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74)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74화(174/177)
* * *
황제는 니케아르샤와 함께 내실에 들어오는 루비스탄을 보고 생각했다.
‘……이스칼리온이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될 거라고 말했던 게 이 뜻이었나.’
루비스탄은 겉으론 평소와 같은 태도였지만, 황제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루비스탄은 명백히 긴장한 상태였다.
‘항상 느긋하던 루비스탄답지 않군. 아니, 당연한가.’
친모인 1황비는 모국 아슈레아의 지원을 받으며 온갖 추잡한 짓을 다 저질렀다.
오직 루비스탄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
루비스탄 역시 한 패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다.
다만.
‘루비스탄은 그런 어미를 직접 고발했지.’
황제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함께 죄를 짓고 홀로 살기 위해 어미의 등을 떠민 것인가.
아니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루비스탄과 니케아르샤의 인사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짐은 공녀를 불렀는데 네가 함께 왔구나, 루비스탄.”
“……황제 폐하께 아뢸 말씀이 있어서 함께 왔습니다.”
“일단 앉거라.”
그러나 루비스탄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못 박힌 듯 서 있기만 할 뿐.
“……?”
한참을 고개 숙인 채 입술만 달싹거리던 루비스탄이 얼굴을 들었다.
“저는…… 폐하의 친자가 아닙니다.”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리 망설이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예?”
“루비스탄, 죄를 청하는 것치곤 농이 지나치구나.”
루비스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황제는 루비스탄의 말을 죄를 청하는 서두 정도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는 아버지의 아들 자격이 없으니 벌을 달라’고 하는 것으로.
‘……폐하께선 전혀 모르셔. 아예 상상조차 못 하실 정도로. 이건, 어쩌면—’
기회다.
내뱉었던 말을 주워 담고, 모든 것을 물릴 기회.
루비스탄은 차라리 이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렇게 황제의— 아버지의 아들인 채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황자로서— 황제의 아들로서 그는 항상 책임에 대해 배워왔다.
루비스탄은 주먹을 바투 쥐고 황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농이 아닙니다.”
“루비스탄.”
“저는 폐하의 친자가…… 아닙니다.”
“…….”
황제는 숨을 들이마시지도, 미간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아무 변화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만 두 눈동자에 인 균열이 황제가 루비스탄의 말을 이해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네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송구합니다.”
황제는 말없이 루비스탄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이었다.
긴 침묵 끝에 황제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녀.”
“……예, 폐하.”
“일전에 짐이 공녀에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지. 짐의 후계에 대한 청조차 들어주겠다고 했어.”
“기억합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하셨지요.”
“황제의 말은 천금보다도 무겁다. 하여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황제는 니케아르샤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공녀의 청은 못 들어주겠다.”
“……!”
니케아르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날 니케아르샤가 황제에게 말했던 소원.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폐하께서 루비스탄 황자 저하의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겁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루비스탄의 아버지가 되어달라는 소원이었다.
“고작 그것으로 되겠느냐.”
“……충분합니다.”
“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건만 짐이 오히려 공녀에게 빚을 졌구나!”
당시 황제는 니케아르샤의 말을 오해한 듯했다.
루비스탄이 계승전에서 패배하더라도, 황자로서 맡고 있는 사업에서 철수시키지 말라는 뜻 정도로.
‘보통 계승전에서 패배하면 맡고 있던 사업에서 전부 물러나니까.’
루비스탄은 꽤 수완가라 여러 중책을 맡고 있었기에, 황제는 인력 공백이 생기지 않겠다며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이제 니케아르샤의 진의를 깨달았을 터.
‘이 상황에서 청을 못 들어주겠다는 말은…….’
니케아르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친자식이 아닌 루비스탄의 아버지는 되어줄 수 없다는 뜻이잖아.’
다 덮어놓고 진짜 아버지가 되어달라는 게 아니었다.
사람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그저 딱 하나.
‘루비스탄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는데…….’
그러나 황제는 그조차 들어줄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폐하, 부디—”
“그러니 루비스탄.”
황제가 니케아르샤의 말을 끊으며 단호히 말했다.
“이건 공녀의 소원 때문이 아니다. 황제로서 식언할 수 없으니 약속을 지키려고 마지못해 하는 말이 아니야.”
황제의 눈이 경직되어 있는 루비스탄을 담았다.
자신을 하나도 닮지 않은,
“내 아들아.”
그러나 분명한 자신의 아들을.
“……?!”
“……!!”
루비스탄도, 니케아르샤도 깜짝 놀라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가 피식 입매를 올렸다.
“뭘 그리 놀라느냐. 짐이 짐의 아들을 아들이라 부른 것뿐인데.”
“폐하.”
“하기야, 놀랄 만도 하구나. 나는 내 자식들에게 아비이기 전에 황제였으니.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했지.”
“…….”
“내 아들, 딸이기 전에 제국의 황자, 황녀로서 살라고.”
황제의 웃음은 어딘지 지친 기색이었다.
“해서 13황자가 좋은 취급을 못 받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두었다. 그 아이에게 배정된 돈을 너도나도 횡령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어.”
“…….”
“뒷배 하나 없는, 이민족 노예 소생의 막내 황자가 황제의 관심을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으니까. 그저 황자로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루비스탄.”
“…….”
“네가 내 인정을 받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며 남부의 폭동을 진압하고, 흩어진 세력을 규합해서 돌아왔을 때도 황자로서의 행각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
지난날을 회상하듯 황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적막 끝에 황제가 물었다.
“……해서 요즘 나를 부황이라 부르지 않은 것이냐.”
“……제게 폐하를 그리 부를 자격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섭섭하더구나.”
“……!”
놀라 고개를 든 루비스탄을 보고 황제가 웃었다.
“우습지 않느냐. 나도 내게 이런 감정이 있을 줄 몰랐다. 다 큰 아들놈이 부황이라 꼬박꼬박 부르지 않는다고 내심 서운하다니.”
“폐하…….”
“이는 짐이 너를 아들로서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루비스탄의 입매가 울렁이며 호흡이 떨렸다.
황제는 그런 아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루비스탄, 넌 내 첫 자식이었다.”
처음으로 자식이 생긴 기쁨을 알려준 아이.
황제는 갓 태어난 루비스탄을 안아볼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나도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황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충격적인 진실이지만 동시에 가슴 한 켠에서는 ‘그래서였구나’ 하고 납득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오래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말이 쉽게 나왔다.
“내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루비스탄 네가 내 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흥신소>를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니케아르샤의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 이름: 루비스탄 파스칼레
…
– 인간 관계: 티베리우센(■■■)
여전히 검게 가려진 글자.
그 글자를 가린 어둠이 조금씩 조금씩 일렁였다.
– 인간 관계: 티베리우센(■■지)
– 인간 관계: 티베리우센(아■지)
그리고 마침내.
– 인간 관계: 티베리우센(아버지)
니케아르샤는 그 세글자를 보고 미소 지었다.
부모가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식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황제의 커다란 손이 루비스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 내 아들아.”
“…….”
“그간 고민이 많았겠구나.”
“폐하, 저는…….”
“서운하대도.”
“……부황.”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모습에 니케아르샤는 빙그레 웃곤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내실을 나가려는 순간.
“어딜 가느냐!”
황제의 호통이 커다랗게 울렸다.
찔끔한 니케아르샤가 뒤를 돌았다.
“그게, 부자간의 좋은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좋은 시간엔 함께 해야지.”
“네?”
황제가 씨익 웃었다.
“루비스탄이 친모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제국의 황자이자 짐의 아들로서 올곧은 선택을 한 데엔 공녀의 공이 크지 않으냐.”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루비스탄이 붙잡아주길 바랐을 때조차 잡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네 덕이 커.”
“폐하께서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놈의 아비니까.”
“…….”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루비스탄이 미소 지었다.
“예, 부황께선 저를 참 잘 아십니다.”
“크흠, 이렇게 셋이 함께 불행과 기쁨을 나누니 좀 가족 같지 않으냐?”
니케아르샤는 기막힌 눈으로 황제를 쳐다봤다.
“아직도 그 소리세요? 폐하께서 직접 이스칼리온과 제 약혼을 허락하셔 놓곤…….”
“황자들과 맺어주는 건 포기했다!”
황제가 당당히 외쳤다.
“공녀의 가족으로서 짐은 어떠냐는 뜻이다!”
약간의 침묵.
그리고.
“……폐하의 후처로 저를?”
니케아르샤가 불경스럽게도 쓰레기 보는 눈으로 황제를 쳐다봤다.
루비스탄은 더했다.
니케아르샤를 제 뒤로 숨기며 오염폐기물 보듯 황제를 봤다.
“그, 그게 아니라!”
“…….”
“…….”
“어허! 왜 그런 눈이야! 그런 게 아니래도!”
“…….”
“…….”
“난 그저 아비로……. 피가 안 섞여도 얼마든지 자식이 될 수 있으니……. 됐다! 그만 쳐다봐!”
황제가 버럭 역정을 냈다.
내실 안으로 초겨울의 햇살이 비쳐 들었다.
찬 공기를 따스하게 녹이고, 언 뺨을 포근하게 감싸는 햇살이.
어느새 세 사람의 입가엔 그 햇살을 꼭 닮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황궁에서 나온 니케아르샤는 곧바로 마탑으로 향했다.
마차에서 내리자 브라운이 “공녀님!” 하며 반겨주었다.
“세르카엘은?”
“연구실에 계세요.”
“몸은 좀 어때?”
“저요? 아, 환절기라고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하하, 공녀님도 차암!”
브라운이 수줍은 얼굴로 몸을 비비 꼬았다.
니케아르샤는 짜게 식은 얼굴로 브라운을 쳐다봤다.
“……너 말고 세르카엘.”
“마탑주님이요? 뭐, 언제나와 같죠. 그 고약한 성질에 아플 수나 있겠어요? 감기도 도망가지.”
“후우, 다음부터 내가 올 땐 블루윈보고 나오라고 해. 너 말고.”
“너무해요!”
니케아르샤는 브라운의 안내를 따라 세르카엘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왔냐?”
“응, 근데 연구실에 있는 거야? 어제 그 큰일을 치르고서.”
“그 큰일을 치르고서 지치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누구도 있는데.”
“나보단 세르카엘이—”
“네 몸부터 보자.”
세르카엘이 니케아르샤를 마도구 안으로 잡아끌었다.
니케아르샤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이미 마도구가 가동되었다.
하는 수 없이 잠자코 검사를 받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예전 생각이 나네.’
“네 몸을 원해.”
세르카엘의 말을 제르노와 아카인이 오해하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다.
소란 끝에 겨우 검사를 받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 마력 단지가 반 뚝 잘라낸 모양이라는 걸.’
마력 단지를 다 되찾았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검사를 받고 있으니 괜히 긴장됐다.
검사를 마친 세르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이다.”
“그 말은—”
“그래, 이제 마력 때문에 죽을 일 없어.”
세르카엘이 검사 결과를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봐라. 네 마력 단지다. 반절인 상태에서도 평균보다 훨씬 컸는데 제 모습을 되찾으니 엄청 크지?”
“그러네.”
“마력 단지의 한쪽에는 마력 생성소가 있고, 반대편에는 마력 출력소가 있어.”
“…….”
“이 출력소를 통해 마력이 나와야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있지. 네가 역대급 각성자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건 이 때문이다.”
“…….”
“반대로 미카린이 역대급 각성자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건 네 마력 출력소를 가지고 있어서였어. 뭐,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해서 고대 주술의 도움을 받았지만.”
세르카엘은 검사 결과를 바꿔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가만히 듣던 니케아르샤가 그를 불렀다.
“세르카엘.”
“이제 마력 단지가 깨질 일은 없어. 때마다 ‘생성’의 권능자에게 도움받을 필요도 없고. 그거, 엄청 아프잖아.”
“세르카엘.”
“……왜.”
“몸은 어때?”
“말했잖아.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너 정상이야.”
“말 돌리지 말고. 브라운은 눈치가 없지만, 넌 아니잖아.”
세르카엘은 모노클을 벗고 니케아르샤를 마주했다.
“괜찮아.”
“…….”
“좀 무리하긴 했지. 마력이 거의 바닥날 뻔했으니까. 마력이 바닥나면 단지가 바싹 말라 깨질 수도 있고. 하지만 괜찮아.”
박사를 비롯한 1황비의 수하들이 고대 마도구와 고대 주술까지 동원해 가며 시전했던 마법.
그걸 세르카엘 혼자 견디고, 파훼하고, 역이용했다.
“고마워, 세르카엘.”
어떤 미사여구도 없는, 단순하고 담백한 인사.
세르카엘은 미소 지었다.
그 고맙단 말 한마디에 담겨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대로 읽혀서.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 대마법사님.”
“그래, 그 천재 대마법사님께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응.”
“그러니까 그렇게 미안해하지 마.”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붉은 눈동자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세르카엘은 울컥 속이 뒤집어졌다.
‘……혹시라도 내가 아플까 봐 이렇게나 걱정하는 주제에.’
니케아르샤는 제 고통을 너무 하찮게 여긴다.
그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예전에 니케아르샤가 대공비의 영혼석과 공명했을 때가 떠올랐다.
“뭐가 다행이야. 고작 보름 간 얼마나 많이 공명한 거야? 죽으려고 작정했어?”
“괜찮아. 이 정도는.”
그때, 니케아르샤의 반응이 묘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일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
하지만 델로시프 대공녀인 니케아르샤에게 이보다 더 고통받을 일이 뭐가 있겠냐고 그냥 넘겼다.
‘있었어. 아주 끔찍한 과거가.’
니케아르샤의 마력 안에 새겨져 있던 그 끔찍한 과거.
“……이건 진짜 안 알려주려고 했는데.”
쯧, 하고 혀를 찬 세르카엘이 말을 이었다.
“나 혼자 견딘 게 아니었다. 아켈로스 대공이 마력을 넘겨줬어.”
“이스칼리온이? 하지만—”
“그래, 마력의 질이 달라서 내가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지. 하지만 마력 특성 자체를 제거하면 가능해.”
“뭐?! 그건…….”
마법약물을 투입해서 강제로 특성을 죽이는 거라 엄청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대공이 네게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연구자로서 과정을 숨길 수 있어야지.”
니케아르샤가 숨을 들이켰다.
세르카엘은 창밖을 눈짓했다.
“……널 데리러 왔나 본데.”
니케아르샤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마차에서 내리는 이스칼리온을 담은 붉은 눈동자가 세차게 일렁였다.
그 안에 한가득 떠오르는, 숨길 수 없는 감정.
그 변화를 차분히 관찰한 세르카엘이 말했다.
“니케, 난 평생 결혼 안 할 거다.”
“갑자기?”
“나는 연구랑 결혼한 몸이니까. 천재로 태어난 의무 같은 거지.”
“뭐야.”
니케아르샤가 픽 웃었다.
“그러니까 너는 언제든 내게 찾아와도 괜찮아.”
세르카엘이 미소 지었다.
언제나와 같은, 다소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미소였다.
“네 이야기라면 아무리 멍청한 소리라도 다 들어줄 테니까.”
그때였다.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유부녀 꼬시는 거야?”
……예?
유부녀?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