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7
악녀는 두 번 산다 77화
카드리올이 항구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자정이 넘었을 무렵이었다.
이미 안전한 숙소와 창고를 확보해 두었기에 들키지 않고 도시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었다.
그러나 이 어둠 속에서 언 바다로 나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어디에서 얼음이 깨지고, 어디에서 유빙이 흘러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선은 얼지 않을 만큼 수심이 깊은 먼 바다에 닻을 내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얼음에 갇힐 우려를 생각하면 그쪽이 나았다.
하지만 일단 합류만 하면, 에브론의 배 따위에게 따라잡힐 일은 없다.
카드리올은 짐짝처럼 메고 온 아르티제아를 벽난로 앞에 내려놓았다.
“이자들은 끌고 나가.”
그때까지 손발과 입이 묶인 채 벽난로 앞에 굴려져 있던 집 주인과 가족들이 끌려 나갔다.
카드리올이 아르티제아를 뒤집어 씌워 놨던 망토를 벗겼다.
선실 안에 있게 했는데도 아르티제아의 몸은 새파랗게 얼어 있었다. 낯빛은 재색이고, 입술은 보라색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 상처 난 입술에 대해서 화낼 마음도 들지 않았다. 카드리올은 정략이고 뭐고 다 떠나 진심으로 말했다.
“그런 몸을 해가지고 잘도 북부인과 결혼할 생각을 했군.”
“카드리올, 전하께서…… 상관하실, 바가, 아닙니다.”
아르티제아가 덜덜 떨며 말했다.
선원이 벽난로에 걸려 있던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서 카드리올에게 건네주었다.
카드리올은 그 컵을 아르티제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르티제아는 몸이 얼어서 그것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러자 카드리올이 아르티제아의 손째로 자기 손으로 감싸 입에 물컵을 대어 주었다.
뜨거운 물을 두 컵 마시고 벽난로 앞에 잠시 앉아 있자 비로소 아르티제아의 입술에 색이 돌아왔다.
카드리올은 이번에는 그녀에게 따뜻한 죽을 주었다.
좀처럼 먹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애써서 그것을 먹었다. 몸이 버티기 위해서도 필요했고, 이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몸의 떨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추위 탓이었다.
하지만 긴장과 뒤섞여서 자기가 어느 쪽에 집중하고 있는지 아르티제아는 분간할 수 없었다.
“절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어쩔까? 원래는 아내로 삼을 작정이었지만.”
카드리올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서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왔는지 그로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한 달에 걸쳐서 그가 알아낸 것은 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카드리올은 아르티제아에게 기억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할 생각이었다.
로산 후작이라면 에이멜의 왕자비가 되기에는 약간 격이 떨어지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로렌스가 황제의 아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딱 적당한 상대였다.
로렌스도 에이멜과의 동맹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결혼해서 수중에 넣고 나면 그때부터는 걱정이 없었다. 로렌스 따위가 어찌 되든 알 바 아니었다.
밀라이라와 로렌스에게서는 떼어 놓고, 자신에게 헌신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전처럼 재능을 개화시켜 책사로서, 또 아내로서 자신을 도와 준다면 좋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해도 괜찮았다. 아르티제아를 옆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면 된다.
카드리올에게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처럼 대해 주고, 사랑해 주면 되지 않겠는가.
미래의 로산 후작이라도, 지금은 애정에 굶주린 18살 소녀에 불과할 테니까.
그렇지만 수도로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후작이 이미 에브론 대공과 결혼해서 떠났다기에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카드리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생각을 추론하느라 심적으로 바빴다. 카드리올이 그것을 알고 피식 웃었다.
“그래서 후작에게도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어디까지인가? 그대의 기억은?”
“죽는 순간, 입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회귀 마법을 자신이 시전했다는 것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카드리올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렌스에게 배신당했나?”
“…….”
“뭐, 예측된 결말이었지. 후작이 로렌스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정권을 직접 잡지 않고서야.”
아르티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감이군. 내가 봤다면, 통쾌하게 비웃어줬을 텐데.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로렌스를 포기하고 나에게 오라고, 신뢰하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 것은 꽤 괴로웠겠지?”
괴롭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그런 내심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신뢰한 적이 없으니까요.”
카드리올이 또다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르티제아는 차가워진 손끝을 쥐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고른 주군이 에브론 대공인가? 아니면, 성녀인가?”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이곳까지 찾아오셨으니 중대한 용건이 있으시겠지요.”
아르티제아는 딱딱하게 말했다.
위협이 되기 때문에 죽이러 왔다는 가정은 틀렸다.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직접 올 필요가 없으니까. 수도에 오기를 기다려 암살자를 보내는 쪽이 훨씬 낫다.
혹, 복수심 때문에 직접 죽이러 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끌고 와 구구절절 말하는 대신에 본성에서 자신을 붙잡았을 때에 죽여 버렸으면 그만이다.
그편이 훨씬 탈출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카드리올은 아르티제아가 생각해 보지도 못한 말을 했다.
“내 것이 되어라.”
아르티제아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했으나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후작은 에브론 대공의 밑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 그자는 그대의 능력을 반도 쓰지 못할 것이다.”
“카드리올 전하는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억이 있는 나라면 당연히 다르지. 우리 둘이 손잡으면 제국을 뒤집어엎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 에이멜 왕국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로렌스에게 복수하는 것도 도와주지.”
“…….”
“성녀와 에브론 대공에게도 나쁘지 않게 하겠다. 어차피 나는 제국 북부에는 관심이 없어. 후작이 중재해. 남에서는 내가, 북에서는 에브론 대공이 손을 잡고 제국 본토를 압박하여 반으로 가르는 것은 어떤가?”
“카드리올 전하.”
“후작이 성녀를 위하여 에브론 대공과 손을 잡았다면, 이쪽이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제국의 황태자비가 되는 것보다는 이번에야말로 에브론 대공과 맺어지는 쪽이 행복할 테니까.”
아르티제아는 침묵했다.
그는 과거의 아르티제아를 안다. 그러니 그녀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설득하기 어려운 상대는 없었다.
카드리올이 히죽 웃었다.
“아니면, 대공과 성녀를 주군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마음으로 대공과 결혼했나?”
“그건…….”
아르티제아는 당황하여 반박하려 했다. 카드리올이 그녀의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그대는 원래부터 에브론 대공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니, 그랬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카드리올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금안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전부 모르는 척해 주겠다.”
카드리올이 말했다.
“그리고 공사 양면으로, 전부 잊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해주지. 나에게 와라.”
“……거절합니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벽난로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제가 악독한 여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군을 두 번 바꿀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서 그대를 죽이고 가겠다. 성녀와 대공의 앞에서 그대를 산 채로 토막 내서 바다에 뿌리는 맛도 각별하겠지.”
“저를 죽이는 게 이익이라고 확신하고 계십니까?”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다시 돌려 카드리올을 바라보았다. 불안으로 흔들리던 청록색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돌아와 있었다.
“확신이 없으니 아직도 죽이지 않으신 것이겠지요.”
“후작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야. 나에게 오라는 거야.”
“제가 이대로 카드리올 전하를 따라가 계책을 진언하면, 그것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러기 어려우시겠죠. 제게 기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하의 계획은 이미 어그러졌습니다.”
카드리올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곁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손해 볼 것은 없지.”
“그것보다는 죽이는 편이 여러 가지로 간편하지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제가 카드리올 전하를 따를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계책은 내겠습니다. 우리는 예전에도 서로 잘 맞았지요. 이번에도 서로 좋은 동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도 내 뒤통수를 치려고? 미안하지만 로산 후작, 나는 이번에는 크라테스 제국의 후계 다툼에 관련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에이멜의 현 왕비 전하.”
아르티제아가 짧게 말했다.
그리고 카드리올이 귀를 열어놓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반년 안에 암살하죠. 전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크라테스 제국인의 손으로.”
“…….”
“군사 행동을 일으켜도 될 만큼 분노할 명분과 에이멜 국왕 폐하에게 양위를 강요할 명분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절대로 손해 보시지 않을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카드리올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제아무리 큰 이권, 막대한 부를 약속해도 카드리올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그를 이미 배반한 전력이 있다.
그렇다면 그것보다도 절실한 것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후에 배신하더라도 타격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에이멜 왕실의 사정은 다소 복잡했다.
카드리올의 부친인 현 국왕은 나이가 예순에 가까웠다.
카드리올은 제1왕자였고, 동복 남매가 하나도 없었다. 국왕과 카드리올의 모친인 전 왕비 사이가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후계자가 하나 생기자마자 국왕 부부는 두 번 다시 동침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 왕비가 죽고 나서 얼마 후에 국왕은 재혼했다. 카드리올보다도 어린 새 왕비는 아름답고 애교가 많았다.
국왕은 새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카드리올의 이복동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다.
반면, 전 왕비를 닮은 카드리올을 미워했다.
당시에 장남이 이미 35세가 넘었고, 차남은 겨우 7세 전후였다. 앞으로 국왕이 최소 15년을 더 살지 않을 바에야 차남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카드리올은 이미 에이멜의 왕자로서 실권을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었다. 공적도 컸고,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국왕에게는 그것도 눈엣가시였다. 그에게는 카드리올이 아들이자 후계자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빼앗아 가는 정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르티제아가 카드리올에게 씌울 누명과 병사를 준비해 주었을 때에 망설이지도 않고 실행한 것이다.
카드리올이 잠시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