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9
악녀는 두 번 산다 79화
세드릭은 그대로 아르티제아를 안아 들고 말을 탔다. 뒷일은 부하에게 맡겼다.
시장 관저로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시장 부부와 고용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대공 전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비 전하께서도 다치신 곳은…….”
“침실은 어딘가?”
시장이 서둘러 앞서 가며 손수 문을 열었다.
세드릭은 하녀들의 손에 아르티제아를 넘기지 않고 직접 안은 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항구의 봉쇄는 풀고, 본성에 비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려라. 봉화를 올려서 경계 태세를 풀도록.”
“예!”
작전 시작 전부터 미리 데워두게 한 침실은 충분히 훈훈해져 있었다.
세드릭은 아르티제아를 안락의자에 내려놓았다.
기력이 빠져버린 아르티제아는 안락의자에 늘어졌다.
추위와 체력 고갈로 몸이 완전히 풀려 버렸다. 카드리올의 숙소에서 잠시 몸을 데우기는 했다. 하지만 하루 넘게 냉골인 선실에서 시달린 몸에는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싸움의 한창 중에는 그녀도 흥분해서 몰랐다.
그러나 정신이 들고 나자 긴장이 풀려서 이제는 아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시장 부인이 말했다.
“뒷일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전하께서도 피곤하실 텐데…….”
“됐다. 물러가라.”
세드릭이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시장 부인은 그의 목소리 아래 짙게 깔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읽어냈다. 그녀는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어 절을 올렸다.
그리고 하녀들을 몰고 물러나가며 문을 닫았다.
쿵!
세드릭이 강철 건틀렛을 벗어 집어던졌다. 망토와 검도 아무렇게나 끌러서 바닥에 내던졌다.
눈에 젖은 부츠가 카펫에 얼룩을 남겼다. 아마 그 검은 얼룩은 진흙 만이 아닐 것이다.
“전하…….”
그가 아르티제아가 앉은 안락의자를 벽난로 앞까지 끌어다 놓았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몸에서 나는 먼지 냄새와 희미한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어떻게? 그러면 당신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평하게 사냥이나 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본성이…….”
본성의 방어가 뚫린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혼절해 있었으므로 상황이 어찌되었는지 아르티제아는 다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본성의 가신 중 누군가가 카드리올과 내통하여 비밀통로를 알려주었으리라는 것은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경비병은 몸수색을 하고도 칼과 연막탄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금 전의 전투에서 사상자가 생겼으리라는 것도 분명했다. 에브론 본성에서도 사람이 죽고 다쳤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공가의 신뢰가 부서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게 직접적으로 아르티제아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성의 방어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본성에 있지 않았다면, 카드리올이 여기까지 찾아왔을 리가 없다.
세드릭이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짚었다.
마치 안락의자에 갇힌 듯한 상태가 되어서 아르티제아는 몸을 움츠렸다.
“당신에게는 그게 더 중요합니까?”
“네?”
“내게 달리 할 말은 없습니까?”
아르티제아는 망설였다.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친 데다가 세드릭이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세드릭이 나타났을 때에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카드리올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아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었다.
그러나 세드릭을 다시 보지 못하고 그대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그 삶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해도 남해로 끌려갔다면 죽은 것이나 진배없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그대는 원래부터 에브론 대공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니, 그랬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카드리올은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 말이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다 잊어버리게 해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순간이나마 흔들릴 만큼.
하지만 구하러 와줘서 기쁘다고, 그 말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러기에는 그가 잃은 것이 너무 크다.
세드릭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검은 눈동자 안에서 이글대는 불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자신도 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티아.”
“죄송, 합니다.”
아르티제아는 사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가 느낀 분노와 좌절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눈과 추위를 뚫고 이곳까지 직접 달려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본성이 뚫렸으니 뒷수습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을 우선했다. 구하러 와 주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적을 놓아 보내라고 말했다.
미안한 줄 알면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기뻐할 자격만큼이나 서러워할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한계에 달한 육체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항상 그랬다.
차라리 카드리올을 설득하는 일 같은 것은 나았다. 대국을 말할 때에는 이성적일 수 있었다.
목 아래에 칼을 들이대고 협박해도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세드릭이 왜 카드리올을 놓아 보내라고 했느냐고 냉정하게 묻는다면 그녀는 수십 가지라도 교묘한 변명을 섞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의 앞에서 그녀는 항상 버러지 같은 존재였다.
세드릭이 손을 뻗었다. 아르티제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꽉 감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뺨에 닿은 것은 폭력이 아니라 얇은 유리잔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아르티제아는 멍하게 눈을 떴다.
세드릭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입술이 닿았다.
첫 키스는 잘 자라는 인사와 전혀 달랐다.
아르티제아는 숨을 멈췄다. 세드릭이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다른 한 손으로 등을 끌어안았다.
그 포옹도 지금까지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전하, 음.”
아랫입술을 그의 두 입술로 가볍게 물려 아르티제아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세드릭의 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체온이 갑작스럽게 후끈 치솟았다. 그녀는 그것이 제 몸의 온도인지, 세드릭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도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손발이 간지러웠다. 온몸의 혈관에 뜨거운 피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전, 하…….”
아르티제아는 할딱거리면서 가까스로 그의 가슴을 짚었다.
지탱할 곳이 없어서 매달린 것인지, 밀어내려고 한 것인지 스스로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과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제게 미안해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 면……. 응…….”
또다시 입술이 닿았다. 아르티제아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었다.
“당신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제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압니까?”
세드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뜨거운 숨결이 두 입술 사이에서 뒤섞였다.
그가 그대로 다시 아르티제아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눌렀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밤새도록 설원을 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잃고는 살 수 없다고.”
“전하…….”
“본성이 무너졌죠. 조르딘이 배신했고, 제가 믿었던 신뢰가 허상이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모든 걸 다 잃은 기분이어야 하는데…….”
“허상이, 아니에요.”
“그런데 당신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에브론을 위해서 당신을 택한 것인데, 당신만 무사하면 에브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아르티제아는 몸을 떨었다. 그것은 기쁨 때문이기도 하고,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세드릭이 몸을 더 기울였다.
마음이 쏟아져 내려왔다. 아르티제아는 벌벌 떨며 세드릭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남자를 몸을 던져서 보호하고.”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어요. 카드리올 전하가 여기에서 죽으면, 응.”
또다시 입술이 겹쳐졌다.
키스로 그녀의 말을 막았던 세드릭이 입술을 떼고 말했다.
“당신이 그러라고 말했으니 살려 보냈습니다. 제 인내심은 거기까지입니다. 그자를 두둔하지 말고, 이유도 말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이상 당신 앞에서 엉망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전하.”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세드릭의 손이 그녀의 머리칼을 살며시 훑고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았다. 몸은 맞닿아 있었고, 모든 게 너무 가까웠다.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눈꺼풀 안쪽이 다시 뜨거워졌다.
세드릭이 그 눈꺼풀을 검지로 건드렸다. 물기가 번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아르티제아에게 울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이건 옳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아직 어리고, 자신은 보호자가 되어주기 위해 결혼한 것이었다.
겨우 2년 동안 보호를 약속한 계약 결혼 상대에 불과했다. 카드리올의 앞에서 내 아내라고 불렀지만, 그는 아르티제아의 진짜 남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제 마음이 그렇게나 깊은 줄 세드릭 자신조차 몰랐다.
아르티제아는 그의 영혼을 뒤흔든다. 그녀를 잃을 뻔하고 나서, 그는 제 뱃속 깊은 곳까지 진득하게 녹아 붙은 감정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 버렸다.
안아주고 싶고,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입맞추고 싶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그녀에게 화가 나고 슬펐다. 원망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세드릭은 스스로도 몰랐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더라도 이 팔 안에서 하는 것이라면 괜찮았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
아르티제아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가 탄식을 뱉었다.
이제 세드릭의 목소리는 숨결처럼 작은 소리가 되어 있었다.
“몰랐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알기 때문에 저를 피했던 것 아닙니까?”
아르티제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이마에 세드릭의 이마가 닿았다. 그러자 아르티제아가 눈을 감아 버렸다.
“티아, 사랑합니다.”
“안 돼요.”
“싫어요, 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것만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르티제아의 입술 위에 거의 입술을 댄 채로 속삭였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르티제아는 그 말을 소리가 아니라 촉감으로 들었다.
맞닿은 입술이 떨렸다. 등을 타고 황홀한 떨림이 달렸다.
그녀는 아뜩하여 눈을 감아 버렸다. 바닥이 무너져 지옥에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죄 짓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 번이라도 좋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받아 보고 싶었다.
아르티제아는 결국 힘없이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세드릭이 그녀를 품에 꽉 안고 더 깊이 키스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나만 보고 있어요, 티아.”
“…….”
“싫습니까?”
“아뇨……. 세드릭 님.”
아르티제아는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벽난로 불빛이 붉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