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19)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19화(19/177)
고통은 점점 더 지독해졌다.
힘을 모두 방출한 영혼석이 이제는 내 힘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힘을 빼앗기자, 엄청난 탈력감이 들었다.
동시에 내장 곳곳을 쥐어 짜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런 고통쯤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도 클레아스에게 이런 식으로 자주 고문당했으니까.
하지만 ‘현재’의 몸은 내 생각과는 다른 듯했다.
고문당해 본 적 없는 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 끄흐……!”
핏줄이란 핏줄은 전부 터지는 것만 같았다.
힘을 줄 때마다 고통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피가 잔뜩 섞여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힘을 풀어도 영혼석이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으, 흑……!”
영혼석을 덮듯이 온몸으로 가리고, 흙바닥을 양손으로 쥐어짜듯 잡았다.
생각하고 한 일이 아니었다.
‘더, 더 몸을 말아야 해.’
영혼석의 진동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귀 전처럼 금이 가고 말 거야!’
그래, 회귀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내가 당황하지 않고 달려들 수 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영혼석의 문제가 생긴 시간은 달랐지만.
‘그땐 분명 성묘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문제가 생겼어.’
그땐 미카린의 도움을 받았다.
착용하고 있던 액세서리가 전부 마력석이었으므로.
그걸로 폭발을 막아서, 영혼석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영혼석은 심각하게 훼손됐었어.’
곧 깨질 것처럼 깊은 금이 가고, 모서리란 모서리는 죄다 부서졌다.
그 상태라면 결국 몇 년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까 이번엔……!’
“끄흑……!”
힘을 빨리다 못해 각혈했다.
입가는 검붉은 피로 범벅이었다.
“니케아르샤!”
“그 손 놔, 이 바보야—!”
얼어붙어 있던 제르노와 아카인이 달려왔다.
그리고 납작 엎드려 영혼석을 덮은 내 몸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콰앙—!!!
영혼석에서 기인한 힘의 폭풍에 두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
다행히 영혼석에 담겨 있는 힘이 내 것이므로, 나만은 붙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열하는 영혼석이 허공에 뜬 바람에, 나도 함께 떠오르고 말았다.
눈 앞이 조금씩 흐려졌다.
“젠장!”
밑에서 아카인이 오러를 끌어올리는 것이 겨우 보일 만큼.
“마, 마법사, 아, 아니, 권능자, 아니, 아니, 마기사……!”
“에잇, 누구라도 불러오시오! 저러다 아가씨께서 돌아가시겠소!”
가신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 앞이 새카맣게 변한 건 그 순간이었다.
* * *
영혼석에 걸쳐진 니케아르샤의 몸이 가늘게 흔들렸다.
금세라도 추락할 것처럼.
하지만 추락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영혼석이 불타는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다.
“고, 곧 폭발할 겁니다. 앞으로 2분, 아, 아니, 1분인가……!”
마법에 조예가 깊다는 샌디프 자작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알면 뭐라도 좀 하시오!”
“뭘 어쩌겠습니까! 폭발을 제지하려면 영혼석을 부수는 수밖에 없는데!”
니케아르샤냐, 선 대공비의 영혼석이냐.
둘 중 하나를 가신인 자신이 어떻게 선택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황급히 제르노를 쳐다봤다.
가장 먼저 아카인이 외쳤다.
“형! 저대—”
“비켜.”
저대로 니케아르샤를 죽게 둘 거냐고 소리치려던 아카인이 멈칫했다.
제르노는 냉정한 사내다.
형제에게도 정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니케아르샤보다 ‘어머니의 영혼석을 지키는 후계의 의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천수대. 성소에 결계를 펼쳐라.”
“후계의 명을 받잡습니다!”
제르노가 빛으로 이어져 마치 활처럼 보이는 것으로 공중을 겨누었다.
정확히 말하면 선 대공비의 영혼석을!
“아카인, 신호하면 곧바로 니케를 끌어내—.”
그때였다.
구우우우…….
기묘한 진동이 들려왔다.
영혼석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뭐지? 이건 무슨 파동이지…?”
샌디프 자작이 흠칫해서 니케아르샤를 쳐다봤다.
“뭐 하는 거야. 형, 어서—!”
“…잠깐.”
“잠깐은 무슨. 저러다 애 죽겠…… 뭐야, 저건.”
아카인이 소리치다 말고 니케아르샤를 쳐다봤다.
니케아르샤의 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제르노 직속 호위대인 천수대의 권능자, 젬이 나섰다.
손을 둥글게 말고 눈에 가져가자, 망원경으로 보듯 가깝게 보였다.
이것이 권능자 젬의 권능 <줌>이었다.
“……마력석?”
젬의 말에 제르노가 미간을 좁혔다.
“마력석이라고?”
“예. 손톱만 합니다. 저런 것으론 영혼석 처리는 어림없을 겁니다. 결계를 다시 펼칠—.”
지이이이이잉——.
권능자는 물론, 기사들까지 몸을 굳혔다.
손톱만 하다는 마력석에서 강렬한 파동이 느껴진 탓이었다.
“아…? 어? 어, 어어?!”
마법에 조예 깊은 샌디프 자작이 입을 떡 벌렸다.
손톱만 한 마력석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영혼석을 감쌌다.
뿐인가!
“에테르를…… 제어하고 있어?”
아카인이 중얼거렸다.
그랬다. 마력석이 영혼석을 제어하고 있었다.
저 손톱만 한 마력석이, 영혼석과 비교하면 백배는 작을 터인 마력석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던 공기가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니케아르샤의 몸을 찢어발길 듯 날카롭던 영혼석의 파동 또한 사그라졌다.
떠올랐던 영혼석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인 순간.
“니케!”
“아가씨—!”
정신을 잃은 니케아르샤가 휘청, 떨어진 것이다.
아카인이 재빨리 도약하여 니케아르샤를 받아냈다.
털썩, 그의 팔에 떨어진 니케아르샤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꼴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더 엉망이었다.
“이게 뭐야…….”
“…….”
“대체 뭐냐고……!”
제르노도 다가와 니케아르샤의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을 헤집은 것처럼 베어 있는 주제에.
피 칠갑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데도 영혼석을 놓치지 않기 위해 흙바닥을 긁던 이 손을 봐라.
대부분이 찢어지고, 어느 부분은 반쯤 빠져 덜렁거리는 이 손을…….
니케아르샤의 속눈썹이 흔들렸다.
“정신 들어? 어?”
“……버니.”
“이게 진짜…… 미쳤어?! 죽으려고 작정했냔 말이야!”
아카인이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리곤, 버럭 소리쳤다.
언제나 무감하던 제르노의 미간에도 주름이 잡혔다.
“멍청한 짓을 했어.”
“……라버, 니.”
니케아르샤의 눈빛이 이상했다.
겨우 뜬 눈에서 이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카인이 제르노를 쳐다봤다.
“충격이 커서 혼란이 온 것 같아. 누구라도 불러와야겠어.”
“그래.”
“대체 누굴 불러야 하는 거야……. 의사? 신관? 마법—.”
아카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
“오……라, 버니.”
“그래, 여기 있어. 이 멍청아.”
“……호, 혼석. 영혼석…….”
이 와중에도 어떻게든 일어나려 하고 있다.
영혼석을 찾으려고.
니케아르샤의 두 형제는 이를 악물었다.
가신 하나가 허둥지둥 달려가 선 대공비의 영혼석을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아가씨. 무사합니다.”
“금…… 가지 않, 았어?”
가신이 눈물을 글썽였다.
아카인은 울컥 소리쳤다.
“문제없으니까 제발 좀—!”
“아…….”
그제야 니케아르샤가 아카인의 품에 축 늘어졌다.
“엄, 마…… 무사하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잔뜩 굳어져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죽은 엄마 따위 진작에 잊은 줄 알았는데.
그런 인간 말종이라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줄로 알았다.
어느 순간,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영혼석은 어머니가 아니야—!”
제르노였다.
어디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얼굴을 잔뜩 구기고 분노를 드러냈다.
“이따위 것 때문에 대체 무슨 꼴이야! 넌 얼마나 더 바보 같은 짓을……!”
“그, 러면…… 괜찮, 아.”
“……뭐?”
“영혼석…… 있으면, 어머니 떠올릴 수, 있어…… 힘들면, 찾아올…… 장소, 있어.”
“…….”
“나는 바보라서, 매번 가족들을…… 힘들게 하니까, 이번엔…… 이번만은…….”
아카인은 숨을 쉬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더 가문의 위신을 상하게 할 거지? 제발 없는 듯 살아! 그게 네가 우릴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
대꾸하지 않는 건,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시위라고…….
아카인뿐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입술 한 번 달싹일 수 없었다.
이 미련한 아가씨가 숨겨온 마음이 드러나 버려서.
* * *
대공저는 새벽이 다 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물수건, 물수건!”
“얼음도 가져와! 열을 식혀야 한다니까!”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니케아르샤의 간호를 위해서였다.
영혼석의 폭주로 몸이 엉망으로 상했다.
서로를 부모의 원수인 줄로 아는 듯한 신관과 마법사가 딱 달라붙어 함께 간호해야 할 정도로.
성소에서의 일을 아는 가신들도 저택을 떠나지 못하고 기웃거렸다.
그렇게 두 시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가신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나오는 마법사에게 인사했다.
“아가씨 상태는 어떻습니까?”
“끊어진 핏줄은 쭉정— 아니, 신관이 이어놨고, 공녀님 내부에서 날뛰는 힘은 제가 진정시켰으니 이제 의사에게 달렸습니다.”
“위, 위험합니까?”
“언제 깨어나는지가 의사 손에 달렸다는 겁니다.”
“아이고, 사셨구나! 사셨어!”
가신들이 허허허 웃었다.
“미카린 님이 큰일 하셨습니다. 이 밤에 중앙원의 마법사님을 모셔 오셨으니까요.”
샌디프 자작이 흐뭇한 얼굴로 문 안쪽을 바라보는 미카린에게 말했다.
미카린은 흠칫, 자작을 돌아봤다.
“뭐, 뭘요…….”
“두 분 사이가 얼마나 끈끈하시면 대단한 마력석 액세서리에 새벽에도 달려오신단 말입니까. 역시 미카린 님이십니다.”
젊은 마법사는 소리 없이 비웃었다.
미카린의 입매는 더욱 어색하게 굳어졌다.
“전 고생하신 마법사님을 배웅할게요.”
“예, 예.”
가신들이 하하 웃으며 떠드는 동안, 미카린과 마법사는 함께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사람 없는 코너에 이르렀을 무렵.
“클레아스 님이 전하시더군요. 아주 실망스럽다고.”
그랬다.
이 마법사는 권력가인 클레아스의 가문에서 은밀히 후원하는 마법사였다.
마력석도 클레아스에게 조르고 졸라 받아낸 것이다.
니케아르샤 치료에 부를 사이는 당연히 아니었다.
가신들이 모두 모여 ‘친하다며?’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았으면, 결코.
‘이자 때문에 클레아스가 내 계획을 다 알아버렸잖아!’
“얼마나…… 말했어요?”
“뭘 말입니까?”
“그야!”
“선 대공비의 영혼석을 폭주시킨 게 미카린 양이라는 사실?”
“…….”
“아니면, 제르노 님의 신임을 회복해 클레아스 님의 사업계획을 도울 거라는 이유로 마력석을 받아 간 게 거짓이었다는 것?”
“…….”
“그저 영혼석 폭주를 막는 공을 세울 욕심으로 마력석을 가져갔다는 것? 그도 아니라면…….”
“그만.”
“니케아르샤 양을 살린 그 손톱만 한 마력석이 ‘마탑주’의 마력석이란 것 말입니까?”
“그만하라니까—!”
그래, 영혼석을 폭주시킨 건 자신이었다.
클레아스를 속여서 필요한 것을 모두 받아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자신과 클레아스를 위한 일이었다.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단 말이야!’
마력석으로 영혼석을 진정시킬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래서 두 오라버니의 신임을 회복하고, 다시 저택 출입권을 받았어야 했는데.
‘왜, 왜, 왜, 왜!’
미카린이 손톱을 까득, 물어뜯었다.
“정말로 니케아르샤가 갖고 있던 마력석이 마탑주의 것이에요?”
“100퍼센트에 가까운 그 순도. 그 작은 양으로도 단숨에 선 대공비의 영혼석을 진정시킨 에테르.”
마법사가 흥, 실소를 흘렸다.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건 마탑주뿐이죠.”
“당신이 내 계획을 발설한 거 아니에요?!”
“제가요?”
“아니면 니케아르샤가 어떻게 마탑주의 마력석을 샀겠어요?! 상인을 만나 그만한 물건을 거래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제 입에서 미카린 양 계획이 흘러나온 적은 없습니다. 잘못 엮이면 대공비 영혼석을 깨뜨린 중죄인이 될 테니.”
“하지만……!”
“마탑주가 직접 니케아르샤 양께 줬을 거란 생각은 왜 안 하십니까?”
니케아르샤가 어떻게 마탑주를 만났겠는가!
마탑주와 대화할 수 있는 건 현자급의 지혜를 가진 자다.
자신조차 끈을 대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얼굴 한 번을 못 봤다.
“정말로 마탑주를 만날 수 없어요?”
“어차피 안 될 일은 포기하시고, 다른 걱정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걱정이라니요?”
“클레아스 님께서 내일 날 밝는 즉시, 대공저를 찾으실 겁니다.”
그야 명목상은 니케아르샤의 약혼자이니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무슨 걱정을 해야 한다는 거야?
마법사가 픽 웃었다.
“클레아스 님께서 가장 화를 내시던 부분 말입니다.”
“네?”
“‘니케아르샤 양이 죽을 뻔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
완전히 희멀게진 미카린의 얼굴을 본 마법사는 유쾌한 표정이었다.
클레아스의 애인이란 이유로, 자신을 부리던 여자.
말로는 ‘마법사님’이라고 다정하게 부르지만, 눈은 괄시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권능자보다 마법사가 못하다고 여길 테니까.
‘그에 비하면 니케아르샤가 낫군.’
마탑주 직속 마법사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이유가 있었다.
니케아르샤는 권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탑을 찾아올 만큼 마법사를 존중했다.
미카린처럼 가식이 아니라.
“그럼. 되도록 자주 보지 않기를.”
마법사는 히죽 웃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미카린은 양 주먹으로 창틀을 내리쳤다.
“니케아르샤, 니케아르샤, 니케아르샤!”
니케아르샤의 침실 안에 있던 두 오라버니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게다가 클레아스는…….
클레아스를 떠올린 미카린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일단 클레아스에게 오해를 풀어야 해.”
미카린은 곧장 저택을 나섰다.
그리고 향한 곳은 언제나 클레아스와 밀회를 나누는 그곳.
대공저 인근에 있는, 클레아스 명의의 써드하우스였다.
‘분명 여기 있을 거야.’
마법사에게 은밀히 보고를 들었다면, 이곳의 통신을 이용했을 테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미카린은 술잔을 든 채로 창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끌어안았다.
“클레아스…….”
“…….”
“너무 보고 싶었어요. 오늘 나, 정말로 당신이 필요해서…….”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카린.”
미카린이 움찔 굳어졌다.
클레아스의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들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