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3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30화(130/177)
아카인과 나는 잠시 침묵한 채 제르노를 바라보았다.
‘제르노도 엄청 인기가 있긴 하지…….’
그것도 엄청이라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많다.
제르노 공자에게 보낼 편지지 때문에 제국 지류 값이 상승했다는 말까지 있으니까.
‘근데 제르노는 이런 화제 딱 질색 아니었나?’
빤히 쳐다보자 제르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없어 보이나?”
“아니, 아뇨! 엄청 많아 보여요. 많은 것도 알고 있고요.”
내 말에 제르노가 가슴을 폈다.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거 같은데 뭐지?
‘어쨌든 둘 다 인기 많으니까 잘 알겠지.’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둘 다 이럴 때 어땠어요?”
“어떤 때?”
“어둠을 틈타 상대가 좀 가까워진다거나, 뭐 좀… 그럴 때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보다 더 반응이 격했다.
“아, 아니,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을 뿐인데요.”
“뭐가 어쩔 수 없어! 당장—”
“아카인, 조용히. ……계속 말해봐라, 니케.”
제르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웃고 있는데 서늘한 냉기가 폴폴 풍겼다.
“그게,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손이… 음, 입술에 가 있었달까?”
조금 부끄러워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힐끔 오라버니들의 눈치를 보았다.
제르노가 내뿜는 냉기는 이제 방 안을 얼려버릴 정도였다.
반면 아카인은 금방이라도 터질 활화산 같았다.
“마, 많이 싫어요?”
내 말에 두 남자가 잠시 침묵했다.
이내 제르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들어라, 니케.”
“…….”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손가락을 꺾어버려.”
“그, 그 정도로 싫어요?”
“싫…!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야.”
옆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던 아카인이 꽥 소리를 질렀다.
“뭔 손가락! 그냥 다리 사이를 발로 차버려! 대가 끊기도록!”
“그도 좋은 생각이다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대를 끊는 건 이 오라버니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런 더러운 것과는 접촉 자체를 하지 말아라.”
제르노와 아카인이 더없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겠느냐.”
“알겠지?”
“그, 그게…….”
두 사람은 뭐가 그리 급한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방을 나갔다.
나는 쾅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마저 중얼거렸다.
“……내가 한 짓인데.”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
.
니케아르샤의 방에서 나온 아카인은 제르노에게 씩씩거렸다.
“어떤 놈팡이가 감히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애를……!”
“…….”
“이, 입술을 뭐?! 추행을 당하고도 상황 파악 못 해서 어떠냐고 묻다니! 당연히 싫어해야지!!”
“아카인, 진정해라.”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쟨 가뜩이나 남자 보는 눈 없는데!”
“죽이면 돼.”
제르노의 입에서 담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투명한 눈으로 남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진정해라.”
“……으응.”
아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은 내가 아니라 형님이 해야 할 것 같은데.’
눈이 완전히 돌아 있었다.
‘뭐, 그래도 눈 돌아간 형님이 알아서 추행범을 죽여줄 테니까.’
독은 독으로 잡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두 사람 다 추행범이 자기 동생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 * *
제국 최대 규모의 댐인 비아레칼 댐이 무너진 일은 제국을 넘어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다.
원인과 진상 규명 등 관련해서 다양한 화제가 대두되었지만.
그중 압도적인 버즈량을 가진 건 단연—
“역대급 각성자라더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지 않아?”
각성자에 대한 이슈였다.
“결국 수해로부터 사람들을 구한 건 델로시프 공녀잖아.”
“그래도 각성 능력 자체로만 보면 미카린 님을 따라갈 순 없어.”
“방벽이 그냥 무너지던데 무슨 소리야. 그걸 수습해 준 게 공녀님이고.”
“그래봤자 권능자들은 다 미카린 님이 각성시켜 주길 바랄걸?”
역대급 각성자인 미카린.
수해로부터 동북부를 구한 니케아르샤.
둘 중 누가 더 뛰어난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논란이 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소문을 들은 미카린은 발광했다.
“어떻게 역대급 각성자인 나와 발현식조차 제대로 못 치른 천치를 비교할 수 있어?”
“일단 진정해, 미카린.”
에반스가 그녀를 말렸다.
“진정하라고? 내가 오늘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아?”
“역대급 각성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델로시프 공녀가 특별한 각성자가 아니게 되진 않잖아.”
“하긴, 이번에 나타난 권능자가 도합 몇이랬지? 진짜 많더라. 그게 가능한 거였어?”
“마력이 특별하다는 말도 있더라. 그래서 선대 대신관이 역대급 각성자의 자질을 타고났다고 했다던데?”
“내가 활약할 무대였어. 나를 위해 마련된 거였다고. 그런데 그 계집이 또 채간 탓에 저런 말을…….”
“미카린, 지금 취했어. 물부터 마시고—”
쨍그랑!
미카린이 물잔을 쳐냈다.
그녀가 붉어진 눈으로 에반스를 노려봤다.
“네 탓이야.”
“…….”
“모처럼 역대급 각성자인 내가 널 각성시켜 줬잖아.”
“…….”
“그런데 그 쭉정이의 버러지 같은 권능자들한테 밀려?”
에반스가 굳은 얼굴로 미카린을 바라보았다.
미카린은 당당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었다.
“뭐 해?”
“……내가 잘못했어, 미카린.”
에반스가 미카린 앞에 순종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미카린은 황홀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이 아름답고 강한 사내가 군말 없이 제 앞에 무릎 꿇을 땐 꼭 황족이라도 된 것 같았다.
‘권능자란 이래서 좋아.’
어떻게 대해도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니까.
강하면 강할수록 더 충성스럽다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그때였다.
“미카린.”
라파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라파엘?”
“네가 전에 인터뷰한 거 신문에 났어.”
“아, 드디어!”
미카린이 반색하며 신문을 받아 들었다.
발현식에 참가하기 전에 했던 인터뷰가 이제서야 실린 것이다.
“이제 다들 실상을 알게 되었으니 여론도 바뀔—”
웃으며 말하던 미카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뭐예요?”
[차별 속에서 자란 역대급 각성자, 미카린]문구 자체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차별받았다는 미카린이 직계인 니케아르샤보다 더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를 걸치고 있었다.
그것도 클레아스와 마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왜 하필 이런 사진을……!”
“누가 봐도 니케보다 더한 사치를 즐겼으면서 차별받았다고 헛소리하는 걸로 보이겠지.”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언니가 준 거라고요! 예쁘다고 몇 마디 좀 했을 뿐인데!”
항상 그렇게 바로 내어주는 것도 짜증 났다.
남들이 부러워할 건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게 별거 아니라는 듯 쉽게 주다니.
“그것만이 아니야. 계속 읽어 봐.”
[“언니가 살아 있는 것은 전부 내 덕분”]“이걸, 이런 사진과 함께 실으면…….”
“그래, 네가 니케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면서 니케를 찍어 누른 것 같아.”
하필 더 좋은 옷을 입고 클레아스랑 웃고 있어서 목숨을 빌미로 약혼자까지 빼앗은 것 같다.
라파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아래는 더 심각해.”
[넘쳐나는 델로시프 공녀의 마력을 받으며 성장] [풍부해진 미카린의 마력 저장소]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미카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깐만요. 이러면 내가 역대급 각성자인 게—.”
“니케의 마력 덕분인 것 같지.”
라파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도에는 벌써 소문이 돌고 있어.”
“델로시프 공녀의 마력은 엄청나잖아. 선대 대신관이 마력을 보고 역대급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으니까.”
“미카린은 무슨 횡재야? 그 엄청난 마력을 공짜로 다 가져가다니.”
“……혹시 그 덕분에 역대급 각성자로 발현한 거 아니야?”
“설마!”
라파엘의 말을 전해 들은 미카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이런 인터뷰를 한 거야?”
“아니에요. 난 이런 말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했을 뿐이다.
델로시프의 직계인 니케아르샤 옆에서 얼마나 차별받았는지.
아무 눈치 볼 필요 없는 니케아르샤와 달리 자신이 얼마나 노력해야 했는지.
그것도 니케아르샤의 목숨을 위해 자신을 옆에 붙여두었던 거면서!
“저런! 공녀의 목숨을 위해 미카린 양을 붙여두었다고요?”
“언니가 마력 생성량이 너무 많아서요. 제가 받아줘야 했어요.”
“그럼 공녀의 마력을 내내 받으며 성장하셨던 거군요. 힘드셨겠어요.”
“인터뷰 때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요.”
자신의 계획은 완벽했다.
“기사가 반대로 나야 하잖아요. 뛰어난 내가 언니의 마력을 품어준 덕에 언니가 살아 있는 거라고.”
“…….”
“그런 기사가 내가 역대급 각성자가 되는 것과 동시에 나올 예정이었다고요.”
“…….”
“그럼 사람들은 ‘미카린이 역대급 각성자인 걸 알아챈 공녀가 죄를 덮어씌워서 내쫓은 거’라고, 그렇게…….”
라파엘은 혀를 찼다.
‘나쁜 계획은 아니었군.’
역대급 각성자라는 엄청난 버프가 있는 이상, 말이 되고도 남는 계획이었다.
언론은 물론 대중들까지 역대급 각성자에게 한없이 호의적이니까.
‘금사 게이트와 미카린의 불륜 건이 없었다면 말이지.’
단순히 기사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탐정처럼 그 사건을 파헤쳤다.
과거의 사진을 발굴해내 니케아르샤가 참석한 파티에서 미카린이 클레아스와 둘이 빠져나가는 것까지 알아낸 것이다.
심지어 클레아스와 관계를 이어 나가는 도중 라파엘의 집에서 나온 것까지도.
‘거기에 수해를 막아낸 건 니케이기까지 하니.’
역대급 각성자라는 이유로 미카린의 손을 들어주던 사람들까지 돌아설 계기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미카린의 근원이 니케아르샤의 마력’이라는 소문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었군.’
니케아르샤는 아주 차근차근 세심하게 준비해 온 것이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종래에는 미카린을 집어삼키도록.
‘니케의 덫에 완벽하게 걸려들었어.’
라파엘이 미카린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미카린.”
“너무해요. 언론사라는 게 델로시프의 권력에 빌붙어 이딴 기사를!”
“어떤 기사가 나도 네가 ‘진짜’ 역대급 각성자라는 건 변함없어.”
“라파엘.”
라파엘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권력이라면 이쪽에도 있잖아?”
* * *
황궁, 만찬회장.
한 달의 마지막 날 저녁.
모처럼 황제를 비롯해 세 황비들과 자식까지 다 모여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놀랍더군요.”
루비스탄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1황비가 물었다.
“무엇이?”
“니케 말입니다.”
그 말에 2황자, 알케토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아, 델로시프 공녀 말이지요. 이번에 정말이지 큰 공로를 세웠지요.”
“뿐만입니까. 역대급 각성자보다 더 큰 활약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3황자, 체시어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세 황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쳤다.
“각성자로서 능력도 능력이지만, 수완력을 따라올 자가 없더군요.”
“예, 최근 언론의 흐름을 보십시오.”
“필시 델로시프 공녀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아들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황제가 껄껄 웃었다.
“우리가 식사하려 모였는지 아니면 델로시프 공녀를 칭찬하려 모였는지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니케의 활약이 기쁜 마음에…….”
“호오? 루비스탄, 공녀와 꽤 친한 모양이야?”
“서로 이름으로 부를 정도의 사이는 됩니다.”
“흠, 그래?”
황제의 반응에 알케토와 체시어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공녀와 함께 티타임을 했을 때 말입니다.”
“알케토, 공녀와 따로 만났나?”
“아아, 저는 함께 황실 기사단을 돌아봤는데—”
“허어, 체시어까지?”
2황비와 3황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델로시프 대공녀와 체시어가 친밀하니 어미로서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알케토와 이렇게 신분도, 능력도 맞는 또래 영애는 흔치 않지요.”
두 황비가 서로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오로지 1황비만이 침묵하고 있었다.
“흠, 델로시프 공녀라. 그만한 짝이 없긴 하지.”
황제가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단 한마디였으나 황비들과 황자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폐하의 입에서 짝으로 인정하는 말이 나올 줄이야.’
‘그간 어떤 영애에게도 이런 말씀은 없으셨는데.’
‘이건 공녀를 얻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어!’
‘먼저 델로시프 공녀를 얻는 황자에게 힘이 실릴 터!’
황족들이 머리를 팽팽 굴리는 가운데, 침묵하던 1황비가 말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델로시프 공녀만 한 영애가 없지요. 하지만 한 가지 고려하셔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델로시프 공녀는 아켈로스 대공과 꽤 친밀한 관계입니다.”
“……!”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델로시프 대공저.
레널드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범인을 알아내셨다고요?”
“응, 1황비가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