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22)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22화(22/177)
제르노에게서 뻗쳐나온 오러가 순식간에 세르카엘을 옭아맸다.
물론 세르카엘이 순순히 잡혀준 건 아니었다.
재빨리 뒤로 물러나 영창했으니까.
마법의 영창으로 오러의 사슬에 균열이 생겼다.
“마, 마탑주님이 뒤로 물러나셨어? 아니, 영창! 저거 영창하신 거지?”
“점프? 그런 걸 하실 수 있는 분이란 말야?”
“아니, 영창이 더 놀랍지! 뭐든 무영창이던 분이 영창까지 해야 할 정도의 공격이란 거잖아!”
“뭘 그렇게들 놀라. 이거 다 꿈이야.”
마법사들이 혼란한 사이, 이번엔 아카인이 나섰다.
제르노는 마법, 신성계 마법, 무예, 지략 등등 완벽한 육각형을 자랑했다.
반면 아카인은 한 분야에 특출났다.
무게 중심을 낮추고 재빠르게 세르카엘에게 파고든 아카인이 검을 내질렀다.
쩌엉—!
세르카엘이 재빨리 결계를 만들었으나, 아카인의 검에 의해 박살이 났다.
“비실비실한 게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세르카엘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야말로 내가 방어만을 고집할 거라 여겼나?”
순간,세르카엘의 발밑에 엄청나게 촘촘한 마법의 진이 나타났다.
‘폭발계다!’
저 주변 사람들이 죄다 말려들 거다.
아니, 그런 건 알 바 아니지만……!
‘내 페트라!’
“그만—!”
나는 버럭 소리치며 아카인과세르카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양팔을 벌렸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저 비실이, 마법사인 모양인데 시전 중에 뛰어들면 어쩌란 말이야!”
“내가 원하는 거래 대금은 네 몸이다. 너덜거리는 몸은 가치가 없으니 멀어져.”
“너, 이 시X새끼…… 방금 뭐라고 했어.”
“멍청한 놈은 내게 말 걸지 마. 마지막 경고다.”
싸움을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심지어 마법사들과 제르노의 분위기도 이상했다.
마법사들은 이쯤 되니 그래도 마탑의 주인인세르카엘의 편을 들려는 모양이다.
몇몇이 영창하고 있었다.
제르노의 발밑에도 짙은 오러가 배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데서는 패싸움을 하든지, 탭댄스를 추든지 상관없어. 이곳에서 내 페트라가 말려들지 않는다면.’
그러니 일단 싸움을 중재시키는 게 우선이다.
“서로 인사하세요.”
“인사는 개뿔. 내가 왜 저 비실이 따위와—.”
“이 비실이는 마탑주 세르카엘이야.”
“……뭐?”
아카인과 제르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탑주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난데없이 찾아와 마탑주를 공격하는 오라버니들을 쒸익쒸익 쳐다봤고.
세르카엘이 말했다.
“들짐승보다 지능이 낮은 놈들을 왜 소개받아야 하지? 평생 얽히고 싶지 않으니까 그대로 사라지라고 해.”
“이 들짐승들이 델로시프 소공작과 공자.”
“…….”
세르카엘은 미간을 좁혔다.
그야 아카인은 몰라도 제르노 이름만은 기억할 테니까.
네 연구 자금에 물 쓰듯 투자하는 후원 가문인 델로시프. 그 델로시프의 서류에 제르노의 서명이 들어간다.
‘미친놈들’, ‘정신이 나간 거 아냐?’ ‘당장 사지를 절단시켜서 쫓아내야—’ 둥의 말을 떠들던 마법사들도 굳어졌다.
그리고.
“딸꾹—!”
사지를 절단시키겠다고 말한 마법사부터 격한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 후, 몇 초쯤 지났을까.
마법사들이 동시에 납작 엎드려 소리쳤다.
“감히 고귀한 존안을 알아보지 못한 눈, 뽑아버리겠나이다!”
“사실 제 꿈이 마탑주 암살이었사옵니다!”
“제 등을 밟고 계단을 오르시옵소서!”
마법사들이 벌벌 떠는 동안, 오라버니들과세르카엘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저 비실이가 그 비싸게 구는 마탑주?”
“산짐승 같은 것들이 내 돈주머니?”
으르릉.
아카인이 다시세르카엘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나는 얼른 아카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세르카엘, 자리를 내줘! 대화부터 해야겠으니까!”
“난 멍청한 것들과는 대화—”
“해—!!!!”
클레아스가 내 어머니 사진 앞에서 미카린과 더럽게 뒹굴 때도 이만큼 소리치지 않았다.
나도 내 목청에 놀랐으니, 다른 사람이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아카인이 지지 않고 꽥꽥 소리치리라 생각했는데, 왜인지 얌전했고.
‘진짜 왜 이렇게 얌전하지?’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아카인을 쳐다봤다.
영혼이 반쯤 나간 얼굴이었다.
‘……?’
* * *
마탑의 탑층. 마탑주의 방.
아카인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비실이 네가— 아니, 마탑주 당신이 한 저급한 언사는 사과를 받아야겠다.”
“저급한 언사?”
“감히 대공가의 영양을 희롱한 그 말 말이다!”
“…못 하겠다면 정식으로 고발 서한을 보내지.”
아카인에 이어 제르노까지 싸늘하게 덧붙였다.
두 형제의 기세가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의아했다.
‘세르카엘이 날 희롱했다고?’
“네 몸을 원해.”
물론 그런 말을 했지만….
그렇게 말하던 눈빛은 내가 수석 노예… 아니, 연구원인 브라운의 잠재력을 알아챘을 때와 같았다.
굉장한 연구 과제를 찾은 연구자의 눈.
‘즉, 영혼석 폭주로 마나를 왕창 뺏겼는데 며칠 만에 나다니는 날 연구하고 싶었던 거지.’
그 증거로세르카엘의 손에 <마나의 회복>이라는 책이 들려있었다.
그는 책장을 넘기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당최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군. 너희 고위 귀족이란 것들은 순수한 호기심도 용납하지 못하나?”
=왜 화를 내지? 마나를 저렇게나 빠르게 회복했으니, 연구자로서 궁금한 건 당연하다.
그런 뜻이었는데, 아카인은 이를 악물었다.
“순수한 호기심? 저질, 변태들은 더러운 욕망을 재밌게 포장하는군.”
=어디다 대고 더러운 성욕을 순수한 호기심으로 포장해?
“욕망? 그래, 욕망이라고 한다면 욕망이지. 하지만 내 욕망은 인류의 발전에 필연적인 것이다.”
=연구자의 호기심은 알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 호기심은 인류를 발전시킨다.
“이, 이 짐승 같은 새끼가 개소리를! 왜 네가 내 동생과 번식해야 인류가 발전한다는 건데! 형, 난 도저히 못 참아. 마탑주고 나발이고……!”
음, 이건 해석할 필요가 없군.
아카인은 다시 검을 잡았지만, 제르노의 제지는 없었다.
나는 양손으로 탕!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만.”
“그만두라고? 저 새끼가 너와 세— 아니, 깊은 관계가 되겠다는데?!”
“나와세르카엘은 번식하지 않아. 오라버니의 오해야.”
“버, 번식……. 저 새끼가 별 개 같은 말을 가르쳐 놔서—!”
먼저 번식이라는 단어를 꺼낸 건 아카인이잖아.
나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세르카엘은 그저 내 몸을 조사하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벗기겠다 이 말이잖…… 어?”
“연구자로서 순수하게 내가 기묘한 회복을 한 걸 조사하고 싶단 뜻이라고.”
“…….”
말을 잃은 건 아카인뿐만이 아니었다.
제르노의 눈도 드물게 커져 있었으니까.
이윽고 아카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버버하던 그가 꽥! 소리쳤다.
“그럼 그렇게 말하지 왜 사람 오해하게……!!”
세르카엘은 우리 남매의 대화를 듣고,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나야말로, 몸 하면 번식이라는 공식을 어떻게 성립시켰는지 묻고 싶은데.”
“…저 새끼, 날 가지고 노는 거 아냐?”
“침착해. 신이세르카엘에게 사회성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야.”
세르카엘의 얼굴이 구겨졌다.
“신이란 인간이 구원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상상 속 산물로, 신성력이란 건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를—”
아카인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부분에 화가 난 걸 보면 확실히 네 말이 맞는 듯하다, 니케.”
그렇다니까.
* * *
그렇게나 다툰 게 무색하게도, 제르노와 아카인은 내 몸 검사에 순순히 동의했다.
‘공짜로 마탑주에게 진료받는 거니까 싫을 이유가 없겠지.’
다만, 사술을 부릴까 우려한 것인지 제르노와 아카인이 동석했다.
‘진료가 아프거나, 힘들진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세르카엘과 마법사들의 얼굴이 점점 이상해졌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지…….”
“이런 선례가 있었나?”
“그럴 리가.”
세르카엘까지 심각한 얼굴로 허공에 만든 그래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인은 슬슬 불안한 표정이었다.
“왜? 역시 큰 병이 있는 거냐?”
“그건 어폐가 있군. 굳이 따지자면 선천적 장애 쪽이 맞을 거다.”
아카인이 굳어졌다.
제르노가 성큼성큼 걸어가 한 손으로세르카엘의 멱살을 잡았다.
“델로시프 대공녀의 신상에 관한 일이다.”
“뭐 하는…… 윽!”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 좋을 거야. 네 대에서 마탑의 역사를 끝내고 싶지 않다면.”
마탑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나 저장소의 선천적인 이상이 있으니 하는 말이야.”
“마나 저장소?”
제르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세르카엘이 목을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니케아르샤는 저장소에 저장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마나를 생성해.”
아카인이 재빨리 캐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마나가 텅 비어도 며칠 만에 회복한 거지. 오히려 텅 비었기에 다행이었어. 그렇지 않다면 저장소가 파열되었을 테니까.”
“마법사들은 써클이란 고리로 마나를 저장하여 유지하잖아. 니케도 그런 식으로 저장할 순 없어?”
아카인의 말투는 초조했다.
“써클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줄 알아? 수년간 죽도록 수련해서 써클 하나를 겨우 만든다고.”
“그럼…….”
“니케아르샤만 한 생성량이라면 저장소가 이미 파열되었어야 했어.”
“마나 생성량은 일반인보다 많은데 저장소는 남보다 작은 건가?”
“저장소 자체는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커. 하지만…… 모양이 이상해.”
“이상하다니.”
“뚝 잘라낸 것 같단 말이지. 누군가에게 이식하기 위해.”
세르카엘이 우리 남매를 둘러봤다.
“대공녀가 어려서 수술이라도 받았어?”
“그런 적 없어! 누가 대공녀의 몸에 손을 대겠어! 그것도 저장소를 잘라내는 무식한 일을……!”
아카인이 버럭 소리쳤다.
세르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아무튼 요점은.”
세르카엘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네가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는 거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어려서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지.”
“그렇구나.”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어떻게 그렇게나 태연하지?”
나는 관 안에 누워 있느라 주름졌던 치마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자연사가 뭐 어때서. 남들 손에 삶을 빼앗기진 않는단 건데.”
일단 얼마쯤 살지는 안다.
회귀 전 살해 시점까지는 산다는 거지.
‘일을 서둘러야겠네.’
“거래에 값은 치렀어. 그럼 이건 이제 내 거지? 가져갈게.”
나는 페트라를 챙기며 마탑주를 쳐다봤다.
그런데세르카엘의 표정이 이상했다.
“정말로 죽음이 무섭지 않아?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야.”
“본능을 누를 수 있기에 인간인 거 아냐?”
“……나와 또 대화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뭐래.
난 여상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대화하고 싶거든 내가 필요한 걸 또 가져와.”
안정화된 페트라만큼의 대단한 것을.
* * *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
나는 아카인, 제르노와 함께였는데 분위기가 어두웠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으니까.
딱히 나쁘지 않았다.
‘가족들이 나와 대화해 주지 않는 건 익숙한 일인 걸.’
나는 무료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때.
“죽음에 어떻게 공포가 없을 수 있어? 설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던 거야?”
아카인이 물었다.
나는 그를 힐끔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석상처럼 굳어있었다.
난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어. 종종 가슴이 터질 듯이 아프곤 했으니까.”
“그런데 왜……!”
“……?”
아카인이 이를 악물었다.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어! 넌 내가, 가족이 그렇게 의지가 안 돼?!”
“아프다고 했어.”
“……뭐?”
“말했었어. 아파서 황녀의 파티에서 영애를 밀치고 나온 거라고.”
“…….”
“가짜 의사에게 거금을 사기당한 것도 가슴 통증을 낫게 해줄까 봐 그랬다고 말했어.”
“…….”
아카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기억이 났을 테니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갑자기 아파서……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했는데 도저히 들을 상황이…….”
“그따위 변명 집어치워. 널 대신해서 미카린이 무릎까지 꿇었어.”
“…….”
그 파티도.
“넌 그게 얼마나 되는 돈인 줄 알기나 해? 영지민 모두가 한 달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금액이야!”
“진짜로 실력 있는 의사인 줄…… 나는 내 통증도 너무 잘 알아서……!”
“도무지 제대로 용서를 빌 줄을 모르는구나. 석 달간 근신이다. 그 전에 네가 방 밖으로 나올 일은 없을 거야.”
그 의사까지 말이다.
안 믿어주니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돼. 변명으로 들릴 말이긴 했으니까.”
“…….”
“또, 통증이 매일 같이 있던 건 아니기도 했어. 대부분은 멀쩡했거든. 그러니까 미카린과 그렇게 놀러 다닐 수 있던 거지.”
“…….”
“아, 난 여기서 내릴게.”
고급 살롱 거리에 이르러 마부석의 창문을 두드렸다.
살롱 중 한 곳이 목적지였다.
막 내리려고 하는데, 누군가 손목을 홱 잡았다.
“뭐야?”
나는 미간을 좁히고 그 사람을 쳐다봤다.
아카인이 내 손목을 잡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굴이 전혀 안 보이도록.
“사고 안 치고 들어갈게. 약속…… 아, 믿지 않겠지. 그럼 기사라도 붙여두든가.”
“…….”
“난 오늘 여기 꼭 가야 돼. 제발, 오라버—”
나는 말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차 바닥으로 물이 뚝, 뚜욱,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아카인 오라버니…… 설마 울어?”
당황해서 제르노를 쳐다봤다.
네 동생 좀 어떻게 해봐! 그런 표정으로 봤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고개를 돌리고 있어?’
그것도 이를 악물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