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38)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38화(138/177)
“황태후가 대체 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태후는 자신이 주관해야 하는 황실 내부의 대소사도 황비들에게 맡기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13황자의 후견인이라니.
“13황자와 황태후가 연이 있었나?”
“그럴 리가요. 어떻게 이민족 노예 따위가 황태후 폐하와 혈맥이 닿아 있겠습니까.”
“그래도 일단은 손주야. 궁 내부에서 접촉했을 가능성은—”
“폐하께선 황태후궁 밖으로 잘 나오시지도 않습니다. 13황자 쪽도 정신이 있다면 황태후 폐하의 눈에 띄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고 하진 않았겠지요.”
“설령 다른 마음을 먹었다 해도 우연인 척 접촉하는 것도 상황을 만들어줄 세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럼 대체 왜—!”
1황비의 노호가 궁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왜 황태후가 나선 것이냐!”
루비스탄은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며칠 전, 황궁에서 보았던 니케아르샤의 모습이 떠올랐다.
클레아스와 미카린, 율리시즈와 함께 있던 모습.
사실 루비스탄은 니케아르샤가 셋과 조우하기 전에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했다.
그때 니케아르샤는 분명—
‘황태후궁 쪽에서 나왔어.’
* * *
그 시각, 황태후궁.
황태후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의 소란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한갓진 분위기였다.
쪼르르륵.
다 마신 찻잔에 지체 없이 따뜻한 홍차가 차올랐다.
황태후는 차를 한 모금 머금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평화가 참으로 좋구나.”
그 말에 팔마 부인(황태후의 최측근. A급 시중)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데 왜 공녀의 청을 들어주셨습니까. 이 평화를 깨고 다시 정쟁(政爭)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시게 되셨잖습니까.”
“내가 들어주고 싶어서 들어주었느냐? 협박받은 게지.”
황태후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어린것이 아주 맹랑하기 짝이 없어.”
“그런 말을 그리 웃으며 하십니까.”
“……내가 언제 웃었다고.”
황태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며칠 전, 니케아르샤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오랜만이구나, 공녀. 어서 오렴.”
“황태후 폐하께서 이리 반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후, 요즘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공녀야.”
금사 게이트부터 시작해 역대급 각성자의 불륜 스캔들까지.
니케아르샤는 딱 황태후 취향인 일만 만드는 아이였다.
“또 재미난 일을 벌일 생각이더냐.”
“그러기 위해선 황태후 폐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호오, 기대되는구나. 금사 게이트 때처럼 외궁에서 기자회견을 열 수 있게 해줄까?”
“아뇨.”
황태후는 그때 니케아르샤의 눈빛과 표정,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13황자의 후견인이 되어주십시오.”
“후후, 듣자마자 내쫓아버리려고 했는데.”
“결국 설득되셨지요.”
“협박 당한 거래도!”
“그래도 13황자의 ‘출생의 비밀’에는 꽤 귀를 기울이셨잖습니까.”
황태후가 팔마 부인을 흘겨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의 말대로 제국의 평화에 도움이 될 정보였으니 들어준 것뿐이다. 전쟁은 제국도, 서부 민족들도 황폐하게 만들 테니.”
“예예, 결국 다 들어주고 내쫓지도 않으셨죠.”
“그건 그 아이가 백지 계약서를 내밀었기 때문이잖느냐!”
그랬다.
니케아르샤는 황태후의 인장이 찍힌 백지를 내밀었다.
예전 새벽 다과회를 통해 황태후에게 얻어낸 대가였다.
정확히는 도서 <전쟁과 사랑 ~이혼 클리닉~>의 값.
“살다 살다 막장불륜치정 소설로 황태후의 인장이 찍힌 백지를 요구하는 아이는 처음 봤어.”
“그걸 내어주신 게 폐하 본인 아니십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었지.”
황태후가 피식 웃었다.
‘그 책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과연 니케아르샤가 그 백지 계약서를 어떻게 쓸지 내내 궁금했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보답하듯, 니케아르샤는 황태후의 기대를 충족시키다 못해 뛰어넘었다.
“내가 왜 그 아이의 청을 거절하지 않은 것 같으냐.”
“어머나? 협박 당했을 뿐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팔마 부인의 농담에 황태후가 픽 웃었다.
니케아르샤는 그 백지를 도로 황태후에게 돌려주었다.
“정히 원치 않으신다면 이 종이를 찢어버리십시오.”
“찢으라고? 그럼 본후는 절대로 13황자를 후견하지 않을 텐데.”
“폐하의 마음이 없는데 허울뿐인 후견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 후견인으로 이름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13황자의 후견인이 되어주어라?”
“결정은 폐하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니케아르샤는 백지를 황태후의 손에 들려주었다.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종이는 쉽게 찢길 것이다.
그러나 황태후는 찢지 않았다.
찢을 수가 없었다.
“재산과 권력은 덧없다 말씀하셨죠. 하면 제국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니케아르샤의 눈빛이—
“—꼭 젊었을 적 나를 보는 것 같았어.”
세월이 흐르며 점점 잊었던, 과거의 다짐을 떠올리게 하는 눈동자였다.
제국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어떻게 다스릴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밤을 새웠던 지난날.
언제부턴가 퇴색되고 잊혀졌던 것들이 떠올라서.
평화롭던 일상을 내팽개치고 그 아이에게 걸어보고 싶어졌다.
“본후가 후견인이 되어주었는데, 13황자가 홀대받을 순 없지.”
탁, 황태후가 소서에 찻잔을 놓았다.
“당장 13황자의 궁에 사람을 보내라. 본후가 직접 살필 것이야.”
황태후의 눈동자가 벼린 날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리 검집 안에 오래 잠들어 있어도 날이 상하지 않는 보검처럼.
* * *
13황자가 지내는 별궁.
한적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하던 이곳엔 사람들이 넘쳐났다.
모두 13황자의 시중과 호위를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공녀님께 어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3황자의 유모, 엘리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격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마땅히 황자님이 누려야 했던 권리를 되찾은 것뿐이야.”
“공녀님…….”
“벌써 눈물 흘리긴 일러. 이제 시작이니까.”
마탑에서 타하르와 만난 후, 황궁에 온 날.
나는 황태후궁에 가기 전에 먼저 13황자궁에 찾아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너무 열악해서.’
13황자궁은 절대로 황자가 지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먼지와 거미줄투성이에, 관리 인력도 거의 없었다.
황자가 지내는 방은 유모가 열심히 치우는지 그나마 나았지만, 그뿐.
어린아이의 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살풍경했다.
“그, 그래도 공녀님께서 보내주신 물건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아연한 내 얼굴을 보고 유모가 애써 말했다.
“예산은?”
“네?”
“아무리 황족 그 누구도 신경 안 쓴다고 해도 황자인 이상 배정되는 예산이 있을 거잖아.”
“그, 그것이…….”
“……윗대가리들이 다 착복했구나.”
유모는 고개를 숙였다.
그게 대답이 되었다.
‘예산을 제대로 배정해 주지도 않고, 그 얼마 없는예산마저착복하다니.’
이대로 그냥 숨죽여 지낸다고 해도 13황자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착복한 쓰레기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13황자가 점점 자라서 제 상황을 깨닫게 되기 전에.
그때, 내 다리에 툭 닿는 온기가 있었다.
내려다보니 13황자가 날 보고 활짝 웃었다.
“마마!”
“마마 말고요, 황자님.”
“니케?”
13황자가 내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니케 조아.”
코끝이 시큰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흥신소>를 사용했다.
이름: 이데오 파스칼레
…
잠재력: 통치력(A급), 군림(A급), 정치력(B급) / 공정, 결단력, 인내…
내 예상대로 13황자의 신상명세서는 볼 수 있었다.
다른 황족들과 달리 수호석으로 보호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무슨 잠재력이…….’
내가 13황자의 신상명세서를 확인한 건 잠재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내 손으로 암군을 만들 순 없으니까.
‘서부의 용혈까지 이었으니 당연히 좋은 기량을 갖췄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자세를 낮춰 13황자를 마주 보았다.
“황자님, 이보다 더 깨끗하고 넓은 곳에서 지내고 싶으세요?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고요.”
아이는 투명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당장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는데, 도리도리 저었다.
“넓으면 안 대. 유모 고생해.”
나는 어째서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잠재력을 타고났는지 알 것 같았다.
“유모도 고생 안 하고요. 지금은 유모 일 말고 다른 일까지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져요.”
“정말?”
“그런데 황자님이 고생할 수 있어요.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고, 잘 해내야 해요. 정말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요.”
“형님들처럼?”
“……네, 다른 황자님들처럼요.”
“니케가 무슨 말 하는지 아라.”
과연 정말 아는 걸까, 생각했는데.
아이는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나, 황제님 될 거야.”
“……?!”
“황제님은 유모랑 마리 같은 사람들 도와주는 거야. 약한 사람들 괴롭히는 나쁜 놈들 혼내주는 거야.”
“…….”
“나는 그런 사람이 될 거야.”
그 말에 나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미래의 작은 황제 앞에 기꺼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네, 꼭 그런 사람이 되셔요. 저와 약속이에요.”
“응!”
한창 그날을 떠올리는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께서 13황자 저하께 렐프라궁을 하사하셨습니다!”
궁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기함했다.
사실 이건 나조차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그때, 황제의 시종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놀라운 후견인을 포섭한 것에 대한 황제 폐하의 선물입니다.”
“폐하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내 말에 시종이 미소 짓고 물러갔다.
다리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서 내려다보니 13황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황자님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몰라.”
“황자님의 어머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서부 민족들 사이에서는 ‘용의 자손’이라는 뜻이랍니다.”
“용의 자손?”
“네. 황자님의 삼촌이 알려주었어요.”
먼 이국의 땅에서 노예로 살면서도, 자신의 아들이 권리를 찾길 바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저는 편히 쉬는 게 꿈이라서요. 이제 황자님의 권리를 되찾아드렸으니 반드시 성군으로 만들겠습니다.”
오랜 적대 관계였던 서부와 제국의 악연을 끊어내, 대륙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성군을.
* * *
온 제국이 어수선해졌다.
칩거하다시피 지내던 황태후가 13황자의 후견인이 되겠다 선언했다.
그것도 모자라 황제가 황자 시절 지냈던 궁을 13황자에게 내리기까지 했다.
좁혀가던 승계 구도에 무슨 이변이 생긴 건가 싶어 귀족들은 시류를 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
델로시프 대공저에는 그야말로 파란이 불고 있었다.
“이 아비의 말을 명심하거라, 니케.”
델로시프 대공이 엄격한 얼굴로 딸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니케아르샤는 평소와 달리 군기가 바짝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중앙탑의 13수좌 중 한 분.’
중앙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셨다.
지금 니케아르샤는 황위 계승전에 뛰어들어 13황자를 지지하고 나선 상황.
‘계승전에서 아버지의 충고는 그 무엇보다 귀해.’
그야말로 금과옥조 같은 말!
니케아르샤는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파혼은 두 번 해도 괜찮다.”
—델로시프 대공의 조언은 어딘지 기대와 달랐다.
“……예?”
“요즘 세상에 파혼 몇 번 하는 건 흠이 아니야. 이혼도 아닌데.”
“아버지 말씀이 실로 옳다. 요새 파혼은 훈장 같은 거지.”
최연소 중앙탑 입성자인 제르노 역시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니케아르샤는 떨떠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이없는 건 그녀 혼자만인지, 아카인까지 가세했다.
“오히려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은 더 쉽지 않아? 파혼 절차도 이제 잘 알잖아.”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파혼해요.”
“그러니까 이 상황만 끝나면 바로 파혼하자고.”
“그래, 이 오라버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13황자를 황태자위에 올려주마.”
“그래, 벌써 몇몇 공작들과 회동을 갖기로 했다. 니케, 넌 걱정 말고 이 아빠를 믿으렴.”
“…….”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이긴 한데.
왠지 앞으로 엄청 피곤해질 것 같았다.
‘……조금 이따 이스칼리온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몰래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여기 다 모여 계셨군요.”
진짜 반갑지만 지금은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니케아르샤는 설마,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카인이 빽 소리를 질렀다.
“대공이 왜 여기에 온 겁니까?!”
“약혼녀의 집이니 당연하잖습니까, 형님.”
“혀, 형……!”
아카인이 뒷목을 잡았다.
“니케와 데이트하기로 해서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인어른, 형님들.”
“뭐, 뭐라고?!”
데이트. 장인어른. 형님.
이 삼단 콤보에 가족들이 뒤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