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0
악녀는 두 번 산다 90화
사제는 방에 있었다.
본래 사원의 생활이라는 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만 관찰해도 사제가 이 시간에 방에 있을 거라는 건 알아내기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복잡한 문제로 고민 중이다. 방에 혼자 머무르는 시간이 길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비 전하.”
사제가 문을 열었다가 아르티제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들어가라고 눈짓했다. 사제는 허둥거리면서도 얼른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티제아는 알폰스를 밖에 세워 두고 방문을 닫았다.
“앉으세요.”
“아, 예.”
지난번처럼 사제가 침대에 앉았다.
아르티제아는 스스로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았다.
“사제님께서 말씀하신 걸 조금 알아봤어요.”
“예.”
“말씀하신 게 맞더군요. 톨드 관문 북쪽에 마을이 있었고, 거기에 카람 혼혈이 섞인 가정들이 주로 살았었다고요.”
“참담한 일입니다.”
사제가 카람 혼혈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호를 그었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지나치게 마음이 약하십니다. 죄의 씨앗은 빨리 처리하는 게 그 아비나 어미에게도 훨씬 자비로운 일인데.”
아르티제아는 쓴웃음이 나오는 것을 숨겼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원에서 내쳐진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충분히 벌이 될 거예요.”
“그것은 벌이 아닙니다. 악마가 어찌 감히 사원에 발을 붙이겠습니까?”
“사제님.”
아르티제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람 혼혈이 톨드 북쪽에 마을을 만들었다거나, 이런 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을 도운 다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가족이나 친척을 쉽게 모른 체할 수 있겠어요?”
“예……. 비 전하의 고우신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개개인은 덮어주세요. 하지만 대공 전하조차도 모르게 이런 일을 저지른 가신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르티제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전하께서도 이 일을 알게 되실 거예요. 전쟁의 원인이니 모르고 넘어가실 수는 없지요. 원인이 된 자도 찾아 처벌할 거고요.”
“아아! 그러시군요! 다행입니다.”
“다만, 지금은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요. 얼마 전에 조르딘 가문의 일이 있었고, 지금은 톨드 관문에서 카람의 위협이 있는 상황이니 신중해지실 수밖에 없겠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혹 대사원에 보내실 편지는 미리 써두셨나요?”
아르티제아가 물었다.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지금 저에게 주세요. 전 일단 수도로 갈 거니까요. 하지만 그 편지를 바로 전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
“사제님께서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시거나, 그 편지를 바로 대사원에 전달해야 할 것 같은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을 주세요.”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제가 그때에 대사원에 사제님의 편지를 전달하도록 할게요.”
“하지만 비 전하께 보내는 소식을 가로채이거나 누가 조작하면 어쩌지요?”
사제가 염려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에브론 대공가에 그럴 만한 주변머리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프레일과 안스가르밖에 없었다. 안스가르는 그런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사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아르티제아는 손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은으로 된 인장 하나를 꺼냈다.
“이걸 드릴게요.”
“비 전하의 인장입니까?”
“결혼 전에 쓰던 것이에요.”
아르티제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인장의 모양을 보여 주었다.
가문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 혼전의 영애들이 쓸 법한 덩굴 장미 문양이 음각된 인장이었다.
“여길 이렇게 누르면, 문양이 바뀌어요.”
아르티제아는 인장 위의 장식 하나를 꽉 누른 후에 사제에게 다시 보여주었다.
인장의 바닥 일부분이 올라왔다. 덩굴장미의 꽃잎이 양각으로 바뀌면서 거의 같지만 다른 느낌의 인장으로 변했다. 테두리도 변했다.
“이건 제가 친구에게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기 싫은 비밀스러운 편지를 받을 때에 쓰던 거예요, 사제님.”
친구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 말뜻을 사제는 곧 알아들었다.
밀라이라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 먼 땅에 있는 사제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딸의 편지 정도는 뜯어서 검사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더 쓸 일이 없어 돌려받았지만, 이 바뀐 인장을 제 하녀는 알고 있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혹, 중한 연락을 드릴 일이 있다면, 이 인장을 찍어서 비 전하의 하녀에게 보내면 되는 것이로군요.”
“네. 그러면 제게 고스란히 전달될 거예요.”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르티제아는 혼전에 인장 같은 것을 따로 쓴 적도 없었다.
인장의 문양도 이번에 앨리스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혹시라도 사제에게서 정말로 연락이 온다면 받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진짜로 봉인을 찍는 데에 쓰라고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인장에는 정교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사제에게 보여줄 때에 누른 것 말고 다른 장식을 순서대로 먼저 눌러야만 안전하게 문양이 변한다.
그러지 않고 가르쳐준 장식 하나만 누르면 그 자리에 독침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쇠털처럼 가느다랗고 짧은 것으로, 일단 손에 박히면 알고서도 찾기 힘든 가시 같은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것이다. 세드릭이 이 일을 온당히 처리하리라고 믿고 오늘로서 잊어버리면, 사제는 살 수 있다.
서랍 깊은 곳에 인장을 넣어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 살아남는 일은 없겠지.’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제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연락하려 할 것이다. 성전과 신앙이 걸린 일이다.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자라도 믿기가 어려운데, 나름대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고 열심히 생각해서 아르티제아에게 접촉해 온 자였다.
반드시 대사원에 카람 작물에 관해 알리려 할 것이다.
결국은 죽게 될 터이다. 살아날 한 줄기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알리바이가 되니까.’
아르티제아는 변명처럼 생각했다.
사제가 죽는 그 순간에 자신은 수도에 있을 것이다. 그 죽음과 그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 독은 거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부검하여 원인을 밝혀내려 하면 독살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평사제 하나가 급사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어차피 아르티제아 자신의 감정적인 위로 수단밖에 안 된다.
살길을 열어 두었다, 죽은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본인의 잘못이라며 죄책감을 덜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밀어붙이는 꼴이다.
“이렇게 마음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 전하께 말씀 올려야 하나 아닌가 정말 오래 고민했는데, 말씀 올리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사제가 다소나마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대공 전하를 믿고 기다리세요. 사제님께서 신에 관한 믿음만큼 사람에 대한 믿음도 간직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사제가 건네준 꽤 두툼한 편지를 손가방 안에 넣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세요, 사제님.”
“감사합니다, 비 전하.”
사제가 허리까지 구부려 깊이 절을 올렸다.
아르티제아는 돌아섰다.
문득 세드릭이 말한 것이 기억났다.
「우리는 함께 갈 때에 진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에,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제대로 된 길이라는 건 어떤 것이었을까?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갔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르티제아는 그 길을 자신이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수도로 돌아가야지.’
그녀는 멍하게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 같은 것은 얼마든지 체스 말로 쓸 수 있는 곳, 한 주머니의 금화나 황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음모가 꾸며지는 곳.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다.
수도에서라면 이런 망설임은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리라.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외눈박이가 정상이다. 수많은 비열한 자들 속에서는 그녀의 추악함도 희석될 것이다.
차라리 그녀는 그러기를 바랐다.
* * *
아르티제아가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손가방에서 사제의 편지를 꺼내서 읽어보는 것이었다.
유념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에브론 대공령의 가신 중 누군가가 주민들을 이용하여 카람의 작물을 재배하려 했다는 것과 이곳에서 카람 혼혈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 관계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사제는 그 끝에 자신의 평소 생각을 덧붙였다.
『이곳에는 순박하고 신실하지만, 신의 말씀에서 너무 동떨어진 백성이 많습니다. 대공가의 가신들도 충성스럽고 용맹하나 무엇이 중한지 잘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대공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는 적이 많으시니 구석구석 눈이 닿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이곳 백성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악마의 종자를 동정합니다. 추악하고 더러운 피와 뒤섞이는 일도 때때로 있는데, 파문만으로는 충분히 처벌되지 않고 있습니다.
에브론 대공령에는 사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백성들이 바른 길을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가 합니다.
대사원에서 이런 사정을 헤아려, 백성들을 훈육하고 기사와 관리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사제를 여럿 파견하심이…….』
아르티제아는 거기까지 쓱 훑어 읽고 벽난로에 편지를 던졌다. 화력 좋은 벽난로에서 편지는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그녀는 손수 불쏘시개를 들고 재까지 꼼꼼하게 흐트러뜨렸다. 습관이었다.
아마 본성에 벽난로에서 타다 남은 종이쪼가리를 주워다가 엷게나마 남아 있는 글자를 맞춰볼 만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인물이 있다면 스카우트하고 싶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렴.”
아르티제아는 평범하게 대답했다. 앨리스를 불러두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가 온 것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문은 바로 열리지 않았다. 아르티제아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하녀들이 그러는 것처럼 노크할 때에 “앨리스입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인가.
“아.”
그녀가 문을 열어보기 전에 저쪽에서 문을 열었다.
아르티제아는 깜짝 놀라서 펄쩍 뛸 뻔했다. 세드릭이 문 건너편에서 어색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밖에서 막 들어온 듯, 찬바람을 맞은 뺨이 사과색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