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32)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32화(132/177)
이스칼리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디냐.”
“아세릴 정원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세릴 정원은 분위기가 끝~내줘서 없던 정분도 싹 튼다는 말이…….”
유스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스칼리온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같이 가욥!”
유스릴은 손을 흔들며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곁에서 수행하던 시종만이 홀로 남았다.
“저, 전하? 전하! 돌아오시옵소서~!”
들을 이 없는 외침이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 * *
이스칼리온은 날랜 범처럼 아세릴 정원에 도착했다.
몽환적이리만치 화사하게 핀 꽃들 사이로 니케아르샤의 얼굴이 보였다.
이스칼리온은 순간 다급히 걸음을 옮기던 것도 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산들산들 부는 가을바람에 니케아르샤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황궁에서 온갖 영양분과 보살핌을 받고 피어난 꽃이 화려하게 꽃잎을 흔드는데도 이스칼리온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미소 짓는 니케아르샤만이 선명했다.
‘……예의상 짓는 미소일 뿐이야.’
알고 있다.
니케아르샤가 진심으로 웃을 땐 저렇게 웃지 않는다.
그러니 딱히 저 황자들이 좋아서 웃어주는 게 아니라는 거다.
“헉, 허억, 전하…….”
겨우 이스칼리온을 쫓아온 유스릴이 옆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천천히, 헉, 가시지. 뭘 그리, 헉, 전하……?”
유스릴이 제 주군을 보고 의아하게 눈을 치떴다.
“왜 그렇, 헉, 게 기분 나빠, 헉, 하십니까?”
“…….”
이스칼리온은 말이 없었다.
유스릴의 표정이 더 아리송해졌다.
‘평소라면 숨소리 거슬리니까 꺼지라고 할 분이?’
유스릴의 시선이 이스칼리온을 따라 움직였다.
이스칼리온의 눈동자는 오직 니케아르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항.’
유스릴이 생선을 입에 문 고양이처럼 웃었다.
“뭘 그렇게 신경 쓰십니까? 딱 봐도 공녀님은 예의상 웃고 있는데.”
“……쁘잖아.”
“……예?”
유스릴이 ‘잘못 들었습니다?’ 하는 표정으로 이스칼리온을 올려다봤다.
“예의상 웃는 것도 저렇게 예쁘니까 황자 놈들이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니야.”
유스릴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그러나 이스칼리온의 말은 이제 시작이었다.
“알케토 자식 얼굴을 봐라. 헤벌쭉해져 가지곤.”
“…….”
“체시어 놈은 힐끔거리는 게 기분 나빠. 저놈 쳐다보라고 웃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봐?”
“…….”
“루비스탄 저 자식은 꼭 니케가 자기 때문에 웃는 것처럼 마주 방긋방긋 웃기나 하고. 완전히 착각해선. 저런 정신머리로 황태자가 되겠다고?”
유스릴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제정신이십니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락 말락 했다.
유스릴은 한 번 죽고 회귀해도 이스칼리온의 이런 모습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이내 깨달음이 찾아왔다.
‘맞아. 이런 타입이 한 번 사랑에 빠지면 지독하지.’
이스칼리온은 아직도 궁시렁거리는 중이었다.
“저렇게 예쁘게 차를 마시면 어떡하자는 거야? 하, 저놈들 넋 놓고 보는 것 좀 봐.”
‘진짜 지독하다, 지독혀!’
말만 들었을 뿐인데 유스릴은 왠지 양 싸대기를 짝짝 골고루 맞은 기분이었다.
‘제발 그만해주십시오~!’
그의 처절한 마음속 외침이 닿은 걸까.
이스칼리온이 말을 멈췄다.
유스릴은 깜짝 놀랐다가 곧 상황을 깨달았다.
황자들이 니케아르샤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크흠, 저도 공녀를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공녀께서는 저를 이름으로 부르셔도 됩니다.”
이스칼리온의 턱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저 자식들이 감히…….”
이스칼리온이 막 나서려는 순간, 니케아르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공한 말씀을 거두어 주세요. 2황자 저하, 3황자 저하.”
“……어?”
“화, 황공하다니.”
“제가 어찌 감히 황자님들을 이름으로 부르겠습니까.”
완벽한 철벽에 이스칼리온의 입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언제 나서려 했냐는 듯 그의 기세가 안정되었다.
“당연하지. 니케는 그냥 예의 차리는 중일 뿐이라고.”
유스릴은 어이없는 눈으로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그걸 왜 전하께서 뻐기듯 말씀하십니까.’
그 순간이었다.
니케아르샤가 루비스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루비스탄 저하와는 조금…… 사적인 친분이 쌓였으니까요.”
루비스탄의 눈동자가 홀린 듯 그녀를 향했다.
언제나 싱글싱글 웃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 넋을 잃은 듯한 시선이 니케아르샤의 시선과 얽혀들었다.
이스칼리온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야, 두 분이 언제 저렇게 친해지셨대요? 하긴 전부터 서로 이름으로 부르긴 했죠.”
유스릴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 소년같이 해맑은 황자가 얼마나 인기 많은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고한 권력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앳된 순수함을 잃지 않는 남자.
영애들은 그렇게 말하며 설레어 했다.
하지만 유스릴은 루비스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의외로…… 어라? 전하?”
이스칼리온은 아무 반응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귀에 유스릴의 목소리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아까 황제와 독대했을 때 들었던 말.
“델로시프 공녀는 황가에 어울리는 역량을 지녔다고 보네. 혈통으로나 그 능력으로나.”
그 말이 이스칼리온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럼에도 온 신경은 오로지 니케아르샤에게 향해 있었다.
루비스탄에게 환히 웃어주는 얼굴에.
처음이었다.
이런 기분은.
* * *
“아켈로스 대공?”
이스칼리온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체시어 황자였다.
니케아르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발견한 붉은 눈동자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스쳤다.
‘고작 이게 뭐라고.’
어지럽게 엉켜 있던 머릿속 실타래가 스르르 풀어지려고 했다.
“오랜만입니다, 대공.”
“아켈로스 대공을 뵙다니. 오늘 운이 좋은 날인가 봅니다.”
알케토와 체시어가 반색하며 이스칼리온을 반겼다.
아켈로스 대공가는 전통적으로 황위 계승전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황자는 없었다.
이스칼리온은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오직 니케아르샤에게 다가갔다.
“니케.”
“전하, 여긴 어떻게…….”
“…….”
이스칼리온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그 역시 이곳에 왜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참을 수 없었다.
지금도 루비스탄은 니케아르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거슬렸다.
무슨 핑계를 대서든 떨어트려 놓고 싶을 정도로.
“데리러 왔어.”
“절 데리러요……?”
니케아르샤는 의아해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니케는 나와 선약 중입니다, 대공.”
루비스탄이 일어나는 니케아르샤의 팔을 잡았다.
이스칼리온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해서.”
“아직 티타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데려가려 하십니까.”
“파트너를 에스코트하는 데에 이유가 필요한가?”
“……전하께선 니케와 아무 사이도 아니실 텐데요.”
언제나 해사했던 루비스탄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스칼리온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대공과 황자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닥치는 순간.
“황자님들, 모처럼 초대해 주신 티타임 중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니케아르샤가 이스칼리온의 팔을 잡았다.
“가요, 전하.”
이스칼리온은 니케아르샤의 작은 손에 붙들려 얌전히 따라갔다.
그토록 사납게 굴었던 게 거짓말처럼.
“뭔 일인데 저러지? 무슨 일 생겼나?”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체시어와 알케토가 혀를 내둘렀다.
그 가운데 루비스탄은 고요히 가라앉은 시선으로 니케아르샤와 이스칼리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왜 그랬어요!”
정원 한켠의 인적 드문 곳으로 오자마자 니케아르샤가 소리를 낮춰 화를 냈다.
이스칼리온은 자신에게 매달리듯 가까이 달라붙은 그녀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물론 전하의 지위가 황자보다 높긴 하죠! 그렇다고 루비스탄 황자에게 그렇게 무례하다니요.”
“지금 그 남자 편을 드는 건가?”
“누가 편을 들어요! 이게 애들 싸움도 아니고.”
이스칼리온은 잠시 니케아르샤를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그 자식이 좋아?”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니케아르샤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이스칼리온의 미간에 금이 갔다.
그가 니케아르샤에게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그 자식이 좋냐고.”
“갑자기 무슨…….”
“왜 대답을 못 하지?”
난데없는 추궁에 니케아르샤는 얼떨떨했다.
코앞에 으르렁대는 이스칼리온의 얼굴이 있었는데,
‘왜 귀엽지?’
그런 생각만 들었다.
잘생긴 얼굴은 원망스러운 듯 심통이 나 있었다.
심지어 살짝 초조해 보이기도 한 게 진짜—
‘귀엽잖아.’
니케아르샤는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버릴 것 같다.
“응? 왜 대답 못 해. 정말이야?”
으르렁대던 목소리에서는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살짝 비 맞은 강아지 같기까지 해서…….
‘아, 어떡해.’
때마침 이스칼리온이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새하얀 치아 아래로 얇은 입술이 더 붉게 물들었다.
틈만 나면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던 뜨거운 감촉.
그 요망한 입술이 바로 앞에 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큰일 나겠다.’
제르노와 아카인이 그랬다.
그딴 변태 짓을 당하면 대를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다고.
니케아르샤는 요망한 입술에게서 고개를 휙 돌렸다.
‘회귀자 특유의 엄청난 정신력이라 가능했다, 진짜.’
스스로를 칭찬하는데, 이스칼리온의 손에 얼굴이 텁 잡혔다.
노력이 무색하게 고개가 원위치되었다.
아니, 아까보다 더 얼굴이 가까워졌다.
“응? 니케.”
이 남자는 목소리까지 섹시했다.
니케아르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조, 좋긴 무슨. 제가 왜 루비스탄을 좋아해요.”
“근데 왜 그놈 편을 들어.”
“그거야 전하가 걱정돼서 그랬죠. 루비스탄은 그냥 황자도 아니고 황제 위에 가장 가까운데. 원래 공대 정도는 하셨잖아요.”
“…….”
이스칼리온은 가만히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갈 데까지 갔군.’
그래도 좋았다.
니케아르샤는 루비스탄 따위에 관심도 없고, 자신을 걱정한다.
“왜 갑자기 황자들을 만난 거야.”
“전하를 위해서예요.”
니케아르샤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이스칼리온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생각해 보니 이럴 때가 아니었다.
‘황자들을 흥신소로 조사했는데 셋 다 실패했어.’
수호석으로 인해 조사가 불가능합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일전에 새벽 다과회에서 세 황비들을 조사했을 때와 똑같은 결과였다.
‘황족들에게 흥신소가 통하지 않는 이상, 내가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어.’
니케아르샤가 말했다.
“우선 돌아가세요. 전 다시 황자님들께 가볼게요.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날 위해서라도 하지 마.”
이스칼리온이 니케아르샤를 붙잡았다.
멀어졌던 거리가 순식간에 다시 가까워졌다.
“진짜 날 위한다면 그냥 내 옆에 있어.”
푸른 눈동자가 똑바로 니케아르샤를 직시했다.
“다른 남자 옆에 있지 말고.”
* * *
황제궁.
시종의 말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스칼리온이 중앙탑으로 안 가고 아세릴 정원으로 향했다고?”
“예, 델로시프 공녀가 황자 저하들과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셨습니다.”
“허어…….”
황제는 기가 막힌 숨을 내쉬었다.
“이스칼리온에게는 알아듣게 말했다고 생각했거늘.”
조금 전, 황제는 이스칼리온과 독대하면서 니케아르샤에 관해 언질을 줬다.
“델로시프 공녀는 황가에 어울리는 역량을 지녔다고 보네. 혈통으로나 그 능력으로나.”
지나가듯 말했지만, 이스칼리온이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니케아르샤를 황자와 성혼시키고자 하는 황제의 의중을.
“그런데 황자들과 공녀의 시간을 방해했다고?”
황제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이스칼리온이 어째서?
그때였다.
“그래서 전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폐하.”
1황비가 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델로시프 공녀는 아켈로스 대공과 꽤 친밀한 관계라고요.”
분명 저번 만찬 때 1황비가 그리 말했다.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 오늘 이스칼리온에게 내 의중을 비친 것 아니오.”
“하지만 폐하의 뜻을 알고도 공녀에게로 향했지요.”
“이해가 안 되는군. 대체 왜?”
“사랑은 사내의 눈을 멀게 하는 법이지요.”
“허? 사랑? 그 녀석이?”
황제가 껄껄 웃었다.
그는 이스칼리온을 잘 알았다.
사랑 같은 단순한 감정놀음에 움직일 사내가 아니었다.
“아켈로스 대공은 한창 젊고 피가 뜨거울 나이입니다.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되지요.”
1황비는 그렇게 말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스칼리온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말이 안 됐다.
그저 다음 말을 위한 포석일 뿐.
“아켈로스 대공 역시 혼기가 찼습니다. 결혼 상대로 공녀를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지요.”
“…….”
“폐하, 아켈로스 대공은 그간 폐하께 헌신해 오지 않았습니까. 혼인 상대 정도는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요.”
“…….”
“황자들의 짝이라면 다른 영애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짝이라.”
1황비가 미소 지었다.
“역대급 각성자 말입니다. 델로시프 공녀보다 더 뛰어나니 황자들의 짝으로 제격이지요.”
황제가 1황비를 향해 마주 미소 지었다.
그러나 황제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꿍꿍이인가 했더니. 그거였군.”
“폐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황비! 대공가끼리 결합하게 두라고?!”
황제의 노호성이 벼락같이 울려 퍼졌다.
“차라리 미카린 텔시를 이스칼리온의 짝으로 정해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