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2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20화(120/177)
* * *
한편, 연회장의 정원.
“니케.”
니케아르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몇 번 더 부르던 클레아스가 결국 바짝 다가와 그녀를 돌려세웠다.
“잠깐 이야기 좀 해.”
“싫어.”
“……그렇게 내가 싫어?”
“응.”
클레아스는 꼭 비련의 주인공 같은 표정이었다.
거뭇한 눈가.
살짝 마른 턱선.
그리고 간절해 보이는 석양빛 눈동자까지.
‘꼴값이다.’
니케아르샤는 짧게 평했다.
클레아스가 결심한 얼굴로 바짝 다가왔다.
“곧 미카린이 돌아올 거야.”
“……!”
니케아르샤가 흠칫했다.
드디어 저 붉은 눈동자에 자신이 비쳤다.
클레아스는 낮게 속삭였다.
“이제 알겠어?”
“…….”
“내가 얼마나 니케, 널 사랑하는지.”
“……?”
니케아르샤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래, 지금은 당혹스러울 거야.’
진실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리 못되게 굴었으니.
니케아르샤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과거가 너무나도 후회되었다.
“……결론이 왜 그렇게 되는데?”
“미카린은 각성자야. 그것도 굉장한.”
“…….”
“그리고 니케, 넌 날 각성시킬 생각 없지?”
일부러 반응을 살폈으나 니케아르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클레아스는 서글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미카린은 어쩌면 나를 각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런데?”
“난 그 가능성을 포기하고서 네게 알려주는 거야. 미카린의 탈출을 막으라고.”
미카린을 감금한 채 감시하면 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라 한들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를 거다.
클레아스가 니케아르샤의 손을 꽉 붙들었다.
“이제 알겠어? 난 내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널 선택하는 거—”
그때였다.
“쓰레기 주제에 말이 많군.”
“그 말은 동의하지.”
양옆에서 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클레아스는 지지 않는 기세로 뒤돌았다.
“누가 감히…… 아켈로스 대공?!”
클레아스의 얼굴이 파삭 구겨졌다.
언제나 자신의 등을 쫓던 니케아르샤가 달라진 계기.
어느새 그녀가 자신보다 더 찾게 된 남자.
아켈로스 대공이 특유의 권태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공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감히 니케의 각성을 받은 잡것까지.’
이민족이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클레아스가 거만하게 외쳤다.
“이민족 주제에 뭐라는 거냐.”
그러자 이민족이 픽 웃었다.
“쓰레기도 말을 하는데 내가 말 못 할 이유가 있나?”
“뭐라고?!”
“오르센 영식은 입을 좀 다무는 게 좋겠어. 쓰레기 특유의 악취가 나니.”
“대공!”
클레아스의 눈동자가 들끓었다.
물론 이스칼리온과 타하르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유로운 태도로 니케아르샤의 곁에 섰다.
그게 클레아스의 눈에는 미치도록 거슬렸다.
둘이 하는 말은 더 그랬다.
“널 위해 내 미래를 포기했다? 내가 보기엔 영식에게 미래 따윈 애초에 없는데.”
“멋대로 말한 주제에 내 각성자에게 책임 전가하지 마.”
클레아스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오직 니케아르샤를 위해서 힘든 선택을 했다.
‘그 숭고한 사랑을 책임 전가라고?’
그때, 니케아르샤가 차분히 그를 불렀다.
“클레아스.”
“니케.”
클레아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니케아르샤는 아는 거다.
다른 사내들이 아무리 자신을 질투해서 모함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는 수많은 추억이 있으니까.
하지만.
“비련의 주인공 행세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난 이미 알고 있었어.”
“……뭐?”
“미카린이 돌아오는 거, 알고 있었다고.”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니케아르샤의 말은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런 말은 미카린이 제도에 도착하기 전에 했어야지.”
“무슨…….”
“어머, 몰랐어?”
니케아르샤가 놀란 눈으로 클레아스를 바라보았다.
“오늘 막 제도에 도착했는데. 라파엘이 널 완전히 믿지는 않나 봐?”
“…….”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이지. 넌 나한테 이렇게 쪼르르 말하러 왔으니까.”
“나는 네게 진심을 보여주려—”
“아, 입 열지 말아줄래?”
니케아르샤가 싸늘하게 말했다.
“대공 전하 말씀처럼 쓰레기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거든.”
그리고 차갑게 몸을 돌렸다.
아켈로스 대공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아주 우아하고 품위 있는 태도였다.
그 뒤로 권능자인 이민족이 방벽처럼 뒤따랐다.
‘제길.’
클레아스는 정원에 홀로 남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있어 대화 내용이 들리진 않았겠지만, 어떻게 보였을지는 뻔했다.
‘젠장, 젠장!’
* * *
“어떠니?”
1황비가 미카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카린은 대답도 잊은 채 니케아르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켈로스 대공이 아직도 언니와 함께 있단 말이야?!’
지금도 그 치욕이 잊히지 않는다.
아켈로스 대공저에 찾아갔던 날.
제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대공이 한순간에 돌변했던 때.
“이게 무슨 뜻이죠, 전하?”
“이 정도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잖아.”
“네?”
“넌 내 취향이 아니란 뜻이다.”
“……!”
자신은 불쌍하게도 아픈 과거까지 꺼냈는데, 대공이란 작자가 완전히 농락했다.
“네 피해망상. 그 정도면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심지어 저 멍청이 앞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케아르샤가 보는 앞이었다는 게 가장 수치스러웠다.
‘대공은 진작 언니한테 질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특별한 소문도 없었단 말이야!’
미카린이 노역한 땅끝까지도 니케아르샤에 대한 소문은 자자했다.
하위 각성자회에서 단번에 중위 각성자회로 올라갔다느니.
호수 연회에서 세 황비 모두에게 꽃을 받았다느니.
엄청난 외교력으로 급작스럽게 방문한 센리안 왕세자와 운하 협정을 잘 마무리했다느니.
듣기 싫어도 질릴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아켈로스 대공과의 소문은 없었어.’
얼마나 비웃었던가.
그 아켈로스 대공을 놓치다니.
역시 저 못난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따윈 모른다.
클레아스를 빼앗겼듯이!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아니었다.
‘거기다 처음 보는 저 사내까지…….’
제도로 올라오면서 들었던, 그 대단하다는 권능자가 분명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사내가 이민족이지만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옷 위로도 숨겨지지 않는, 날렵하면서도 야성적인 몸.
구릿빛 피부에 맹수 같은 황금빛 눈동자.
‘왜 언니한테만 저렇게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거야?’
니케아르샤는 항상 저랬다.
근사한 아버지와 아름다운 오라버니들.
남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소꿉친구들과 약혼자까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누리면서 과시했어.’
지금도 아켈로스 대공과 권능자를 자랑하듯 데리고 다니는 꼴을 보라지.
‘만약 내가 제도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달랐을 거다.
‘이민족이라 차별받은 아픔을 내가 감싸주었을 텐데.’
니케아르샤는 천성이 못돼 처먹어서 동정심 같은 건 없다.
그러니 가여운 자신에게도 그렇게 고약하게 굴었지.
“여기 와서 좀 보렴, 미카린.”
1황비의 부름에 미카린이 고개를 들었다.
내실 안에서는 연회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런 황실 연회에서도 델로시프 대공녀는 단연 중심이란다.”
그 말대로였다.
예비 권능자들이 앞다투어 그녀 앞에 몰려들었다.
심지어 파트너가 무려 아켈로스 대공이다.
모두 선망의 눈길로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황자들까지 있잖아!’
세 명의 황자들마저 니케아르샤에게 먼저 말을 붙이고 있었다.
고작 각성 한 번 잘 시켰다고.
‘나도 각성자인데……!’
이곳까지 오면서 들었다.
자신은 아주아주 특별한 각성자라 고귀한 1황비가 친히 찾는 거라고.
‘원래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이잖아!’
“후후, 꽤 멋진 눈이 되었구나, 미카린.”
“황비 전하…….”
미카린이 치맛자락을 꾹 쥐었다.
“저, 연회장으로 내려갈게요.”
1황비가 “호오.” 하며 미카린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으로? 네가 원한다면 단장할 수 있게 준비해 놓았단다.”
“아뇨. 이대로가 좋겠어요.”
사실은 이런 거지 같은 몰골로 저 화려한 귀족들 앞에 나서긴 죽어도 싫다.
언제나 델로시프 대공녀인 니케아르샤에게 뒤처지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요.”
“흐음,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1황비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겉으로는 아깝다는 듯이 말했다.
“아쉽게 되었구나. 네 화려한 복귀를 위해 황실의 드레스를 준비해놨는데. 본비가 직접 너를 연회장에 데려갈 생각이었단다.”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카린은 굳센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1황비 전하와 제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
“신분의 한계 때문에 너 같은 능력자가 꽃 피우지 못했지. 해서 든든한 뒷배를 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했죠. 간절히.”
미카린이 독기 가득한 눈을 들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2, 3황비를 제 편으로 만들 수 없잖아요?”
“1, 2, 3황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싶다……라고 들리는데.”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겠다는 뜻이에요.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게 확실하면 2, 3황비는 제게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요.”
“흠…….”
“제가 2, 3황비 쪽의 정보를 물어올 수 있어요.”
1황비는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델로시프 공녀를 흉내 내고 싶은 거군.’
호수 연회에서 니케아르샤가 1, 2, 3황비 모두에게 꽃을 받은 일화는 유명했으니까.
미카린 역시 그걸 누리고 싶은 거다.
‘아니, 욕심 많은 아이니 황비들보단 황자들 쪽이 목적인가.’
세 황자들의 구애를 받는다면 그것만큼 주가를 상승시키는 건 없을 테니.
1황비는 내심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카린. 네 뜻대로 해보렴.”
* * *
황궁 연회장.
“세상에…….”
“뭐야? 어떻게 저런 꼴로…….”
“경비병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회장 한켠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스칼리온이 니케아르샤의 귓가에 속삭였다.
“왔군.”
“뭐, 미카린으로서는 꽤 노력했네요.”
저렇게 볼품없는 몰골로 남들 앞에 서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애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으음, 곤란하네요. 원래 발현식에서 화려하게 환영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냥 연회장에 나타났을 때보다 가장 정점에 섰을 때 떨어트리는 게 보람차지 않겠는가.
“미카린이 저렇게 성의를 보였으니 조금이라도 상대해 주는 게 예의겠죠?”
“그대는 너무 예의가 넘쳐.”
“흠, 개망나니 명함은 이제 슬슬 떼야겠어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연회장에 내려온 미카린은 그 모습을 보고 턱에 힘을 주었다.
‘그래, 저렇게 못된 게 언니의 본성이지.’
지금 자신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아예 웬 거지가 들어왔다며 경비병을 불러야 한다는 사람까지 있다.
그런데 저렇게 남자랑 시시덕거리기나 한다고?
‘클레아스도 날 도와주지 않아.’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른 척하고 있다.
라파엘은 어딨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자신은 불쌍할수록 좋으니까.
‘언니, 나는 언니의 본성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뿐이에요.’
미카린이 니케아르샤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그 말에 연회장에 파란이 불었다.
“언니? 델로시프 공녀에게 언니라니…….”
“잠깐. 미카린 텔시였어?”
“왜 저런 몰골로……. 죄짓고 쫓겨났었잖아.”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흘려들으며 미카린은 입을 열었다.
“비록 저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언니라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그래? 고마워.”
저 태도.
그러니 좋게 봐줄 수가 없는 거다.
미카린은 바로 폭탄을 던졌다.
“제가 언니의 목숨을 살려준 보람이 있네요.”
연회장에 일순 침묵이 깔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델로시프 가문 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몰랐다.
대강 미카린이 인장을 도용해서 벌을 받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저게 무슨 소리야?”
“미카린이 공녀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니.”
그 말을 음악처럼 들으며 미카린은 당당히 입을 열었다.
“언니를 살려주는 과정에서 비록 저는 죄를 지었다며 쫓겨났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
“……!!”
경악에 휩싸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목숨을 살려준 사람을 죄지었다고 쫓아냈다고?!’
‘심지어 저런 몰골이 될 때까지 벌을 주었어?!’
모두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자, 언니. 이제 어쩔 거예요?’
미카린이 오만한 눈으로 니케아르샤를 쳐다봤다.
“미카린.”
“네, 언니.”
“897억 골드야.”
“……네?”
“네가 갚아야 할 돈.”
“……!”
897억 골드면 웬만한 영지 3년 예산이었다.
눈 튀어나오는 숫자에 다들 기함했다.
“그것도 네가 갖고 싶다고 해서 준 보석, 드레스, 잡화 같은 건 다 빼고.”
“…….”
“네가 내 인장을 훔쳐서 고작 며칠 사이에 쓴 금액 말이야.”
미카린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그게 언니 목숨보다 소중한가 봐요? 나는 언니 목숨을—”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 궁의한테 나라를 넘겨줘야 하겠구나.”
“……?!”
니케아르샤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네 말은 그 뜻 아니니? 날 죽을 듯 말듯 애매한 혼수상태로 두는 게 네 목적이었겠지만, 그걸 목숨을 살려준 거라고 친다면.”
“…….”
“이 나라는 역대 황제 폐하를 살린 수많은 궁의들에게 바쳤어야지?”
미카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니케아르샤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벌써 이러면 어떻게 해. 환영식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