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4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40화(140/177)
* * *
구호 당일.
나는 레널드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가족들이 함께 하고 싶어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가문의 후광을 업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괜히 먹이를 던져줄 필요는 없다.
레널드가 입을 열었다.
“좀 쉬세요.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
“응.”
그 많은 병자와 노약자들을 전부 다 수용하고 구호를 펼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해서 아예 제도 외곽에 공간을 마련했다.
“그런데 용케 에이든을 내보내셨군요.”
“응?”
“저번에 미카린과 맞붙었을 때 큰일 나실 뻔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라올 줄 알았는데요.”
“아아.”
내 반응에 레널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든이 이번 구호에 따라올까 봐 멀리 보내신 것 아니었습니까? 에반스랑 마주칠까 봐.”
“음, 그 이유도 있긴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을 맡겼어.”
“중요한 일이요? 그걸 제가 몰랐다구요?”
레널드는 꽤 섭섭해 보였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말할 기회가 없었던 거지.”
“무슨 일인데요?”
“수호석 조사.”
“……!”
레널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황족들의 조사를 막는 그 수호석 말씀이십니까.”
“맞아.”
황족들을 조사할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수호석으로 인해 조사가 불가능합니다!
“13황자를 조사할 때는 그냥 성공했거든. 그러니까 태생적인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받는 보호야.”
“만약 수호석의 보호를 파훼할 수 있다면…….”
“응, 그게 1황비의 약점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야.”
황제 앞에서 이스칼리온과 약혼하겠다는 말을 꺼낸 순간.
루비스탄을 통해 1황비에 대해 캐낸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애초에 루비스탄이 내게 관심을 보였던 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이유에서일 테고.’
루비스탄이 원한 건 혼맥이 이어진 견고한 동맹.
그런데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이스칼리온과 손잡은 것도 모자라, 13황자를 지지하고 나섰으니…….
‘이제 완전히 척진 거나 마찬가지지.’
“대체 뭘까요. 그 수호석이란 게.”
“나도 모르겠어. 황가에는 워낙 숨겨진 비밀이 많으니. 하지만 에이든이라면 분명 뭔가 알아낼 거야.”
내 말에 레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암살자는 잠입과 은폐, 정보 수집에 일가견이 있으니까요.”
“에이든은 고작 뛰어난 암살자 수준이 아니야. 잊었어?”
“아! 공녀님의 전생에선 직계 황족 시해에 성공했죠!”
“그리고 평생 잡히지 않았지. 이게 가장 대단한 점이야.”
다만 내가 그간 에이든에게 수호석 조사를 맡기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황궁에 잠입해야 하는데 그 전까진 저주의 배후가 누군지 좁혀지지 않았으니까.’
혹시라도 에이든이 ‘실험실’에 관련된 사람을 만날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1황비가 확실한 지금, 그쪽만 피하면 상관없다.
특히 계승전에 참여하지 않은 황자나 황녀들 쪽은 이목이 쏠리지 않았으니 공략하기도 수월하다.
“조만간 1황비를 조사하실 수 있겠네요.”
“응. 그래도 에이든의 안전이 가장 중요해. 못 알아내도 괜찮으니 위험할 것 같으면 당장 몸을 빼라고 했어.”
“에이든이라면 걱정 없을 겁니다.”
레널드가 미소 짓는 순간이었다.
파삭!
품속에서 아주 작은 균열음이 들렸다.
“공녀님? 왜 그러십니까…….”
레널드가 딱딱하게 굳은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품속에서 작은 마도구를 꺼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에이든의 귀걸이와 똑같은 빛깔의 붉은 보옥에는 금이 가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파르르 눈가가 떨렸다.
새파래진 내 안색을 본 레널드가 놀라 물었다.
“대체 그게 뭐길래…….”
“……에이든의 귀걸이와 연결되어 있는 마도구야. 혹시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때 알 수 있도록.”
“그 말씀은—”
레널드가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에이든이 위험해.”
* * *
“큭……!”
에이든은 몸통을 옥죄어 오는 압박감에 신음을 삼켰다.
땅이 솟아나 그를 휘감고 바닥으로 처박았다.
미로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에이든을 사냥하고 있었다.
“설마 내 미로 속에서 지금까지 버틸 줄은 몰랐어. 여전히 대단하구나.”
뚜벅, 뚜벅.
바닥에 처박힌 에이든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208.”
그 부름에 에이든이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에반스가 싱긋 웃었다.
“황족을 노리다니 대담하네. 내가 널 주시하고 있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거야. 7황녀는 ‘그분’과 전혀 상관없기도 하고.”
“……처음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었나?”
“그래, 나름대로 한솥밥 먹으며 형제처럼 자랐는데. 내가 널 몰라볼 리 없잖아.”
“개소리.”
에이든은 제 앞에 쭈그려 앉은 에반스를 향해 침을 뱉었다.
솟아난 미로 벽에 의해 바로 가로막혔지만.
에반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너답지 않은 짓을 했어. 분명 위화감을 느꼈잖아?”
에이든은 어렸을 적 ‘실험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살기 위해서 아이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게 되었다.
“그때 바로 몸을 뺐으면 이렇게 우스워질 일도 없었을 텐데. 왜 그랬지?”
“내 주인님이 원하는 것을 이뤄드리는 데에 내 위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명을 잘 따랐다고. 반항하고 반항하다가 저주 따위에 걸려버린 어리석은 놈이.”
에반스는 조소를 흘렸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왠지 모를 짜증이 가득했다.
“넌 그냥 버림패일 뿐이야. 7황녀를 죽여봤자, 네 주인에겐 아무 이득도 없어.”
그 말에 에이든은 깨달았다.
‘이 녀석은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른다.’
당연히 에이든은 7황녀를 죽일 생각 따위 없었다.
니케아르샤의 명대로 수호석만 조사할 계획이었다.
정보를 정리하는 사이에도 에반스의 말은 계속되었다.
“너를 통해 실험실을 조사하려다가 실패하니 사지로 내몬 거지. 증거 인멸을 위해서.”
“…….”
“네가 주인이라고 따라봤자 돌아오는 건 폐기 처분뿐이야.”
“그래서?”
에이든이 물끄러미 에반스를 바라보았다.
“상관없어. 주인님이 나를 버림패로 사용하든, 도구로 사용하든.”
“상관없다고?”
“주인님은 나한테 이름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행복을 알려주셨어.”
에이든은 니케아르샤와 함께 새로운 디저트를 먹을 때마다 행복했다.
자신이 맛있다고 하면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이.
다른 맛있는 것도 얼른 보여주고 싶다며 반짝이는 그 눈동자가.
“내게 삶을 주셨어.”
모든 것을 죽이고, 자신조차 죽이며 연명했던 에이든을 살아 있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 안됐네. 그 삶, 오늘로 끝이라서.”
에반스가 에이든의 턱을 콱 움켜쥐어 눈을 마주쳤다.
“네 주인을 믿은 대가로 넌 여기서 개죽음당할 거야.”
“…….”
“알고 있겠지. 각성조차 하지 못한 너는 절대로 권능자에게 이길 수 없어.”
이 미로 자체가 에반스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들어온 이상,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에이든은 가만히 에반스를 바라보다 물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지?”
“……뭐?”
에반스는 요령 좋은 놈이었다.
언제나 빙글빙글 웃으며,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놈.
에이든과 똑같은 실험체의 위치였으면서 연구원들에게 편승하더니, 어느새 배후의 눈에 들어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다니…….’
순간, 깨달음이 에이든의 뇌리에 스쳤다.
“너…… 주인님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니케아르샤는 에이든과 에반스가 마주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런데도 에반스는 에이든을 봤고, 계속 주시해 왔다고 한다.
“그래, 따로 지켜본 거야. 1황비의 명령도 아닌데.”
“…….”
“딱히 보고도 하지 않았고. 1황비가 내 정체를 알았다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
에반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208.”
“질투했어? 내가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 새롭게 사는 걸 보면서.”
“확실히 살 만해진 모양이야. 그딴 개소리도 말이라고 지껄이는 걸 보면.”
에반스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기해 볼까.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네 주인님이 널 구하러 올지, 아닐지.”
“내기할 것 없어. 난 주인님이 오지 않길 바라니까.”
오는 순간 니케아르샤는 위험해진다.
그러나 에반스는 에이든을 비웃을 뿐이었다.
“네게 선택권 따윈 없어.”
에반스의 손가락이 에이든의 귓불을 감쌌다.
콰직!
파열음과 함께 에이든의 귀걸이가 깨어져 나갔다.
“네 녀석이 그렇게 추앙하는 주인님의 민낯을 내가 까발려 주지.”
어차피 니케아르샤는 오지 않는다.
오늘은 미카린과 정면으로 맞붙는 날.
‘대결을 포기하면 잃을 게 너무 많아. 그런데도 여기 올 리가 없지.’
심지어 에이든은 외출한 7황녀를 암살하려던 상황.
꼬리를 잘라도 부족할 일이다.
즉시 역모로 몰릴 테니까.
에반스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 *
“마차를 돌려.”
내 말에 레널드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공녀님, 일단 진정하시고. 아직 에이든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니까—”
“모르니까 가야지.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면?”
“사람들이 전부 공녀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안 가면 공녀님이 일부러 승부를 피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미카린과 1황비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역대급 각성자보다 못한 게 탄로 날까 봐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고.
병든 백성들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 쓰레기라고.
“무엇보다 에이든은 지금 황궁에 잠입한 상황 아닙니까. 공녀님이 가시면…….”
“아니. 에이든이 위험할 정도의 일이라면 황궁에서 벌어지긴 힘들어.”
황궁에는 몇 중의 결계가 펼쳐져 있다.
은밀히 행동하던 에이든이 무모하게 충돌하진 않았을 터.
“아마 외출한 황족 중 한 명의 뒤를 캐다 일이 벌어졌겠지.”
“그래도 황족과 연관된 일입니다! 1황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모로 묶을 거예요! 함정이라고요!”
“그래서, 에이든을 버리라고?”
내 외침에 레널드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고통스럽게 살다가 이제야 겨우 자유가 뭔지 배우고 있는 아이야.”
“…….”
“저주에서 풀려나고도 자유가 뭔지 몰라서 차라리 내게 종속되길 바랐어.”
“…….”
“그런 애를 버리라고?”
“하지만…… 그게 바로 미카린의 술수에 말려드는 겁니다.”
“……이미 말려들었어.”
나는 선택해야 한다.
내 일신의 안위를 비롯해 앞으로의 정국.
에이든의 목숨.
이 두 가지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무조건 잃는다.
내 얼굴을 바라본 레널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말려도 소용없겠군요.”
“미안.”
“그럼 적어도 다른 분들께 연락한 다음 합류해서 가세요. 상대는 에이든마저 위험하게 만든 실력자입니다.”
“그럼 늦어. 그 사이 에이든이 어떻게 될지 몰라.”
“공녀님!”
“나를 잡는 게 목적이면 절대 그 자리에서 날 죽이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나니 좀 이상했다.
‘에이든의 성격상, 직접 귀걸이를 부숴서 내게 위험을 알렸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상대가 일부러 내게 에이든의 위험을 알린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레널드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는가. 가면 어떻게 되는지.
‘……하지만, 내가 안 가면?’
물론 에이든을 잃겠지.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사람들은 내 호위의 얼굴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설령 귀걸이 착용 전후의 모습을 촬영해서, 내가 황족의 뒤를 캤다고 고발해도 상관없다.
‘나 역시 정체를 숨긴 에이든에게 속았다고 하면 되니까.’
이를 빌미로 대대적으로 에이든의 정체를 추적하면 ‘실험실’을 운영했던 1황비가 엮일 수 있다.
즉, 1황비 역시 이 일을 묻어두길 바랄 것이다.
‘나는 절대 에이든을 버리지도 않고, 모른 척도 안 할 테지만.’
과연 1황비도 그렇게 생각할까?
나는 그토록 아꼈던 사촌을 땅끝으로 내쫓았다.
가족의 반대를 꺾을 정도로 사랑하던 약혼자를 공개적으로 고발하고 감옥에 처넣기까지 했지.
다시 말해, 나는 언제든 쉽게 사람을 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레널드, 넌 원래 계획대로 구호 장소로 가.”
“네?”
“내가 각성시킨 치유의 권능자들을 통솔해서 구호 활동을 펼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지만 어차피 공녀님께서 치유하지 않으면 계획은—”
“알아. 그래도 일단 내 말을 따라줘.”
나는 레널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선택해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난 아무것도 잃지 않을 거야.”
* * *
에반스는 파괴된 귀걸이에서 퍼져나가는 마력 파동을 느끼며 픽 웃었다.
“파괴 시 추적 마법이 발동하도록 되어 있네?”
그만큼 니케아르샤가 에이든의 안위를 소중히 생각한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에반스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한 채 말했다.
“이런데도 안 오면 정말 널 버린 거야. 네 위치를 몰라서 못 온 게 아니니까.”
“…….”
“어떻게 위치를 전할까 고민했는데 수고를 덜었군.”
에반스는 팔짱을 끼며 자리에 걸터앉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절대 올 리가 없어.”
“…….”
“희망 따위 가지지 마.”
“…….”
“넌 버림받은 거야.”
중얼거리는 에반스를 보고 에이든은 미간을 찌푸렸다.
“난 오지 않기를 바란다니까.”
“…….”
“왜 네 녀석이 더 초조해 보이는 거지?”
에반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에이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야말로 내 주인님이 오길 바라고 있는 거 아냐?”
“그럴 리 없잖아!”
그때였다.
미로 밖에서 강력한 마력 파동이 울렸다.
에반스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미로가 스르륵 움직여 길을 만들어냈다.
환히 트인 바깥의 역광 사이로 한 인영이 서 있었다.
반짝이는 은발,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니케아르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