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5
악녀는 두 번 산다 85화
리시아는 당혹했다. 세드릭이 권총을 준 이유가 전혀 짐작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의 시녀라는 이유만으로 맡기기에는 너무 큰 권위가 아닌가.
「비 전하께 직접 드리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 사람이 이걸 쏘다가 손목이나 나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세드릭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입술 위에조차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사라졌다.
「몸을 지키는 것은, 이번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되지 않아. 위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에 대한 대비는 알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마음 쪽이다. 리시아.」
리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것보다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네.」
「심약하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야. 티아는 정신력이 강해 보이지만, 실은 무너지기 쉬워. 머리가 좋은 탓인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저편으로 넘어가 버리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버릇이 있고, 효율이라는 말에 쉽게 흔들려.」
세드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네가 옆에 있으면 괜찮을 거다. 넌 항상 옳은 길을 찾을 줄 아니까.」
「전 이제 겨우 비 전하를 막 알게 되었을 뿐이에요. 목숨을 바쳐 지켜라 하시면 그 말씀은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옆에 있어줘라. 그걸로 충분하니.」
리시아는 그 총을 받았다.
자신이 과연 할 수 있을지 잘 알 수 없었다. 자기에게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기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신뢰를 받았으니 충심을 다해 행할 뿐이다.
리시아는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 안쪽에 다시 총을 찼다. 그리고 아르티제아의 거실로 돌아갔다.
* * *
그날 밤에 장례식이 있었다.
카람에게 죽은 기사와 남해인에게 살해당한 경비병들을 위한 장례식이었다.
아르티제아도 만약을 대비해서 상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입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르티제아는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많지 않았다. 윗사람으로서 참석한 적은 더 적었다.
수하가 죽은 경험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수하들은 대개 이름도, 신분도 없거나 거짓이었던 사람들이었다.
충성을 다하고 죽어도 명예가 없었다. 심지어는 누가 진짜 동료이고 누가 진짜 주군인지조차 밝히지 못했다.
비석에 자신의 진짜 이름이 적히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아르티제아는 장례식에 참석하여 애도하거나 죽은 이가 얼마나 명예로운지 말한 적이 없었다.
대신 가족의 연금을 챙겼다. 대체로는 그것이 그녀가 충성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었으니까.
때로는 복수처럼 보이는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이 당사자를 위해서 벌어졌던 적은 없다.
로렌스는 그녀와는 다소나마 입장이 달랐다. 하지만 그도 자기 수하의 죽음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르티제아가 참석한 장례식은 보통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의 장례식이었다.
나이 든 귀족의 죽음, 어린 후계자의 죽음…….
그 장례식장 뒤에서는 장례로 인해 변할 작위와 재산의 권리의무 관계에 대해서 음울하면서도 기대감 가득한 대화들이 오갔다.
그것은 정치의 일부였다. 종종 권력 관계가 변했고, 사교계의 유행이 바뀌었다. 때로는 제국의 경제가 뒤집혔다.
하지만 이곳의 장례식은 달랐다.
소피는 아르티제아에게 검은 옷을 입혀주면서 내내 울었다. 앨리스도 눈가가 붉었다.
둘 다 딱히 죽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슬퍼했다.
본성 전체에 깔린 어두운 공기에는 불안만큼이나 무겁게 슬픔이 깔려 있었다.
그 슬픔에 비해 장례 자체는 간단했다.
그랜드 홀에 수십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리시아가 조심스럽게 아르티제아에게 물었다.
“시신을 직접 보실 수 있으시겠어요?”
“봐야 할까?”
“명예로운 전사자의 이마에는 주군이 훈장을 놓아주는 게 이곳 풍습이에요. 지금은 대공 전하께서 안 계시니까 비 전하께서 하셔야 해요. 자신 없으시면 제가 대신할게요.”
“아니야.”
아르티제아는 부패해가는 시신을 보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순탄하게 살지 않았다.
하지만 리시아도, 아가테 자작도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관 뚜껑은 어깨 정도까지 내려져 있었다.
시신은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예복을 입은 채였다. 얼굴에는 가볍게 화장도 되어 있어서 핏기 없이 창백하다는 것 말고는 생전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아르티제아는 장의사가 얼마나 신경 써서 망가진 몸을 맞추고 얼굴을 꾸몄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런 장례식을 거칠 수 있을 만큼 아직 이곳에는 여유가 있다.
진짜 전쟁터에서는 아마도 관속에 반듯하게 넣는 것도 사치일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리시아가 건네준 은제 훈장을 하나씩 시신의 이마에 놓았다. 훈장은 동전만 한 크기였고, 에브론 대공가의 문장이 음각되어 있었다.
손에 닿는 피부의 감촉이 밀랍처럼 차가웠다.
이 사람들은 모두 아르티제아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었다.
새삼스러웠다. 자신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게.
이제껏 그런 사람은 앨리스밖에 없었으니까.
관 뚜껑이 닫혔다.
“잘하셨습니다.”
아가테 자작이 그녀의 귓가에 격려의 말을 속삭였다.
그는 어린 대공비가 그 죽음들에 충격 받았으리라고 짐작했다.
수도에서 유약하게 자랐을 귀족이니 시신을 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병이나 그런 것으로 죽은 게 아니라, 칼에 베이고 무기로 찢긴 모습은 처음이리라.
아르티제아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관 위에 깃발이 덮였다. 먼저 죽은 경비병들의 관을 감싼 것은 세드릭이 직접 덮어주고 간 대공가의 깃발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실려 온 시신들의 관은 아가테 자작과 다른 기사가 덮었다.
아르티제아는 이런 깃발, 이 은제 훈장들이 창고에 몇 개나 준비되어 있을까를 멀거니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파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밖의 희생자가 몇 사람 있었다. 카드리올에게 살해당한 하인과 그 가족들의 관은 흰 천에 싸였다.
관들이 실려 나갔다.
기사들이 좌우로 도열했다. 아르티제아는 마지막 관이 나갈 때까지 주인의 자리에 바른 자세로 서서 전송했다.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에는 너무 추운 날이었다.
관은 모두 납관당에 안치되었다가 봄이 되면 각자의 가묘나 고향으로 가 묻힐 것이다.
격하게 울부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포를 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장례식은 시종일관 조용했다.
사제들이 뎅그렁거리고 울리는 종소리가 멀어졌다.
유족과 친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입구 근처에 있던 하녀 둘이 흰 목면으로 만든 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조그만 흐느낌들마저 모두 밖으로 나가자 그랜드 홀에 침묵이 가득 찼다.
“비 전하.”
리시아가 조심스럽게 아르티제아를 불렀다. 검은 베일 아래에 감추어진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세드릭은 그녀가 약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시아는 그녀가 애도하고 있는지,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처소로 돌아가세요. 비 전하께서는 더 쉬셔야 해요.”
“오브리는?”
아르티제아가 물은 것은 그때였다.
리시아는 멈칫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브리 언니는…… 사원에 있어요.”
대역죄인은 그랜드 홀의 장례식에 들일 수 없다. 더 이상 대공가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대로라면 성 밖에 내다 걸어야 했다. 그러나 전시에 저지른 일이 아니고, 조르딘 가문이 스스로 정리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은 셈이었다.
지금은 병이나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들처럼 사원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었다.
아마 내일에나 아무런 납관 예식도 없이 옮겨질 것이다. 가족의 참례가 허용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가 보실 생각이세요?”
그녀의 발길이 향한 곳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앨리스였다.
“마님 잘못이 아니에요.”
앨리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 처벌하신 거예요. 오브리 님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거라고요.”
“나도 안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대꾸했다. 관 앞에 가서 사죄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카드리올의 일은 그녀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었다.
가능한 한 변수를 줄이고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아르티제아가 주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일을 전부 알 수는 없다.
예측 못한 일에서 생기는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르티제아는 가능하면 변화폭이 작은 변수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아까워서, 미안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변수가 작을수록 계획의 성공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희생이 생겼을 때에, 그녀가 취해야 할 태세는 비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맹점을 분석하고 변수를 조정하여 다음번에는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일에서 죄책감을 느낀 적이 좀처럼 없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브리를 쫓아낸 일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었다. 그것은 리시아를 위해서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다.
애당초, 부품이 부품을 동정하는 것이야말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 죽은 자들은 아르티제아를 위해서 죽은 것이었다. 그럴 가치도 없는 2년 기한의 계약 결혼 대공비를 위해서.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모든 일에 책임이 생겼다. 이제 그녀는 세드릭 몰래 죄악을 다룰 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오브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녀는 죽을 필요가 없었다. 이 때문에 에브론 대공령이 분열되는 것은 아르티제아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서.
‘오늘만.’
감정적이 되기로 하자.
어쩌면 일찍이 본 적 없는 장례식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르티제아는 그렇게도 익숙하고 절제된 애도의 감정들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감정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은 감정이 아니라 절차 쪽이다.
세드릭도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았으리라. 그녀가 에브론을 멸망에 몰아넣었어도.
사원은 조용했다. 사제들이 장례식을 인도하기 위해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는 사원의 입구에 리시아와 하녀들을 남겨두었다.
알폰스가 등불을 들었다.
에브론 본성의 사원은 인구수나 본성이 차지하는 지리적, 정치적 중 요성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다. 성 안에 충분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브리의 관이 놓인 예배당도 작았다. 그 예배당의 좌우에만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관 뚜껑은 이미 못질된 뒤였다. 매끈한 하얀 무명 대신 염색하지 않은 거친 옷감이 덮여 있었다.
한중간에 흰 꽃이 아니라 어디선가 꺾어온 듯한 열매 달린 겨우살이가 한 가지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서른 초중반의 기사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멜 조르딘 경.”
조르딘 가의 장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