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23)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23화(23/177)
나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인명록 메이트를 가만히 쳐다봤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저기, 왜 울어……?”
“용서해 달라곤 안 해.”
그렇겠지.
내가 멍청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잔뜩 사고를 치고 가문에 먹칠을 한 것도 사실.
내가 한 바보 같은 짓들은 모두 아카인과 제르노가 처리했다.
특히 후계이므로 자리를 자주 비워야 하는 제르노 대신, 아카인이 책임져야 했다.
“그런다고 이미 네게 준 상처가 지워지는 건 아닐 테니까.”
“……?”
“그렇지만, 난 평생 후회할 거야.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네게 미안해하며 살 거다.”
“……그래서?”
대체 왜 우는 거고, 요점은 뭔데?
“그러니까 이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줘…….”
“어?”
“참지 말고, 원망하고, 네가 때리면 난 언제든 맞을 테니까 그때 왜 믿지 않았느냐고 내 가슴을 치면서…… 그러면서…….”
“……뭐 잘못 먹었어?”
“내 동생으로…… 계속 살아주라.”
왜 저래…….
나는 아카인의 손을 떼냈다.
으, 하고 질색하는 표정을 짓지 않은 건, 남매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부석을 향해 떨떠름하게 말했다.
“다시 문 열어줘.”
눈치 빠른 마부는 우리 남매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문을 닫아버렸다.
눈치가 안 빨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그냥 모른 척 손을 홱, 빼서 문밖으로 나갔을 거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봤다.
‘미네르바의 서재가…… 음, 저기로군.’
초고위층으로 이뤄진 북클럽이 열리는 살롱, <미네르바의 서재>.
그곳은 살롱 거리에서도 눈에 띄게 화려했다.
‘오늘이 마침 북클럽 모임이 있는 날이니까 아마도 올 거야.’
—아켈로스 대공이.
* * *
델로시프 대공가의 마차는 또다시 길 위를 달렸다.
니케아르샤가 내리고 나서도 마차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있던 아카인이 중얼거렸다.
“멍청이…….”
“…….”
“이따위 오라비에게 한마디 욕도 못 하는 미련한 녀석.”
니케아르샤는 이미 아카인의 머릿속에서 ‘오해가 쌓여 다가올 수 없었던 가련하고도 병약한 여동생’이 되었다.
귀찮아서 도망친 것에 불과한 행동도, ‘오라비를 이해하는 가련한 니케아르샤’로 해석되어 버렸다.
“난 이제 니케를 위해 살겠어. 형이 뭐라고 해도.”
“뭐라고 할 생각 없어.”
“……형도 미안하긴 한가 보군.”
“아니.”
아카인은 못마땅한 한숨을 내쉬었다.
냉혈한 형제는 동생의 갸륵한 민낯을 알고도 차갑다.
“난 그저 신경 쓰일 뿐이야.”
그게 미안하다는 거고, 안쓰럽다는 감정이란 거다.
제르노는 델로시프의 후계로 태어난 줄곧 무욕을 요구받았다.
모든 욕망은 오직 가문에 향해야 했으므로.
‘하여간에 니케나, 형이나.’
“그럼 일단 뭐부터 해야 하나.”
아카인이 “흠.” 신음하며 고민하자, 제르노가 물었다.
“뭘 한다는 거지?”
“니케에게 해줄 일. 그 녀석,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해도 말하지 않을 테니 내가 알아서 준비해야지.”
미안함은 감정만으로 갚는 게 아니라, 돈과 현물로도 갚는 것이다.
제국 제일의 갑부집 둘째 아들은 세상을 그렇게 배웠다.
“보석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경매에서 터무니없이 비싸게 사들일 정도니까, 음, 다이아를…….”
아카인이 고민하던 그때, 제르노는 통신석을 들었다.
“나다. 제도에서 가장 큰 보석상을 불러들여라. 상점 내 물건을 모두 구입하겠다.”
갑부집 첫째라고 다른 걸 배운 건 아니었다.
* * *
제도에는 수많은 사교 모임이 있다.
독서클럽을 만든 것도 한 마흔 팀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북클럽>이라는 이 평범한 이름을 모임명으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한 곳뿐이었다.
‘이 미네르바의 서재에서 이뤄지는 사교 모임.’
공작 이상급 작위.
재상, 대장군, 기사단장 등 유사시 황권을 대체할 수 있는 지위.
그런 엄청난 남성들이 모인 이 모임만이 <북클럽>이라고 불렸다.
‘아켈로스 대공도 이 북클럽의 회원이야.’
“엄청나긴 진짜 엄청나네…….”
북클럽 회원들이 모이는 장소는 2층이라고 들었는데.
1층에도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것도 대부분이 이름난 명문 귀족들이었다.
어떻게든 북클럽 회원과 인맥을 만들려는 것일 터다.
또, 북클럽 모임이 있을 때 1층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세를 과시할 수 있기도 하지.
“어머, 델로시프 양.”
중정 한가운데 모여 까르륵 웃고 있던 여성 무리가 날 쳐다봤다.
내게 말을 건 건 대장군의 차녀이자, 2황비의 동생인 디오르시였다.
“여기서 다 뵙는군요. 아버님과 함께 오셨나 봐요? 저도 제 아버님을 모시고 왔답니다.”
초고위층 모임.
그렇단 건 지금은 제국에 없는 내 아버지 델로시프 대공도 이 클럽의 회원이란 소리다.
“델로시프 대공께서 제국에 돌아오신 줄은 몰랐어요.”
“아뇨, 아버님을 모시고 온 건 아닙니다.”
“그런가요? 아, 그럼 혹시 제르노 님께서 드디어 북클럽 입성을……?”
디오르시는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2황비가 그녀와 제르노를 이어주기 위해 혈안이니, 관심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르노 오라버니는 전혀 생각이 없는 것 같던데.’
디오르시는 내게 상냥했다. 제르노를 노리는 영애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쪽으로 오셔서 함께 계셔요. 오늘은 무슨 일인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분들까지 오셔서 혼란하답니다.”
그러며 디오르시는 문가 쪽 귀족들을 쳐다봤다.
“이곳 1층은 원래 북클럽 회원의 자녀들이 쉬는 곳이잖아요? 언젠가부터 날파리 떼까지 모이는 바람에 위험해졌어요.”
“네에, 저희 아버님도 제가 괜한 사내와 얽힐까 봐 늘 모임을 빠르게 끝내고 오신답니다.”
다른 영애까지 투덜거리자, 디오르시가 고개를 저었다.
“사내들에겐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지나칠 땐 문제가 되지요.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잖아요.”
“맞아요. 이번에 제게 혼담을 넣은 가문도 그래요. 어딘지 아세요? 자작가예요! 그것도 상단이나 하는 가문이요.”
“세상에, 끔찍해라. 그러고 보면 델로시프 양은 혜안이 있지요. 처음 클레아스 님과 약혼하셨을 땐 사실 당황했거든요.”
“말하지 않았지만 북클럽 자녀들은 모두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클레아스 님의 가문도 북클럽 입성 논의 중의니—”
그때였다.
“니케에게 걸맞은 남자가 되어야 하니 노력쯤은 해야지.”
끔찍하게 보기 싫은 얼굴이 등장했다.
클레아스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미소 지었다.
“니케, 큰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사람 많은 곳은 좋아하지 않잖아.”
그래, 네 귀여운 미카린과는 달리 말이지.
결혼 생활 중에 하도 비교당해서 뒷말이 자동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팔을 떨치며 말했다.
“볼일이 있으니까.”
“어떤 볼일이기에 직접 행차까지 했어?”
“알 것 없어.”
그렇게 말한 난 주변을 둘러봤다.
‘아켈로스 대공가의 사람은 안 보이네.’
오늘은 안 왔나?
북클럽 모임은 그냥 사교모임이 아니다.
회원이 회원인 만큼 때론 정책들이 논의되고, 실제로 채택되기도 한다.
‘그래서 북클럽 모임은 꼭 올 줄 알았는데…….’
역시 편지를 부칠 걸 그랬나.
아니지, 델로시프 대공가에서 아켈로스 대공가로 편지가 가면 황제도 신경 쓸 거야.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나와 클레아스를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그러자 클레아스가 한 팔로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요새 얼굴을 자주 안 비쳐서 토라졌나.”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클레아스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도무지 그의 손이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술이 귓가에 가까워졌다.
“입 많은 자리에서 내게 이런 식으로 굴면 또 파혼 같은 얘기가 나올 텐데, 괜찮겠어?”
클레아스가 그렇게 속삭였다.
회귀 전엔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소문이 나서 클레아스의 부모님 귀에 들어갈까 봐.
이때다 싶어 개망나니라 불리는 나와 파혼시킬까 두려웠던 거다.
그래서 이런 협박이 들어오면 클레아스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줬지.
“클레아스.”
“말해.”
“부부간에도 성희롱과 성폭행이 성립한다는 것 알고 있어?”
“뭐?”
“하물며 약혼한 사이라면 더더욱 형량이 크겠지? 북클럽 모임 중이실 대법관께 여쭈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야.”
“재밌는 농담이네.”
재밌는 농담이라는 말은 클레아스가 열이 받았을 때 나온다.
회귀 전엔 그렇게나 무서운 말이었는데, 지금은…….
‘뭐, 어쩌라고.’
싸늘하게 쏘아보니, 클레아스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나는 흥미진진하게 나와 클레아스를 보는 영애들에게 고개를 까닥이는 것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홀 너머의 복도로 향했다.
‘클럽 모임이 있는 2층으론 올라갈 수 없어. 그러니까 아켈로스 대공가의 사람이라도 찾아야 해.’
내가 안정화된 페트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린다면, 만날 수 있다.
아켈로스 대공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지.
그러니까 으슥한 곳을 통해 이동할 것이다.
2층과 이어지는 가장 외진 곳이라면…….
걷고 있는 와중에 손목이 잡혔다.
“대체 뭐가 문제야.”
남들 앞에서와는 전혀 다른 표정의 클레아스였다.
“오늘 손목 정말 많이 잡히네.”
“네가 내 말을 무시해?”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퍽, 클레아스의 가슴을 강하게 밀쳐 그를 떼어냈다.
그러자 클레아스가 얼굴을 굳혔다.
나는 그에게 잡혔던 손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는 왜 네 말을 무시하면 안 돼?”
“니케아르샤 델로시프.”
“넌 늘 하던 짓이잖아. 무시하는 것도, 매정하게 내 손을 쳐내는 것도.”
“정말 파혼이라도 하고 싶은가.”
나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협박이네.”
“협박이란 걸 인지했다면 선을 지켜.”
“협박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비아냥이었어.”
“너…….”
클레아스는 화를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럴 때면 난 언제나 눈치를 보았다.
거의 빌다시피 옷깃을 붙잡고 ‘내가 잘못했어. 내가 부족해서 그래. 미안해. 미안해.’ 하고 애원했었다.
그를 너무나 사랑한 죄로 난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약자였던 것이다.
“뭐가 니케 널 이렇게 바뀌게 만들었어. 누가 뭘 어떻게 속살거렸기에.”
“내가 변했다면 그건 내 의지야, 클레아스.”
“무슨 뜻이야?”
“난 그냥…… 이제 더는 네가 멋지지 않아.”
클레아스의 얼굴은 더 할 수 없을 만큼 굳어졌다.
“왜.”
“그건…….”
내가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내 얼굴을 봐서겠지.”
“……!”
“……!!”
클레아스와 내 사이를 가르는 낮은 목소리.
난 재빨리 달빛에 비치는 눈을 확인했다.
짙은 남색이 아니라 호수처럼 푸른 청안이다.
‘진짜 아켈로스 대공이야.’
* * *
아켈로스 대공을 본 클레아스의 얼굴은 험악해졌다.
니케아르샤와 있을 때면 나타나는 저 열받는 얼굴.
절로 으득, 이가 갈렸다.
“약혼자 간의 대화 중 끼어드는 것은 아무리 대공이라 하여도 무례가 아닙니까.”
“여성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기에 대신 정답을 말해줬을 뿐.”
“오답이겠죠.”
클레아스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니케, 이리—”
“북클럽 모임이 끝났어요? 아니면 지금 온 거예요?”
“니케.”
“나랑 얘기할 시간이 좀 있겠어요? 정말 짧아도 되는데.”
클레아스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졌다.
니케아르샤의 행동이 이상했다.
‘저런 건 내게 하던 행동이잖아.’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고, 조금이라도 대화하고 싶어 하는 그런 건.
“니케아르샤 델로시프!”
“아, 거 시끄럽네!”
“……!”
니케아르샤가 왈칵 인상을 쓰며 클레아스를 쏘아봤다.
“무례는 네가 저지르고 있으니 좀 가. 난 이분과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야.”
“무슨 얘길? 왜, 나와 파혼할 테니 약혼해달라고?”
자존심이 상한 클레아스가 빈정거렸다.
감히 제 눈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말을 거는 니케아르샤가 깊이 상처받길 원했다.
그런데…….
“그런 얘기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너 없는 자리에서 얘기를 나눠야겠거든?”
“……그래, 가주지.”
“그래, 그래.”
“정말로 갈 거다. 두 번 다신 돌아보지 않고.”
클레아스는 등을 돌렸다.
성큼성큼 걷는 중에도 분에 차서 뭐라도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냥 너만 있으면 돼. 너랑 있으면 아무리 어두운 곳도 환히 빛나는 것 같고, 시든 꽃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
묻지도 않은 얘기를 에헤헤 웃으며 떠듬떠듬 말하던 주제에.
하루 종일 대꾸 한 번을 안 해도 종알종알 질문하며 애정을 구걸했으면서.
줄곧 남자라곤 자신 하나밖에 모르는 바보가 무슨.
분명 쫓아올 것이다.
어디서 질투 요법 같은 쓸데없는 말을 듣고 온 모양인데, 그래봐야 자신에겐 소용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걸어도, 살롱을 나와 어두운 거리를 지나도.
심지어는 돌아봐 줬는데도…….
‘따라오지 않았어?’
정말로?
나라면 내장도 내어줄 것 같던 그 호구가?
“클레아스?”
골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클레아스가 흠칫,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그렇지. 너 따위가 무슨…….’
“왜 여기 있어요. 북클럽에 갔던 게 아니에요?”
“…….”
“얼굴은 왜 이렇게 질렸구. 걱정되게…….”
뺨을 만지는 이 여자는 니케아르샤가 아니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살짝 왔어. 남들 눈 피해서 오느라, 나 정말 고생했는데 안 안아줄 거예요?”
미카린이 에헷, 웃으며 양팔을 뻗었다.
클레아스는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을 쳐냈다.
“클레아스…….”
“니케의 얘길 해봐. 언제부터 이상해졌는지, 누굴 만났는지, 왜 저렇게 되었는지!”
“언니가…… 무슨 짓이라도 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언니는 뭐랄까, 조금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으니까…….”
“대신? 네가 델로시프 대공녀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
“……!”
“대신하고 싶으면 대공녀의 지위를 가져와!”
소리친 클레아스가 미카린을 놔둔 채로 멀어졌다.
미카린의 얼굴이 희멀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