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4
악녀는 두 번 산다 94화
멜은 여전히 견장을 가린 기사의 차림새였다. 그러나 피오나와 헤일리는 염색하지 않은 무명으로 만든 수수한 옷을 입고 머리도 질끈 묶어 두건으로 묶어 있었다.
기사단원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멜과 달리 이 두 사람은 이제 공식적으로 완전한 평민이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는 성에서 일하는 소피보다도 신분이 낮았다.
“꿇지 말게.”
아르티제아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세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도록 해.”
“어찌 감히.”
“그랬으면 좋겠군.”
세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아르티제아가 무슨 일로 그들 자매를 불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자매들은 아르티제아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오브리가 벌인 일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오브리와 나이 차이가 적은 셋째 헤일리에 이르러서는 올 것이 왔을 뿐이라며 오히려 오브리에 대한 혐오를 내비쳤다.
「그러게 걔를 싸고돌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주제 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말했었잖아.」
그렇게 화를 내는 헤일리에게 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슬픔도, 괴로움도 있다. 불안하기도 했다.
멜은 에브론 기사답게 다른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본래부터 소심한 편인 피오나는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오브리의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에게도 남편과 자식이 있었다. 원망하는 마음이 없을 리 없었다.
헤일리는 그것보다도 좀 더 날카로운 이성의 소유자였다. 아르티제아가 불러들인 이유가 에브론 본성에 감도는 불안한 기색 때문이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책임을 묻지는 않으시겠지?’
이미 오브리는 죽었고 조르딘은 처벌을 받았다. 뒤에 남은 영향까지 그녀들이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권리와 더불어 의무가 사라졌다. 죄는 벌을 받음으로써 끝났다.
적장녀로서 백작 가문에 책임이 있는 멜은 조금 다르겠지만, 상속받을 것이 없는 피오나와 헤일리에게는 그랬다.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안에 나는 이곳을 떠나 수도로 돌아갈 걸세.”
“예.”
멜이 대표로 대답했다.
“영민의 불안감을 키울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아마도 경들에게도 탐탁지 않은 일이겠지. 대공 전하께서 톨드 관문의 요새를 몸소 지키시는 이런 시기에 대공비가 겨울 육로를 이용해서까지 대공령을 떠나 수도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치 분쟁에 겁을 내어 영민을 버리고 달아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멜이 정색했다. 아르티제아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경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네. 남해인과 통정하여 달아나려 했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떠나는 것이니, 오해를 살 만하지.”
아르티제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
그 소문은 결국 오브리가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자매는 셋 다 고개를 숙였다.
“경들을 책망하는 게 아닐세. 상황이 그렇다는 거야.”
“비 전하.”
“나는 칭송받는 대공비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네. 다시 이 영지에 오는 일이 없을 수도 있고, 다만, 원망이 대공 전하에게까지 닿거나 대공령의 결속이 깨지는 일은 없어야 해.”
이 말에는 리시아까지 놀랐다.
“그래서 멜 경.”
“예.”
멜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르티제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내 시녀장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멜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르티제아는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멜의 그 얼굴이 아론이나 마거릿보다는 차라리 세드릭을 닮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브리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네.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개인적인 일탈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네. 더 말해봐야 경들의 가슴만 아프게 할 테고.”
“비 전하…….”
“조르딘 가문에 내려진 처벌은 대공 전하께서 직접 결정하신 것이니 내가 이 자리에서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마거릿은 한 번 책임을 지고 물러난 몸이라 다시 불러들일 수 없지. 그렇다면 멜 경, 경이라면 적절한 인선일 것 같군.”
피오나와 헤일리가 숨을 들이켰다.
“내 시녀장으로서 나를 대신하여 대공령을 통할하는 역할을 맡아주었으면 하네.”
그렇게 하면 세드릭이 내린 처벌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조르딘 가문을 복권시킬 수 있다.
물론 작위를 당장 돌려줄 수는 없다. 아론과 마거릿에게 내려진 백의종군도 그대로이다.
그러나 대공비의 시녀장이라면 결코 그 지위가 백작보다 못하지 않았다. 대공령 사람들은 이것을 조르딘 백작가의 복귀라고 생각할 것이다.
조르딘 가문을 동정하는 가신이나 영민들은 모두 기뻐할 것이다.
“하오나.”
멜이 조금 더듬거렸다.
“저는 대역죄인의 혈족입니다.”
“경은 가문의 수치를 스스로 씻어 충성심을 증명했네. 군무에 밝고 대공령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며, 내외로 신임을 얻고 있으니 자네 이상의 인선은 없어. 이것은 영민을 안심시키고, 조르딘 가문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면서, 나로서도 가신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걸세.”
멜이 고개를 숙였다.
“분에 넘치는 말씀이십니다. 본성의 관리라면 대공 전하께서 이미 아가테 자작에게 맡기셨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아가테 자작에게 맡긴 것은 겨우내 내가 이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네. 군무를 전혀 모르니 그 부분을 보좌하라고 하신 것이지.”
그러나 본성은 물론이고 대공령 전체를 통할해야 하는데, 군사적 능력만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경은 대공령의 역사를 알고 있고, 아론과 마거릿의 옆에서 오랫동안 두 사람을 보조해 오기도 했어. 장차 조르딘 백작으로서 대공 전하의 바로 아래에 설 예정이었고, 또한 기사로서 군사 문제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으니 경 이상 가는 적임자는 없네.”
아르티제아의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 피오나와 헤일리가 긴장하여 멜을 바라보았다.
“어렵겠는가?”
아르티제아가 다시 물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했을 때에 이보다 좋은 해결책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오브리의 원수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닙니다.”
멜이 목멘 소리로 대답했다.
“조르딘의 딸이 비 전하께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조르딘의 딸이 그것을 갚겠습니다. 하녀로 부리겠다고 하셔도 기꺼이 평생을 바쳐야 마땅한데, 명예를 더하여 주시니 감습할 따름입니다.”
“고맙네.”
아르티제아는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진심이었다. 멜이 제안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면, 대공령에 불안 요소를 남기고 가는 셈이니까.
그녀는 이번에는 피오나에게 말했다.
“경도 멜 경을 도와 함께 대공령을 보살펴주기 바라네. 세 사람을 함께 부른 것은 이것이 멜 경 개인에게 하는 제안이라기보다는 조르딘 가문 전체가 복귀하기를 바라고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세. 부디 경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아르티제아는 마지막으로 헤일리를 바라보고 따로 말했다.
“경은 미혼이었지.”
“네.”
“마음이 허락한다면, 시녀로서 나를 따라 수도로 왔으면 좋겠군.”
헤일리의 얼굴이 흥분 때문에 순간적으로 붉어졌다가 다시 희어졌다.
“조르딘 가문은 작위를 상실했습니다. 멜 언니를 시녀장으로 삼으신 것은 대공령 안에서의 일이고, 또 비 전하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신분이 필요하니 그러신 거겠지요. 하지만 수도에서 저 같은 것이 비 전하의 시녀로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헤일리 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그렇게 치면 저는 출신지가…….”
리시아가 끼어들었다.
아르티제아가 그녀에게 더 말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복잡해지거나 번거로워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리시아의 문제도, 멜 경의 문제도, 결국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대공령 안의 일이야. 대공령을 경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에브론 대공가의 가신들 중 몇 명이 내 시녀로서 가느냐 하는 것일세.”
“대공령과 비 전하 사이가 얼마나 두터우냐 하는 것을 바깥에 과시하면서, 강제적으로 신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요?”
헤일리가 도발적으로 물었다.
아르티제아는 약간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자를 파악한 것도 그렇지만, 후자의 말도 헤일리가 자신의 의도를 전부 짚어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신뢰를 만든다. 그 말이 맞다. 요컨대 헤일리를 시녀로 삼아 데려가는 것에는 조르딘 가문에 대한 견제, 인질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르티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하니, 정말로 경을 데려가고 싶어지는군.”
헤일리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헤일리!”
놀란 피오나가 언성을 높였다. 수도까지 따라간다는 것은 또 의미가 다르다.
헤일리 개인이 아르티제아에게 충성하겠다는 뜻이든, 인질로서 따라 가겠다는 뜻이든, 피오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헤일리는 피오나를 무시했다.
“사람 사이의 신뢰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비 전하의 곁에 있을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한 차례 배신이 있었음에도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조르딘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능하고 눈치 있는 사람은 언제든 환영이야. 경의 말처럼 조르딘과의 신뢰를 강제로라도 만들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경에게 흥미가 생기는군.”
헤일리가 일어서서 아르티제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르티제아는 마지막으로 마거릿을 만났다.
마거릿은 몹시 초췌한 채로도 아르티제아에게 예를 다했다.
“어리석은 아이를 잘못 기르기까지 하여 비 전하께서 겪으셔서는 안 될 참담한 일을 겪으시게 했으니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목숨으로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날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마거릿은 무릎을 꿇은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르티제아는 손수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미안하네.”
그 이상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거릿은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듯이 눈물로 아르티제아의 손을 씻어냈다.
멜의 소식을 들은 영민들은 모두 기뻐했다.
세드릭의 처벌은 유효하여 여전히 작위는 3년 동안 박탈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공비의 시녀장이 된 멜이 백작위를 상속받지 못할 리는 없었다.
이로서 처벌은 희석되고 조르딘 가문은 용서받은 것이 되었다. 대공령에서는 조르딘의 오래된 충성이 보답을 받았노라고 여겨졌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르티제아는 대부분은 자신이 떠나고 나면 그간 있었던 일을 곧 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안심할 수 있는 익숙한 상황을 만들어주면 사람은 안주한다. 그리고 멜이 아론과 마거릿의 뒤를 잇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로부터 사흘 후, 아르티제아는 채비를 마치고 에브론 본성을 나섰다. 긴 귀로에는 겨울의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