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29)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29화(129/177)
“당신은 어때요? 첫눈에 반했냐는 말을 먼저 꺼낼 정도면—”
커다란 손이 니케아르샤의 허리를 휘어감았다.
“—우리 사이에 특별한 눈빛이 오갔다고 생각해도 되나요?”
“장난치지 마.”
니케아르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에반스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왜 장난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일 리 없으니까.”
“너무하네요. 사람의 진심을 한순간에 부정하다니.”
에반스가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러나 니케아르샤의 얼굴은 더 서늘해질 뿐이었다.
“난 꽤 많이 속아봤거든.”
“……?”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지긋지긋하게 겪어봤어.”
“…….”
“그래서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아.”
니케아르샤가 에반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너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타인을 사랑하지 않아.”
그때까지 상처받은 척하고 있던 에반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픈 데를 찌르네.”
“거짓말. 아프지도 않잖아.”
에반스는 미소 지은 그대로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아무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담고 있었다.
“맞아요. 그래서—”
에반스가 그대로 니케아르샤를 쓰러트렸다.
“조금 더 궁금해지네.”
“큭, 너—”
“당신이란 사람이.”
“……?!”
에반스의 손이 니케아르샤의 심장 부근으로 향했다.
그 순간.
콰앙!
굉음과 함께 한쪽 벽면이 터져나갔다.
부옇게 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커다란 남자의 그림자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새파란 안광이 선명히 빛났다.
“와……. 각성하기도 전에 이런 힘이라고?”
에반스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새파란 눈동자가 니케아르샤와 한데 쓰러져 있는 에반스에게로 향했다.
“감히…….”
마력 파동이 이스칼리온에게서 거칠게 일렁거렸다.
쾅!
굉음과 함께 에반스가 있던 자리가 폭삭 내려앉았다.
어느새 이스칼리온은 니케아르샤를 감싸안은 채였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널 죽이겠다.”
에반스를 노려보는 이스칼리온에게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전하, 잠깐만요.”
“말려도 소용없어. 내가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런 게 아니에요.”
“맞아! 그런 게 아니라고요!”
니케아르샤는 에반스를 노려봤다.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에반스가 픽 웃었다.
“나중엔 그런 게 맞게 될 수도 있지만?”
쿠구구궁!
이스칼리온에게서 피어오른 마력 파동이 더 거세졌다.
니케아르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안 돼. 이 이상 무리하면…….’
이스칼리온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그의 몸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강인하던 몸은 피와 땀, 먼지로 엉망이었다.
‘계속 미로를 무너트리면서 온 거야.’
그러다 천장이 무너지고, 그 아래 깔려도 계속해서.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끝없이 미로를 파괴하며 도달한 것이다.
니케아르샤의 앞까지.
“제발…… 그만해요.”
니케아르샤가 이스칼리온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이스칼리온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흉포하게 들끓던 마력 파동이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에반스의 앞에는 미로의 벽이 생성되고 있었다.
니케아르샤는 점차 벽 사이로 가려지는 에반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에반스, 당장 미로를 해제해.”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전하가 이 미로를 날려버리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그 남자가 강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아직 각성도 못 한 사람에게 뚫릴 정도로 내 권능이 우습진 않아서.”
“그래? 한번 해볼래?”
니케아르샤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에반스가 움찔했다.
니케아르샤의 각성은 마력과 별 상관이 없다.
하트로 가능하니까.
하지만 에반스는 그 사실을 모른다.
“……뭐, 좋아요. 목적은 이뤘으니까.”
에반스가 졌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벽의 구멍이 완전히 메워졌다.
둘만 남게 되자 이스칼리온이 곧장 니케아르샤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네?”
“떨고 있잖아.”
이스칼리온이 공격을 멈춘 이유.
그건 자신을 꽉 끌어안은 니케아르샤의 몸이 떨리고 있어서였다.
“떨고 있다고요?”
니케아르샤가 의아한 듯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티가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력 파동이 너무 세서 혹시라도 전하가 폭주할까 봐 걱정하긴 했는데……. ”
“그게 아니야.”
“…….”
“니케.”
이스칼리온의 푸른 눈동자가 니케아르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니케아르샤는 그 얼굴을 마주하다 고개를 숙였다.
이스칼리온은 자신조차 몰랐던 상태를 알아봐 준다.
“……저 남자, 내 마력을 가져갔어요.”
“뭐?”
이스칼리온이 나타나기 직전.
에반스의 손이 니케아르샤의 심장 부근에 닿았었다.
“전하께서 바로 와준 덕분에 많이 가져간 건 아니에요. 한순간이었으니까.”
어차피 니케아르샤가 생성하는 마력량은 압도적이다.
“마력 부족 때문에 몸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
“그냥 몸이 옛날 기억을 떠올렸나 봐요.”
지하 감옥에 갇혀 골수를 뽑아내듯 마력을 뽑아 먹히던 기억.
그 끔찍한 고통의 순간이 되살아났을 뿐이다.
니케아르샤는 미소 지었다.
“다 지난 일이고 지금은 괜찮으니까—”
“강제로 마력을 뽑히는 게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잖아!”
이스칼리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너무 아파 보여서.
니케아르샤는 서둘러 변명했다.
“진짜 별거 아니었어요. 양도 많지 않았고, 한순간 조금 따끔한 정도.”
“아팠잖아.”
이스칼리온이 고개를 숙였다.
툭.
그의 이마가 니케아르샤의 이마에 맞닿았다.
조금 가라앉은, 쉰 목소리가 이스칼리온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대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 *
미로 밖.
“대, 대공 전하, 소공작님……!”
토사를 수색하고 있던 권능자들이 깜짝 놀라 예를 갖췄다.
‘백부님이 와주시다니!’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헤치고 있던 미카린은 화색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부님이 그때 계셨다면 난 쫓겨나지도 않았을 거야.’
델로시프 대공은 미카린이 땅끝으로 쫓겨난 다음에야 귀환했다.
후계자가 결정한 사항을 번복하는 건 가문의 위신을 흔드는 일.
그 때문에 이미 쫓겨난 미카린을 다시 불러오지 않은 거다.
‘백부님이 얼마나 날 예뻐하셨는데!’
제르노가 같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상관없다.
큰아빠가 자신의 편이니!
‘어차피 가문에 필요한 건 역대급 각성자라구.’
불안정한 니케아르샤와 달리, 미카린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했다.
‘델로시프 대공가에 더 어울리는 건 나야!’
“백부님……!”
미카린이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델로시프 대공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뵈어요. 정말로, 그리웠어요…….”
“…….”
“저, 이제 역대급 각성자가 되었으니 백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어요. 델로시프의 일원으로서…….”
미카린이 슬쩍 델로시프 대공의 팔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이었다.
“수색 상황은.”
차가운 목소리가 대공에게서 흘러나왔다.
델로시프 대공은 미카린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은 미카린에게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는 듯, 완벽한 무시.
질문을 받은 권능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파 내려가도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을 치워라.”
“예?”
“내가 직접 수색하겠다.”
델로시프 대공의 권능에 몸이 상할 수 있으니 사람들을 다 물리라는 거였다.
미카린이 서둘러 나섰다.
“그러지 마시고, 큰아빠. 제가 할 수 있어요.”
“…….”
“저, 역대급 각성자잖아요. 저라면 언니를 구할 수 있어요.”
그 말에 델로시프 대공의 시선이 미카린을 향했다.
미카린은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싸늘한 반응이었지만, 그건 니케아르샤가 이간질했기 때문일 터.
‘여기서 내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면 돼.’
직계를 구했으니 다시 대공저로 돌아갈 명분도 충분하다.
흙먼지 속에서 질질 짜고 있는 니케아르샤를 자신이 멋지게 구해내면 다들 ‘진짜’가 누군지 깨닫겠지.
“제가 언니를—”
그때였다.
“나 찾아?”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카린이 고장 난 인형처럼 목을 돌렸다.
그곳엔 니케아르샤가 높게 묶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이스칼리온과 함께.
“어, 언니?!”
미카린이 부르는 순간, 델로시프 대공과 제르노는 이미 니케아르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니케!”
“괜찮으냐?”
두 남자는 심장이 떨어진 사람처럼 니케아르샤를 살피고, 또 살폈다.
괜찮은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도 안심이안 되는지, 끌어안았다가 놓았다가 다시 살폈다가 아주 난리였다.
‘뭐, 뭐야…….’
미카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르노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델로시프 대공이 저럴 줄은 몰랐다.
‘이런 분 아니시잖아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가족에게조차 곁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시선을 제대로 받을 방법은 오직 가문에 도움이 되는 것뿐.
‘그러니까 나를 봐야 하는 거잖아.’
니케아르샤 곁에는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공녀님.”
“저는 공녀님이 잘못되는 줄 알고…….”
“다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
정작 역대급 각성자인 미카린은 이렇게 홀로 있는데.
“미카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미카린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에반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땅속에 있어야 할 사람이 저기 저렇게 서 있어?”
“아켈로스 대공이 함께 묻혔어.”
“뭐?”
미카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에반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 권능이라는 걸 들킬 순 없으니까 미로를 해제하는 수밖에 없었어.”
“아켈로스 대공도 착각하게 만들었으면 됐잖아.”
“대공은 감이 좋아. 불확실한 가능성에 널 위험하게 만들 순 없지.”
“……치.”
미카린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에반스가 자신을 이토록 소중히 생각하는 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언니는 왜 저렇게까지 욕심이 많은 거야.’
델로시프 대공에, 소공작에, 아켈로스 대공까지.
지금도 여봐란듯이 제 손에 쥐고 흔들고 있다.
그때, 니케아르샤가 고개를 들어 미카린을 바라보았다.
“미카린.”
눈이 마주친 니케아르샤가 화사하게 웃으며 미카린에게 다가왔다.
“고마워.”
“……네?”
니케아르샤가 미카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각성시킬 수 있었던 거, 다 네 덕분이거든.”
“그게 무슨…….”
“아, 그리고.”
니케아르샤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이스칼리온이랑 갇혀서 좋은 시간 보냈어.”
“……!”
“고마워?”
니케아르샤가 씩 웃고 몸을 돌렸다.
미카린은 멍하니 선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으그그그!”
나는 찌뿌드드한 몸을 쭉쭉 폈다.
‘집에만 있었더니…….’
제도로 돌아온 후, 나는 사흘 내리 집에서만 지냈다.
아버지랑 오라버니들이 엄청 호들갑을 떨며 걱정했기 때문이다.
‘죽다 살아난 줄.’
“슬슬 밖에 나가고 싶은데.”
“안 됨다!”
“절대 안정이라고 했소!”
커다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헤레이스(길드장)를 비롯해 ‘레젠다’의 광부들이 울망울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음, 근육덩어리들이 저렇게 강아지 같은 눈을 하는 것도 재주야.’
“토사가 무너졌을 땐 저희처럼 튼튼한 광부들도 다칩니다.”
“아가씨처럼 뼈밖에 없는 분은 탈이 나도 한참 났을 거요!”
“알았어, 알았어. 안 나가.”
이번 수해를 막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 바로 ‘길드 레젠다’의 광부들이었다.
“지반 조사와 토질 조사는 저희가 전문가죠.”
“물길을 새로 만든다고요? 뭐, 마력탄 터트리는 건 내가 군사들보다 낫지.”
물론 권능자들의 공도 컸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막막했을 터다.
‘그리고 다른 것도 맡길 수 있고.’
나는 헤레이스에게 물었다.
“어때? 조사해 봤어?”
“역시 ‘아키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키탄.
댐의 안정화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로, 내가 레널드와 만나게 된 계기였다.
내가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지에 댐이 무너질 위기가 생겼었다.
그때, 미카린이 레널드를 통해서 아키탄 거래를 하려고 했었다.
“차라리 다행이야. 아키탄은 거래 제한이 걸려 있어서 유통 경로 추적이 쉬운 편이거든.”
나는 레널드를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때마침 우리 쪽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있고.”
“그 방면의 인맥까지 있죠.”
레널드가 씩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인위적으로 댐을 무너트린 거네.”
“미친 짓입니다.”
미카린이 아무리 역대급 각성자라고 해도 지금 각성시킨 권능자는 단 한 명.
혼자 수해를 막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동북부는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이딴 짓을 저지르고도 미카린은 뒤늦게 나타났잖습니까.”
“선제적으로 방어해도 피해가 있었을 텐데요.”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기적처럼 나타나는 게 영웅 같으니까.”
그 말에 레널드와 광부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님까.”
“머리에 곡괭이질을 한 번 당해봐야 정신 차리려나.”
광부들의 말에 난 픽 웃고 손을 내저었다.
“그럼 이만 나가 봐. 저녁에 다른 길드랑 약속 있다고 했잖아.”
“예, 아가씨.”
“레널드도 아키탄 조사 시작하고.”
“넵.”
사람들이 우루루 나가자 나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니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엄청 뜨거웠지.’
이스칼리온의 입술.
나도 모르게 그 감촉을 떠올리는데.
“니케!”
“쉬라고 했는데 또 일하고 있었나.”
아카인과 제르노가 들어왔다
나는 아카인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있잖아. 아카인 오라버니 꽤 인기 많은 편이지?”
“크흠, 뭐……. 그렇지?”
아카인이 콧대를 세웠다.
“흠, 네 눈에도 그래 보여?”
“뭐가?”
“내가 좀 멋져… 보이나? 인기 엄청 많을 거 같고?”
뭐라는 거야.
어이없어하는데 제르노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니케, 나도 인기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