던 바였다. 모르텐 남작가의 후계자라면 대공비의 시녀가 되기에 신분과 입장이 적절했다. 나이도 비슷했다.
게다가 아르티제아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보통 이상의 호의를 보였다.
아르티제아는 리시아에게 자기 옆 방을 내주게 했다. 하녀도 세 명 따로 붙여 주었다.
자기 옷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수선시켜서 선물하기도 했다.
그녀의 옷장에는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꽤 있었다. 에브론 대공령에서는 돈을 주고 사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리시아는 황망해하며 거절했다.
“이렇게 저에게 다 주시면 안 돼요, 비 전하. 게다가 옷은 대공 전하께서 선물하신 거라고…….”
“염려 마. 선물 받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주는 것이 전하에게 예의가 아닌 것은 나도 안다. 이것은 모두 내가 따로 사들인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받았으면 좋겠구나.”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내 시녀의 차림새는 내 체면에도 관련되는 것이니까.”
리시아는 난처한 얼굴을 했지만, 감사히 받아들였다.
사실 드레스다운 드레스가 한두 벌밖에 없어서 아르티제아의 옆에 있으려면 그런 배려가 필요하기도 했다.
모르텐 남작가는 가난하다. 모반자의 마을 자체가 그렇기도 했다.
에브론 대공가에서 지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마을을 하나 만든다는 것은 큰돈이 드는 일이다. 황실의 눈도 피해야 했다. 넉넉한 생활까지 보장할 수는 없었다.
리시아는 원래부터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고운 옷을 입히고 보석을 목에 걸어주는 것은 아르티제아의 욕심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보상하려는 것 같다고 회의를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을 참을 이유도 없었다.
적어도 세드릭에게 받은 만큼은 리시아에게 갚는 게 맞았다. 그건 원래 리시아의 것이니까.
아르티제아는 모르텐 남작가에 사람을 따로 보내기도 했다. 리시아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오게 하고, 또 남작가의 살림을 보살펴 주기 위해서였다.
자연히 하녀들은 리시아에게 공손해졌다. 오브리 때와 달리 리시아가 2인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신년 연회에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게 된 셈이었으므로 리시아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께.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미 소식을 들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대공비 전하의 시녀로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미리 의논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대공비 전하께는 지금 시녀가 한 사람도 없어서 곁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본래대로라면 오브리 언니가 있어야 하겠지만, 잘못을 저질러서 내쫓기고 말았어요.
조르딘 백작가의 딸이 쫓겨난 셈이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이삼일 사이에 모두 상황을 이해하고 본성이 빠르게 정상이 되었어요. 비 전하께서 감사하게도 마거릿 고모님이나 아론 고모부님께는 책임을 묻지 않으셨어요.
저를 시녀로서 총애해 주시는 것도, 그때 일 때문인가 합니다.
비 전하께서는 냉랭한 면이 있지만, 품위 있고 우아한 분입니다. 상벌이 확실하고, 그에 걸맞은 권위도 지니고 계십니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대공 전하께서도 비 전하께서 맡아 하시는 일에는 조금도 간섭하지 않고 일을 맡기셨어요.
이제까지 에브론에는 너무 오랫동안 여주인이 없었으니까요. 처음에는 다들 조금씩 혼란해하는 느낌이었지만, 이제 자리가 잡히고 있어요.
마거릿 고모님 말씀으로는 선대 대공비 전하께서 계시긴 했지만, 연세 어리실 적에 결혼해 와서 내내 앓다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진짜 힘 있는 안주인을 모시는 느낌은 처음 이라고 하세요.
게다가 비 전하께서는 재지가 넘치고 영민하신 분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영지의 문제점을 발견한 적이 벌써 여러 차례라 관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고 있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공 전하와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계세요.
정치와 동떨어진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염려하시는 것처럼 친정에 휘둘려 대공 전하를 정쟁으로 끌어들일 분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도 그런 목적으로 정략결혼을 하신 것은 아니고요.
제가 불안한 것이 있다면, 비 전하께서 과분하게 잘해주신다는 점이랍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내려주시는 총애만큼 충성을 돌려드리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비 전하께서는 대공가의 충신으로만 골라서 새로운 시녀를 두 명 더 들이실 계획이세요. 그때가 되면, 한 번 집에 다니러 갈게요.
리시아.』
리시아가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에, 아르티제아가 거실로 들어왔다.
리시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제가 테이블에 다구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냥 앉아 있어. 편지 쓰던 중이었니?”
“아니에요. 다 썼어요.”
리시아는 편지를 흔들어 잉크를 말리고 접어서 한쪽에 눌러놓았다.
그리고 얼른 차통 뚜껑을 열었다.
“네가 하려고?”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리시아가 얼굴을 붉혔다.
“허락하신다면요.”
“그래, 해봐.”
아르티제아가 자리에 앉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리시아는 차를 우리는 것에 그리 능한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우선 차 수저로 찻잎을 떠서 찻주전자로 옮겼다. 뜨거운 물을 붓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르티제아가 할 때에는 무척 단순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동작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면 왜 이리 어려운지 몰랐다. 남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그랬다.
“천천히 연습하면 돼.”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따뜻한 지역에서라면 물줄기를 가늘게 해서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게 물을 부드럽게 만든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러면 물이 식어 버리더구나. 네가 익숙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저희 집에는 다도구가 없었거든요.”
리시아가 말했다. 어린 시절에 교양으로 배우기는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는 확실하게 익혀둘게요.”
아르티제아가 요즘 다구를 가져와서 자신의 앞에서 손수 우리는 것이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리시아는 알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말을 듣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교계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움이니 교양이니 하는 것들이 정말로 그 사람의 품위를 나타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네.”
“다만, 신경 쓰는 쪽이 공격당할 빌미를 줄일 수 있겠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준 사람의 안목 문제와도 관계가 있으니까.”
아르티제아는 훗날 리시아가 황후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
성녀 황후는 온 백성의 사랑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리시아가 실제로 살아가야 하는 곳은 제국의 사교계였다.
모르텐 남작가의 딸이라는 것은 그녀를 만만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신심 깊은 숙녀들이 그녀를 편들어 주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가 리시아가 시골 촌동네 출신이라서 교양이 없다고 비웃었다.
물론 리시아는 그런 것에 꺾이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리 약점을 줄여두는 게 나쁠 것은 없었다.
리시아는 아르티제아의 말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자신을 선택한 사람’을 세드릭이 아니라 아르티제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네. 열심히 연습해서 비 전하께 부끄럽지 않은 숙녀가 될게요.”
아르티제아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았다.
“네가 나를 진심으로 호의를 가지고 대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왜 그런 당연한 말씀을 하세요?”
“실은 좀 더 텃세가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오브리가 내게 무례했고, 대공가에 불충하기는 했지. 하지만 그쪽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르티제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브리가 본심을 숨기지 못한 것은 물론 어리석은 일이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조르딘 백작가에도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고.”
“비 전하께서는 잘못 생각하고 계세요. 대공 전하께서 선택하신 것만으로도 비 전하께서는 저희의 충성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십니다.”
“그런가.”
“매우 훌륭한 선택이셨다고 생각하고요.”
리시아가 한쪽 가슴에 손을 대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설령 비 전하께서 일반적으로 아랫사람들이 바라는 여주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저는 무척 기뻤을 거예요.”
“리시아…….”
“전하께서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전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선택하신 것일 테니까요.”
아르티제아는 떨리는 한숨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리시아의 말이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가슴 안쪽을 큰 대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임시라고는 해도 결혼을 한 것이 미안했다. 그녀에게 세드릭을 온전히 돌려주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아내라는 말을 듣는 것에서 은밀한 기쁨을 느끼고 만다. 그것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아르티제아의 표정이 복잡해졌기에, 리시아는 자신이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마치 변명하듯이 말했다.
“네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전하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비 전하.”
“세드릭 님은 모실 만한 주군이지. 그렇기에 로산 후작가를 의탁하기로 한 거고. 그것뿐이니까.”
리시아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리시아가 시계를 확인했다. 간식 시간이었다.
리제가 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세드릭이 한 손에 쿠키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마침 제가 때를 잘 맞췄군요.”
차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세드릭이 미소를 지었다.
리시아가 새 잔을 가져와 세드릭의 앞에 내려놓았다.
“비 전하께서 시간을 맞춰서 준비하신 거죠.”
세드릭이 과자 접시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아르티제아는 찻잔받침을 하나 가져다가 손수 쿠키의 1/3 정도를 옮겼다. 그리고 리제에게 쟁반을 가져오라고 해서 찻잔과 쿠키를 얹었다.
세드릭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방해가 되었다면, 제가 비키겠습니다.”
“아뇨,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좀 있어서요. 리시아, 전하께 대신 차를 대접해주겠어?”
“무슨 일이신지는 몰라도 제가 대신할게요.”
리시아가 당황하며 말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
“하지만 전하께서…….”
“내가 바쁠 때에 내 대신에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시녀의 일이 아니니?”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리시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앉아 있으라고 표시했다.
그리고 세드릭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례할게요.”
세드릭의 미간에 진 주름이 지각 변동을 일으켜 우뚝 솟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되었다.
눈치를 챘는지 못 챘는지, 아르티제아는 그대로 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리제가 죽을죄를 지은 사람 같은 얼굴로 절을 했다. 그리고 쟁반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