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3
악녀는 두 번 산다 93화
세드릭이 말했다.
“하지만 이 발전을 이끌어낸 게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 문제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으로 교섭 가능한 자가 나왔으니까.”
아르티제아의 중얼거림에 세드릭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만큼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있고, 또 2만이나 되는 전사를 모을 수 있는 영향력을 어린 나이에 가진 자가 근시일 내에 또 나타나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만일에, 정말로 그런 자가 나타났다면, 대화가 가능해진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반면, 그자를 죽이면, 카람의 발전은 크게 뒷걸음질 치겠네요. 실패 한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시도를 다시 하기 어렵게 될 테니까. 역사가 쉽게 쌓이지 않는 카람의 특성상 한 차례의 실패는 실패로만 남고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지요.”
아르티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이미 결정하신 것 같지만.”
세드릭이 멋쩍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그자와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단지 문제는 당신이 본토에서 하려는 일 쪽입니다. 지금 당장은 국내 정치 쪽이 시급하고 위험하니까요.”
“절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물론 전쟁이 있다면 에이스 카드 세 장 쥐고 포커를 시작하는 거나 다를 바 없겠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니까요.”
아르티제아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게다가 순서가 틀리셨어요.”
“순서요?”
“제가 하려던 일이 세드릭 님의 뜻보다 우선될 수는 없어요. 황제가 제국의 미래를 위하여 결정한 것은 국시, 그보다 앞서는 것은 없죠.”
전에 세드릭은 결과 없는 과정이 옳은 것이냐고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질문에 나름대로 답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 없는 과정은 옳지 않다. 목적 없는 수단 또한 옳지 않다. 미래 없는 권력은 옳지 않다.
그러니 세드릭의 목적이 우선이다. 권력 획득은 수단에 불과하다.
아르티제아는 평생 동안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채로 살았었다. 그것을 죽기 직전에야 알았다.
이제 그녀는 세드릭의 목적에 종사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니 확고하게 답할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 세드릭이 하고자 하는 일을 뒤로 미룰 필요는 없었다.
세드릭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아르티제아는 약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설마 아직도 각오가 서지 않으셨다거나, 나중에 생각하자거나, 그런 말씀을 하시진 않으시겠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자신을 주군으로 여긴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해질 따름이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도 잠시 사로잡혔다.
그러나 품에 껴안았을 때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느낌이 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었다.
“당신을 보조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보조를 받게 되겠군요.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걸릴 겁니다. 대사원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전에도 말씀드렸었지만, 본토에서라면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대사원은 부패했다. 신탁을 위조할 수 있을 정도로.
실상 권력과 재물만 있으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혈연 집단인 귀족 가문보다도 더 간단한 상대였다.
대사원과 협상할 만한 카드는 몇 개나 쥐고 있다.
카람 작물과는 문제가 달랐다. 카람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카람의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사원이 에브론 대공을 파문할 수 있는 공격 카드가 된다.
그러나 톨드 관문에서 대화를 하는 것은 군사 문제다. 여기에는 대사원이 끼어들 명분이 별로 없었다.
사령관으로서 세드릭은 분쟁 지역에 관해서 전권을 쥐고 있었다. 전시에 에브론 대공의 권한은 막강하다.
전쟁을 늦추기 위해서, 작전을 위해서, 휴전을 위해서, 포로 교환을 위해서, 맞서고 있는 군대의 장수와 접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브론 군대에게 모조리 목숨을 던지라고 명령할 권한을 갖지 않은 이상 대사원은 간섭할 수 없다.
물론 반발이 있을 것이다. 세드릭은 기꺼이 그 대화를 위해 정치적 부담을 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그가 황제의 관을 썼을 때에 북부를 다스릴 방식의 초석이 될 것이다.
정면 돌파해야 할 문제와 우회해야 할 문제는 서로 다르다.
대신 수도에서 소란을 키워야겠다고 아르티제아는 생각했다. 그녀가 국내 정치를 어지럽힐수록 세드릭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전시 긴장을 최대한 끌면서 대화는 마치 어쩔 수 없는 위기라서 시도하는 것처럼 해보지요. 물자보급 문제는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이제 사기 칠 생각도 할 줄 아시고.”
아르티제아가 웃었다.
세드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팔을 뻗었다.
“아.”
아르티제아는 그에게 훌쩍 끌려가 품에 안겨졌다. 세드릭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무리할 것은 없어요.”
“…….”
“실패해도 괜찮아요. 최악의 경우에라도 에브론 대공령은 남을 겁니다. 그러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든, 몸이든, 당신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네.”
“좋아요.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까, 제 뜻을 이해했다고 믿겠습니다.”
세드릭이 아르티제아의 머리를 톡톡 가볍게 두드리듯 자기 가슴에 눌렀다.
아르티제아는 처음에는 몸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세드릭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진지한 대화가 끝났고, 생각도 중지되었다.
든든한 품 안에서 곧 힘이 빠졌다. 세드릭의 가슴에 기대자 심장 뛰는 소리가 쿵쿵 귀에 들렸다.
심장소리와 타닥거리고 타는 벽난로의 장작소리를 듣고 있자니 졸음이 몰려왔다. 먹은 것이 소화되었는지 배도 좀 불렀다.
“그러고 보니 이왕 오셨으니 이야기해야겠어요. 조르딘 가문에 대해서 말인데요.”
“당신 뜻대로 처분하십시오.”
“그래도 되겠어요?”
“제가 오지 않았어도 어떻게 할지 계획이 이미 있었지요?”
“네.”
“그대로 해요. 이미 본성은 당신에게 맡겼습니다. 제가 처분을 내리고서 며칠 되지도 않아서 돌이킨다는 것보다는 당신이 처결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세드릭의 손이 귓가를 어루만졌다.
“졸립니까?”
“네……. 내일 도로 톨드로 출발하 실 건가요?”
“그래야겠죠.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까.”
“그렇군요.”
아르티제아는 눈을 반개한 채로 버티려고 애썼다.
새벽처럼 움직이는 세드릭의 성격상 아마 내일 그녀가 눈을 뜨기도 전에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한동안은 만나지 못한다. 운이 정말 많이 나쁘면,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혹은 운이 정말 너무 좋아도 마지 막일 것이고.
얼굴도 보지 않고 떠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그게 아쉬웠다.
세드릭의 손이 아르티제아의 뺨을 감싸 도닥였다. 아르티제아는 잠결에 떨어지려는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자 세드릭이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겨주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혀지면서 아르티제아는 살짝 졸음에서 깨어났다.
세드릭이 말했다.
“잠들기 싫어요?”
“조금요.”
“그러면 아침까지 푹 자버리도록 만들어 주겠습니다.”
아르티제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 * *
다음날, 예상대로 세드릭은 아르티제아가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없었다.
두 침실 사이에 있는 방문의 열쇠가 열쇠구멍에 꽂혀 있었다. 아르티제아는 그 열쇠를 가만히 만져보았다.
반쯤 돌려보자 열쇠는 잠금이 풀린 채였다.
아르티제아는 그것을 잠갔다가 다시 풀었다. 그리고 서랍 안에 다시 열쇠를 던져 넣었다.
리시아가 귀성한 것은 오후의 일이었다.
그녀도 찬바람을 맞아 새빨개진 얼굴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제일 먼저 아르티제아에게 불평을 토했다.
“전하를 말려주세요.”
“무슨 일 있었니?”
“같이 출발했는데, 호위도 전부 무시하고 혼자 가버리셨어요. 전하의 말은 명마라서 그렇게 달려가시면 아무도 못 따라잡거든요. 카람 부대가 더 넘어와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그렇게 가셨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그랬구나. 돌아가시는 길은?”
“중간에 마주쳤어요.”
“저런, 호위들이 쉴 틈도 없이 되돌아가게 되었겠구나.”
“네. 그렇게 서두르시지 말고 천천히 오셔도 됐을 텐데. 비 전하를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러시는 건 알겠지만, 그럴 정도라면 며칠 있다 가시지…….”
아르티제아는 어색하게 리시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드릭이 그렇게 자신을 보러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리시아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방긋 웃으며 말했다.
“비 전하께서 이렇게 급하게 수도로 가신다고 했을 때에 편지 한 통으로 괜찮을까 했거든요. 물론 두 분 충분히 말씀 나누셨겠지만, 그 일이 있었던 게 불과 며칠 전이고요. 게다가 신혼이신데…….”
“으, 음.”
“며칠 안에 오갈 수 있는 거리와 아닌 거리는 다르잖아요.”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전황이 안정적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네. 카람 쪽에 원군이 더 들어오지 않는 이상 충분히 통제 가능할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다행이에요. 전하께서 좀 더 여기에 계셔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기회에 해야만 할 일이 있으실 테니까. 나도 그래.”
“네.”
리시아가 조금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세드릭의 목적도, 아르티제아의 목적도 몰랐다. 하지만 아르티제아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것만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드릭이 그것을 붙잡으려고 한다는 것도.
세드릭도, 그녀의 아버지도 늘 그녀에게 진실을 보는 눈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리시아는 제게 그런 힘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있다면 아르티제아에게 드리워진 그늘이 무엇인지 이미 이해하고 그것을 걷어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르티제아가 말했다.
“가서 쉬렴. 피곤해 보이는데.”
“나중에 꼭 전하에게 화내주셔야 해요. 호위 떼어놓고 다니시면 안 된다고요.”
“알았다.”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였다. 소피가 들어와 물었다.
“마님, 멜 조르딘 경과 피오나 조르딘 경, 헤일리 조르딘 경이 왔어요.”
“거실에 모시렴. 곧 나간다고 해.”
“네. 차를 들일게요.”
소피가 공손히 인사하고 나갔다.
리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멜 언니를 부르셨나요?”
“그래. 너도 같이 만나보겠니?”
리시아가 잠깐 자기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지 않아서 솜을 넣은 바지에 두꺼운 스웨터, 털 가죽 조끼 차림이었다. 머리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질끈 묶은 채였다. 모로 봐도 대공비의 시녀답지 못했다.
물론 어려서부터 잘 알고 지내는 조르딘 가의 자매들 앞에서는 상관없었다.
“비 전하께서 제가 부끄럽지 않으시다면요.”
“그렇다면 같이 가자꾸나.”
리시아가 총총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아르티제아의 앞에서 문을 열었다.
거실로 나가자 세 자매가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