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6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60화(160/177)
율리시즈의 이름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특히 이스칼리온은 사나운 목소리로 으르렁대듯 짓씹었다.
“그딴 놈과 말 섞을 필요 없어.”
“하지만—”
“1황비 쪽은 내가 알아보지. 아니면 황제와 협상해서 미카린의 신변을 인도받는 방법도 있어.”
“황제가 협상 대가로 뭘 요구할지 몰라요.”
“무엇을 내놓든 네가 그딴 놈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보단 나아.”
“그렇게 미카린의 신변을 인도받아도 반년은 걸릴 거라고 했어요. 그것도 최소.”
내가 확인하듯 세르카엘을 힐끗 보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하루면 된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객관적인 수치를 주관적인 사감으로 바꿀 순 없지.”
“거봐요.”
그러나 이스칼리온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1황비의 동향을 알아보지. 진짜로 ‘공명’시킬 계획인지, 맞다면 어떤 식인지 알아내서—”
“그게 당장 내일일 수도 있어요.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게 가장 빨라요.”
“그 자식을 믿어?”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설령 함정이어도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캐낼 기회고.”
“그래서 굳이 그놈에게 아쉬워하는 소리 하며 만나겠다?”
“왜 이렇게 반대하세요? 뭐가 가장 합리적인지는 전하께서도 아시잖아요.”
“난 네가 다른 남자랑 이야기하는 게 싫어!”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나는 움찔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그가 씨근거리는 숨과 함께 내뱉었다.
“그것도 네게 고백한 적 있는 놈은 더더욱!”
“……!”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브라운이 “왐마야.” 하고 탄성을 질렀다.
블루윈이 재빨리 브라운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 고백이라니 그거야 그냥…….”
예전에 클레아스와 율리시즈가 날 사이에 두고 염병첨병을 떨었던 적이 있다.
‘그것도 이스칼리온의 화원 파티에서였지. 이스칼리온은 딱 둘이 싸울 때 등장했고.’
우물쭈물하는 나를 향해 이스칼리온이 고개를 숙였다.
조금 투정 부리는 듯한, 새침한 얼굴.
존재만으로 타인을 위압하는 남자가 오직 내게만 이런 얼굴을 보여준다.
“마력 단지를 되찾을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도 내게 말하지 않고.”
“그, 그건 저도 어제 들었는걸요.”
“내게는 바로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오늘 방법까지 다 듣고 한꺼번에 말할 생각이었어요. 너무 시시콜콜하게 하나하나 다 말하면 전하께서도 귀찮을 테고…….”
“너무할 정도로 시시콜콜하게 하나하나 다 말했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몇 번 눈을 깜빡였는지도 궁금하니까.”
푸른 눈동자가 아득한 바다처럼 나를 담고 있었다.
내가 홀린 듯이 그 눈을 바라볼 때,
“신성한 내 연구실에서 연애질은 금지다.”
웬 커다란 손이 나와 이스칼리온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고개를 드니 세르카엘이 특유의 신경질적인 얼굴로 말했다.
“우리 마탑은 연구실 내 연애 금지 조항이 있어.”
“여긴 응접실이잖아.”
“응접실에선 연구를 안 할 거 같아?”
“…….”
“…….”
왜인지 블루윈과 브라운의 얼굴이 병든 고목처럼 말라붙었다.
너네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거니.
‘설마 식당에서도 연구하는 건 아니겠지.’
왠지 그럴 거 같아서 물어보기 겁났다.
그때, 세르카엘이 모노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도 그 쓰레기 놈과 이야기하는 건 반대야.”
“세르카엘까지? 왜?”
“관상이 안 좋아.”
“세르카엘이 관상을 믿어?”
“관상은 통계야.”
“…….”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세르카엘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아니, 누가 ‘관상은 통계’라고 하면 세르카엘은 ‘그딴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네 두개골을 쪼개지 않아도 뇌 주름이 판판한 걸 알겠구나.’라고 말할 거 같아서.”
“…….”
“왜?”
“……정확하군. 역시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세르카엘이 감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딴 걸로 감탄 받고 싶지 않아.’
솔직히 관상학적으로 세르카엘만큼 별로인 사람도없었다.
아주아주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미남이라 성격이 무척 더러운 천재처럼 보였으니까.
‘……실제로도 그러니 관상이 맞긴 한 건가.’
묘한 깨달음을 얻는데 세르카엘이 옅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놈은 언제 만날 건데?”
“반대라며?”
“네가 말린다고 들을 녀석이냐? 만난다는 선택지가 합리적인 건 사실이니.”
나는 힐끔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언제, 어디서, 몇 시에 만나는지, 무슨 이야기 했는지도 다 말할게요.”
“…….”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가만히 날 바라보던 이스칼리온이 입을 열었다.
“……내 얼굴 보고?”
“바로 찾아갈게요.”
이스칼리온이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율리시즈와 만날 일만 남았다.
* * *
그렇게 힘들게 율리시즈와 만나기로 결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정작 율리시즈는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통신 코드는 아예 바뀌었고. 편지에는 답장이 오긴 했는데…….’
내게는 미카린밖에 없어.
그게 율리시즈의 답장이었다.
‘누가 뭐래? 그냥 얼굴 한 번 보자는 거잖아.’
자기가 먼저 쪽지를 남겼으면서 이러니 황당했다.
미카린이 끌려간 후로 율리시즈를 봤다는 사람도 잘 없어서 우연에 기대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날 피하면 차라리 다른 루트로 1황비의 계획을 알아내는 게 낫나.’
고민하는 찰나에 통신석이 울렸다.
설마 율리시즈인가 하고 얼른 꺼냈는데 셀레나였다.
“셀레나?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그 불륜충이 감옥에 갇힌 기념으로 얼굴 봐야지. 많이 바빠? 바빠도 꼭 보자.]셀레나가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서 나는 바로 답했다.
“알았어. 언제 볼까?”
[음, 지금?]“뭐어?”
조금 급작스러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장 율리시즈를 볼 게 아니라면 다른 일정은 없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회귀 전에 베스릴 가에는 별일 없었는데.’
나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고 대공저를 나섰다.
.
.
셀레나가 지정한 약속 장소는 렐리아 아케이드 근처의 번화가였다.
주변의 유동 인구는 많은데 한 블럭 차이로 묘하게 외진 곳이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셀레나 취향의 가게는 아닌데? 점원 응대도 없고…….’
나는 셀레나가 말한 프라이빗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있었다.
“율리시즈?!”
“오랜만이야, 니케.”
율리시즈가 예의 그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서둘러 문을 닫고 당황한 얼굴로 셀레나를 돌아보았다.
“율리시즈가 사람들 눈을 피해 널 봐야 한다고 말해서.”
그제야 왜 이런 가게에서 보자고 했는지 깨달았다.
행선지를 의심받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셀레나가 말을 이었다.
“당연히 싫다고 했는데 네 편지를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서 일단 협조하긴 했는데…….”
“고마워. 율리시즈랑 할 이야기가 있었거든.”
“다행이네.”
셀레나가 씩 웃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둘이 이야기 나눠. 난 옆방에 있을 테니까.”
“응, 미안.”
셀레나가 됐다며 손사래 치곤 방을 나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율리시즈를 흘겼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셀레나한테 부탁해?”
“남들 눈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쪽지도 몰래 남겨둔 거야?”
내가 율리시즈에게 받은 경고 쪽지는 마차의 창틀이나 드레스 호주머니 같은 곳에 슬쩍 넣어져 있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율리시즈가 조용히 말했다.
“오랜만이다.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거.”
“그럼 빨리 끝내자. 왜 그런 쪽지를 보낸 거야?”
“나, 많이 고민했어.”
“……?”
“내가 어떻게 해도 니케, 너는 불편해하기만 했으니까.”
“…….”
“내가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네 일을 도와주고, 네 친구를 도와줘도 항상 거리감이 느껴졌어.”
율리시즈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미카린한테 간 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클레아스나 율리시즈나 하나같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지들 선택을 나한테 전가하는지.
“그런데, 뭐. 모든 게 내가 너한테 친절하지 않은 탓이다?”
“아니.”
율리시즈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네 곁에 있는 것보다 미카린 곁에 있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았어.”
“……?”
“그래서 간 거야. 널 위해서.”
나는 이해되지 않는 눈으로 율리시즈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퍼즐이 아주 느릿하게 맞춰졌다.
내 표정을 본 율리시즈가 웃었다.
“근데 미카린이 돌아왔을 때, 바로 그 애한테 가는 날 보고도 너는 아무런 동요도 없더라.”
“…….”
“마치 내가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래,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율리시즈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도 결론은 같을 거라고.
미카린을 위해서 날 죽일 거라고.
‘……그런데 처음부터 날 돕기 위해 미카린에게 간 거였다고?’
이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서운했어. 네가 날 안 믿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 꽤 변하지 않았어?”
“…….”
“지금도 이거 봐. 사실은 널 돕기 위해서였단 말은 이렇게 안 믿잖아.”
옅게 한숨을 내쉰 율리시즈가 말했다.
“잘 들어. 1황비는 너와 미카린의 마력을 연결시킬 작정이야.”
“……!”
결국 내 추측이 맞았다.
“미카린은 클레아스를 각성시키기 직전에 네 마력을 섭취했어.”
“……에반스가 뽑아간 마력을 어디에 썼나 했더니.”
“미카린은 지금 마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거든.”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항상 곁에서 풍부한 마력을 제공해 주던 내가 사라졌으니.
각성자가 된 지금은 전보다 더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할 텐데 공급이 뚝 끊긴 상황이다.
‘특히 에반스나 율리시즈, 클레아스 같은 상위 권능자를 각성시키려면 막대한 마력이 들어.’
괜히 술법진까지 써가면서 보조하는 게 아니다.
이유는 납득가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어떻게 나와 미카린을 ‘공명’시키겠다는 거야? 바로 뚝딱 되는 일이 아닐 텐데.”
세르카엘은 미카린을 최소 반년은 실험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회귀 전에는 라파엘이 나를 몇 년간 실험해서 방법을 알아냈다.
‘날 죽여서 남은 마력 단지와 생성소까지 다 빼앗는 방법이었지만.’
“황비에게는 방법이 있나 봐. 고대의 주술과 마도구를 사용한 방법인 것 같은데……. 파고들려고 하면 라파엘이 의심해서.”
그러고 보니 에반스가 내 마력을 추출했을 때 사용했던 것도 고대의 마도구였다.
‘1황비의 모국인 아슈레아는 원래 고대 마도왕국이 있었던 곳이니 그 유산이 남아 있는 건지도…….’
회귀 전, 내게 온갖 끔찍한 실험을 주도하던 라파엘.
그리고 고대의 유산을 가진 1황비.
이 둘이 손을 잡았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 기다리기만 하면 1황비와 라파엘이 나서서 나와 미카린을 ‘공명’시켜 준다는 건가?’
개꿀인데?!
‘특히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1황비의 표정이 궁금한걸.’
그때, 율리시즈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렇게 네 마력을 미카린에게로 가져올 생각이야.”
마력 단지를 옮기는 것보단 훨씬 쉬운 일이었다.
‘내 마력은 미카린 역시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미카린의 마력 저장소는 계속 텅텅 비어 고갈되는 상태다.
내가 곁에 없어서 채울 일이 없으니까.
반면, 나는 지금도 마력이 가득가득해서 틈만 나면 ‘생장’의 권능으로 마력 저장소를 보강해 줘야 했다.
내 얼굴을 본 율리시즈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몰라? 강제로 ‘공명’해서 마력 통로를 열면 넌 미친 듯이 마력을 빼앗길 거야.”
“응.”
“한꺼번에 막대한 마력이 빠져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알아.”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율리시즈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근데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
율리시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제발, 너 스스로를 좀 소중히 여겨.”
“……난 충분히 그러고 있어.”
“전혀 아닌 얼굴이잖아. 겁 좀 먹어.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하란 말이야. 아니, 아니다.”
율리시즈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동자는 온화하던 평소와 달리 들끓고 있었다.
“넌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막을 거니까.”
“뭐?”
“내가 미카린이 네 마력을 못 빼앗게 막겠어.”
“잠깐, 잠깐—”
나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율리시즈는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왜 아직도 미카린 곁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 다 그걸 막기 위해서야.”
“아니, 율리시즈.”
“절대 네가 미카린에게 빼앗기게 두지 않겠어.”
아니, 그건 좋은데.
‘일단 공명은 해야 한다고!’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아직 율리시즈를 완전히 믿진 못하겠다.
‘내가 공명해야 하니까 놔두라고 하면, 율리시즈가 저쪽에 그걸 쏠랑 말해버릴지도 모르고.’
하지만.
“니케, 네 기억 속에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나쁜 짓도 했고. 그래, 네 말대로 개새끼지만. 그래도.”
“…….”
“적어도 후회하고, 반성하고, 그래서 결국엔 정신 차린 놈이라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를 바라보는 율리시즈의 눈이 이상하리만치 투명했다.
꼭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공명을 막는다는 게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