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45)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45화(145/177)
천천히, 이스칼리온의 고개가 움직여 니케아르샤를 향했다.
푸른 눈동자에는 배신감이 넘실넘실거렸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열렸다.
“반려……?”
니케아르샤는 입을 헤벌렸다.
지금 고작 저 말 때문에 저렇게 충격 받은 거야?!
‘누가 봐도 정상적인 발언이 아니잖아!’
그러나 이스칼리온은 한없이 심각했다.
그가 성큼성큼 니케아르샤에게 다가왔다.
“나랑 약혼하고 바로 다른 남자를 반려로 들여?”
“다, 다른 남자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아직 약혼식도 치르기 전에!”
“그러니까 제가 언제—”
“저 자식이 그대의 반려라고 하잖아!”
“반려가 아니라, 반려견이요. 반려견!”
말하고서 니케아르샤는 아차, 했다.
등 뒤로 오소소 한기가 흘렀다.
‘시, 실수했다.’
절대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데, 불안해서 결국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투닥거림을 멈춘 에반스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니케아르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저를 주인님의 개로 인정해 주시는군요.”
“절대 아냐!”
“하지만 방금 주인님 입으로 반려견이라고—”
“니케, 개든 사람이든 다른 수컷을 반려로 인정한 건가?”
“나는 그럼 주인님의 반려노예 할래요.”
세 남자가 거의 동시에 니케아르샤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고 싸우기 시작했다.
“꺼져라. 니케는 내 약혼녀다.”
“약혼은 얼마든지 깰 수 있죠.”
“맞아요. 주인님은 전적도 있는데.”
“하지만 나는 평생 주인님의 반려견이에요. 개를 파양하는 건 나쁜 짓이니까.”
“노예는 주인에게 귀속되어 있어요. 옛날엔 죽어서도 같이 묻혔고.”
“굳이 파양하고 순장할 필요 있나. 지금 죽으면 끝인데.”
쿠구구궁—!
이스칼리온에게서 거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에이든과 에반스 역시 그에 맞춰 마력을 끌어올렸다.
니케아르샤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천장을 쳐다봤다.
‘나도 모르겠다.’
말릴 기운조차 사라졌다.
한쪽은 노예가 되겠다고 하고, 한쪽은 개가 되겠다고 하고.
유일한 정상인인 줄 알았던 이스칼리온은 저 헛소리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개판이 따로 없네.’
* * *
개판은 결국 니케아르샤가 나선 뒤에야 수습됐다.
이스칼리온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마차에 앉아 있었다.
니케아르샤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냥 재미 삼아 하는 농담 같은 거잖아요. 흘려 넘기면 될걸.”
“농담?”
“그게 아니면 헛소리라 생각하시거나요.”
레널드가 그랬다.
헛소리에는 먹이를 주면 안 된다고.
니케아르샤는 고개를 기울여 이스칼리온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시 잘하는 사람이 왜 그랬대요?”
이스칼리온이 연회에서 제게 접근하는 온갖 사람들을 병풍 취급하는 건 아주 유명했다.
가만히 니케아르샤를 내려다보던 이스칼리온이 말했다.
“……그게 안 돼.”
“……?”
“그대 일에는 무시가 안 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도, 지나가는 농담도 그냥 넘길 수가 없어.”
눈을 마주한 채 흘러나오는 나직한 목소리.
니케아르샤는 괜히 멋쩍어져 고개를 휙 돌렸다.
“……뭐야, 왜 못 한대.”
툴툴대면서도 그녀의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이스칼리온은 말랑하게 부풀어 오른 뺨의 윤곽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눈빛을 굳혔다.
‘그리고 그것들은 진심인 것 같아서.’
그 눈빛은 절대 농담으로 개니, 노예니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돌아버린 놈들이었다.
‘미친놈들 사이에서 니케는 너무 무방비해.’
그때, 마차가 덜컹거리며 니케아르샤의 몸이 이스칼리온 쪽으로 기울었다.
부드러운 몸이 그에게 밀착되며 좋은 향기가 나는 머리카락이 사르락 피부를 간질였다.
‘……가장 미친놈은 나인지도 모르겠군.’
고작 어깨와 팔, 옆구리에 니케아르샤의 몸이 살포시 닿은 것뿐이다.
그런데도 그 어떤 것보다 자극적이었다.
미로 안, 그 깊은 어둠 속에서 그녀와 몸이 맞닿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보드랍고 뜨겁던 손길.
‘젠장.’
한 번도 자제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거늘.
이스칼리온은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니케아르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삐졌어요?”
“난 삐지지 않아.”
“그래요? 난 삐지는 남자 좀 귀엽던데.”
“……사실은 엄청 삐졌어.”
니케아르샤가 웃었다.
이스칼리온은 그 말간 웃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스칼리온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이 있었는데.’
니케아르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난데없는 개판에 가장 중요한 걸 잊을 뻔했다.
깨달은 즉시, 바로 <흥신소>를 사용했다.
‘이제 이스칼리온도 조사할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업그레이드할 수 없는 최종본인데도, 그 한계를 뚫고 S급까지 조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대상 <이스칼리온>을 조사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실패했다.
‘어째서?’
설마 이스칼리온의 등급은 S급 이상인가?
‘하지만 S급도 원래 <흥신소>의 능력으론 조사할 수 없었는데…….’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니케아르샤가 고민하는 사이, 마차는 목적지인 마탑에 도착했다.
* * *
마차에서 내린 뒤.
나와 이스칼리온은 곧장 안내를 받아 세르카엘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에는 온갖 서류가 퍼질러져 있었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우와, 결벽증 있는 세르카엘 답지 않은 상태네. 엄청 바빴나 봐.”
“누구 덕분이지.”
“하하, 고마워.”
“알면 잘해라. 그런데…… 내 신성한 연구실에 혹을 달고 왔군.”
세르카엘의 말에 이스칼리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이 아니라 약혼자겠지.”
“하여간에 보는 눈 없는 건 여전해.”
세르카엘과 이스칼리온의 시선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그사이 나는 타하르에게 다가갔다.
♥를 사용해 대상 <타하르>를 조사합니다.
그전까진 타하르 역시 계속 조사 실패가 떴다.
‘그 탓에 각성도 ‘강화권’을 사용해서 겨우 했고.’
하지만 지금은 시원하게 조사 결과가 떴다.
– 이름: 타하르 아사카
…
– 권능: 중력(S급)
‘타하르도 S급이었어! 그래서 그간 조사할 수 없었던 거구나……!’
솔직히 놀라웠다.
A급조차 드문데 무려 S급이 둘이나 내 곁에 있다니.
‘거기다 권능도 무려 <중력>.’
타하르의 권능에 몬스터들이 강제로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던 것이 생각났다.
저항하면서도 끝끝내 납작 엎드리던 것을 보고 압력 계열의 권능자가 아닐까 추측했다.
그런데 그냥 압력이 아니었다.
중력은 별의 힘.
‘타하르는 별의 힘을 지닌 거였어……!’
내 시선에 타하르가 턱을 긁적였다.
“왜 그렇게 봐?”
“아니, 새삼 타하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난 그대가 더 대단해. 나를 각성시키고, 내 조카님을 찾아주고, 조카님의 권리까지도 되찾아 줬잖아.”
타하르가 무거운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
“……?”
“주술을 되짚고 마법과도 연계해서 여러 가지 변형까지 했지만, 마력 단지를 반만 뚝 떼서 이식하는 건 불가능해.”
“……!”
어느새 다가온 세르카엘이 부연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하면 죽어. 실패로 간주되니까.”
이 주술은 마력 단지 전체를 이식하는, 타인의 마력을 전부 빼앗는 사술이다.
실패했을 땐 둘 다 죽는다.
이전에도 들었던 말이지만, 두 사람은 정확하고 자세한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가만히 둘의 설명을 듣다가 말했다.
“……만약 다른 생명이 개입했다면?”
“뭐?”
“제물을 이야기하는 건가. 이 주술엔 소용없어. 몸 안에 실패한 주술의 기운이 역류해서 죽는 거니까.”
타하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다 말했다.
“미카린과 내 마력이 관련 있는 건 확실해.”
회귀 전, 라파엘이 내 마력을 추출했을 땐 ‘정제’해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회귀 후, 미카린과 내 마력의 질이 완벽히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엔 좀 더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미카린이 내 마력을 쓸 땐 ‘정제’할 필요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뽑아댔던 거다.
하지만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왜 나를 죽여야 했을까?’
나를 지하실에 가둔 채, 살아 있는 마력 생성기로 쓰는 게 훨씬 좋았을 텐데.
“우리를 사랑한다면 증명해 줘, 니케. —네 죽음으로.”
“고마워요, 언니.”
그 불륜충들은 미카린을 위해 나를 죽였다.
그건 아마—
‘라파엘은 내 마력 단지와 미카린의 마력 단지를 보고 알게 된 거야.’
두 개를 이으면 완벽한 하나의 마력 단지가 된다는 것을!
‘나머지 마력 단지까지 다 빼앗아서 미카린에게 이식시켜 주려 한 거였어.’
그래서 날 죽인 거다.
‘그러면 미카린은 내 마력 생성력까지 다 가지게 되니까!’
타인의 마력에 의존할 필요 없는, 완벽한 역대급 각성자.
나를 제물로 미카린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서.
그 말은 곧—
“라파엘이 아니었어…….”
작은 중얼거림에 이스칼리온이 곧장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무엇이?”
“날 지하실에 가두고 마력을 뽑아낸 사람이 라파엘이라서, 난 무의식적으로 라파엘이 연관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마력이 뽑혀 나간 기억이 아직도 의식 밑바닥에 남아서.
“그래서 내심 미카린이 내 마력 단지를 빼앗아 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조건도 맞지 않는 데다가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내가 어렸을 땐 라파엘 역시 어린 꼬마였다.
하지만 라파엘은 날 실험한 후에야 내 마력 저장소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 무의식을 옥죄고 있던 것들이 파스스 떨어져 나간다.
‘……어쩌면 미카린은 역대급 각성자가 아닐지도 몰라.’
“언니는 모두의 기대를 배반했어요. 하지만 내가 대신 그 기대에 부응해 줬잖아요?”
“난 역대급 각성자니까.”
“다들 날 사랑하는 건 당연해요. 언니의 남편도, 가족도, 친구들도. 왜냐하면 난 역대급 각성자니까!”
영혼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 세뇌 당하듯 들었던 말들.
끔찍한 실험 속에서 인간 이하로 떨어졌던 순간마다 미카린의 목소리가 영혼에 박혔다.
나도 모르는 내 안 깊은 곳에서 미카린이 역대급 각성자라는 건 절대 불변의 진리이자,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대가 진짜 역대급 각성자니까.”
“……어째서요?”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은 너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이스칼리온을 마주 보았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었어.’
이스칼리온의 말을 이정표 삼아서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라파엘 외에 내 마력을 노린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1황비.’
나는 고개를 들고 세르카엘과 타하르에게 말했다.
“1황비라면 나와 미카린을 한 자리에 둘 수 있어.”
“하지만 일전에는 쓰러지기 전에 만난 적은 없었다고…….”
“응, 맞아. 만난 적 없었어.”
“……?”
“태어나서는.”
두 사람의 얼굴이 더 아리송해졌다.
하지만 나는 힘주어 다시 말했다.
“태어나기 전엔 분명 만났을 거야. 아니, 만났어.”
“……?!”
그때, 이스칼리온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건국 축제.”
건국 축제는 매년 열리지만, 5주기마다 유독 크게 열린다.
그땐 지방의 한미한 가문의 귀족들도 황궁에 초대되는 영광을 누린다.
‘텔시 가문이 황실의 초대를 받아 제도에 올라와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시기지.’
당연히 델로시프 대공가도 황궁에 초대받는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궁을 배정 받아 가장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맞아요. 내가 태어난 해는 건국 축제 575주기.”
정확히 5주기에 해당한다.
나는 미카린과 영혼 상태에서 만났다거나 하는 오컬트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나와 미카린이 아직 각자 어머니의 태내에 있을 때, 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어요.”
“……!”
“……!”
“……!”
세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머니는 건국 축제 기간 동안 몇 날 며칠을 황궁에서 지냈겠죠. 물론, 텔시 남작 부인도.”
“건국 축제에 초대와 궁 배정은 황비들의 소관이야.”
즉, 얼마든지 1황비가 손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세르카엘이 희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1황비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니케에게 마력을 송두리째 빼앗는 사술을 걸었다?”
나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난 무의식적으로 이걸 부정하고 싶어서 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리고 실패의 대가로 죽은 건 내가 아니라—”
“그만.”
이스칼리온이 덜덜 떠는 나를 확 끌어안았다.
“더 생각하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