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
악녀는 두 번 산다 9화
세드릭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잔을 쨍그랑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 아르티제아를 노려보았다.
“역심을 품으란 말인가?”
“후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역심인가요? 황제 폐하는 아직 황태자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아르티제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로이가르 대공 전하께 제위 계승권이 있다면, 전하에게도 있습니다. 전하의 어머니는 로이가르 대공의 손윗누이로서 제국의 적황녀였으며, 전하는 정통한 결혼에 의해 태어난 선황의 적손이니까요.”
쿵.
세드릭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군.”
“대공 전하.”
그가 휙 등을 돌려 가버렸다.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앨리스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뭐가?”
“방금…… 화내고 가셨잖아요.”
“예상했던 일이니까.”
아르티제아는 여유롭게 차를 더 따라 마셨다.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실망했을 것이다.
황태자의 자리는 함부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모라는 단어처럼 쉽사리 군주의 손에 칼을 쥐어 주는 것도 없다.
설령 상속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역모로 취급될 수 있었다.
세드릭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에 대해 잘 알았다. 그의 부모가 바로 역모로 모함을 당해 죽었으니까.
게다가 아르티제아는 로렌스의 이부동생이었다. 의심하지 않는 쪽이 이상했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겠지.’
이전에 세드릭이 정치에 투신한 것은 로이가르가 거꾸러지고 로렌스가 황태자가 된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로이가르가 있는 동안에 그의 존재는 언제나 시야 밖에 있었다.
황제의 사생아이냐, 적손인 동생이냐. 혈통과 총애이냐, 적서의 구별이냐.
그것만으로도 대립은 첨예하여 황제의 조카까지 후계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드릭 자신도 로이가르 대공처럼 야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모두 그가 정치와 권력을 혐오하고, 에브론 대공령만 지키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로렌스와 적대하기 시작했을 때조차도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정치권력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과연 세드릭 본인도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
아르티제아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확신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드릭을 주시했다. 그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부터 아르티제아는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를 이해하고 그에게 공감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세드릭은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해내야만 할 때, 그는 가장 앞에 서서 갈 사람이다.
어차피 시작할 거라면, 지금이 제일 낫다.
‘판세가 기울어지기 전에 결단하는 것만으로도 월등히 나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세드릭의 등을 떠미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권력다툼이 일으킬 참상 중 하나만 앞당겨도 세드릭은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로렌스나 로이가르가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외면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주인은 어디까지나 세드릭이다. 측근은 주인의 뜻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인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것은 논외였다.
심지어 그녀는 아직 측근조차 아니었다.
첫 번째 결단은 세드릭이 내려야만 한다.
시간은 귀중한 자원이지만, 그가 생각하고 결단하는 그 고민의 과정 또한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고민의 과정에서 아르티제아가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때에는 그때대로 또 달리 할 일이 있었다.
“아가씨, 뭐라도 좀 드세요. 오늘 일어나셔서 드신 거라곤 아까 그 샐러드 조금뿐이셨잖아요.”
“아. 미안. 잊고 있었어.”
아르티제아는 그제야 작은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앨리스에게도 먹으라고 그릇을 내밀었다. 어차피 혼자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제 돌아가실 거예요?”
“조금 더 기다려보자.”
“무얼요? 아까 그분은 돌아가셨잖아요.”
“글쎄, 기다려보면 돼. 어차피 일찍 돌아가도 별 볼 일 없잖아.”
“그것도 그러네요.”
앨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더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한 시간이 되기 전에 마차 수리를 도와준 기사 하나가 정자까지 올라왔다.
“서부군의 벤자민 코너라고 합니다.”
기사가 군례로 인사하고 말했다.
“로산 후작 영애를 댁까지 호위해 드리라는 에브론 대공 전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그것 보라.
앞에서는 화를 냈으나 이렇게 사람을 보내어 여지를 두었다.
그가 정말로 아르티제아의 말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화를 냈다면, 배웅 따위는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다음 만남을 기대할 수 있다.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께도 따로 감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아르티제아는 공손하게 그렇게 말했다. 앨리스가 서둘러 도시락과 티세트를 정리했다.
벤자민은 무거운 티세트 상자를 자기가 들었다.
아르티제아는 양산을 쓰고 복사의 뒤를 따라 천천히 사원의 아름다운 오솔길을 걸었다.
* * *
로산 후작가로 돌아올 때쯤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저택이 멀리 보일 즈음부터 길이 폐쇄되어 있었다. 근위대가 빈틈없이 경계하다가 마차가 다가오자 손을 들어 세웠다.
마부는 익숙한 일이라 침착하게 마차를 세웠다.
벤자민이 당황하며 마차 문을 두드렸다. 아르티제아가 손수 마차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무슨 일 있나요?”
“아, 놀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검문이 있나 봅니다. 무슨 일인지 제가 알아보고…….”
그때였다. 말을 탄 근위 기사가 다가와 물었다.
“그 제복은 서부군의 것이 아닌가? 서부군 기사가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아! 서부군 제4군단 기사대 소속 벤자민 코너입니다! 에브론 대공 전하의 명을 받들어 로산 후작 영애를 댁까지 호위하던 중이었습니다.”
벤자민이 바짝 긴장하여 대답했다.
서부군 기사와 중앙군 기사, 근위 기사는 같은 신분처럼 들리지만 실질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근위 기사쯤 되면 황궁에 출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 황제를 만날 수 있고, 그 가까이에서 무기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신분이다. 최소 백작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황제는 어리석지 않았다. 자기를 지키는 기사를 신분이나 가문을 기준으로 뽑아 무력을 약화시킨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근위 기사를 중앙군의 정예 기사 중에서 손수 뽑아 올렸다.
평민이라도 군공을 세우면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언제나 몬스터와 해적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제국의 실정상 실력만 있으면 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근위 기사는 사실상 평민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이기도 했다.
근위 기사가 놀란 듯이 되물었다.
“에브론 대공 전하께서?”
아르티제아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기에 마차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근위 기사가 마차 곁으로 다가왔다.
헨리 키쇼어라고 하는 이 중년의 기사는 근위대의 여섯 부장 중 하나였으며, 황제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다. 친하게 지내둬서 나쁠 게 없었다.
“안녕하세요, 키쇼어 경.”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딜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아르티제아 님.”
키쇼어가 엄격한 얼굴로 물었다.
그는 아르티제아가 태어날 즈음부터 황제의 측근이었고, 밀라이라 때문에 종종 로산 후작가에도 드나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르티제아에게 마치 친척 아저씨처럼 굴 때가 있었다.
“사원에 다녀오는 길인데, 어쩌다 보니 늦게 되었어요.”
“그러셨군요. 헌데, 서부군과는 무슨 일로…….”
“길에서 마차가 망가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을 에브론 대공이 도와주셨어요. 제가 호위를 한 사람도 데리고 있지 않은 것에 놀라서 코너 경에게 배웅해주라고 하셨답니다.”
아르티제아는 짐짓 얼굴을 붉혔다.
키쇼어는 정직하고 두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황제에게 충성하며 어느 귀족 가문과도 연관을 맺지 않은 무당파적 인물이기도 했다.
몸이 약한 딸 미엘르만이 유일한 약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엘르는 아르티제아보다 한 살 어렸다. 그 때문에 키쇼어는 아르티제아에게도 퍽 무르게 굴었다.
오늘 세드릭과 그녀가 만났다는 사실을 황제의 귀에 자연스럽고 호의적인 말투로 들어가게 하기에 최적의 상대였다.
오늘 키쇼어와 마주친 것은 예정하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티제아는 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르티제아 님도 어른이 되셨군요.”
그가 흐뭇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아르티제아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어째서인지 귓가까지 달아올라 화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들어가시지요. 제가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여기에서 물러가겠습니다.”
키쇼어가 말하자, 벤자민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 배웅해주셨는데요. 폐가 되지 않는다면 들어가 차라도 한 잔 들고 가세요.”
“아닙니다. 안전하게 댁까지 모시라는 것이 대공 전하의 명이셨습니다. 근위 기사가 호위해준다면 그보다 더 안전한 일은 없으니까요. 임무를 다했으니 돌아가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아르티제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키쇼어가 수고했다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벤자민이 잔뜩 얼어붙은 채 키쇼어에게 군례를 올리고 달아나 빠르게 사라졌다.
아르티제아는 속으로 웃었다. 정중하고 점잖게 굴었지만, 그 같은 서부군의 젊은 기사에게 근위대 부장과 마주치는 것은 상당히 마음 졸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키쇼어가 마차 문을 닫아주었다. 아르티제아는 창 밖으로 말했다.
“아참, 오늘 사원에서 성자상에 건강을 기원하고 받아온 기도용 초가 있어요. 축성받은 것이니 미엘르 양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키쇼어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언제 한 번 미엘르 양의 컨디션이 좋을 때에 함께 피크닉이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셨다는 걸 전해 듣기만 해도 미엘르가 기뻐할 겁니다.”
“키쇼어 경도 같이요.”
아르티제아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키쇼어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 애는, 요즘에 저를 귀찮아해서…….”
17살 소녀이니 어쩔 수 없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그렇지 않든 간에 생활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후후 웃었다.
“진심은 아닐 거예요. 그런데, 키쇼어 경께서 여기에 와 계신다는 건 폐하께서 오셨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르티제아는 숨을 훅 들이켰다.
세세한 날짜까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18세의 생일을 맞이한 후에 처음으로 황제가 방문했던 날은 기억하고 있다.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르티제아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로렌스를 도울 수 있을지 깨달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