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31)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31화(131/177)
레널드는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저희 아키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갑자기 1황비라고요?”
“응.”
레널드의 얼굴이 더 아리송해졌다.
그는 지금 내게 비아레칼 댐에 설치되었던 아키탄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를 받다가 갑자기 1황비가 범인이라고 하니 이상하긴 하겠지.
특히—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아키탄에 수작질을 한 건 쿠알빈 백작입니다.”
쿠알빈 백작이 범인이라고 말한 상황이니.
나는 레널드에게 물었다.
“쿠알빈 백작은 2황비 쪽 사람이던가?”
“맞습니다. 다른 쪽에서 쿠알빈 백작에게 뒤집어씌운 것도 아닙니다. 3중으로 블러핑이 되어 있었어요. 힘들게 파헤쳐서 겨우 잡아냈습니다.”
“알아. 레널드가 직접 조사한 일이잖아.”
레널드가 멈칫 나를 바라보았다.
“난 레널드의 능력을 믿어. 저쪽에서 증거를 조작해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인 양 꾸며내도 속을 사람이 아니지.”
“공녀님…….”
“그러니까, 이건 쿠알빈 백작이 아키탄에 수작을 부린 범인이 확실하다는 전제하에 내린 결론이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쿠알빈 백작은 사실 1황비의 사람이거든.”
“그런……!”
레널드가 기함했다.
당연하다.
쿠알빈 백작가는 대대손손 2황비의 친정 가문과 긴밀한 관계였다.
한순간에 이뤄진 동맹이 아니라는 뜻이다.
현 쿠알빈 백작은 2황비가 입궁할 때부터 지금까지 헌신해서 계파 내에서도 중책을 맡고 있고.
“얼마 전 쿠알빈 백작은 루비스탄 황자가 발의한 정책에 전면으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사실 1황비 쪽 사람이란 걸 아무도 믿지 않겠지.”
회귀한 내가 아닌 이상.
“……동북부는 3황비의 가문이 있는 지역입니다.”
동북부의 여러 가문은 3황비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부에 있는 비아레칼 댐이 무너졌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3황비 계파였다.
“공녀님이 아니었으면 수해를 완벽히 막아내진 못했을 겁니다. 미카린은 일부러 뒤늦게 등장했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막 황위 계승전이 시작했는데, 3황비의 가장 큰 지지 기반인 동북부는 수해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느라 정신없었겠지.”
“3황비는 정보력을 총동원해 결국 쿠알빈 백작이 꾸민 짓이라는 걸 알아냈을 거고요.”
“그럼 계승전에서 탈락한 3황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2황비를 끌어내리려 하겠지.”
“결국 1황비에게만 좋은 일이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해는 회귀 전엔 없었던 일이다.
‘내가 갇혀 있던 덕에 미카린이 따로 활약해서 능력을 각인시킬 필요도 없었으니까.’
따라서 이번 수해는 1황비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계획이 아니었다.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꾸며낸 일이라는 뜻이다.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가지고 있는 패도 많고, 좋은 패를 아끼느라 주저하지도 않아. 쿠알빈 백작을 포섭하기 위해 들인 공이 적지 않았을 텐데.”
“대범하다 못해 잔혹합니다.”
“그래, 잔혹하지.”
1황비는 황위 계승전에서 이기기 위해 동북부의 수많은 생명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
만약 내가 이번 일을 막지 못해 2, 3황비의 갈등이 심해졌으면 더 큰 피해가 왔을 거다.
기반을 잃어버린 3황비가 2황비의 지지 세력을 건들지 않을 리 없으니까.
“결국 피해 보는 건 일반 제국민들이야.”
잠시 망설이던 레널드가 입을 열었다.
“……공녀님께선 저주의 배후도 1황비라고 생각하십니까?”
댐 붕괴의 배후는 1황비가 확실하다.
하지만 이스칼리온과 에이든의 저주는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건 생사람을 잡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손가락 세 개를 세웠다.
“기억해? 렉시나 황녀 시해가 실패로 돌아간 날, 이상 행동을 보인 세력은 셋이야.”
“각각 1황비, 2황비, 3황비의 세력이었죠.”
우선, 베살렌 영식(2황자의 친구)이 황녀를 시해 장소였던 정원으로 불러냈다.
또, 요산나 부인(3황비의 세력)이 정원에서 돌아온 황녀를 보고 눈에 띄게 당황했다.
마지막으로 피아렛 부인(1황비의 최측근)이 가장 먼저 살아 돌아온 황녀에게 접근했다.
‘렉시나 황녀는 1황비의 소생.’
피아렛 부인이 황녀를 챙긴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스칼리온이 바로 그 허점을 노린 것일 수 있다고 했지.’
당시 나와 경합 중이던 시세리아 영애를 버림패로 쓰기까지 하면 절대 1황비가 의심받지 않을 거라고.
“레널드, 우리는 그 이후로 렉시나 황녀의 신변을 살펴왔어. 결과는 어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실패로 돌아갔으니 신중한 거겠죠. 황족 시해는 엄청난 일이니까요.”
“역으로 생각하면, 그 엄청난 일을 결심할 정도로 렉시나 황녀를 죽여야 했던 거야.”
“……!”
레널드가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렉시나 황녀는 계승 순위가 높지 않다.
심지어 본인조차 제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죽여서라도 제거해야 할 정적이 아니라는 뜻이지.’
그럼에도 렉시나를 죽이려 했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남지 않는다.
‘살인멸구해서라도 숨겨야 할 비밀이나 약점을 렉시나가 알게 된 거야.’
그 정도의 약점이라면 실패로 돌아가도 계속해서 렉시나의 목숨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 조치가 없는 걸 보면—”
“맞아. 애초에 황녀를 죽이는 건 중요하지 않았던 거야.”
“……!”
레널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후의 일이 목적이었던 거지.”
레널드는 잠시 침묵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끔찍해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1황비 소생의 황녀가 무려 황궁 파티에서 시해당한다면, 그 화살은 정적들에게 향하겠군요.”
“실제로 회귀 전에 일어났던 일이야.”
당시 1황비는 산발이 된 채 황제 궁 앞에서 부르짖었다.
“저와 루비스탄을 노리기 힘드니 일부러 호위가 덜한 렉시나를 죽인 것 아닙니까!”
“왜 폐하와 저의 딸이 정쟁의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다음 차례는 저나 루비스탄이 될 수 있다는 협박이겠지요. 하나 저는 절대 내 딸을 죽인 자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2, 3황비는 범인이든 아니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계파 역시 범인으로 몰릴까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고.
“황족 시해는 역모니까.”
나는 레널드를 바라보았다.
“비아레칼 댐 붕괴 건이 1황비의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어땠을 거 같아?”
“……2, 3황비의 세력이 크게 위축됐겠지요.”
“그래, 렉시나 황녀가 죽었을 때와 결과가 똑같지.”
두 사건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즉, 목적이 같다는 뜻이다.
“이게 내가 1황비가 배후라고 생각하는 이유야.”
레널드가 혀를 내둘렀다.
“저는 절대 공녀님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토록 영민하시니…….”
“회귀한 덕분이지.”
“아뇨, 그것만으로 이런 추론은…….”
잠시 침묵하던 레널드가 희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1황비는 실로 무서운 자입니다. 어떻게 본인의 자식까지 죽여가면서…….”
“그만큼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거겠지.”
지금도 1황비는 다른 황비들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리고 있다.
루비스탄이 황위 계승전에서 가장 앞서고 있으니까.
만약 2, 3황비와 그들 소생의 황자들까지 쳐내고, 루비스탄이 굳건한 황태자가 된다면—
아니, 미래에 루비스탄이 황제가 되고 1황비가 황태후가 된다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기 위해선 딸의 목숨이나 제국민의 생명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까…….”
“황위 계승 싸움이야 원래 처절하지. 하지만 좀 이상하긴 해.”
“이상하다고요?”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말했듯 루비스탄은 현재 가장 큰 지지를 받는 황자다.
“큰 이변이 없다면 황태자 위는 루비스탄의 차지가 될 거야.”
“그렇죠.”
“그런데 자기 딸을 죽이거나 댐을 무너트리면서까지 타 세력을 찍어 누르려 한다고?”
노련한 사냥꾼은 방심하지 않는 법이라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이건 꼭—
“꼭…… 상황을 반전시킬 약점이라도 있는 것처럼.”
“……!”
약점이 들키기 전에 무리해서라도 정적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하지만 그럴 만한 약점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나도 그게 의문이었다.
레널드가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슬프지만 에이든을 살육 인형으로 키운 실험실을 운영한 것 정도는…….”
“권력으로 덮을 수 있지.”
“아켈로스 대공에게 저주를 건 것은 대공가에서부터 함구하려 할 테고요.”
“무엇보다 황제가 좌시하지 않을걸.”
2황비나 3황비가 저주 건을 알아내서 고발하면?
고발한 당사자가 바로 황위 계승전에서 탈락할 것이다.
황족이 황실의 피가 섞인 아켈로스 대공가에 저주를 걸었다는 건 엄청난 스캔들이다.
‘내전의 빌미가 될 수 있어.’
그걸 황위 계승전에서 정적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사용한다?
황제가 두고 볼 리 없다.
“대체 뭘까요.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정도의 약점이라는 게.”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녀 시해 건도, 비아레칼 댐 붕괴 건도 1황비가 연관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어.”
오직 내 심증뿐이다.
하지만 머리가 아주 상쾌했다.
비로소 적이 누군지 확실하게 보였으니까.
“난 원래 복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
날 괴롭힌 미카린을 조지는 것처럼.
이스칼리온을 괴롭힌 1황비를 조져야지.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나는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앨리스가 곧장 들어왔다.
“아가씨, 찾으셨어요?”
“응, 입궁 채비를 도와줘.”
앨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자님들의 초대에 응하시려고요? 아버님과 오라버니들께서는—”
“무시해도 된다고 했지. 하지만 갈래.”
1황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부터 노려야지.
* * *
황궁의 아세릴 정원.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 앞에 2, 3황자가 서 있었다.
2황자, 알케토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체시어, 들어가서 옷이나 갈아입고 오지? 그렇게 단정하지 않은 차림을 델로시프 공녀에게 보일 셈이야?”
“글쎄? 함께 기사단을 돌아봤을 땐 이런 내 모습을 괜찮아하던데?”
“공녀가 예를 차린 것을 착각하지 말아라.”
두 황자의 시선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그러는 사이, 마차가 정원 입구에 도착했다.
두 황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공녀, 제 손을…….”
“제 손을, 공녀…….”
그들이 열린 문을 향해 손을 내밀 때였다.
“니케.”
뒤에서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루비스탄이 소년같이 맑게 웃으며 니케아르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니케아르샤는 잠시 제 앞에 내밀어진 세 개의 손을 바라보았다.
세 황자들은 기대하지 않았다.
‘이럴 때 공녀는 누구의 손도 잡지 않으니까.’
‘현명한 판단이긴 하지만 아쉽군.’
‘그래도 니케가 내 손을 잡아주면 좋겠는데.’
그 순간.
“마중 나와주셔서 고마워요, 황자님들.”
니케아르샤가 인사하며 손을 붙잡았다.
“그럼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루비스탄 저하.”
루비스탄의 손을 잡은 그녀가 생긋 웃었다.
손을 먼저 내민 건 본인이면서, 루비스탄은 깜짝 놀라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루비스탄 저하?”
“……물론이지.”
루비스탄이 미소 지으며 니케아르샤를 안내했다.
등 뒤로 이복형제들의 시선이 진득하게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정책 발의에 성공해서 저런 시선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여기 앉아, 니케.”
루비스탄이 손수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아세릴 정원의 한중간에 마련된 티테이블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진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이건 제가 직접 고른 식기입니다, 공녀.”
“공녀의 입맛에 맞춰 민트 초코 케이크를 준비하라 일렀는데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알케토와 체시어가 지지 않고 니케아르샤에게 말했다.
니케아르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수해를 막은 건으로 황제가 내 손을 들어주었나 보네.’
미카린이 역대급 각성자로 발현하고 난 후.
2, 3황자는 니케아르샤와 미카린 중 어느 쪽을 포섭할지 선택하지 못하고 양쪽에 다리를 걸쳐두고 있었다.
1황비야 뒤로 명백히 미카린을 지지하고 있는 반면, 루비스탄은 계속해서 니케아르샤를 포섭하려 했고.
2, 3황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바뀐 데에는 황제의 입김이 한 몫 했으리라.
‘그렇다면 오히려 수월해졌어.’
분위기가 훈훈하게 흘러가자 알케토가 물었다.
“크흠, 저도 공녀를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공녀께서는 저를 이름으로 부르셔도 됩니다.”
체시어 역시 지지 않고 말했다.
두 황자는 서로를 노려보았지만,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간 니케아르샤는 신중하게 어느 황자의 편도 들지 않아 왔다.
루비스탄에게 이름을 허락한 만큼, 자신들에게도 허락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황공한 말씀을 거두어 주세요. 2황자 저하, 3황자 저하.”
“……어?”
“화, 황공하다니.”
“제가 어찌 감히 황자님들을 이름으로 부르겠습니까.”
“하지만 루비스탄은…….”
그 말에 니케아르샤가 힐끔 루비스탄을 바라보았다.
“루비스탄 저하와는 조금…… 사적인 친분이 쌓였으니까요.”
두 황자의 눈매가 좁아졌다.
루비스탄은 순간 말을 잊고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
.
그 시각.
이스칼리온은 황제를 알현한 뒤 궁에서 나오고 있었다.
황제궁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스릴이 다급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뻐꾸기가 알을 낳았습니다.”
“……!”
이스칼리온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이 암호는 아켈로스 대공가에서 쓰는 것으로, 경계령 5레벨의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뜻했다.
예를 들면 반란이나 영지전 혹은 몬스터 웨이브 같은.
“무슨 일이지?”
“그게 공녀님이 황자님들과 티타임 중입니다!”
“……!”
“황자님들이 공녀님을 노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