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5
악녀는 두 번 산다 95화
13. 사교계
연회장 한중간에 설치된 분수에서 황금빛 술이 뿜어져 나왔다.
이슬비처럼 뿌려지는 술 방울에 사람들이 깔깔대면서 분수대를 피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곁에 서 있던 여자를 번쩍 들어 올려 분수대로 향했다.
“잠깐! 잠깐! 날 진짜로 저기에 처박을 거예요?”
“아까 내기에 지시지 않았습니까? 분수대에 들어간다면서요.”
“술에 빠지겠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밖에 있는 분수대에 빠지면 얼어 죽습니다.”
“술에 빠지면 댁들에게, 꺅!”
청년들은 망설임 없이 여자를 분수대에 내던졌다.
연한 색 드레스가 술을 빨아들여 노랗게 물들었다. 여자가 분수대에서 기어 나오며 신발을 벗어던졌다.
“내 발가락이나 빨아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년 중 하나가 여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와르르 폭소가 터졌다.
술을 망쳤다며 화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이어 희생자가 생겼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도 되는 양 웃어댔다. 그리고 분수대에 잔을 담그는 대신 위에서 흘러 떨어지는 술을 받아 마셨다.
먹을거리들은 사방에 쌓여 있었다.
악단의 연주 소리가 웃음소리와 난잡한 농담에 파묻혔다.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도 대낮처럼 보일 만큼 촛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천장에 매달아 길게 늘어뜨린 얇은 실크 휘장들이 불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눈가만 가려지는 나비 모양의 가면을 쓴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 휘장을 잡고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아갔다. 언뜻언뜻 비치는 자태에 남자들이 애를 태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밀라이라였다.
얼굴 절반을 가면으로 덮었어도 그 용모는 독보적이었다.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가면은 화려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난 턱선과 입매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목덜미가 시원하게 드러나도록 올린 머리에는 다이아몬드를 장식하여 움직일 때마다 빛났다. 본래부터 희고 생기 넘치는 피부에 다이아몬드의 빛이 비치자 더욱 환해 보였다.
밀라이라는 황제의 무릎 위에 앉은 미녀였다. 그러나 황제가 그녀에게 쥐여 준 권력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여왕이 되기에 족했다.
손가락만 까닥해도 숭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뒤에서는 설령 비난하고 조롱할지라도 밀라이라의 손에 스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 앞에 몸을 던질 남자가 즐비했다.
“술! 달콤한 것으로!”
밀라이라가 명랑한 목소리로 외치자마자 달콤한 로제 와인과 꿀술이 담긴 잔이 열 개도 넘게 내밀어졌다.
기대감 가득한 시선이 밀라이라를 향했다. 그녀가 제일 마음에 드는 술잔을 가져오는 자와 춤을 춰주길 두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밀라이라는 오만한 시선으로 그 잔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감싸듯이 하며 뒤에서부터 나온 마지막 잔에 보석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
화이트와인 안에 담긴 커다란 루비가 붉은빛을 반사해서 잔을 분홍빛으로 만들었다. 진주를 녹여 음료로 만들었어도 이보다 멋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곤란한데요.”
밀라이라는 잔을 손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생긋 웃어 보였다.
물론 그것은 황제였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고, 옷도 평범하고 수수한 것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감히 밀라이라의 몸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휘감으며 다가설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밀라이라는 모르는 체하고 그 팔 안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누가 누구인지는 빤한 일이지만, 가면무도회에서는 모르는 체하는 게 법이다.
황제가 느긋하고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라갔다.
“술잔을 받으면 춤을 추어주는 것 아니었나?”
“받지 않았어요.”
“억지로라도 받게 해야겠군.”
밀라이라는 인어처럼 연회장 안을 누볐다. 실크 휘장이 물살처럼 그녀의 몸을 휘어 감았다.
잡힐 듯 말 듯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것이 애가 타는 듯 황제가 손을 뻗었다.
밀라이라가 슬쩍 잡혀주었다. 황제가 웃으며 그녀의 어깨 위에 술잔을 뒤집었다. 루비가 밀라이라의 옷 속으로 들어갔다.
휘장을 쥔 여자들이 휘장으로 두 사람을 가렸다.
어차피 연회 자체가 황제의 여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황제는 밀라이라를 위해 연회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그가 참석한 모는 연회는 황제를 위하는 것이 된다.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열린 것 이라면 더더욱.
모두가 모르는 체 시선을 돌렸다.
휘장 안에서 밀라이라의 손이 나왔다. 그리고 휘장을 쥔 여자 중 한 사람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일제히 몰려든 시선이 그 여자를 향했다가 다시 떨어졌다. 이내 여자가 휘장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라이는 연회장의 2층 테이블에 앉아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악하는 것 같군.’
그런 감상을 느낀 것이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온갖 사치와 타락이 이 연회장에 있었다.
라이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왔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고팔았다. 내 가족, 내 동료만 괜찮으면 다른 인간의 인생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수렁 속에 처박았다.
그런 자신이 이때까지 보고 겪은 타락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타락한 연회장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분 단위로 금화 주머니가 사라지고 있을 이런 호화로운 타락도 그가 살아온 빈민가처럼 살고자 하는 발악처럼 보였다.
어젯밤에 밀라이라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를 찾아왔다.
「이 저택에 영들이 없다는 게 정말인가요, 선생님?」
「뭐가 그리 두려우십니까?」
라이는 난처해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아르티제아가 요구한 강령술사 노릇을 잘해냈다.
좀 지나치게 잘해냈다. 밀라이라는 그가 정말로 대단한 능력을 지닌 영능력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믿기 시작하자 라이가 부정하면 할수록 밀라이라의 믿음은 강해졌다. 그녀는 라이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공대했다.
로산 저택에 라이의 방이 생기기도 했다. 그가 몇 번을 거절하는데도 소용없이 밀라이라는 제발 거기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로산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는 황제의 시종이 골라 뽑은 사람이었다. 밀라이라가 믿고 있으니 쫓아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놈의 사기꾼이 틈을 보이기만 하면 트집을 잡아 주리를 틀겠다는 기색을 감추지도 않았다.
라이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가능한 한 자주 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밀라이라의 신뢰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밀라이라는 불안해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딸이 있을 때에는 그런 대로 모든 일이 다 잘되었어요. 그야 물론 모든 일이 다 생각한 대로 됐던 건 아니죠. 하지만 폐하께서도 그 애를 그렇게까지 미워하거나 하지는 않으셨고……이대로라면 모든 게 잘되어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후작 대부인께서는 황제 폐하께서 가장 총애하는 이가 아닙니까?」
「불안해요.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요. 아무것도 생각한 대로 되질 않아요.」
밀라이라는 그에게 매달리듯이 말했다.
「그게 다 딸이 나간 뒤로 생긴 일인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생기지 않았어요. 정말로 이 저택에는 악한 영이 없는 건가요?」
「그런 건 없습니다, 부인.」
「오래된 저택에는 오래된 영이 머무르는 법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여기 있는 영들이 로산 후작가의 영혼들이라면, 저를 저주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아르티제아가 있을 때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모가 시드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다. 그러나 황제는 로렌스를 총애했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어미인 자신도 버리지 않을 터였다.
이제는 달랐다. 황제는 여전히 밀라이라를 아꼈으나 가족이라는 가면에는 금이 갔다.
로렌스는 자주 황제를 알현하고 문안을 올렸다. 전처럼 중요한 자리에도 자주 불려갔다.
그러나 예전처럼 셋이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없어지다시피 했다.
그것은 처음에는 로렌스의 탓이었다. 그는 밀라이라와 함께 황제를 찾아가는 것보다 황후궁을 더 자주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황제가 굳이 로렌스까지 부르지 않았다.
밀라이라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젊은 시절처럼 온갖 화려한 모습을 연출하고, 황제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다. 느긋하게 아내 노릇을 하던 시기는 끝났다.
그녀가 필사적인 것을 황제도 알았다. 그렇기에 그녀를 위로하겠다며 자주 연회를 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총애는 로렌스가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평생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과연 로렌스가 황제가 된다고 해서 다시 자신의 아들로 돌아올까?
확신할 수가 없었다. 황후의 양자가 되고 황태자가 된 뒤에 되돌아오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르티제아는 아예 집을 나가버렸다. 저택과 연금을 남겼다지만, 그게 잡음 없이 연을 끊기 위해서라는 것은 밀라이라도 알고 있었다.
로산 저택에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이 밀라이라는 두려웠다.
「그래도 딸은 로산 후작가의 핏줄이니까요. 혹시 그 애가 나가버린 것 때문에 영들이 저주를 시작한 거라면…….」
「영혼에는 사람을 저주할 힘이 없습니다, 대부인. 사람을 저주하는 건 사람이죠.」
밀라이라가 위태로워진 이유는 아르티제아 때문이다.
그러나 밀라이라는 그 모든 일의 인과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정도로 영리하지는 못했다.
다만 아르티제아가 나간 뒤로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혹 로산 저택에 붙어 있는 후작가의 영혼들이 자신을 저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라이가 여기 온 것도 밀라이라가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연회장에서 자신에게 저주를 하거나 황궁의 악령이 붙으면 알려달라고 말이다.
‘팔자 좋아졌다, 라이.’
라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주로 땅콩을 빠드득 씹었다. 본래의 생활 수준이었다면 향기조차 맡아보지 못했을 고급스러운 증류주를 다 마셔보고 말이다.
슬슬 일어나려던 때였다.
밀라이라가 다가왔다. 술에 젖은 옷 대신 두툼한 가운을 걸쳐 입고 가면도 얼굴 전체를 가리는 수수한 흰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라이는 그녀를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애당초 밀라이라는 얼굴을 가리는 정도로 가려지는 용모가 아니다.
“선생님.”
라이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절 아는 척하지 마십시오.”
라이는 서두르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밀라이라가 황제를 팽개쳐 놓고 왔는지, 다른 여자들 품에 안겨 놓고 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알아서도 안 되었다.
이 신뢰는 진짜로 위험수위까지 올라왔다.
아르티제아의 지시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는 곧 돌아올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