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03)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03화(103/177)
나는 에이든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짝, 소리 나도록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네 존재 의미는 행복해지는 거야.”
“……!”
“나한테 거슬리는 걸 치워주겠다는 마음은 고마워. 근데 그건 나도 할 수 있거든.”
나는 씩 웃었다.
에이든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가장 중요한 건 네 행복이야.”
“…….”
“그러기 위해선 복수해야지? 시원하게 복수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이거든!”
멍하니 날 바라보던 에이든이 고개를 숙였다.
“하하.”
그의 입술에서 살짝 마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에이든이 그의 뺨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감싸 쥐었다.
말랑하게 생겨서 몰랐는데, 에이든의 손은 굉장히 컸다.
내 손을 다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에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매가 무르익은 꽃처럼 흐무러졌다.
“주인님이 좋아요.”
“나도 에이든이 좋아.”
나는 흐뭇하게 웃고 손을 떼었다.
초콜릿과 나 외에도 에이든이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서 걷는데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다 치워버리고 싶어.”
“응? 뭐라고 했어?”
“아니에요.”
에이든이 천사 같이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 * *
신전에서 나온 후, 나는 렐리아 아케이드로 향했다.
약속된 커피 하우스의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가자 루크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본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뭐야?”
루크반 놈이랑 동시에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하니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왜 혹을 달고 있어?”
“왜 혹을 달고 왔어?”
“…….”
“…….”
또 똑같은 말, 똑같은 표정.
거기에 입 다무는 타이밍까지 똑같아서 더 짜증이 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함께한 세월이 오래되었으니.’
사이가 안 좋아졌어도 이런 데에서 또 티가 났다.
‘……그래도 루크반 녀석이 저놈보단 낫지.’
나는 루크반 옆에 앉아 있는 율리시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여기 왜 있어?”
“니케가 날 찾았다고 해서.”
“내가? 아.”
묻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오늘 루크반과 약속을 잡은 이유.
그건 라파엘과 남보라 머리 영애를 봤다는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율리시즈가 목격자였어?’
하필이면 이렇게 얽히다니.
나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에이든을 옆에 앉혔다.
“이 커피 하우스는 밀푀유가 특히 맛있거든. 에이든도 좋아할 거야.”
루크반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물었다.
“뭐야, 밀푀유 시켜놓으라는 게 저놈 때문이었어? 그 꽃대갈은 누군데?”
“내 호위. 꽃대갈이라고 하지 마.”
“……그럼 꽃머리.”
루크반은 입술을 삐죽이더니 말을 바꿨다.
나는 좀 놀라서 루크반을 쳐다봤다.
‘쟤가 이렇게 말을 바꾸다니……. 절대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애가 아닌데.’
이것도 로르아 공작 부인의 훈육 결과일까?
저번부터 놀랍기만 했다.
그때, 율리시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니케.”
“좀 더 오랫동안 안 봐도 될 것 같았는데. 그래서, 네가 그 목격자야?”
“맞아. 사실은 내가 바로 알려주고 싶었지만……. 니케가 싫어할 거 같아서.”
율리시즈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한때는 이런 그가 따뜻하게 느껴졌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냐.
“에디타 때는 셀레나가 있는데도 밀고 들어오더니.”
착한 셀레나가 ‘에디타를 위해서 참을 수 있다’고 해서 다행이지.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초조했거든. 내가 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든 하고 싶었어. 셀레나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 말대로 이기적인 짓을 많이 했어.”
“…….”
“세 사람에겐 계속 사죄하고 있어. 변하려고 노력 중이야. 이기적인 것도, 형의 죽음을 다른 사람한테 투영하는 것도. 이젠 하지 않으려고.”
“…….”
“니케, 네가 잘못되었다고 알려줬으니까.”
율리시즈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애써 미소 지은 채.
“예전처럼 지내는 것까진 안 바라. 그냥 이렇게 내가 네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네가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나는 그거면 충분해.”
초봄의 새싹 같은 눈동자는 애처로울 만치 조심스러운 빛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율리시즈는 진심일지도 모른다.
‘딱 죄책감이 강한 이 순간에는 말이야.’
“언니에게 미안하죠?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미카린. 날 봐.”
“……율리시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또 한 번 니케를 모른 척하겠어. 그렇게 내 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수십, 수백 번이라도.”
“꼭 사랑한다는 말 같다, 그거…… 에헤.”
“웃어. 네가 그렇게 웃을 때가 난 제일 행복하다.”
죄책감 따위, 얼마든지 쉽게 구겨버릴 수 있는 놈이니까.
‘네가 미카린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날 이용했듯이, 나도 널 이용해 줄게.’
나는 율리시즈에게 물었다.
“그래서, 라파엘과 같이 있던 영애의 얼굴은 못 봤다고?”
“응, 어두운데 언뜻 본 거라서.”
“그럼 시세리아 영애인지, 아이라헬 영애인지 모르겠네.”
두 사람은 키도, 체형도 비슷하다.
머리카락 역시 둘 다 살짝 곱슬기 있는 데다가 길이도 고만고만하고.
“목격했을 땐 어땠어?”
“라파엘과 함께 카바나에서 나온 다음에 일행이 아닌 척 멀어졌어.”
“그 외에 별다른 행동은?”
“없었어. 금세 인파에 섞여 들어서 놓쳤고. 그땐 너랑 얽힐 줄도 몰랐으니까 그렇게까지 주의 깊게 보지 않았거든.”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아.”
“음, 머리카락을 이렇게 넘기긴 했는데 얼굴은 안 보였어.”
율리시즈가 머리카락을 위로 넘기는 시늉을 했다.
특이한 점은 없었다.
‘머리카락을 넘길 때 보통은 저렇게 하니…… 잠깐.’
“머리카락 넘기는 거, 다시 해봐.”
“응? 이렇게?”
율리시즈가 다시 머리카락을 넘겼다.
왼손으로.
“그 영애도 왼손으로 넘겼어?”
“어…… 맞아. 오른손이 비어 있었는데도.”
“…….”
“상관없지 않아? 아이라헬 영애와 시세리아 영애, 둘 다 오른손잡이잖아.”
율리시즈의 말에 루크반이 팔짱을 꼈다.
“어차피 시세리아 영애야. 오늘도 너한테 시비 걸었다며? 아이라헬 영애는 널 도와줬고.”
물론 나와 율리시즈 모두 루크반을 무시했다.
‘둘 다 오른손잡이니까 사소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생각하는데, 루크반이 에이든을 보고 툴툴거렸다.
“니케 옆에 앉아 있을 거면 적어도 예법은 익히지? 나이프를 왜 이렇게 못 다뤄?”
에이든은 착하게 얌전히 밀푀유를 먹는 중이었다.
다만 접시 위에는 조각난 부스러기가 가득했다.
“걱정 마. 에이든은 다른 칼질을 잘하니까. 그리고 밀푀유는 원래 깨끗이 먹기 힘들어.”
귀족들이야 몸에 밴 예법 덕에 깔끔히 먹지만— 잠깐.
“……교정한 거야.”
“……!”
율리시즈가 깨달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예법에는 언제 어느 쪽 손을 사용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다.
그래서 사교계에 나오기 전에 왼손잡이를 교정한다고 들었다.
특히 식사나 글씨 쓰기 같은 일은 더더욱.
“아무리 교정해도 결국 편한 건 왼손으로 하기 마련이지.”
“그 말은…….”
“그날 와인잔, 왼손으로 쥐었어.”
‘대연회 날, 음료대 앞에 있던 내게 아이라헬 영애가 다가왔을 때!’
내가 와인을 골랐던 것처럼, 아이라헬 역시 음료대에서 와인을 한 잔 골라 가져갔다.
“아이라헬 영애 말이야.”
“……!”
“시세리아 영애도 왼손을 쓸 확률은?”
“적어도 악세렌궁에 있는 내내 그런 적은 없었어. 무엇보다…… 체스.”
“체스?”
막시민과 따로 이야기 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테이블 위에는 시세리아와 막시민이 두던 체스판이 있었다.
나는 그 위의 체스말을 움직여 막시민에게 무혈입성을 설명했고.
그래서 정확히 기억한다.
“시세리아 영애가 체스판에서 빼낸 말들이 전부 오른쪽에 있었어.”
“……오른손으로만 체스말을 움직였다는 뜻이네.”
가만히 듣고 있던 루크반이 이해 안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아이라헬 영애라고? 근데 왜 자꾸 널 도와주지?”
“니케를 도와주는 게 아냐. 아이라헬 영애가 시세리아 영애를 이용하고 있는 거지.”
“시세리아 영애처럼 빤히 보이게 행동하는 건 오히려 상대하기 쉬워. 무슨 말인지 루크반, 너도 이제 알 텐데?”
내 말에 미카린을 떠올렸는지, 루크반이 “으.” 하며 머리칼을 흩트렸다.
율리시즈가 말했다.
“이상하다곤 생각했어. 니케가 하는 일마다 더 좋은 일을 아이라헬 영애가 하니까.”
내가 고아원에 기부하자, 아이라헬은 고아원의 화재를 막았다.
내가 국경 안정을 위한 기금을 모집하자, 아이라헬은 국경의 몬스터를 토벌하고 이민족과 프레안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때문에 니케는…….”
율리시즈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삼켰다.
“내가 왜?”
“……아이라헬은 상위 호환, 니케아르샤는 하위 호환. 이런 말을 들었어.”
“아하.”
“그딴 말이 어딨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루크반은 분개했다.
“아무래도 라파엘은 나보다 아이라헬을 더 주목시키고 싶나 본데?”
“아이라헬이 더 뛰어난 각성자처럼 보이니까. 실제로 니케가 역대급 각성자가 아니냐는 말이 쏙 들어가고 있고.”
라파엘의 목적이 뭔지 알겠다.
“아이라헬이라는 다른 구심점을 만들려는 거네. 예비 권능자들이 내가 아니라 아이라헬 쪽에 모이도록.”
뭘 위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아직도 그 강제 각성 사업을 포기 못 했나?
“짐작 가는 거 있어? 율리시즈, 넌 예전에 강제 각성 사업에 함께 했잖아.”
“그리고 내 손으로 고발했지. 덕분에 걔네들과는 완전히 멀어졌고.”
“…….”
“사실 이번에 떠보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하지만 니케가 워낙 크게 터트려서 계속 진행하긴 힘들걸.”
“……그래.”
그렇다면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어쨌든 확실한 건 있었다.
‘라파엘은 내가 가짜 각성자라는 걸 모르나 보네.’
예비 권능자들이 내게 모여봤자 난 각성시켜 주지 못하는데.
그만큼 내가 가짜 각성자 행세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라파엘의 진짜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그 쓰레기 불륜충의 계획은 망가트려 주는 게 예의겠지.’
“어쨌든 말해줘서 고마워. 가자, 에이든.”
루크반이 미간을 찡그렸다.
“벌써 가게? 곧 저녁 시간인데. 밀푀유도 손도 안 대고, 저 꽃머리만 먹고.”
“그냥 보내줘. 나랑 식사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
율리시즈가 쓰게 웃으며 루크반을 만류했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줘, 니케.”
* * *
프라이빗 룸에서 나온 후.
니케아르샤는 에이든에게 물었다.
“어땠어, 밀푀유?”
“맛있었어요.”
“그래. 그리고 노파심에 말하는데, 아이라헬 영애는 가만히 둬.”
에이든은 니케아르샤를 빤히 바라보다 생긋 웃었다.
“응, 당연하죠.”
그의 주인님은 무른 것 같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늘 밤 바로 처리하려고 한 걸 어떻게 알았을까?’
주인님께 밉보이고 싶지 않으니 일단은 처리를 보류할 생각이었다.
대신 에이든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이야기하는 내내 어떤 사람이 자꾸 문 앞을 서성였어요. 다른 방에서 들락날락거리면서.”
“엿들었어?”
“엿듣진 않았어요. 문에 바짝 다가오진 않더라고요. 그냥 확인하는 것 같았어요. 발걸음이 가벼운 걸로 봐선 여성이었고요.”
“뭐지?”
“물어볼까요?”
“물어볼 수 있어?”
그 말에 에이든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프라이빗 룸 중 하나를 활짝 열었다.
바로 옆방도 아니라서 니케아르샤는 깜짝 놀랐다.
‘멀리 있는 방인데도 어딘지 안단 말이야?’
그리고 니케아르샤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다.
“어, 뭐예요?”
바로 룸 안에 있던 사람이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사람이 니케아르샤를 발견하고 숨을 삼켰다.
“고, 공녀? 왜 갑자기 문을…….”
“저야말로 궁금하네요.”
니케아르샤는 팔짱을 꼈다.
“노세넥 부인이 왜 제가 있는 룸 앞을 서성였는지.”
“그, 그걸 어떻게……!”
기함하던 노세넥 부인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정말 공녀의 정보력은 무서울 정도예요.”
이번엔 정보력이 아니라 에이든의 기감이 뛰어난 것뿐이었지만.
니케아르샤는 굳이 오해를 풀지 않았다.
노세넥 부인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손짓했다.
“일단 들어와요.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니케아르샤는 에이든과 함께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왜 서성였던 건데요?”
“우연히 공녀가 커피 하우스에 들어간 걸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이야기? 혹시 금사 카페와 관련된 일인가?’
니케아르샤는 금사 카페(금단의 사랑 카페)에 잠입해 노세넥 부인을 설득(?)해서 백장미궁에 이름을 올렸다.
노세넥 부인이 따로 할 말이라면 그것밖에 없다.
“아아, 금사 카페요? 일단 제 요구를 들어주셨으니 노세넥 부인을 폭로할 생각은 없어요.”
“그, 그게 아니라!”
노세넥 부인이 얼굴을 붉혔다.
“공녀가 걱정되어서요. 기껏 한 일이 전부 다 묻히고 있잖아요. 이렇게 되면 예비 권능자들이 다 아이라헬 영애에게 갈 텐데.”
“……?”
“강력한 권능을 각성시키는 건 각성자의 명성에도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설마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죠?”
당연히 몰라서 쳐다본 게 아니다.
왜 노세넥 부인이 이렇게 안달복달하는지 의아해서 그런 거지.
‘그러고 보니 경합 때도 그랬지.’
“어쩌실 생각이세요, 공녀.”
“귀빈 접대 경합이 시작되었잖아요. 이건 공녀에게 너무 불리해요!”
자신보다 노세넥 부인이 더 안달복달했었다.
그때도, 지금도 왜 그러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부인과 무슨 상관인데요?”
그 말에 노세넥 부인이 몸을 바로 했다.
그것만으로 귀부인 특유의 우아함과 기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 이제 확실하게 제 노선을 정했어요.”
“……?”
“공녀에게 줄을 설게요!”
“……!”
당당한 선언에 니케아르샤의 표정이 변했다.
노세넥 부인은 훗, 미소 지었다.
‘당연하지.’
자신은 무려 백장미궁의 책임자다.
사교계의 명사 중의 명사로 모든 영애가 자신의 눈에 들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런데.
“부인은…… 불륜충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