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1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10화(110/177)
* * *
볕 좋은 오후, 테라스.
“그래서? 로사래빗 상단이 진짜 니케 꺼야?”
“진작 말해주지! 벨린다랑 아이프릴은 알고 있었다며.”
에디타와 셀레나가 블루레몬에이드를 쪽 빨며 말했다.
나는 하하 웃으면서 답했다.
“두 사람은 상단과 협업을 했으니까.”
“그래도 서운해. 둘 말고 또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던 거지?”
“으음……. 아켈로스 대공 전하께서 알고 계셨는데.”
“아켈로스 대공?!”
깜짝 놀라 펄쩍 뛰는 셀레나 옆에서 에디타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니케, 대공 전하와는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긴. 그냥 여러 가지로 협력하는 사이지. 이번 프레안 광산도 사실 대공 전하께서…….”
설명을 하는데 자꾸 두 사람이 마시는 블루레몬에이드에 시선이 갔다.
‘푸른빛이 이스칼리온의 눈과 조금 닮지 않았나?’
아니, 이스칼리온의 눈은 훨씬 더 깊은 빛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셀레나가 하고 온 브로치, 검은 깃털이 꼭 이스칼리온의 머리카락 같아.’
이스칼리온의 머리카락은 저렇게 빛을 다 흡수한 것처럼 짙은 색이다.
그러면서도 찰랑찰랑 매끄러워서 품위 있는 광택이 나고, 또—
“……케? 니케!”
“어?”
“설명 마치고서 갑자기 멍해져서.”
“아까부터 계속 그러네. 컨디션 안 좋아?”
셀레나와 에디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긴. 사실 들었어. 오르센 후작 영식이랑 일이 있었다며?”
“그놈한테 속 뒤집히는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저조한 거 아니야?”
“어? 어……. 그렇지.”
얼떨떨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속으론 놀랐다.
‘맞다. 그랬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어!’
클레아스 놈 때문에 그렇게 빡쳤었는데 완전히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날…….
“꽤 괜찮은 풍경이지 않나?”
이스칼리온이 내 손을 잡은 채 말했다.
하늘은 계속해서 색을 바꿔가고 있었고, 발밑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역시 그 하늘의 색을 그대로 받아 반짝거렸다.
마법등의 오렌지빛.
강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
“위로해 주려고 일부러 풍경 좋은 데로 온 거예요?”
“경치 좋은 곳에 가면 보통은 기분이 나아진다더군.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 없지만.”
이스칼리온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푸른 눈동자에 나만이 온전히 담겼다.
“지금은 알 거 같아.”
“…….”
“좋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거.”
살랑살랑—
밤바람이 내 목덜미와 이마를 스쳤다.
이스칼리온의 목소리는 그보다 더 짙은 궤적을 남기며 내게 감겨들었다.
여전히, 아직도.
내 귓가에는 이스칼리온의 목소리가 맴돌고 있다.
“…….”
다정하지만 위로에 서툰 남자.
서툴면서도 최선을 다해 위로하는 남자.
이스칼리온은 그런 사람이었다.
“흐음? 기분이 안 좋기만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셀레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쳐다봤다.
“아, 아니, 뭐. 암튼 그것 때문에 오늘 만나자고 한 거야? 내가 기분 안 좋을까 봐?”
“딱히 그런 것까진 아니고.”
셀레나가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옆에선 에디타가 방긋 웃었다.
‘내 기분이 안 좋을까 봐 일부러 찾아왔구나.’
이제 내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
셀레나와 에디타.
둘 다 회귀 전에는 없던 인연이었다.
왠지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셀레나가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그, 전에 아이라헬이 널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막 칭찬했던 것도 걸리고…….”
별걸 다 신경 쓰고 있었구나.
“됐어. 사람의 행동을 계산 없이 선의로 받아들이는 것도 셀레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해.”
“이러니까!”
셀레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진짜 이러니까 내가 널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우와, 셀레나가 당사자한테 솔직하게 구는 건 드문 일인데. 진귀한 구경을 하네.”
“에디타!”
셀레나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에디타가 “아하하!” 웃었다.
에디타가 물었다.
“아무튼 대공 전하께서 협력한 게 이번만이 아니지 않아?”
“맞아. 사실 금사 카페에 잠입했을 때도…….”
“뭐?! 그런 데를 잠입했단 말이야?”
셀레나와 에디타는 꽤 서운해 보였다.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은 말해줄 수 없지만…….’
나는 말할 수 있는 것들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래서 같이 영상도 봤어.”
“그 늦은 밤에 밀폐된 공간에서 둘이 딱 붙어 앉아서 영상을 봤단 말이지.”
“그리고 다음 연회는 파트너로 함께 가기로도 했고.”
“흐음, 연회의 파트너도 선점했구나?”
“아, 그리고 대공 전하는 의외로—”
매운 걸 잘 못 먹어.
북부 사람들은 보통 매운 걸 좋아하는데도 말이야.
그런 말을 하려다가 입이 딱 다물렸다.
‘뭐지?’
이스칼리온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나만 아는 그런 것들은…….
‘아니, 나만 아는 건 아니지. 유스릴이나 대공가의 총집사인 신시아도 알 테고.’
그럼 말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왠지 말하고 싶지 않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고개를 드는데, 에디타랑 셀레나가 묘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왜?”
“흐흐흐흥,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니케, 아까부터 대공 전하 이야기만 하네.”
에디타의 말에 아차, 했다.
“미안. 지루했어?”
“아니 아니! 내가 먼저 물었잖아. 그런 게 아니라…….”
“니케가 어떤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건 드무니까.”
그랬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말했다.
“협력 관계라 같이 얽혀 있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 봐.”
“으응.”
“그래.”
어쩐지 에디타와 셀레나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둘이 똑같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아직 어리구나, 니케.”
“힘내렴.”
“……?”
“아니, 내가 보기에 힘낼 건 대공 전하랄까.”
“아아, 확실히 저번 연회 때…….”
두 사람은 또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아켈로스 대공저.
유스릴은 언제나의 장난스러움은 벗어던지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브리핑 중이었다.
“반응은 예상을 웃돌고 있습니다. 예상 매장량을 공개한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필수재인 프레안의 공급을 수입에만 의존해서만성적인 물량난에 시달려…….”
능숙하게 말을 이으며 유스릴은 힐끔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이스칼리온은 나른하게 턱을 괸 채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이라헬 영애가 국경의 몬스터를 유인해 마을을 공격한 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행위로 결론이 났습니다.”
“…….”
“그 전말을 가장 먼저 밝혀낸 공녀님의 공적이 인정되어…….”
움찔.
순간 이스칼리온의 귀가 움직였다.
유스릴은 별일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말했다.
“또, ‘의태’의 권능을 알아낸 것 역시 공녀님이 특별한—”
움찔.
또 움직이는 귀.
“—각성자이기 때문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이스칼리온은 여전히 턱을 괸 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유스릴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음.’
“공녀님.”
움찔.
“공녀님의 집에는 공녀님이 계십니다.”
움찔움찔.
유스릴이 ‘오호’ 하며 입을 가렸다.
“뭐 하는 거냐, 유스릴.”
돌아보는 이스칼리온의 눈빛이 살벌했다.
유스릴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계속 보고해.”
“예, 전하.”
넙죽 대답하며 유스릴은 자료를 넘겼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팽팽 굴러가는 중이었다.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한데.’
브리핑을 마친 유스릴이 지나가듯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어제는 날씨가 좋아서 노을이 기가 막혔죠.”
“뭐.”
“미네 브릿지는 워낙 운치 있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한 곳 아닙니까. 공녀님 진짜 예뻤겠네요.”
아무렇지 않게 은근슬쩍 뒷말을 덧붙였다.
평소 아켈로스 대공에게는 통하지 않을 얕은수지만—
‘지금이라면!’
‘공녀님’이란 단어에 주체 못 하고 반사적으로 쫑긋쫑긋 귀를 세우는 지금은 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스칼리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유스릴을 쳐다봤다.
유스릴이 ‘그럼 그렇지.’ 하며 한숨을 푹 내쉰 순간.
“니케는 원래 예뻐.”
“예. ……예?!”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거다. 그만한 미인은 또 없으니까.”
“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과 그게 진리라는 소리를 저렇게 덤덤하게 한다고?!’
유스릴이 입을 떡 벌린 채 어버버했다.
이스칼리온이 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니케를 상위 각성자회로 올리자는 종합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유스릴은 얼떨떨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자연스럽게 공녀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 거지?’
이스칼리온이 몇 번 니케아르샤를 이름으로 부르긴 했지만, 다급했을 때뿐이었다.
이렇게 평상시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부르진 않았다.
“공녀님에 대한 여론이 좋긴 하지만, 공적치를 못 채운 상황에서 상위로 올리자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정말 특별한 각성자인지 확인하고 싶어서겠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흉수와 방화범을 잡아낸 것.
상위 각성자인 시세리아 영애와 아이라헬 영애를 능가했다는 평가.
이런 것들은 사실 부수적인 이유다.
“상위 각성자회 안에서까지 두각을 드러내면 니케가 특별하다는 결론이 날 테니까.”
“……괜찮을까요? 공녀님은…….”
진짜 각성자가 아니다.
이스칼리온이 제국에 돌아오고 난 뒤, 이미 각성자회 소속이 된 니케아르샤가 말해주었다.
가짜지만 각성자 행세를 할 거라고.
이스칼리온은 당연히 말렸다.
“너무 위험해.”
“알고 있어요.”
“복수를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도 있어. 내가—”
“회귀 전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내게 힘이 필요해요. 가문의 보호나 다른 사람의 협력과는 다른, 내 힘이.”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끝까지 반대하겠는가.
살고 싶어서 스스로 힘을 기르고 싶다는 사람에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어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는 니케아르샤의 눈동자는 이미 각오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설산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눈 앞이 뿌옇게 변할 만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데도,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본능적으로 알아보았거든요. 그 소녀, 그러니까 장차 겨울 여왕이 되는 그 작은 아이가 제 ‘각성자’라는 것을요.”
신시아가 했던 말.
‘……내가 여전히 지키고 싶은 건.’
니케아르샤였다.
처음 유스릴의 눈을 통해서 그 붉은 눈동자와 마주했을 때부터.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작 니케는 발현식에서부터 실패했지만.’
유스릴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상위로 올라가면 들킬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공적치가 쌓이지도 않았는데 여론만으로 상위로 올릴 순 없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하기엔…….”
“어차피 1황비가 반대할 거야.”
“아아, 그렇겠군요!”
1황비는 자신의 뜻을 번번이 거스른 니케아르샤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터.
“그럼 당장은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그래.”
이스칼리온은 느릿하게 대답하며 속생각을 삼켰다.
‘……그것도 1황비가 허점을 눈치채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 * *
1황비궁.
“해서, 델로시프 공녀를 상위 각성자회로 올리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황비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각성자관리국의 국장은 긴장한 태도로 1황비의 말을 기다렸다.
‘2, 3황비는 아주 반색하며 좋아했다 들었는데.’
1황비는 강력하게 반대할 게 뻔했다.
그래서 국장이 직접 온 것이다.
“델로시프 공녀의 최근 행적을 모두 공적치로 계산하면 상관없지 않나요?”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예?”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행을 밝혀낸 것은 곧 국경을 지킨 것.”
1황비가 나붓이 웃으며 차를 마셨다.
“그렇게 해석하면 공적치도 많이 부여할 수 있겠죠.”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형평성에 대해 묻는 게 아니다.
1황비의 정치적 상황에서 괜찮냐는 물음이었다.
“후후, 뛰어난 각성자의 탄생은 곧 제국의 홍복이지요. 이 나라의 황비로서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
“각성자회를 운영하는 것 또한 각성자들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서 아닌가요?”
“그, 그렇지요.”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 각성자들의 경쟁은 황위 계승 싸움의 대리전으로 변질된 지 오래지만…….’
차마 그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1황비가 부드럽게 말했다.
“다만 국장께서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상위 각성자들은 모두 그 능력을 인정 받은 사람들이죠. 반면 공녀는 중위 각성자회로 올라와서 공식 활동을 하기도 전이고요.”
아니나 다를까, 반대 의견이 나왔다.
“그 말씀은 공녀가 상위로 올라가는 것을 반대한다는…….”
“어머? 아니에요.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1황비가 국장을 향해 짙게 미소 지었다.
“상위 각성자와 승부를 거치면 다른 각성자들도 납득할 거예요.”
“……!”
이건 막 상위로 올라오려는 니케아르샤에게 너무 불리한 이야기였다.
국장이 보기에 아이라헬이나 시세리아와 각성자로서 전면전을 펼쳤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다.
“하, 하지만—”
“이길 필요도 없어요. 그저 상위 각성자들이 인정할 만큼의 시합 내용을 보여주면 되니까.”
1황비가 싱긋 웃었다.
“정말 기대되네요. 상위 각성자를 상대하기 위해 공녀가 또 어떤 권능자를 데려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