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07)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07화(107/177)
* * *
오늘도 신문에는 전부 금사 카페 이야기뿐이었다.
아이라헬의 훈장 수여식은 주목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탓에 아이라헬은 내내 저기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어서 오세요, 라덴 님.”
바로 프레안을 가지고 있는 이민족.
그가 직접 제도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라덴이라 소개한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미남자였다.
‘국경에서 보았던 사람은 아닌데……. 더 상급자인가?’
단순히 상인은 아닌 것 같았다.
프레안 광산을 소유한 권력자인가?
그에게선 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야성적이면서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대가 레베르크 무리를 토벌한 각성자인가?”
야만인답게 무례했지만, 어쩐지 그게 어울리는 사내였다.
‘바로 각성자라는 것부터 언급하네.’
이민족들도 뛰어난 각성자에겐 호의를 느낄 터.
느낌이 좋았다.
아이라헬은 미소 지었다.
“네, 맞아요.”
“레베르크 무리가 제국 국경을 넘어 민가를 습격한 게 사실인가?”
“저도 깜짝 놀랐어요. 다행히 큰 피해가 나기 전에 토벌할 수 있었지만.”
“……레베르크는 영역 동물이라 거기까진 가지 않을 텐데.”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라헬은 당황한 기색 없이 눈꼬리를 내렸다.
“아아, 역시 그랬군요.”
“……?”
“사실 저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요. 민가를 공격했다는 소식에 일단 토벌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깊게 조사하진 않았지만.”
“…….”
“레베르크가 먼저 민가를 침범한 일은 여태 없었잖아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공녀가 국경 안정을 위한 기금을 모집할 때 일이 생겨서…….”
몬스터가 민가를 공격했다는 소문이 돌면 기금 모집은 더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
“……공녀?”
“아, 아니에요. 몬스터가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죠. 설마…….”
아이라헬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는 프레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값은 당연히 높게 쳐 드릴 거예요.”
“…….”
“여러분은 프레안을 필요로 하지 않잖아요. 마도 술식이 다르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라헬이 목소리를 낮췄다.
“부족끼리의 전쟁이 격화되었다는 소식이 있던데.”
그 말에 라덴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아이라헬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전쟁에도 자금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프레안 거래가 좋은 자금 조달책이 될 거예요.”
라덴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오만한 제국은 부족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좋겠지. 이쪽의 정보를 줄 필요는 없으니까.’
“글쎄. 제국과 뒷거래해서 승리하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은데.”
그 대답에 아이라헬은 확신했다.
‘역시 평범한 상인은 아니야.’
전쟁의 승리를 꼭 제 승리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아이라헬은 뛰어난 각성자로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때요?”
라덴이 심드렁하게 아이라헬을 바라보았다.
“각성자.”
“……!”
“당신, 권능자죠? 그것도 아직 각성하지 못한.”
아까와 눈빛이 달라진 라덴을 보고 아이라헬이 미소 지었다.
“당신을 각성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각성자라면.”
“…….”
“좀 거래할 마음이 들려나요?”
* * *
금사 게이트가 온 제국을 휩쓴 가운데.
권력가들이 모인 사교계에는 새로운 소문이 돌았다.
“프레안 거래를 위해 이민족이 제도까지 왔다면서요?”
“세상에, 그 폐쇄적인 이민족이 여기까지요?”
“정말로 거래가 성사되었나 보네요. 확답을 안 하는 아이라헬 영애를 보고 헛소문이라는 사람들도 있었잖아요.”
바로 아이라헬이 이민족과 프레안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소문이었다.
가십 거리는 아무리 흥미로워도 가십 거리일 뿐.
귀족들에겐 프레안이 가져다줄 막대한 이득이 우선이었다.
“진짜면 어서 아이라헬 영애한테 줄을 서야 하는 거 아니에요?”
“티파티에라도 초대해 볼까요?”
“잠깐. 리빌톤 가에서 연회를 연대요!”
때마침 소문에 맞춰 리빌톤 가에서 연회를 열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리빌톤 가로 향했다.
“저기 봐요. 정말 이민족이 있어요.”
“쉿! 이민족이라고 하지 마세요. 듣고 기분 나빠서 프레안을 안 주면 어떻게 해요.”
아이라헬의 곁에는 이국적인 생김새의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제국인보다 확연히 더 큰 체구.
맹수처럼 위압적인 생김새.
묘하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까지.
‘사, 상인 맞나? 야만족이라서 그런지 상인도 난폭해 보여…….’
‘이민족들은 식인도 한다는데…….’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프레안이 가져다줄 이득 앞에서는 용감해지는 법.
“하하, 아이라헬 영애. 이분들과 프레안 거래를 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기다리고 있던 질문에 아이라헬이 싱긋 웃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각성자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라덴은 분명 솔깃해했으니까.
“제가 곧 라덴 님을 각성시켜 줄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프레안이 필요하고요.”
“그대가?”
“응, 제가 당신의 권능을 이끌어줄게요.”
“……그거 기대되는걸.”
프레안 거래는 이미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라덴 님한테 직접 듣는 게 좋겠어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아이라헬 옆의 이민족에게로 쏠렸다.
아이라헬은 느긋하게 라덴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제 이것으로 다시 모든 명성이 내게로 향하겠지.’
귀족들은 프레안을 얻고자 경쟁적으로 아부할 테니까.
니케아르샤는 이제 자신의 발끝에도 따라오지 못할 터.
‘의외로 시시하게 끝났어.’
아이라헬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거래할 생각 없다.”
라덴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렇게 당당히 연회까지 열며 이민족을 소개하길래 당연히 거래가 성사된 줄 알았는데…….’
‘생각이 없다고?!’
제일 당황한 건 아이라헬 본인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라덴 님.”
“글쎄.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라덴은 그저 느긋했다.
여유로운 포식자처럼.
“……저는 모르겠는데요. 분명 우리 대화가 잘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모르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
“거래 조건이 마음에 안 드는 거라면…….”
그때였다.
“나는 알 것 같은데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연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니케아르샤가 서 있었다.
‘델로시프 공녀?!’
아이라헬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니케아르샤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라덴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건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라덴이 제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신경 써서 체크했다.
니케아르샤가 영악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그래, 라덴과 짜고 날 속였을 리는 없어.’
그리고 아이라헬의 예상은 맞았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일부러 몬스터를 자극해서 민가로 유인해 놓고 토벌했는데, 뭘 믿고 거래를 하겠어요?”
“……!”
“거래의 기본은 신용이잖아요?”
니케아르샤가 차분히 말한 내용이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잠깐. 일부러 몬스터를 자극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이라헬 영애가 그랬다는 거야?!”
경악에 찬 목소리가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워낙 엄청난 말이라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아이라헬은 단호한 태도로 외쳤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나요, 공녀?”
“아이라헬 영애의 권능자 중엔 <의태> 권능자가 있죠.”
“……!!”
아이라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대체 그걸 어떻게?!’
세상에서 단둘밖에 모르는 사실이다.
직접 그 권능을 각성시킨 아이라헬.
그리고 의태의 권능자 본인.
절대 새어나갈 리 없는 비밀이었다.
“레베르크는 강력하지만, 영역에 침범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 몬스터예요.”
니케아르샤의 목소리가 명료하게 드넓은 홀을 장악했다.
“하지만 새끼로 의태 해서 민가로 유인하면 다르죠. 레베르크는 무리의 새끼가 공격당했다고 착각해서 민가를 공격할 테니까.”
“…….”
“아이라헬 영애가 제일 잘 알지 않나요? 직접 실행했으니까!”
아이라헬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니케아르샤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를 알고 있다.
어떤 말이 안전한지 예상할 수 없었다.
‘설마 국경에 미행이 있었나? 의태 하는 것을 목격해서 증거로 남겨놓았다면…….’
하지만 그때부터 자신을 경계했다고?
꽤 호의적으로 다가갔는데 어째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이대로 침묵하면 기정사실이 될 거야.’
벌써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귀족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녀가 내게 화가 난 건 이해해요. 저도 그 소문을 듣고 놀랐으니까요. 상위호환이니, 하위호환이니.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라헬의 말에 니케아르샤는 미소 지었다.
‘아하,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으니 메신저를 공격한다?’
니케아르샤의 말에 대한 신뢰도 자체를 떨어트리겠다는 거다.
‘꽤 순발력이 있지만, 실수했어.’
니케아르샤가 씨익 웃었다.
“그런 말에 휘둘리는 편이 좋지 않아요? 그게 영애의 뜻이니까.”
“내 뜻을 오해하고 있는—”
“시세리아 영애.”
“……!”
니케아르샤가 연회장의 한켠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이 있지 않나요?”
그 말에시세리아가 앞으로 나왔다.
아이라헬이 필사적으로 시세리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시세리아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아이라헬 영애의 부탁을 받고 고아원에 불을 냈어요.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제겐 불의 권능자가 있으니까.”
귀족들이 “맙소사……!” 하며 입을 가렸다.
“아이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아이라헬 영애가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권능으로 화재를 조절하면 어차피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라고.”
“거짓말!”
아이라헬이 소리쳤다.
저건 정말로 거짓말이다.
아이라헬이 시세리아를 꾀어내 불을 지르게 한 건 맞다.
‘언제 내가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바로 좋다고 했으면서!’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시세리아 영애, 공녀한테 협박이라도 당한 거예요? 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요. 아이라헬 영애의 협박 같은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저질렀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회개하고 싶어요.”
시세리아는 모든 책임을 아이라헬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니케아르샤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당연하지. 나한테 들킨 이상 시세리아는 네게 모든 죄를 덮어씌울 거거든.’
시세리아는 모략에도 능하지 않고 성격도 그냥 그랬다.
황비가 버림패로 쓸 정도로 다루기 쉬운 말이랄까.
‘쓸 때는 좋았겠지. 하지만 관리를 좀 잘하지 그랬어.’
방화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합 건으로 시세리아는 니케아르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이라헬은 안심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시세리아 같은 사람에겐 증거가 없어도 괜찮거든.’
강하게 추궁하며 당근을 흔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허어, 고아원에 일부러 불 지르고 애들을 구한 척 쇼한 거였어?”
“진짜인가 봐. 시세리아 영애가 자신의 죄를 밝히면서까지 공녀의 편을 들 리도 없잖아. 대놓고 시비 걸었었는데.”
“그럼 몬스터를 유인해서 민가를 습격하게 만든 것도?”
“같은 수법이잖아. 불내고 구하고, 몬스터를 습격시키고 구하고.”
“그 어린 애들이 불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안 다쳤다고 다가 아닌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물론 그중에는 자신의 잇속부터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프레안 거래는 아예 날아간 거야?”
누군가의 말에 니케아르샤가 말했다.
“거래가 날아가도 상관없어요.”
“아니, 그래도—”
“제국에 프레안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소문. 못 들으셨어요?”
“……?!”
“그, 그게 정말이오?!”
격한 반응에 니케아르샤가 “어머.” 하고 입을 가렸다.
“귀한 정보였구나. 아버지가 제르노 오라버니랑 둘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아, 어쩌지? 혼나겠네.”
니케아르샤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귀족들 사이에 새로운 파란이 불었다.
* * *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군.”
라덴— 아니, 타하르의 말에 그 곁의 수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명인이랍시고 어깨에 힘주더니. 고기 조각 하나에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군요.”
“그보다는 몰이 당하는 양 떼에 가깝지 않나?”
“예?”
수하가 의아하게 타하르를 바라보았다.
타하르의 시선은 아까부터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니케아르샤에게.
“몰이꾼이 모는 대로 움직이잖아.”
“아아.”
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한 발 늦었죠. 저 사기꾼의 가면은 데칸께서 벗길 생각이었는데.”
“아니, 오히려 좋은 구경을 했어.”
타하르가 미소 지었다.
“저게 그 ‘공녀’인가.”
“레베르크가 먼저 민가를 침범한 일은 여태 없었잖아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공녀가 국경 안정을 위한 기금을 모집할 때 일이 생겨서…….”
아이라헬이 모함하려고 했던 공녀.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희생양이라 생각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희생양이 아니라 전사였군.”
그것도 아주 탁월한 사냥꾼이었다.
수하가 깜짝 놀라 타하르를 바라보았다.
전사라니.
그건 서부의 부족들에게 의미가 깊은 말이었다.
“제국에 조금 더 머물러도 괜찮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