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63)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63화(163/177)
1황비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래쪽은 루비스탄이 던진 폭탄으로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연스럽게 발병한 게 아니라니…….”
“고대 바이러스는 또 무슨…….”
“하, 하면 폐하의 병이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뜻입니까?!”
웅성거림이 점차 커져갔다.
이대로 두면 해일처럼 일어나 재판장을 집어삼킬 것이다.
‘일단 루비스탄의 입부터 막아야 해.’
1황비는 서둘러 아들을 불렀다.
“루비스탄.”
루비스탄이 고개를 들어 1황비를 올려다보았다.
마주친 시선에 1황비는 멈칫했다.
아들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딱딱하게 굳은 채 창백해진 것은 1황비뿐.
이런 사달을 냈으면서도, 루비스탄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
“예, 모비.”
여상히 답하는 목소리에 1황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
“폐하의 신변에 대한 것은 아무리 황자라고 해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
“너는 네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게야.”
진실을 밝히는 순간 끝이다.
1황비는 물론, 그 아들인 루비스탄까지도.
“저는 언제나 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아들아.”
“…….”
‘아들’이라 부르는 말에 루비스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1황비는 자신과 똑 닮은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루비스탄이 제 입으로 나를— 이 어미를 고발할 리 없어.’
돌이켜보니 너무 흥분한 것 같다.
‘병환의 배후로 나를 지목한 것도 아니야. 오히려 공녀의 소행이라고 밀어붙일 수도 있어.’
델로시프 공녀가 황제를 일부러 병들게 하고 치료하는 척했다.
권능자가 아닌데도 치료할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다.
그렇게 몰아갈 수도 있다.
사전에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건, 그래.
‘분명 이 어미를 놀래켜 주려고…….’
루비스탄은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 내심 얼마나 놀랐을까.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아무런 번민도 없을 리 없다.
그래서 이 어미를 잠깐 놀래키는 것뿐이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머니.”
“그래.”
루비스탄은 미소 지었다.
‘어쩌면 오늘로써 부모를 모두 잃겠구나.’
아버지는 이미 잃었다.
그가 어떻게 할 수조차 없이, 깨닫는 순간 잃어버린 후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은—
‘내가 스스로 놓는구나.’
손이 떨렸다.
막상 이 순간이 되니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결정은 이미 예전에 마쳤는데.’
고개를 드니 니케아르샤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저 붉은 눈동자가 저토록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나왔다.
‘토끼 같네.’
가볍게 숨을 내쉰 루비스탄이 입을 열었다.
“모비…… 1황비께서 황제 폐하께 고대 바이러스를 침투시켰습니다.”
“……?”
“……?!”
재판장 안은 경악에 물든 침묵으로 가득했다.
모두 이 순간 루비스탄이 갑자기 제 친모를 고발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루비스탄—!!”
진노한 1황비의 노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루비스탄은 무표정한 얼굴로 품에서 작은 마도구를 꺼냈다.
“이것이 1황비가 사용한 고대 바이러스입니다.”
“……!”
“……!!”
니케아르샤가 1황비에게 어디에 숨겨두었냐고 캐물었던 고대 바이러스.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루비스탄의 손에서 나왔다.
1황비의 뺨이 파르르 경련했다.
‘너를 믿고 모든 것을 알려주었는데, 네가 감히……!’
진실을 알게 된 루비스탄은 모든 면에서 1황비의 뜻에 꼭 맞게 행동했다.
하여 1황비가 어찌나 뿌듯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이렇게 배신하기 위해 날 속이는 줄도 모르고!’
어찌나 분노했는지 1황비의 눈에 실핏줄이 자글자글 올라왔다.
“루비스탄, 네가 어떻게 이 어미를 모함할 수 있느냐!”
“모함이 아니라 고발입니다.”
“고발?! 감히, 네가 나를……!”
홱!
1황비의 시선이 니케아르샤를 향했다.
루비스탄이 폭로 직전, 니케아르샤를 쳐다본 걸 똑똑히 봤다.
“여자에 미친 게야?!”
루비스탄이 쓰게 웃었다.
“미치고 싶어도 제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던데요.”
“뭐?”
“한마디면 된다고, 나는 그게 필요하다고 구걸까지 했는데도, 끝까지.”
니케아르샤를 담은 눈동자가 낮게 이울었다.
루비스탄이 고개를 돌려 1황비를 마주했다.
“그러니 이건 온전히 제 선택입니다, 모비.”
“허…….”
“제가 가장 후회를 덜 할 방법이요.”
1황비는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자신과 저토록 닮은 얼굴로, 같은 빛의 눈동자로 저런 말을 한다고?
‘피도 안 섞인 제국의 황제를 위해 피를 이어받은 어미를 고발하는 게—’
—후회를 덜 할 방법이라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루비스탄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온갖 짓을 다 저질렀다.
실험실을 운영해 황제의 뒤에서 무력을 키우고, 방해가 될 싹은 진작에 잘랐다.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복중 태아에게 사술을 걸고, 부모를 잃은 어린 아켈로스 대공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모두 널 위해서!’
이제 성취까지 딱 한 발짝 남은 상황.
그런데 루비스탄이 제 손으로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
“……정녕 끝까지 이 어미를 모함할 것이냐?! 루비스탄, 너는 위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아이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제국의 황제가 될 사명’처럼 들렸다.
그러나 진실은 ‘파스칼레의 피를 끊고 아슈레아가 제국을 지배하게 될 사명’을 뜻하는 말이었다.
동시에 황제의 친자도 아닌 녀석이 정작 친모인 자신을 고발한다는 꾸지람.
평소라면 말을 알아듣고 바로 수그렸을 아들이 오늘은 달랐다.
“저는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
“저는 이 나라의 황자로 태어나 그렇게 자라왔습니다. 저는 이 제국에— 백성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가 막혔다.
루비스탄이 소년 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이긴 하나,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런데 ‘백성에게 부끄러운 짓’ 같은 멍청한 소리나 한다고?
심지어 루비스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전 남을 속여 내 것이 아닌 것을 빼앗는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비겁?”
“……그렇게 빼앗긴 사람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알고 있거든요.”
루비스탄의 시선이 니케아르샤를 향했다.
니케아르샤는 아무 말도 못 해준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가 오늘 해준 말은 모두 용기를 주었다.
“그게 제게는 쉬운 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하를 위한 길은 아니에요. 어떤 선택이든 직접 하셔야 후회가 덜할 거예요.”
“저하께서는 저하가 생각하는 대로의 사람이니까요. 제 말은 어떤 것이든 저하께 필요 없을 거예요.”
루비스탄이 어떤 사람인지는 어머니의 부정이나 출생에 담긴 비밀이 아니라, 그 자신이 정하는 것이라고.
니케아르샤가 말해주었으니까.
“하니 모비께서도 이제 그만 죄를 인정하십시오.”
“너—”
“1황비 전하, 저 말이 사실입니까?”
갑작스러운 엄청난 고발에 지켜보던 법관이 1황비에게 물었다.
1황비의 눈매가 꿈틀했다.
“당연한 걸 왜 묻는가! 사실이 아니다!”
“하오나 증거가—”
“증거? 아아, 저 바이러스 말인가. 폐하께서 저 바이러스 때문에 병에 걸리신 건 맞을지 모르나, 본비가 폐하께 저 바이러스를 주입했단 증거는 어디 있지?”
“……!”
“델로시프 공녀가 황자를 꾀어내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본비를 모함하는 것이다!”
1황비가 싸늘한 얼굴로 아들에게 말했다.
“루비스탄, 나는 네게 최대한 기회를 주었다. 한데도 이리 모비를 모함하니 나도 이제 어쩔 수 없구나.”
“…….”
루비스탄은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저랑 더러운 꼴을 보셔야겠습니까.’
루비스탄은 1황비가 숨겨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그 전부를 말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 그때부턴 진흙탕 싸움이다.
침묵 가운데, 소리를 잔뜩 죽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말이 맞는 거야?”
“몰라. 그것보다 루비스탄 저하는 왜 갑자기 자기 친모를 고발한 거지? 미치지 않고서야…….”
“완전 최악의 수지. 계승전은 황비와 황자가 함께 하는 2인3각 경기인데 저런…….”
“뭐, 우리야 잘됐지.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
루비스탄의 정적들은 갑자기 굴러들어 온 기회에 눈을 빛냈다.
반대로 루비스탄을 지지하던 계파는 갑작스러운 내분에 우왕좌왕했다.
“13황자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왜 저런…….”
“하, 이래서야 루비스탄 저하를 믿고 갈 수 있겠습니까?!”
기실 여태껏 루비스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비난하는 중이었다.
이 자리에 루비스탄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뭐, 예상했다.’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런데 사람이라고 잃지 않겠는가.
이러기로 결정했을 때 이미 각오한 바였다.
루비스탄이 씁쓸하게 웃는 순간.
“황제 폐하께서 걸린 병은 룩세로이드증입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루비스탄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니케아르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칼날 같은 1황비의 시선에서 루비스탄을 보호하듯이.
“룩세로이드증은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만으로 발병하지 않습니다. 마력 회로에 본인의 것이 아닌 다량의 마력이 주입되어야 하죠.”
“…….”
“그리고 폐하께서 쓰러지기 하루 전, 1황비 전하께서 폐하께 영약을 올렸습니다.”
“……!”
“뭐라?!”
“그게 사실이라면—.”
소란 속에서도 니케아르샤는 거침없었다.
“이는 폐하의 시종이 증명할 것입니다. 기록하는 것이 의무니까요.”
“마, 맞습니다. 황비 전하의 모국인 아슈레아에서 백 년 묵은 켈라탄의 내단을 보내와서…….”
시종의 증언에 1황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내로서 남편인 황제 폐하께 몸에 좋은 약을 먹인 것뿐이다! 이전에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고!”
“그래요? 제 눈에는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후, 그 바이러스가 활동할 양분을 먹인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공녀!”
니케아르샤가 픽 웃었다.
“전하의 모국인 아슈레아는 고대 마도왕국이 있었던 곳이라 그 유산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죠.”
니케아르샤가 루비스탄이 들고 있는 증거품을 가리켰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현대에는 맥이 끊긴 고대의 산물.”
“고작 그깟 이유로—”
“현대에선 사라졌다는 바이러스에 황제 폐하께서 감염된 바로 그 순간에! 놀랍게도 1황비 전하께서 딱 바이러스의 양분이 될 영약을 가져왔네요?”
니케아르샤가 생긋 웃었다.
“이야, 참 대단한 우연이다. 그쵸?”
1황비가 까득, 이를 갈았다.
물론 니케아르샤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우연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게 누구죠?”
재판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니케아르샤는 기꺼이 그 답을 말했다.
“바로 1황비 전하와 미카린 아닌가요?”
“너—”
“아, 이것도 우연이려나요?”
분노로 몸을 떨던 1황비가 차갑게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우연이 참으로 공교롭구나. 그 수많은 우연 가운데 딱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어.”
“뭘까용?”
“네가 그 건방진 세 치 혀로 감히 본비를 모함하고 루비스탄을 꼬여냈다는 것!”
1황비가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루비스탄을 노려봤다.
“여자에 미쳐서 어미조차 버려?!”
“오히려 그 반대겠죠!”
니케아르샤가 루비스탄을 가로막으며 나섰다.
“평생 부모의 원망을 사더라도, 부모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식의 마음을 멋대로 폄하하지 마세요!”
흩날리는 은발과 진노한 붉은 눈동자.
“그게 얼마나 용기 있고 대단한 행동인지, 나보다 부모인 전하께서 더 잘 알아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루비스탄은 정신없이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니케아르샤는 진심으로 화내고 있었다.
정치적인 이득과 계산으로 루비스탄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그저 진심으로.
“전하께서는 지금 차라리 기뻐하셔야 합니다. 전하 같이 부정만 저지르는 사람에게서 이토록 훌륭한 아들이 나왔다는 것에!”
모두가 손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순간에 니케아르샤는 홀로 그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말을 마친 니케아르샤가 헉, 헉 숨을 몰아쉬었다.
장내가 고요했다.
모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순간.
“그래, 아주 자랑스럽구나.”
위에서부터 묵직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휘장이 걷히며 그 안에 있던 거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신의 몸으로 드넓은 제국 위에 군림하는 자.
제국의 황제가 나타난 것이다.
“화, 황제 폐하?!”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오늘 재판에 불참한다던 황제의 등장에 모두 당황하여 예를 갖췄다.
황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다 말했다.
“하면 1황비가 짐을 감염시키고 미카린 텔시를 통해 병세를 조절해 온 것이군.”
“억울합니다, 폐하!”
“억울한지 아닌지는 조사해 보면 알게 될 일이오. 1황비를 모셔라!”
“폐하……!”
황제를 부르던 1황비는 제게 다가오는 근위병들을 보고 소리쳤다.
“감히 누구에게 다가오는 것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내게 강제적인 방법을 쓰게 하지 마시오, 황비.”
황제가 서늘한 얼굴로 경고했다.
“짐의 자랑스러운 아들의 어미라 최대한 예우하고 있는 것이니.”
“……!”
황제를 올려다보는 1황비의 눈이 떨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입꼬리가 싹 올라갔다.
“킥, 푸흣! 아들……. 푸하하하하!”
1황비는 허리를 꺾어가며 미친 사람처럼 광소를 터트렸다.
‘설마 여기서 밝히려고?!’
그럼 루비스탄은 죽을 수밖에 없다.
힐끗 옆을 보니 루비스탄은 오히려 평온한 얼굴이었다.
니케아르샤가 막기 위해 입을 벌린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이익—
귓가로 엄청난 이명이 울렸다.
뇌가 찢길 것 같은 고통에 니케아르샤가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아, 흐윽, 으…….”
제대로 된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마력이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느낌.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미카린이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강제 공명!’
그토록 기다리던 공명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