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3
악녀는 두 번 산다 83화
다급하게 이루어지는 수술을 아르티제아는 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리시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르티제아는 자신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을 알았다.
촌장이 욕실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리시아는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우선 그녀를 미지근한 물속에 담갔다.
하녀들이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 언 몸을 녹였다.
“어떻, 어떻게……?”
입술도 벌벌 떨려서 말은 그 정도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리시아가 대답했다.
“어제 오전 중에 카람의 소부대 몇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톨드를…… 넘어와서?”
톨드 산맥은 험준하다.
톨드 관문이라고 불리는 협곡을 제외하면 군사가 이동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이 없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카람과의 전쟁은 톨드 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아르티제아가 알고 있기로는 그랬다.
리시아가 말했다.
“산맥을 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사냥꾼이나 약초꾼은 꽤 예사로 넘어 다니고, 화전민이나 교역상도 다니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넘는 경우에는 눈감아 주고 있어요.”
그것은 카람과 에브론 사이의 일종의 합의에 가까웠다.
교역도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고, 외양이 달라 첩자 노릇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40인에 가까운 집단이 개인적으로 산맥을 넘어온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세드릭은 처음에 위협용 사격을 했던 것이다.
애초부터 기사들이 가진 총은 사정거리가 짧고 위력이 약한 부무장에 불과했다. 급소를 적중시키지 않는 한 카람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발포시킨 것은, 총성을 듣고 카람이 반응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카람들은 놀라 흩어지는 대신에 몸을 낮추고 달려왔다.
전원 전사 계급이 틀림없었다.
“정찰 부대를 여러 곳에 냈어요. 그러고 나니 비 전하가 마음에 걸려서요. 비 전하의 마차가 혹시라도 카람과 마주치면 도주가 불가능하고, 대공 전하께서 데려가신 기사단의 장비가 모두 사냥용이었으니까요.”
소수의 사람과 싸울 때에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카람이 상대가 되면 최소한의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아르티제아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리시아는 그녀를 물에서 나오게 했다.
하녀들이 아르티제아의 몸을 닦고 머리를 싸맸다. 솜으로 만든 바지와 상의가 입혀졌다.
리시아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입고 계신 옷도, 타고 계실 마차도 신경 쓰여서…….”
“그럴 필요 없었는데.”
“있었잖아요.”
리시아가 애써 미소를 띠었다. 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쓰는 기색이었다.
아르티제아도 마음이 평화롭지 않았다. 몇 명이나 죽었을까?
아래층에서는 아직도 억누른 비명이 솟구치고 있었다. 다리를 부상당한 기사가 조치를 받는 소리였다.
그다음 아르티제아는 불이 훈훈하게 피워진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럴 듯한 집이라고는 촌장의 집 밖에 없었기 때문에, 세드릭과 원군의 지휘관을 비롯하여 몇몇 기사도 이쪽에 와 있었다.
“티아, 다친 곳은 없습니까?”
세드릭이 아르티제아를 보고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숙연한 분위기가 기사들 사이에 감돌았다.
“사망자는 6인, 부상자는 7인이며 이중 둘은 중상입니다.”
“네드 경은 괜찮을 거야. 허벅지 좀 베인 것으로 오래 누워 있을 사람은 아니지.”
세드릭이 말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20명으로 두 배수의 카람을 상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만하면 선전했다고 할 만했다.
아르티제아는 콜린이 괜찮으냐는 말을 차마 묻지 못해서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적절한 때에 지원 와 주어서 고맙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
“모르텐 소남작 덕분입니다. 정찰병은 대부분 이미 카람 부대가 목격된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비 전하를 마중하기 위해 마차와 옷 등을 가지고 움직이던 중에 싸움 소리를 들은 겁니다.”
“수고했다, 리시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리시아가 짧게 답했다.
“어째서 전사 계급이 이런 곳을 돌아다니지?”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세드릭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아르티제아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올해에는 전쟁이 있을 해가 아니다.
제국 내부의 상황이 바뀐 것이 카람에게 영향을 주었을 리는 만무하다. 카람과 그 정도로 긴밀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아르티제아가 그 가능성조차 에브론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이다. 다른 지역 사람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오늘은 우선 쉬는 게 좋겠군. 자네들도 돌아가 쉬게. 해가 졌으니.”
“예.”
기사들이 물러가는 발소리가 우르르 울렸다.
리시아도 발길을 돌렸다.
문이 닫혔다.
세드릭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참 그대로 있었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아르티제아는 죄인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자신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또 그의 사람들을 죽였을 때에도 그는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틀림없이 그랬으리라. 수도 없이 여러 번.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숨 쉬기가 어려워졌다.
한 번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부터 겨드랑이 언저리까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웠다. 눈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꽉 감은 채 그대로 서 있자 어느 틈에 세드릭이 앞에 다가와 있었다.
“아.”
아르티제아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팔을 잡아서 세드릭이 자기 품에 끌어넣었다.
“잠깐만 이대로 있어요.”
그가 아무 말 없이 한참 그대로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를 마주 안아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할 수 있는 것은 불안해하면서 조심스럽게 세드릭의 머리칼을 건드리는 것 정도였다.
얼굴과 손에서만 피를 닦아낸 듯 머리칼에서 끈적한 흙먼지가 묻어났다.
“제가 옳다고 생각합니까?”
“네?”
“부상병의 상처를 닦아주고 키스하고 위로해주고……, 그런 일을 할 때마다 저는 제가 사악한 위선자로 느껴져서 참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세상에 병사의 목숨을 종이로 만든 체스 말처럼 생각하는 자는 얼마든지 있다.
숫자로 다루면서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그 사람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상처까지 보살펴주는 세드릭이 왜 위선자이겠는가?
아르티제아는 그가 이 자리에서 콜린을 치료한 것으로 잊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콜린의 가족을 보살피고, 콜린이 끝까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볼 것이다. 그럴 사람이었다.
“콜린 경을 이곳까지 데려와 싸우게 한 건 접니다.”
“세드릭 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은 콜린 경이에요. 기사가 충성을 다 바쳤으니, 주군으로서 그를 명예롭게 치하해주시면 되는 거예요.”
세드릭이 어두운 눈으로 말했다.
“네, 저는 충성을 받고 있죠.”
“세드릭 님…….”
“제가 잘해낼수록 병사들은 저에게 목숨을 겁니다.”
“충성을 받기 위해 위선적으로 그러시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시는 거잖아요.”
“하지만 결과가 똑같습니다. 때때로 저는 제가……, 병사들에게 절 위해 죽으라고 말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르티제아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불행한 결과를 낳는 선의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희생밖에 남기지 못한 의로운 과정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세드릭 님…….”
“다 손에서 놓는 쪽이 낫지 않을 까요? 제게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세드릭은 아르티제아에게 묻기는 했지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또다시 침묵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런 것처럼 보였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티아.”
“세드릭 님을 위해 죽더라도 후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세드릭이 입을 다물었다.
‘진짜 위선자, 진짜 악한 자를 모르셔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거죠.’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대신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껴안은 팔에 감히 힘을 주지도 못했다.
그날 새벽에 세드릭은 손수 흰 천으로 죽은 기사들의 시신을 덮었다.
“본성에서 거둘 사람이 따로 올걸세.”
“예.”
촌장은 고개를 숙였다.
묵념과 경례를 올리는 것으로 짧은 조의가 끝났다. 제대로 된 장례는 나중에 본성에서 다시 치르게 될 것이다.
저 멀리 새벽하늘로 네 개의 봉홧불과 연기가 솟구쳤다. 톨드 관문의 요새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결국 톨드에서도 문제가 생겼군요.”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가봐야겠어.”
세드릭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의 봉화는 경계, 두 개의 봉화는 국지적 충돌, 세 개의 봉화는 카람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네 개의 봉화는 지금 당장 결정권자의 지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쟁인가요?”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세드릭이 대답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카람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저쪽에서도 섣불리 총력전으로 나오지는 못하겠지요.”
“내부에서요?”
“카람 내부에도 몇 개의 세력이 있어서 알력다툼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그런대로 온건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세드릭이 그렇게 말하고 아르티제아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직 전쟁이 터졌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당신은 본성으로 가십시오. 임시 조치만 해놓고 왔으니 잘 부탁합니다.”
“네.”
“저는 톨드 관문으로 가봐야겠습니다.”
“네…….”
“군사적인 문제는 아가테 자작에게 맡기면 됩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이 이번에는 리시아를 불렀다.
“리시아.”
“네.”
“널 믿는다. 티아의 옆에 있어라.”
리시아가 무릎을 구부리고 예를 올렸다.
“모르텐의 딸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세드릭이 마지막으로 아르티제아의 두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구부려 눈을 맞추었다.
마치 그녀의 눈 안에 제 눈빛을 아로새기려는 듯한 태도였다.
“티아, 저는 당신을 믿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저를 믿으십시오.”
“세드릭 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저의 책임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전에도 들은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때에 들은 것과는 무게가 달랐다.
심장 위에 무거운 추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함께 갈 때에 진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세드릭이 그녀를 한 번 포옹했다가 놓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 모자를 눌러 썼다. 그리고 말에 올랐다.
기사 다섯이 그를 따라 말에 올랐다. 여섯 기의 말이 질풍처럼 북녘을 향해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