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3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30화(30/177)
쨍그랑!
식은 물을 따뜻한 물로 바꿔오던 유스릴이 포트를 떨어뜨렸다.
유스릴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서 손을 발발 떨었고, 이스칼리온은 굳어졌다.
‘말을 맞추자는 게 뭐 저렇게 놀랄 일인가?’
나는 눈을 끔뻑였다.
이스칼리온이 이마를 쥔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대체 영애는…….”
“하지만 말을 맞추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가 친구라는 걸 수상하게 여길 텐데요.”
내가 곤란한 얼굴을 하니, 왜인지 두 남자는 당황한 것 같았다.
특히유스릴이 “아, …아아앗!” 소리치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이스칼리온은…….
“…….”
“……?”
저게 무슨 표정이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절대 좋은 표정은 아니란 것이다.
으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이스칼리온은 어렵단 말이지.’
난 회귀 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남의 속을 읽는 데엔 제법 자신이 있지.
하지만이스칼리온만은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는 날 구해주려고 한 사람이니까.
‘난 그런 대가 없는 호의는 받아본 적이 없어.’
셀레나마저도 내가 율리시즈 3싸대기 사건을 도운 것을 계기로 친구가 된 건데.
하지만이스칼리온은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
내가 중얼거리자,이스칼리온은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내가 말인가? 영애가 아니라?”
“전하가 이상해요. 왜 바라지 않으세요?”
나는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이것저것 요청하잖아요. 그런데 전하는 제게 바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대가가 필요하지 않은 관계도 있어.”
“제 세상엔 없어요. 단언할 수 있어요.”
“마치 숱하게 배신 당해온 사람 같군.”
“…….”
“그게 영애가 나와 손잡는 이유와 연결되어 있나?”
“…….”
나는 꾹,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대공이 픽 실소를 흘렸다.
‘왜 웃지?’
내가 미간을 좁히자, 대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영애가 대답하지 않는 건 동맹인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건…….”
“목적은 결코 말하지 않아도 난 어느 정도 영애를 신뢰해. 날 속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전하…….”
“그래서 일단은 동맹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영애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 도움을 청하지.”
누가 이런 남자를 푸른 피가 흐르는 악귀라고 했을까.
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다정하세요.”
“내가?”
“전하가요?!”
유스릴이 줍고 있던 유리 파편을 또 떨어뜨렸다.
“제가 불안하게 생각하니, 위로해 주신 거잖아요!”
“…….”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어쩌면 전하께는 목적을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내게 처음인 남자.
내가 나를 구원하도록 만든 그.
‘그러니까 어쩌면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물론 아직 완전히 신뢰는 안 되지만.
* * *
이스칼리온과 나의 이야기는 내가 꾸며내서 내용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화원 파티 때까지 내용을 외워주겠다고 했으니까.
유스릴을 통해서 은밀히 전했기 때문에, 우편국에서 검열 중 얘기가 퍼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비켜요.”
“아니, 그쪽이 비켜줘요. 난 델로시프 대공녀에게 물을 게 있다구요.”
“나야말로! 이봐요, 영애! 아켈로스 대공 전하와 당신, 정말로 밀회하는 사이인가요?”
“<미.보.단(미남자 보호 단체)> 헤넬라예요.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맞아요! 몇 없는 미남자를 독점하다뇨. 당신 오라버니들부터 아켈로스 전하에, 네 송이 꽃까지……!”
빠드득까드득 이를 가는 그녀들에게 나는 한 손을 들었다.
“네 송…… 뭐 그건 아닙니다.”
앗, 대답해 버렸네.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하지만 네 송이 꽃인지 뭔지는 절대 아니지.’
그건 불륜파이브에서 미카린을 제외한 네 남자를 말한다.
그것들과는 가십으로도 엮이기 싫다.
“그, 그럼 대공 전하는 맞다는 거네요?!”
후헤에엥!
영애들은 손수건을 문 채로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일이 더 귀찮아지기 전에 영애들을 어떻게든 비집고 나왔다.
“유스릴을 통해서 전했는데 어떻게 알려진 거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던 찰나.
우후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영애. 엊그제만 해도 이—렇게 작으셨는데 시간은 놀랍군요.”
자기 허리쯤을 손으로 짚은 저 남자는 아는 얼굴이었다.
“제가 그 정도만 했던 건 벌써 10년도 더 되었답니다. 그리고 아가씨 소리는 그만 하세요. ……겔라 교수님.”
겔라 필로스먼.
필로스먼 공작의 동생으로, 내가 학술원에 다니던 시절 담임 교수였다.
그 말인즉 클레아스, 라파엘, 루크반, 율리시즈까지 맡았단 거다.
학술원의 교훈은 ‘최고를 키워내는 건 최고다’니까.
“그럴까? 망나니에게 아가씨 호칭은 안 어울리긴 하지~.”
“그보다 어쩐 일이시죠?”
“당연히 내 학생의 성장이 궁금하기 때문이지~.”
겔라는 겉으로는 달콤하고 다정한 남자지만, 속은 반대였다.
학술원 시절엔 다들 천사 같은 얼굴에 속았다가 악마를 마주하곤 했었지.
나는 팍 식은 얼굴로 겔라를 쳐다봤다.
“전혀 믿는 얼굴이 아닌 게 딱 어린 시절의 망나니 같구나. 우후후.”
“그러니까 사실을 말씀해 주세요, 교수님.”
“그러지 뭐~. 다만, 남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 조용한 곳으로 가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겔라를 따라 걸었다.
겔라는 위험한 인물은 아니니까.
‘조카 한정 바보지만.’
겔라가 날 안내한 곳에 다다른 후.
난 멍하니 건물을 올려다봤다.
“얘기를 하자면서요?”
“맞아?”
“그런데 여긴 우리가 쓰던 기숙사잖아요!”
“그런데?”
‘얘는 참. 얘기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겔라가 먼저 들어갔다.
겔라가 멈춘 곳은 중정에 있는 거대한 원탁이었다.
“자, 여기란다. 니케아르샤.”
그런데 그곳엔…….
“너희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클레아스, 율리시즈, 루크반에게.
루크반이 투덜대며 턱을 괴었다.
“우리야말로 궁금하거든? 우리도 납치당하다시피 끌려온 거라구.”
“납치는 아니지. 다들 순순히 따라와 준 것이니까. 루크반, 얘야. 너는 나이가 들어서도 대가리가 텅텅 빈 머저리로구나.”
겔라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루크반을 쳐다봤다.
물론 루크반은 울컥했다.
“이제 네 밑에서 공부하던 내가 아니거든?! 난 로르아 공작가의……!”
“망둥어?”
겔라의 말에 풉, 웃음이 터져버렸다.
씩씩대던 루크반이 이번엔 나를 노려봤다.
“넌 또 왜 웃어! 저런 말이 재밌어?!”
거기에 대답한 건 겔라였다.
겔라는 내 어깨를 잡고 다정히 웃었다.
“자자, 싸움은 곤란해요. 늘 말했잖니.”
“말은 무슨. 장대를 가져와서 두들겨 패놓고선.”
겔라는 루크반을 무시하고 날 자리에 앉혔다.
율리시즈와 클레아스는 조용했다.
‘쟤들은 짚이는 게 있나?’
나는 겔라를 쳐다봤다.
“교수님, 이제 정말로 무슨 일로 부르신 건지 말씀해 주세요.”
“그게 말이야. 우리 조카가 글쎄~.”
겔라는 양손으로 발그레한 뺨을 잡고 몸을 배배 꼬았다.
미혼의 그는 형의 아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순하고, 매너 있고, 정의감 넘치는 그 조카가 숙부를 ‘징그럽다’고 했을까…….
“우리 조카가 학술원에 들어왔단다! 내가 가르치는 청소년부가 아니라 아쉽지만.”
겔라가 푸후,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청년부에 수석으로 입학했어. 굉장하지 않니~. 그 애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조카 자랑이 목적이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건 율리시즈였다.
옛날엔 겔라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던 사람이었는데. 물론 듣는 척한 거지만.
루크반도 율리시즈의 변화를 느꼈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율리시즈가 막 등을 돌렸을 때였다.
겔라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카는 청년부의 대표가 되었단다. 그런데 골칫거리가 있는 모양이야.”
“학술원에 골칫거리가 있는 건 당연하잖아.”
루크반이 투덜거렸다.
겔라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게 예비 권능자들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면 말이지.”
“…….”
“…….”
율리시즈는 걸음을 멈췄고, 클레아스는 묘하게 소름 돋는 미소를 머금었다.
‘설마 겔라가 말한 문제라는 게…….’
“어느 펍에서 주에 두 번 파티를 연다고 해. 우리 학술원 청년부 학생들이 자주 참석하는데, 하필 그들이 죄다 ‘예비 권능자’들이란 말이지.”
“…….”
“…….”
확실하다.
이건 클레아스의 펍 얘기였다.
“너희들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하구나. 대가리가 텅텅 빈 똥개를 제외하면.”
“대가리 텅텅이 혹시 나야?!”
“자, 너는 조용히.”
겔라가 탁,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러자.
“언제까지 내가 학생인 줄 알고 까불…… 면…… 곤란……….”
꿍!
루크반이 그대로 원탁에 엎어져 잠들었다.
나와 클레아스, 그리고 율리시즈에게선 긴장이 감돌았다.
그렇다. 겔라는 권능자로 <기면>이라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겔라는 루크반이 숨을 쉽게 쉬도록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미소 지었다.
“조카의 말로는 그 학생들이 마치 약에 중독된 것 같았다는 거야. 그렇다면 큰일이잖니? 그래서 펍을 감시 중이었어.”
“…….”
“그런데 너희를 보았다지 뭐니?”
겔라가 곤란한 표정으로 눈썹을 늘어뜨렸다.
“하나는 대공녀고, 하나는 후작가의 후계, 또 하나는 3싸대기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주목받는 백작가의 공자…… 내 조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겠니?”
“…….”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물어보러 왔지. 조카 대신 곤란하러 말야. 아아아, 그 아이 대신이라니 행복해라~.”
겔라는 팔을 끌어안으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힐끗 클레아스와 율리시즈를 쳐다봤다.
둘의 얼굴이 싸늘해져 있었다.
‘나한테는 좋은 일인데? 이게 바로 스승의 은혜란 건가?’
그때, 클레아스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학술원에서 직접 조사를 요청했나?”
“그럴 리가. 학생이 재학 중에 사건에 엮인다면 명예가 곤두박질칠 텐데.”
“아니면, 필로스먼 공작이 공식적으로 아들을 돕기 위해 파견한 건가?”
“형은 아들 일에 무심하단다. 그래서 고생은 늘 나만 하지.”
“그런데 우리가 대답할 이유가 어디 있지, 교수?”
“어머나, 권력으로 날 깔아뭉개려고?”
클레아스도 율리시즈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서 아주 불쾌했노라 교수의 그 ‘형님’께 전달해 주지.”
‘이거 소득 없이 끝나겠어!’
나는 율리시즈와 클레아스가 떠나기 전에 재빨리 겔라를 붙잡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짐작은 가요! 하지만 클레아스는 약과 상관없어요.”
“응?”
“제가 그날 펍에서 봤다구요. 클레아스가 없는 걸 말이에요!”
“어머나, 얘야. 마약은 꼭 정해진 날에만 하는 게 아니란다~.”
“아무튼 아니에요. 클레아스가 아니고…… 제가 약쟁이예요!”
그러자 클레아스와 율리시즈가 흠칫, 나를 쳐다봤다.
겔라의 표정에서 유쾌함이 읽혔다.
그는 클레아스와 율리시즈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죄인을 자처하는 걸 보면 너는 그 사건과 전혀 연관이 없구나, 망나니야.”
“…….”
“다만 알고 싶은 거야. 그렇지?”
나는 곁눈질로 겔라를 보며 아주 작게 말했다.
“알았으면 협력하세요.”
그러자 겔라가 소리쳤다.
“아니! 나는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겠어! 조카가 약쟁이들 때문에 곤란해지면 안…… 아니, 학생들이 약을 하는 걸 두고 볼 순 없으니! 내가 아무리 되는 대로 사는 교수라도!”
음, 되는 대로 사는 건 알고 있었구나.
“마음대로 하세요. 클레아스만 엮이지 않는다면, 저는 교수님 조카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도구가 되겠—.”
“니케—!”
소리친 사람은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율리시즈.
그가 격노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 * *
‘손목이 끌려가는 건 이제 익숙해.’
이 분야에도 프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아닐까.
지금도 율리시즈에게 손목이 잡혀 끌려가고 있지만, 아프지 않도록 각도와 손가락 위치를 조정했으니까.
그랬다.
율리시즈는 기숙사에서 무작정 나 하나만 끌고 나왔다.
기숙사와 멀리 떨어진 분수대 쪽으로.
분수대 벤치에 나를 떠밀듯 앉힌 율리시즈가 말했다.
“너, 겔라가 방금 무슨 얘기를 한 건진 알아?”
“마약 얘기.”
“그냥 마약 얘기가 아니야! 이건 네가 대공녀라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궁금해 죽겠지만, 나는 침착을 가장했다.
좀 더 자극해서 더 큰 정보를 얻어내야겠다.
“상황 돌아가는 걸 보아하니 클레아스가 엮일 것 같아. 그런 일은 두고 볼 수 없어.”
“클레아스 오르센이 뭔데—!”
율리시즈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나도 너에게 좋은 친구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지만, 그건 클레아스도 마찬가지야.”
“…….”
“그런데 왜 클레아스는 계속 옆에 두고, 나는 아닌 거지?”
“…….”
“클레아스를 봐. 네가 뒤집어쓰겠다고 하는데도 가만히 있잖아! 아니, 오히려 네가 뒤집어써 주길 바라고 있을 거라고…….”
율리시즈는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쓰레기들끼리 ‘그래도 내가 덜 더럽네, 아니네’를 따지는 건 웃기기만 했다.
“이거 참…… 당황스러운 상황이네, 율리시즈?”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는 건 클레아스였다.