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5
악녀는 두 번 산다 75화
알폰스의 칼날에서 벗어나자마자 카드리올은 미친 듯이 1층으로 달렸다.
“몇 남았나?”
“셋입니다!”
알폰스 하나의 손에 정예 친위대원이 셋 죽었다.
연막탄을 들여오기 위해 죽은 대원까지 생각하면 한순간에 넷을 잃은 셈이었다.
겨울의 에브론은 허술하다.
전력은 카람 방면을 향해 집중되어 있다. 같은 인간에게 공격당할 것은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바다와 혹한이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방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냥 행사로 기사들을 비롯하여 군 관계의 주요 인물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다.
탈출 루트만 확보할 수 있다면 힘 없는 여자 하나쯤 납치하기는 수월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적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본성 자체가 움직였다.
카드리올의 앞뒤에서 연달아 강철로 만든 문이 내려앉았다. 본래라면 밖에서 안으로 침입하는 적의 발을 조금이라도 묶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지니 자칫하면 복도에 갇히기 십상이었다.
목표 위치는 가까웠으나 카드리올은 빙빙 돌아야만 했다. 다른 방으로 뛰어들어 다른 문을 열고 새로운 복도로 달려 나간다.
본성의 구조를 오브리가 그려준 지도로 미리 숙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부하들이 제아무리 남해 제일의 전사라고 하더라도 꼼짝없이 사로잡혀 죽고 말았을 것이다.
“젠장!”
뒤에서 화살이 연달아 날아왔다.
경비병들이 복도를 틀어막았다. 본성의 모든 입구가 병사로 막혔을 것이다.
“가십시오!”
친위대원 하나가 뒤에 남았다. 카드리올은 “반드시 갚겠다!”라고 소리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1층 복도 끝에 도착했다.
「벽에 조각된 성녀상의 왼쪽 손목과 오른쪽 손목을 동시에 돌리세요. 본성이 농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물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통로예요.」
오브리가 그렇게 일러주었다.
이 비밀통로는 안에서만 열리고, 강까지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카드리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에이멜은 해상 왕국, 물의 나라이다.
에이멜 사람들에게 배를 다루는 것은 제 손발을 다루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돛을 다루어 바람을 타는 것은 10살짜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얼어붙은 강이라도 강은 강이다. 일단 배를 타기만 한다면, 그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구르릉 소리를 내며 성녀상이 있는 벽이 열렸다.
탁! 탁! 탁!
짤막한 화살이 연달아 성녀상에 박혔다.
카드리올은 마지막 하나 남은 연막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비밀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리시아는 석궁을 내렸다.
저 연막탄 안으로 화살을 날렸다가는 아르티제아가 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비밀통로 안으로 우르르 따라 들어갔다.
리시아가 말했다.
“비밀통로 바깥쪽으로 사람을 보내요. 앞질러 가야 해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
“당장 대공 전하께 전령을 보내세요. 그리고 오브리 조르딘을 확보해요.”
리시아가 연이어 말했다. 마거릿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리시아는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누가 비밀통로를 유출했는지 알아내야 해요.”
본성의 비밀통로는 세 개였다. 그중 가장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이 이 성녀상의 통로이기는 했다.
비밀통로라기보다는 비상시의 물 보급로였으므로 길이도 짧고, 탈출로로 쓰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에브론 인이나 크라테스 본토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그 끝에는 강이 있다. 그리고 상대는 남해인이다.
“오, 오브리가, 그랬다는 걸 어떻게…….”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오브리 언니일 확률이 제일 높아요, 고모님. 오브리 언니는 사원에 있고, 저자들도 사원에 머무르고 있었죠. 오브리 언니가 비 전하를 좀 미워했죠?”
리시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게다가 세드릭은 누구나 안다고 말했지만, 단어 그대로 정말 ‘누구나’ 비밀통로 여는 법을 알 리 만무했다.
카람에게 본성이 뚫리고 지휘부가 궤멸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믿을 만한 가신들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 본성의 관리인이자 영주의 대행인 조르딘 백작 부부, 장차 그 일을 물려받을 것으로 여겨지는 자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거릿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조금이라도 저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 해요. 마거릿 고모님! 이대로 비 전하께서 잘못되시면, 대공 전하의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러세요!”
마거릿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아르티제아가 정신이 든 것은 카드리올이 본성을 빠져나가 배를 탄 다음의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흐릿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관처럼 작은 선실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몸 위에는 두 겹으로 두툼하게 만든 털가죽 외투가 덮여 있었다. 바닥에도 털가죽이 하나 깔려 있었다.
“아…….”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일어나 앉았다.
추위에 언 몸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녀는 덮고 있던 외투를 끌어다가 입었다. 발목까지 닿는 길이였다.
마지막 기억은 카드리올에게 끌어안긴 채 뒷목을 잡아당겨진 것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실내용 비단신을 신은 발은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이 차가웠다.
큼직한 털신이 놓여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신고 비틀거리면서 선실 밖으로 나갔다.
개조한 소형선이 얼음 위를 썰매처럼 지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멍하게 사방을 돌아보았다. 이 바람을 받아 한껏 부풀어 있었다.
강변이 쏜살처럼 지나쳐갔다. 따뜻한 시기에 에브론의 배를 타고 갈 때조차도 이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일어났군.”
카드리올이 손가락을 딸각 울렸다.
“대접이 별로지만 좀 참아. 후작이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화로 같은 걸 실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아르티제아는 숨을 훅 들이켰다. 찬 공기에 폐부까지 얼어붙었다.
“무슨 이런 지옥 같은 날씨가 있는지 모르겠어. 에브론은 제정신인가? 이런 곳에서 살겠다고 성을 짓고 마을을 만든 게?”
“카드리올 전하.”
“털신은 따뜻한가? 동상으로 신부의 발가락을 자르는 것은 나도 바라는 바가 아니야.”
“어떻게…….”
“어떻게, 라.”
돛줄을 다른 선원에게 맡기고 카드리올이 아르티제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르티제아는 흠칫 뒷걸음질을 쳤다.
“어디서부터 말할까?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가? 어떻게 본성의 구조를 알았는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가?”
카드리올이 싱긋 웃었다.
“아니면, 목이 떨어졌던 순간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후작은 보지 못했지? 내 목이 도끼를 맞아서 떨어지는 걸?”
“전하.”
“사형집행인이 알려주더군. 부왕께서 일부러 잘 들지 않는 도끼를 쓰라고 했는데, 후작이 돈을 써서 날카로운 것으로 바꿔 주었다지? 그 얄팍한 자비에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나?”
“그, 건…….”
“사실 정말 고맙긴 했어. 한방에 목이 떨어졌거든. 대여섯 번씩 도끼질을 당했으면 기억이 되살아나자마자 미쳐 버렸을 테니까.”
아르티제아는 한 걸음을 더 뒷걸음질 쳤다.
카드리올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챘다. 저항하려는 듯이 휘둘러진 손목도 쉽사리 잡혔다.
“조심해. 지금 배 아래로 떨어지면 얼음에 몸이 갈려서 즉사라고.”
“어떻게.”
아르티제아는 그것밖에 물을 수 없었다.
에이멜 왕국의 제1왕자 카드리올은 남해의 해적왕이었다.
에이멜 왕국은 남해의 작은 섬나라였다.
인구는 적었고, 땅덩이는 더 작았다. 자원도 없었고, 소금기 있는 땅에서는 농업도 발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언츠 왕국처럼 섬세한 기술을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그나마 발달한 산업은 어업이었다. 그러나 해산물의 유통은 기껏해야 해변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크라테스가 발전하는 동안 에이멜은 점점 가난해졌다.
그래서 카드리올이 눈을 돌린 것은 해적질이었다.
시작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발달한 항해 기술을 이용해서 선박 제조와 중계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황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리아간 공작가가 그것을 짓뭉개 버렸다.
카드리올이 크라테스 제국의 대규모 상단과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몇 년 걸리지도 않았다.
그는 남해의 해적들을 제압하여 모두 자기 손 아래로 모아들였다.
애당초 남해 해적의 다수가 에이멜 왕국 출신이었다. 다른 왕국 출신이라도 남해인이라는 공통된 분모가 있었다.
조직화된 해적은 크라테스 제국의 상선을 집중적으로 약탈했다. 주기적으로 남부 해안 지역을 휩쓸어 해군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에이멜의 왕자로서 남해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에이멜 해군의 보호를 받는 상선은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제국 남부 지역이 해적질에 시달리는 것은 건국 초기부터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향후 10여 년 정도는 제국 해군이 가장 약해지고, 해적의 힘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사실상 에이멜 해군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처지에 빠졌다.
모두 카드리올이 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르티제아는 카드리올과 손을 잡았다. 로이가르 대공 축출을 위해 곡물 가격을 조작한 것이 첫 거래였다.
카드리올로서는 사양할 게 없는 거래였다.
돈을 따로 받고, 곡물 상선을 약탈하여 그것도 얻었다. 곡물값이 상승함에 따라서 약탈한 곡물을 남부 지역에 풀어 삼중으로 이득을 얻었다.
로이가르 대공이 축출되고 난 뒤에도 동맹 관계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로렌스가 리아간 공작가까지 평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르티제아는 카드리올을 배신했다. 그가 자신이 꾸몄던 음모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드리올은 아르티제아를 신뢰했다가 반역죄로 국왕에게 붙잡혀 목이 떨어졌다.
그날 에이멜 국왕에게 병사를 빌려준 것은 크라테스 제국이었다. 정확히는 로렌스였다.
“어떻게……?”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카드리올이 미소를 지었다.
“4개월 전쯤에 말이야, 자다가 눈을 떴는데 문득 내 목이 붙어 있는 게 너무 놀랍고 감사한 거야. 사형대 목침에 짓눌러진 기억이 생생한데. 처음에는 별 괴상한 악몽을 다 꾸었다고 생각했는데.”
“…….”
“그런데 그날부터 무척 이상하더군. 서류도, 사람도, 모두 이미 본 것뿐이었고 심지어 폭풍이 오는 날짜까지 맞출 수 있게 되었지. 기억은 점점 생생해져서 도저히 꿈을 꾼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되었고.”
카드리올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뭔 줄 알겠나? 후작?”
“모르, 겠습니다.”
“그대를 손에 넣어야겠다는 거였어.”
카드리올의 손이 아르티제아의 턱을 잡아 고정했다.
“내가 얼마나 오매불망 그대를 그리워했는지 몰라. 수없이 생각했지. 만나면 목을 조를까, 키스할까?”
그가 사납게 웃었다. 속삭임이 아르티제아의 입술 위로 떨어졌다.
아르티제아는 숨을 멈췄다.
기억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여러 가지로 그것을 확인해 보았다.
카드리올이 그녀에게 키스했다. 아르티제아는 그 입술을 힘껏 물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