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48)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48화(148/177)
* * *
중앙탑.
제국의 실세들이 모여 있는 회의장 안은 소란스러웠다.
황위 계승전이 시작하고 나서는 언제나 수선스러웠지만, 13황자가 갑작스레 계승전에 참여한 후로는 더 분란이 일었다.
이미 특정 황자를 지지 중이던 세력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
1황비의 지지 세력인 튜말 후작은 불편한 기색으로 눈매를 꿈틀거렸다.
‘……존재조차 잊혀져가던 13황자가 설마 이리 떠오를 줄이야.’
후견인으론 황태후.
지지 세력의 중심은 제국에 단 둘밖에 없는 대공가.
명분은 전쟁의 저지와 평화.
공을 세워 증명해야 하는 다른 황자들과 달리, 13황자는 그저 혈통과 존재만으로 큰 명분을 세웠다.
‘그래도 장성한 다른 황자들과 달리 어리다는 건 엄청난 약점이야.’
하지만 델로시프 대공이 나이 이야기만 꺼내도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 폐하께서 저리 정정하신데 어린 것을 걱정하는가? 혹여 폐하께 무슨 변고라도 생기길 바라는 건가.”
“역대 황제 폐하 중 어린 나이에 황태자로 즉위하신 분들이 계시지. 지금 황실의 역사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사트라센 대제께선 3세의 나이에 황제 위에 오르셨지. 사트라센 대제의 즉위 역시 잘못되었다는 뜻인가?”
역대 황제들을 비롯해 온 제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트라센 대제까지 거론하니 더 뭐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제왕 수업을 받기 시작한 13황자의 성취는 이들이 듣기에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황가의 핏줄에 서부 용혈까지 타고났으니…….’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이며, 용의 자식은 용이었다.
계승전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던 1황비의 세력들은 최근 거의 매일 밤 따로 모여 타개책을 논의했다.
“13황자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가 이렇게 높을 줄이야. 솔직히 제국민 모두가 잊고 있던 황자 아닙니까.”
“그야 전쟁을 좋아하는 백성들은 없으니…….”
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건 일반 백성들이다.
13황자가 황태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드니 백성들이 지지하는 건 당연했다.
“허나 그것만이 아니오. 델로시프 공녀에 대한 지지가 고스란히 13황자에게로 향하고 있소.”
가장 큰 문제는 델로시프 공녀였다.
센리안 운하 협정의 주역.
동북부를 구한 영웅.
역대급 각성자를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각성력.
그 역대급 각성자가 니케아르샤의 전 약혼자를 상대로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까지도 대중의 호감도에 큰 역할을 했다.
“괜히 황위 계승전에서 인기 있는 각성자를 영입하려고 하는 게 아니지.”
“반면 미카린 텔시는 역대급 각성자라는 기대에 비해 영…….”
이 상황을 반전시킬 타개책을 못 찾던 와중, 희소식이 들려왔다.
“설마 델로시프 공녀가 사기 자작극을 펼쳤을 줄이야……!”
구호에서 미카린에게 밀리면 각성자로서의 명성에 흠집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자작극을 벌이다니.
이건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불러온 격이다.
‘물론 우리는 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탈 생각이지만!’
튜말 후작은 염소 수염을 쓸며 훗, 하고 입을 열었다.
“델로시프 대공께서는 나라의 대소사 이전에 집안 단속부터 잘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아, 공녀 말씀이지요. 설마 본인의 명성을 위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기극을 벌일 줄이야.”
“그런 사기꾼이 지지하고 나선 13황자를 믿을 수 있을지요.”
귀족들은 이때다 싶어서 너도나도 소리 높여 떠들어댔다.
그때, 침묵하던 델로시프 대공이 입을 열었다.
“내 딸이 사기꾼이라. 증거는 갖고 하는 말이겠지.”
나직한 목소리에 실린 위압감.
귀족들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좁혔다.
그러나 드디어 잡은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크흠, 권능자가 곁에 없으니 치유하지 못하던데 발뺌하실 겁니까?”
“내 딸이, 델로시프의 대공녀가 고작 후작가 하녀의 감기를 치료해야 했다는 건가. 그것도 시험하듯 짜여진 연극에 놀아나서!”
델로시프 대공의 눈동자에 붉은 안광이 깃들었다.
옆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지켜보던 제르노가 속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니케가 절대 반박하지 말고 그냥 당하라고 했는데…….’
“치욕스럽게 크윽, 하고 신음하면 더 좋긴 한데……. 아버지와 큰 오라버니께 그 정도 연기력은 바라지 않아요.”
“아빠 할 수 있다. 배우 같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
“아버지는 불가능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니케. 배우 뺨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건 그냥 얼굴 이야기잖아요.”
어이없어하던 니케아르샤의 눈동자.
“그냥 가만히 당하기만이라도 하세요. 절대 반박하지 말기! 아셨죠?”
제르노는 막냇동생의 당부를 곱씹으며 어떻게 아버지를 말릴까 고심했다.
그 순간.
“과연 각성자가 맞기나 합니까? 발현식에서 실패했는데, 그것부터 다시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르노의 눈매가 꿈틀, 일그러졌다.
그는 제 동생이 각성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안다.
밤잠도 아껴가며 수련하던 그 작고 어린 뒷모습.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또 어떤 거짓말을 해왔을지. 어쩌면 미카린 님의 불륜도 역대급 각성자를 모함하기 위한—”
“그 이상 내 동생을 모욕한다면.”
제르노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피로써 그 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살기등등한 두 부자의 기세에 중앙탑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뒤늦게 귀족들이 지금 협박하는 거냐 소리를 질렀지만 대공과 제르노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정곡 찔린 척하라고 그렇게나 아가씨께서 당부하셨는데…….’
뒤에 시립해 있던 린첼 자작(델로시프 대공의 최측근)은 머리를 싸맸다.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백장미궁에서 성질을 못 이기고 버럭 소리 지른 니케아르샤처럼, 그녀의 아빠와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우리 애는 사기꾼 아니라고 반박까지 하시는 건 아니겠지.’
린첼 자작이 조마조마하게 두 사람을 바라볼 때였다.
중앙탑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크, 큰일입니다!”
날카로운 회장의 기운이 일시에 문간으로 향했다.
그러나 궁내부장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
“……!”
“……!”
그럴 만한 내용이었다.
* * *
중앙탑 회의는 곧바로 파했다.
델로시프 대공과 제르노는 빠르게 본가로 귀환했다.
그들이 가져온 소식에 니케아르샤는 당황했다.
“황제 폐하가 쓰러졌다고요?”
“그래. 우연일 리는 없지.”
“……다른 황족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줄 알았는데요.”
자신의 치유력이 가짜라는 걸 확신한 1황비가 다른 황족을 병들게 할 거라곤 예상했다.
‘미카린이 아무도 못 고치는 황족의 병을 치유하면 주가가 확 올라갈 테니까.’
물론 다른 황족보다야 황제의 병을 치유하는 게 훨씬 화제가 될 일이긴 했다.
미카린은 황제를 구한, 황제의 은인이 되는 거니까.
‘하지만 황제는 이렇게 건드리기 쉬운 상대가 아니야.’
걸렸을 때의 리스크는 아무리 1황비라도 감당할 수 없을 터.
그야말로 이번 한 번에 모든 것을 건 거다.
“1황비가 이렇게까지 저돌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어요.”
“정확히는 니케, 네 행동이 그렇게 몰고 간 거지.”
아버지의 말에 니케아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1황비가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해 온 것들이 대부분 무너졌으니.’
위험하지만 단번에 상황을 반전시킬 선택을 한 건가.
그때, 제르노가 입을 열었다.
“본디 황제의 와병은 바로 알리지 않는다. 그런데 쓰러지자마자 온 제국이 다 알도록 난리 피운 것만 봐도 1황비의 의도를 읽을 수 있지.”
“우리에겐 잘된 일이죠. 1황비가 이 판에 더 많은 것을 올려놓을수록.”
결국 그 모든 것을 잃게 될 테니까.
1황비는 자신이 판을 깔았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진짜 판을 깐 사람은 니케아르샤였다.
“이제 내가 깐 판에 포석이 깔리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어.”
굳이 힘들여 포석을 깔 필요 없다.
1황비와 미카린이 열심히 깔아줄 것이다.
니케아르샤가 씩 웃었다.
“그래도 제 연기가 먹힌 모양이에요. 하긴, 백장미궁에서 워낙 명연기를 펼쳤어야지.”
“역시 내 딸이구나. 아빠도 회의에서 한 연기했는데.”
“큰오빠도 회의에서 배우 뺨을 세 대쯤 쳤다.”
다들 그냥 성질 못 참은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저쪽이 속았으니 잘한 거 아니겠는가.
세 사람은 똑같은 표정으로 콧대를 으쓱 세웠다.
묘한 눈으로 니케아르샤를 바라보던 아카인이 말했다.
“그런데 니케, 백장미궁에서 울 계획이라고 했잖아. 진짜 울었어?”
뜨끔한 니케아르샤가 콧대를 다시 낮추며 웅얼거렸다.
“어? 뭐……. 연기라는 게 현장의 느낌이 중요하다 보니. 암튼 잘했으니까 1황비가 깜빡 속았지.”
“그래서 울었다는 거야?”
“……그건 왜?”
아카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팔짱을 탁 꼈다.
“그날 아켈로스 대공이 백장미궁으로 향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
“어?”
“혹시 그 새끼가 우는 널 보고 개수작 부린 건 아니겠지.”
“에이, 개수작은 무슨…….”
손사래 치던 니케아르샤가 멈칫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새하얀 뺨이 점점 발그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니케?”
“벼, 별일 없었어!”
“……그 자식을 만나긴 했다는 거네?”
“어? 아, 맞다. 오, 오늘 황태후 폐하를 만나기로 했는데. 깜빡했네. 늦었다~ 빨리 가야지!”
니케아르샤가 후다닥 방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 남자가 낮게 짓씹었다.
“계승전이 끝나면 무조건 파혼이다.”
“13황자께서 황태자위에 오르면 당일 파혼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부터 하자고 해야겠습니다.”
“당일 파혼 말고 5분 파혼 어떻습니까.”
“역시 내 아들들이다. 든든하구나.”
델로시프 남자들의 붉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황태후 폐하, 죄송합니다.’
나는 집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황태후한테 용서를 구했다.
물론 황태후와의 약속 따윈 없었다.
곧 만나야 하긴 하지만, 오늘 당장일 필요는 없었다.
‘그쪽도 애를 태워야 하니까.’
황태후가 나를 꽤 예뻐하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니야.’
막장 소설이나 좋아하는 무골호인처럼 보이지만, 그래 봬도 이전 황위 계승전의 승자였다.
온갖 산전수전을 다 헤쳐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덮어놓고 내 요구를 들어줄 리가.
‘내가 황태후에게 요구하려는 건 황족 전체의 신변과 관련 있기도 하고.’
내가 향한 곳은 당연히 이스칼리온 소유의 살롱 비밀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빈공간이 나를 반겼다.
‘아직 안 왔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방 안을 돌아다니는데 자꾸만 시선이 침실 쪽으로 갔다.
나는 괜히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한 번 더 살핀 후, 문을 열었다.
‘마,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니까!’
왠지 찔려서 그렇게 변명한 다음 침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
이스칼리온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쌉싸름한, 좋은 향기가 훅 끼쳤다.
흡하흡하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멈칫했다.
“뭐 하는 거야! 변태도 아니고!”
큰소리쳤지만, 침실 밖으로 나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 요즘 많이 피곤했으니까. 그러니까 좀 쉬어야겠다. 이스칼리온이 늦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불을 들치고 침대에 누웠다.
‘이스칼리온 향기…….’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그의 체향이 묻어나는 이불 속에 포근히 감싸여 있자니 그의 품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 이스칼리온의 품은 이것보다 더 단단하고 탄력 있고…….’
훨씬 뜨겁다.
불에 델 듯.
귓가에 짙게 내려앉던 숨결.
“큭, 움직이지 마. 거긴…….”
낮고 탁한 신음소리를 떠올릴 때면 어쩐지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까지 섹시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조금 괴로워 보이기도 했어.’
나는 그때의 이스칼리온을 떠올리며 그의 침대에서 뒤척거렸다.
백장미궁에서 날 말리다 소파 위로 함께 쓰러졌을 때도 어쩐지 괴로워 보였다.
“……또 괴롭히면 그런 표정을 지으려나?”
멍하니 중얼거리던 나는 핫,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그런 변태 같은 생각을!”
하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이스칼리온의 그런 표정을, 그런 목소리를 또 들을 수 있을지.
* * *
이스칼리온은 제 앞에 무릎 꿇은 자들을 노려보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려고…….”
“예, 저희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런 계획을 꾸몄겠습니까.”
“해서.”
이스칼리온이 낮게 뇌까렸다.
“사주를 받고 델로시프 대공녀에게 사기꾼이라 외치며 돌을 던지려고 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부, 부디 자비를……!”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사람들을 보고 이스칼리온이 몸을 돌렸다.
“유스릴.”
“예.”
유스릴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스칼리온은 곧장 말에 올라탔다.
직접 심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꽤 지체됐다.
니케아르샤가 기다리고 있을 터.
‘이런 사주는 한두 명이 하지 않았겠지.’
어느 세력이든 이런 짓을 벌일 만했다.
‘혹시라도 나와 만나기 위해 외출한 니케가 변을 당했다면.’
그 여린 여자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걱정이었다.
이스칼리온은 길을 서둘렀다.
그리고 막 살롱에 도착한 그가 본 것은…….
‘……이게 무슨.’
이스칼리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방문을 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