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41)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41화(141/177)
“어째서…….”
에반스가 저도 모르게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어쩐지 생각조차 멈췄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니케아르샤를 보면서, 에반스는 신경이 훅 조여들었다.
하지만.
“에이든!”
니케아르샤는 에반스를 향해 다가온 게 아니었다.
에반스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괜찮아?”
니케아르샤의 시선은 처음부터 오직 에이든만을 향해 있었다.
에반스를 지나친 그녀가 땅에 처박힌 에이든을 살폈다.
“주인님…….”
“그래, 에이든. 이제 괜찮아. 내가 왔으니까.”
“왜 왔어요.”
그 말에 니케아르샤가 버럭 화를 냈다.
“네가 위험한데 당연히 와야지! 내가 아니면 누가 와?”
“아니죠. 도망 가야지. 멀리, 멀리.”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에반스는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꼭 강제로 무대 밖으로 밀려난 듯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와야 한다고?’
니케아르샤에게는 정말로 아무 이유도 없어 보였다.
주변 상황이나 정치 알력, 앞으로의 일 같은 건 하나도 상관 없는 모습.
지금 저 붉은 눈동자에 오직 에이든만 담겨 있듯이.
“피 좀 봐……. 머리를 다친 거야? 어디 봐.”
에이든의 꼴은 엉망이었다.
이마를 타고 흐른 피가 턱 끝에 맺혀 있다.
얼굴 여기저기도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거기다 몸통을 꽉 압박하고 있는 미로 바닥 때문에 호흡이 가팔랐다.
‘폐가 제대로 늘어날 공간이 없는 거야…….’
그나마 호흡법 덕분에 기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니케아르샤는 혹시 갈비뼈가 부러진 건 아닌지 초조하게 확인했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화를 내는 니케아르샤의 눈가가 새빨갰다.
에반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정도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에이든에게도, 에반스에게도 이 정도 부상은 별 거 아니었다.
숨이 오락가락하지도 않고, 배가 꿰뚫려서 내장이 쏟아져 나온 것도 아니다.
니케아르샤가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빈사 상태가 되었을 때도 귀찮게 되었다는 시선만 받아봤는데…….’
“네가 에이든을 이렇게 만들었어?”
니케아르샤의 시선이 비로소 에반스를 향했다.
에반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맞아요.”
“당장 이거 풀어.”
“음, 싫은데요.”
미소 지으며 고개를 기울이자, 니케아르샤의 시선이 완벽하게 에반스에게 고정되었다.
에반스는 기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물었다.
“왜 왔어요?”
“뭐?”
“208 따위, 저울 위에 올려 둘 가치도 없잖아요.”
니케아르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구호 활동에 빠지면 타격이 클 거예요.”
“그런데?”
“13황자를 지지하고 나선 상황인 만큼 계승전에서도 밀릴 거고요. 계승전에서 지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텐데요?”
“그래서?”
“그뿐만이 아니에요. 7황녀 시해 시도는 반역죄예요. 당신이 직접 여기 온 이상, 꼬리 자르고 빠져나가지도 못해.”
“어쩌라고.”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에 에반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상한 일이다.
궁지에 몰린 건 니케아르샤인데, 오히려 그가 더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208의 목숨에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응.”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확고하게 떨어지는 대답.
에반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 208을 죽일 생각 따위 없었어요. 당신은 전부 다 잃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야.”
“…….”
“처음부터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요!”
에반스는 소리를 내지르며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후회할 거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에이든의 목숨을 선택했는데, 사실 에이든은 죽을 일조차 없었다.
당연히 후회할 거다.
괜히 에이든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거야.
저열하고도 기묘한 기대감에 가득 찬 채, 니케아르샤를 바라보던 에반스가 흠칫했다.
“아니, 에이든에게 오길 잘했어.”
니케아르샤는 단호했다.
붉은 눈동자는 어떤 흔들림도 없이 견고하기만 했다.
“왜……?”
“에이든이 괜찮다고 하니까.”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괜찮다고 하는데, 그게 뭐?
“진짜 괜찮았으면 에이든은 아프다고 날 보챘을 거야.”
호오, 해달라고.
여기도, 저기도 아프다고.
잘 좀 봐달라고 어리광을 잔뜩 부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괜찮다고만 하는 건 정말로 위험하기 때문이지.”
“…….”
“그리고 에이든이야. 208 따위가 아니라.”
새빨간 눈동자에 분노가 넘실 거렸다.
“다시는 에이든을 그딴 숫자로 부르지 마.”
그와 동시에 니케아르샤에게서 마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콰광!
‘폭발 마도구?’
에반스는 뒤로 물러나며 미로 벽으로 폭발을 막았다.
다만 순간적으로 방어하느라 에이든을 포박하고 있던 땅이 풀렸다.
콰앙!
분진 사이로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렸다.
미로 벽을 뚫고 탈출하려는 듯했다.
“같잖은 수를.”
에반스의 의지에 따라 미로가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니케아르샤와 에이든의 앞에 서 있었다.
“그래봤자 이 미로에서는 못 빠져나가요.”
“비켜.”
그 말과 동시에 또 폭발이 일었다.
에반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래봤자 시간 벌이용일 뿐인데. 내 마력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건가.’
권능을 유지하고 계속 사용하는 데에는 마력이 든다.
하지만 계산을 잘못했다.
‘내 마력은 아직 쌩쌩해.’
몇 번의 폭발과 술래잡기 끝에, 에반스는 니케아르샤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술래잡기는 끝? 마도구가 다 떨어졌나 봐요?”
니케아르샤는 에이든을 제 등 뒤에 숨긴 채, 에반스를 노려볼 뿐이었다.
에반스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당신, 여기서 죽어요.”
“…….”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지금이라도 208을 두고 가면 모르는 척 할게요. 당신이 여기 왔다는 사실까지도.”
유혹적인 목소리가 니케아르샤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은 이대로 살아서 나가면 돼. 어때요?”
“……208이 아니라, 에이든이랬지. 그리고.”
니케아르샤가 고개를 들었다.
“자꾸 에이든의 목숨을 저울 위에 올려놓지 마! 빡치니까.”
콰과광!
지척에서 터진 폭발에 에반스가 신형을 뒤로 물렸다.
‘무슨?’
이전과 전혀 다른 폭발이었다.
반사적으로 세웠던 미로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아니, 그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저렇게 강한 폭발을 일으킨다고?’
니케아르샤나 에이든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아까 뭐라 그랬더라.”
빙글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에이든이 눈매를 사르르 접었다.
“난 절대 널 이길 수 없다고 했었나?”
에이든은 니케아르샤를 끌어안은 채 커다란 꽃송이 안에 서 있었다.
미로 안에 난데 없이 나타난 꽃.
이 공간은 에반스가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자연적으로 꽃이 필 수 없다는 뜻이다.
아니, 애초에 저렇게 커다란 꽃이 있을 리도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
“권능을 각성한 거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니케아르샤는 술법진도 없이 권능을 일깨우는 각성자였다.
‘단순히 마력이 떨어지는 걸 기다린다고 생각했는데, 각성할 시간을 벌 포석이었나.’
“맞아. 그리고.”
에이든이 달콤하게 웃었다.
무수하게 떨어지는 꽃잎이 폭발을 만들어냈다.
니케아르샤를 보호할 수 있는 이상, 에이든은 미로가 무너지든 말든 거리낌이 없었다.
“이게 대체…….”
에반스는 계속해서 몸을 뒤로 물렸다.
벽으로 막아도, 막아도 허공을 수놓는 꽃잎은 계속해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단번에 벽을 파괴하니 엄폐의 의미도 없을 지경이었다.
‘막 각성한 권능이 이렇게 강하다고?!’
아니, 이건 그 정도가 아니다.
꽃잎은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데, 꽃송이에 감싸면 완벽한 방어벽이 된다.
‘듣도 보도 못한 권능이야. 이런 권능이 존재하다니…….’
그야말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한 엄청난 권능이었다.
“커헉……!”
결국 폭발에 휩쓸린 에반스가 나뒹굴었다.
유영하는 꽃잎이 그의 곁을 맴돌았다.
“감히 내 주인님을 위험에 빠트린 죄, 죽음으로 갚아야지.”
에이든의 목소리가 노래하듯 울렸다.
그와 함께 꽃잎이 에반스의 가슴으로 내려앉았다.
물론 에반스 역시 가만히 있진 않았다.
우우우우웅—
미로가 샛노랗게 물들며 기묘하게 움직였다.
두 권능이 정면으로 맞붙으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그만.”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두 남자는 순간 마치 주박에라도 걸린 것처럼 멈칫 했다.
니케아르샤가 쓰러진 에반스에게로 다가갔다.
에반스가 피식 웃었다.
“왜? 이제 내가 좀 신경 쓰여요?”
“사과해.”
“뭐?”
“에이든한테 사과해.”
“…….”
“에이든의 목숨이 가벼운 것처럼, 몇 번이나 저울에 올려놓고 내깃거리로 삼은 거. 사과하라고.”
에반스가 입을 벌렸다.
니케아르샤에게는 중요한 사항이 너무나 많았다.
당연히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거래하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하는 말이—
“고작, 그거……?”
“고작이라니.”
콱!
니케아르샤가 에반스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붉은 눈동자는 여전한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당신, 진짜 바보야?”
니케아르샤가 이렇게까지 화낼 줄은 몰랐다.
이전에 동북부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때는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냉정하게 분석하기만 했는데.’
오히려 에이든을 건드린 지금 더 이성을 잃고 분노하고 있었다.
꼭—
‘저 녀석을 정말…… 진심으로 아끼는 것처럼.’
왠지 그 사실이 가슴을 쿡 찔렀다.
“……이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닐 텐데.”
“뭐?”
“당신을 토사에 묻어버렸을 때보다 더 화내고 있잖아.”
“…….”
“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처럼.”
니케아르샤의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에이든을 저렇게 만들어놓고 용서를 바란 거야?”
“저 녀석과 내가 뭐가 다른데?”
에반스 역시 그 끔찍한 실험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이다.
그런데 에이든은 자신을 이렇게나 사람으로 대해주는 주인을 만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자신은 여전히 장기 말로 쓰레기처럼 진창을 구르고 있는데.
하지만.
‘……이상해.’
왜.
‘기쁜 거지, 나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니케아르샤의 모습을 보니 가슴 안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쿡, 찌른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 통증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저 녀석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테스트하며 확인 받으려고 했던 건—’
어쩌면.
‘이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몰라.’
이해타산을 다 접어두고 오직 에이든만을 생각해서 달려오는 것.
에이든을 위해서 자신에게 화를 내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 모습.
몇 번이고 무를 기회가 주어져도, 에이든을 놓고 타협하지 않는 곧은 눈동자.
그런 일 따위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보고 싶었던 거다.
‘실험실 생쥐에게도 이런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기적처럼.
“너…….”
니케아르샤가 당황한 얼굴로 에반스를 바라보았다.
“울어?”
에반스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기색조차 사라진, 무표정한 얼굴에서 눈물만이 선연했다.
가만히 니케아르샤를 바라보던 에반스의 입술이 열렸다.
“……나도 당신을 먼저 만났으면 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