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8
악녀는 두 번 산다 78화
“왕비를 암살하겠다고?”
“전하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일을 해드리겠다는 겁니다.”
카드리올이 가라앉은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아르티제아는 그가 협상할 마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빠르게 덧붙였다.
“리아간 공작가에 이미 칼을 심어 두었습니다. 왕비 폐하를 암살하고 리아간 공작가에 누명을 씌울 겁니다. 왕비 폐하는 뒤로 리아간 공작가와 손을 잡고 있어요. 알고 계시겠지만.”
“쌍방의 의견이 틀어져 리아간이 암살한 것으로 하자는 것이로군.”
“네. 하지만 전하께서는 공식적으로는 리아간 공작가와 왕비의 관계를 모르시니, 군사 행동에 나서기에 충분한 명분이 될 겁니다.”
카드리올이 의혹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것을 실행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믿지?”
“수도에서 저에 대해 이미 알아보고 오셨을 테니, 제가 황후 폐하의 시녀가 되었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지요?”
카드리올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간 공작가를 멸망시키는 것은 황후 폐하께서 바라시는 일입니다.”
“그걸 제국의 내분에 이용해 먹겠다는 것이군.”
“네. 리아간 공작가는 작지 않은 먹잇감이니까요.”
십중팔구 로이가르 대공이 나설 것이다. 소금 장사는 돈이 되니까.
그리고 지금의 리아간 공작은 황제의 수하로서 남해 소금의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소금 전매권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황제의 가장 큰 수입원이기도 했다. 그것에 손을 댄다면 역모로 몰아넣기 쉬웠다.
카드리올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르티제아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왕께서는 최악의 경우 제국의 역모에 관련되고, 그렇지 않다 해도 왕비가 제국의 소금 전매권에 손을 댔다는 게 드러날 테니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겠군. 그레고르 황제가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타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에이멜의 국왕 폐하께서도 성의 표시를 하셔야 할 겁니다.”
그러니 그때 가서 크라테스 제국의 압박을 명분으로 하여 양위를 강요하라는 뜻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침착하게 말했다.
“이 일은 카드리올 전하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제국에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
“카드리올 전하께서 하실 일은 명분에 맞춰 제때 공격하는 것뿐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가 만난 것만 숨기면, 전하를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카드리올이 생각할 수 있도록 그녀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에 몸의 떨림이 멎었다.
카드리올은 평생 부왕에게 시달리고, 사이 나쁜 계모와 싸웠다. 공을 세우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도 부왕에게 배신당하리라는 것 또한 알아버렸다.
부모를 해쳤다는 말을 듣지 않고서도 둘을 제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아르티제아가 성공한다면, 그는 아무런 도덕적 흠결도 없이 즉위할 수 있다. 실패한다 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즉위하고 나면 아르티제아가 그를 해칠 방법은 사라지고 만다.
카드리올로서는 걱정거리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소하는 셈이다.
거기에 리아간 공작가의 자산 일부를 얹어 준다면, 주판을 튕겨볼 것도 없이 이익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카드리올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카드리올이 아르티제아를 아는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것이 그가 받아들일 만한 제안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카드리올이 복잡한 얼굴로 아르티제아를 바라보았다.
“후작은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군.”
“네?”
“책사로서의 그대는 얻지 못하더라도, 여자로서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말이야.”
아르티제아는 털썩 벽난로 앞의 카펫에 눕혀졌다.
카드리올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대는 영민해. 그대가 낳아주는 후계자는 틀림없이 아주 훌륭한 자질을 타고나겠지.”
“그래서, 제 제안을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아닌 겁니까?”
아르티제아는 흔들리지 않고 물었다.
카드리올이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아르티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나 앉았다. 지친 몸이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아서, 바닥에서 등을 떼는 것이 힘들었다.
“내 쪽에서도 제안을 하나 하지.”
“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드리올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말했다.
“에브론 대공을 황제의 자리에 올리는 것이 후작의 목적이겠지? 그 일을 마친 다음이라면 어떤가?”
“에이멜의 신하로…… 부르겠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여자로서 오라는 말이야.”
아르티제아의 손바닥에 카드리올의 숨결이 스쳤다.
“에브론 대공이 주군일 뿐이라면, 일이 모두 끝난 후에는 그를 고집할 필요 없지 않은가? 어차피 후작은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자리에 남을 생각은 없을 테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은퇴하고 어딘가로 갈 거라면 내게 와. 남해의 기후는 틀림없이 후작의 건강에도 좋을 테지.”
“감시하기 위해서 그런 수고까지 들이실 필요는 없을 텐데요. 그때가 되어도 어차피 절 믿지 못하실 테고…….”
아르티제아의 손바닥에 입술을 댄 채로 카드리올이 금빛 눈동자만 슬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김빠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못 알아들어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건가?”
아르티제아는 머뭇거렸다.
카드리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손을 잡아 당기며 다른 팔로 허리를 휘감았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손에 가볍게 딸려갔다. 마치 무릎에 안긴 듯한 자세가 되었다.
“어이가 없군. 내가 청혼했던 건 잊어버렸나?”
“아니, 기억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건 동맹을 위해서였잖아요?”
로이가르 대공을 축출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이미 그때에 카드리올에게서 얻을 것을 다 얻은 뒤였다. 그래서 결혼 동맹 같은 복잡한 일까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로렌스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던 시기였다. 리시아의 옆에 있기도 해야 했다. 수도를 떠나 에이멜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었다.
카드리올이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아예 제대로 접수도 안 되었다니, 이런 굴욕은 처음이군. 나는 진심이었어.”
“본인의 목을 도끼로 치게 만든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기이한 버릇이라도 있으신가요?”
“하긴, 나도 내가 악취미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이 안에 들어 있는 게 어떤 보석인지 아는데.”
카드리올이 아르티제아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집게손가락을 댔다.
그리고 쓱 얼굴 윤곽을 따라 미끄러뜨려 턱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되자 아르티제아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드리올의 눈 안에 온갖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 절반 정도는 증오일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인가였다.
“진지하게 생각해, 로산 후작. 그대의 상황이 여의해질 때까지 기다릴 용의도 있으니까.”
그가 말했을 때였다.
“선장님!”
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거센 소리를 내면서 문짝이 조각 났다. 카드리올이 아르티제아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몸으로 덮었다.
찬바람과 함께 피비린내가 몰려들어왔다.
경악하는 아르티제아를 카드리올이 휙 잡아당겼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며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문 안으로 시체 하나가 털썩 쓰러졌다.
세드릭이 천천히 그 시체를 넘어 들어왔다. 피가 묻은 검을 들고 있었다.
“이런, 직접 행차하실 줄이야.”
카드리올이 작게 신음했다.
그가 본성에서 아르티제아를 낚아 챈 뒤로 아직 채 48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에브론에서 총력을 기울여 추적해 오리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냥을 나갔다던 세드릭이 이렇게 빨리 달려올 줄은 몰랐다.
세드릭이 얼어붙도록 차가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 아내를 놔라. 그러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마.”
“현실은 아무래도 놓는 순간 죽을 것 같은데.”
카드리올이 가볍게 대꾸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로산 후작? 지금 그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면,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아르티제아가 대답하는 순간 세드릭의 안색이 변했다.
카앙!
카드리올이 경악하면서 팔을 들었다.
순식간에 쇄도한 세드릭의 중검이 강철로 된 그의 팔뚝 보호대를 단숨에 두 동강냈다.
카드리올은 뒷걸음질 치며 세드릭의 검격을 받아냈다.
카앙!
까아아앙!
칼날끼리 맞닿은 채 문질러지는 쇳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카드리올이 더 뒤로 물러섰다. 그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그러나 세드릭의 검이 더 빨랐다. 카드리올은 아르티제아를 밀쳐내고 어깨를 찔러드는 검을 피해 바닥을 굴렀다.
세드릭의 검이 나무로 된 창 덧문을 박살냈다.
세드릭의 망토가 펄럭이며 일으키는 바람이 벽난로의 불빛을 일렁이게 했다.
“크윽!”
세드릭의 손이 아르티제아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아르티제아는 싸움이 어찌 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세드릭이 그녀를 뒤편에 둔 채 방의 반대편 구석으로 이동해 있었다.
문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새로운 적에게서 그녀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카드리올이 노기를 흩뿌리며 외쳤다.
“나라고 해서 네놈을 죽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싸움 도중에 짖는 것은 개도 하지 않는 일이다.”
세드릭이 나직하게 말했다.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기다리세요!”
아르티제아는 달려가 세드릭의 허리를 껴안았다. 팔은 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드릭이 움찔 그 자리에 섰다. 행여나 잘못 움직여 아르티제아를 다치게 할까 봐 염려한 탓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카드리올에게 외쳤다.
“가세요!”
“나더러 적전 도망을 하란 말인가!”
“에브론에서 에브론과 싸울 생각인가요? 미치셨나요? 영지 전체가 적인 줄 뻔히 아시잖아요!”
“티아.”
세드릭이 그녀를 불렀다.
“놓아 보내주세요. 지금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에요.”
이곳에서 카드리올이 죽게 되면 생겨날 외교적 사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자기 때문에 에브론이 그런 부담을 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
“부탁이에요. 저를 믿어주세요.”
세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이번에는 카드리올을 향해서 말했다.
“가세요.”
“로산 후작.”
“약속은 지키겠어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황후 폐하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아르티제아가 말한 황후는 지금의 황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황후, 리시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카드리올은 그것을 알아들었다.
그가 검을 거두었다.
아르티제아가 성녀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말이 맞다. 에브론에서 에브론과 싸울 수는 없다.
그리고 바다 위에서라면 모를까, 땅을 밟은 채 제국의 방패를 깨뜨릴 능력은 없었다.
“다시 데리러 오겠다.”
카드리올은 그렇게 말하고 휙 돌아섰다. 그리고 시체를 뛰어넘어 부서진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호각 소리가 울렸다. 카드리올이 에이멜의 전사들에게 도주 신호를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